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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EnerTravel 2023. 9. 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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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젊은 날의 초상』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작가 소개 

 

이문열은 1948년 6월 2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이문열이 세 살이 되던 해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는데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이문열의 아버지 이원철은 홀로 월북하고 이것은 이문열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모두 검정고시이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에 응시한다며 대학을 중퇴하게 되지만 실패하게 된다. 사법시험에 실패한 뒤 결혼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고 이러한 생활이 기초가 되어 자전적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 을 쓰게 된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한 이야기 솜씨로 풀어내어 대중적 호응을 받는 국민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이문열의 문학 세계는 종교와 예술관,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근대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제재를 다루며, 정통적인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역사나 우화의 형식 등 소설 기범도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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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은 1979년에서 1981년에 발표된 3부작 장편소설이다. 1인칭 주인공의 눈으로 30대가 되어버린 그가 10년전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취한다. 주인공인 나(영훈)의 대학 입학 전 - 대학 생활 - 대학 중퇴 시기를 분절적으로 그리되, 그것이 순행적 흐름 속에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전체의 틀은 길을 떠나 방황하다 돌아옴, 곧 여로형 소설이다. 나’는 번데기에서 나비를 꿈꾼다. 따라서 ‘성장 소설’ 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 나비는 아름다움의 실체, 또는 아름다움의 창조 행위를 뜻한다. 그것은 예술가의 꿈이다. 따라서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예술가 소설이다.

또한 하나의 소설이면서 독자적인 형식을 취하는 이 소설은 ‘영훈’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내적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유년기의 방황과 자아 성찰을 하게 되는 성장소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용요약 

1부   '하구'

 

이 소설의 주인공 이영훈이 열아홉 살 때 강진에서 열 달 남짓 동안 처참하고 황폐하였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자퇴 후 목적 없이 떠돌이 생활의 쓰라림과 서글픔을 겪던 그는 낙동강 하구의 강진 포구에서 조그만 발동선으로 모래 장사를 하는 형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다. 형은 이를 허락하고, 최소한 내가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마련하라고 했다. 강진에서 그는 갈대, 안개, 소주, 가난의 첫인상을 받았다. 강진은 낙동강과 남해바다가 합쳐지는 포구로 가끔 시내 버스가 지나다닐 정도로 시골이었다.

 

모래 장사 서기를 맡아 일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는 형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이튿날부터 모래장의 보초막에서 서기 일을 보게 되었다. 그런대로 자족하여 쾌적했던 모래장에서의 나날은 내부로부터의 균열로 인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모래 배의 선원들은 술꾼들이 많았다. 동업자인 대머리 최광탁과 땅딸보 박용칠은 선주이면서도 전형적인 선원들의 그것이었다. 폭음, 난투, 때려부수기가 일쑤였다.

 

영훈은 무분별한 충동에 이끌려 떠돈 이 년을 보충하기 위하여 꽤나 진지하고 상실하였음으로 내 공부는 상당히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오월이 다가는 어느날 불쾌한 오한과 두통을 느껴 모래장에서 돌아왔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고 모래장에 나가 다시 일하기를 반복하던 찰나에 여드리 째 되는 날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실려갔다. 장티푸스였고, 이는 상당기간 치료와 회복기간이 필요했다. 그가 자퇴 후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방탕만 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회복기간 동안 자신의 심정을 일기에 쓴 것을 보면 학교에 다니며 교과 공부만 하지 않았을 뿐 상당한 수준의 독서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로마신화, 로마 역사, 서구 고대 철학까지 상식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토굴같은 방에 홀로 누워 가벼운 읽을 거리와 얕은 잠과 우울한 몽상으로 보냈고, 강진에서의 내 삶은 갑작스럽고 속절없는 유적같이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 마음 놓고 마을을 나다닐 수 있게 되자 마을 사람들과 사귀기 시작하였는데 아버지 덕택으로 놀고 먹는 건달 김성구, 강진의 유일한 대학생 서동호, 폐병으로 요양 중인 별장집 남매를 사귀었다.

 

서동호는 영훈의 검정고시 준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부산 부잣집 자제라는 별장집 청년은 그의 말벗이 되었다. 영훈은 예쁜 누이에게 관심을 두었으나 그녀가 그에게 호감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누이 역시 나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 무렵 남매의 생활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 황(남매의 오빠)의 본가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별장집에 차를 보내왔다. 본가에 돌아가는 차였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생활필수품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나는 누이만 본가에 돌아가는 것에 의아해 하며 누이에게 내막을 물었다. 열일곱 살 무렵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계모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아버지와 절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은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누이와 함께 별장을 떠나 결핵환자 보호소로 들어갔다.

 

형훈은 마을의 유일한 대학생인 서동호의 도움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로 나의 유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의 본고사가 다시 석 달 앞으로 촉박 하였다. 여섯달 사이에 모래장은 여러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큰 자본으로 모래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로 인해 그의 형의 모래 사업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모래 사업 최광탁과 박용칠도 업자들의 덤핑에 속수무책이 되어 버렸다.

 

더 큰 변화는 최광탁이 위암으로 인해 죽었다는 것이다. 이 무렵 나는 그와 박용칠의 독특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듣게 된다. 가장 유별난 점은 결혼 후에 지속된 그들의 공동생활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그들 두 쌍의 부부는 한집에서 같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한 솥에 밥을 짓고 한 상에서 밥을 먹었다.

 

한참 뒤에 싸움의 문제가 된 원인은 박용칠의 아들이 자기와 닮았고, 최광탁의 둘째 딸은 박용칠과 닮았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분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최광탁이 죽기 마지막 날 끝이 난다. 최광탁은 어떤 예감이 있었는지 정신만 들면 박용칠을 찾았다. 최광탁과 박용칠은 폭음 후 부인들을 바꿔 관계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화해했다.

 

최광탁의 죽음으로 박용칠은 모래장에 흥미를 잃게 되고 모래배를 도회에서 온업자들에게 헐값으로 넘겨버렸다. 모래장의 중심이던 박용칠에 무너지자 나머지도 따라서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래도 형은 마지막까지 버틴 덕으로 도회지 업자들과 다소 유리한 거래를 한쪽이었다. 형은 재산의 절대량이 다소 줄긴 했으나 오랜 적자를 메우고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래장을 떠나 그런대로 꼴사납지 않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의 과거 회상) 대학 원서를 접수시킨 날 밤 일이 터졌다. 나의 대입에 큰 도움을 준 동호네 아버지 서노인의 일이었다. 접수를 한 나는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호를 찾아간다. 대문 앞에선 고함소리가 들렸고, 동호는 나를 데리고 가 모든 이야기를 했다. 일본 유학에 다녀왔다는 서동호의 아버지 서창길(서노인)은 사실 공산폭동 우두머리였다. 조그만 읍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하지만 국군토벌대가 반격하자 한 패는 지하로 숨고 한패는 산으로 도망쳤고 했다. 국군 토벌대에 의해 죽은 것으로 되어 그는 밀항선을 타러 이곳에 왔다가 병이 났다. 그때 서동호의 어머니가 구해줘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다시 이어서)강진에서의 나머지 날들은 다시 자학과도 흡사한 과로와 불면 속에 열에 들뜬 듯 몽롱하게 지나갔다. 어느새 시험날이 다가오고, 서울로 올라가 시험을 치게 되었다. 이후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을 허가 받았다. 이렇게 나의 유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에서의 일로 반드시 얘기해야 할 것이 아직 하나가 남았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이월 어느날 나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통해 별장집에 사람이 돌아온 걸 알았다. 별장에 갔더니 누이가 있었고 전과 달리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황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고,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김성구가 찾아와 별장집에 빨리 가라 말한다. 별장에 도착하자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악다구니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 여인이 와서 살림살이를 부수고 있었다. 그 여인은 본처였고, 영훈이 관심을 가졌던 누이는 첩이었다. 그 사실을 안 영훈은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망치듯 말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래 있다가는 더욱 참혹한 꼴을 보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그녀는 과도로 손목의 동맥을 잘라 자해를 했고, 본처도 그것을 보고 어느정도 분을 풀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날 밤 나는 서둘러 강진을 떠났다.

 

후일담으로 형도 이듬해에 강진을 뜨게 되어 나는 오랫동안 강진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작년 여름에야 나는 다시 강진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내 기억 속에 강진은 없었다. 전에 알던 사람들을 찾아보았는데 김성구 하나만 찾아볼 수 있었다. 김성구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소식을 듣게 되지만 대부분 취직이나 결혼으로 강진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황의 누이동생을 물어보았다. 김성구는 차를 태워 다대포쪽의 작으나 깨끗한 요정에 데려갔다. 그녀가 경영하는 요정이었는데, 마침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그녀가 있었다. 그녀와 나의 쓸쓸한 미소로 술잔을 잡으며 1부가 끝난다.

 

2부 우리 기쁜 젊은 날

 

1. 절망의 뿌리

 

영훈은 첫 일년은 스스로 돌아보기에도 대견할 만큼 진지하고 성실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쓰라린 낭인 생활을 청산한 나는 겨우 등록금과 한 달치 하숙비만 들고 출발해야 했지만 조금도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겹게 회복한 학창생활을 누구보다도 값지고 뜻있게 보내리라는 결의에 차있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집안 일까지 거들어야 하는 가정교사, 부모의 애정 어린 보호 속에 자란 동료 집단과의 이질성, 독서에 대한 턱없는 갈망이 피로가 되었다. 그 당시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당연했던 가정교사 생활은 일반적인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았다. 또한 좋은 교사와 충실한 지도 아래 자라난 모범생들로 이루어진 동료 집단은, 나에게 애초부터 잘못 지어진 옷과 같았다.

 

나는 무모하리 만큼 열심히 읽었지만,읽으면 읽을수록 도서관의 서가에는 더 많은 책들이 있었다. 입학한지 석달도 안돼 내 독서는 완전히 전공을 벗어나고 말았다.

 

2. 길동무들

 

영훈이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하가는 달 표면에 우주인들이 착륙하는 TV를 보면서 물질의 발전일 뿐 몰락하는 정신이라고 비관한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하가와 가을부터 슬슬 도서관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별다른 신념도 열정도 없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띤 학생들의 모임에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선배들은 여전히 자기야 말로 당대 정치의식이 첨단인 동시에 민중의 대변자임을 의심없이 믿고 있었으며, 하가와 나도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김형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군 제대 후 복학한 김형은 과격파 서클에 관심을 가진 영훈과 허가에게 정의와 양심은 참여하는 쪽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라고 하였다. 우리 시대의 강자는 명목상 민중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실질적 강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이런 김형의 말은 당시의 우리들에게 노회한 자기변명이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의 방어적 궤변으로 보였지만, 그날을 계기로 그는 가끔씩 하가와 나의 조그만 울타리 속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의 견해에는 찬동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그를 저항없이 받아들인 것은 전혀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소탈함과 공통되는 사변적 기질 때문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다가 하가와 내가 점차 그 서클로부터 멀어지게 되면서 김형은 완전히 우리와 한 동아리가 된다. 급우들은 우리 셋을 '세 철학자' 라고 불렀다. 어떤 때는 말하는 사람조차 혼란될 정도의 엄청난 주제를 놓고 심각하게 떠드는 우리 셋을 비꼬아 말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심각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3. 무엇을 할 것인가

 

문학적인 야망은 없지만 두터운 습작 노트는 갖고 있던 영훈과 허가는 김형의 인도로 교내 문학 서클에 가입하였다. 학교에 하나씩은 있을 법한 모임으로 삼십 명도 채 안되는 회원에 비해 활동은 꽤 활발한 편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회원들의 작품 합평회가 있었고, 등사 아닌 인쇄물의 작품집도 몇 권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김형이 그 문학회의 부회장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시를 썼지만 시는 천재의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허덕일 때 하가는 예술은 공허함만이라며 먼저 떠났다. 하가는 예술이 인생보다 길지만 길다고 가치 있다는 것 사이에 필연성이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하가가 그런 소년적인 결의에 차서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 문학회에 남아 잇었다. 김형의 가치관을 지지해서라기 보다는 소설 쪽으로 내 장르를 바꾸고 난 후의 자질구레한 성공들 때문이었다.

 

문학에서 떠난 하가는 기독교에 얼씬거렸으나 두어 달 만에 술자리로 돌아왔다. 얼마 후 그는 스물 예닐곱 가정 대학의 젊은 강사에 빠졌으나 그녀가 유학을 떠나버렸다. 잠시 실의에 빠졌던 그는 어여쁜 영문학도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해 그는 가련해졌다. 기득권을 주장하는 녀석이 하가를 찾아와 작년에 볼이 다 봤으니 그녀와 헤어질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하가는 영훈이 문학회에 지쳐갈 무렵에 나를 남겨둔 채 사라져 버렸다.

 

영훈은 문학에 두려움과 의심이 생겼다. 그러는 사이 엉망이 된 생활은 문학에 대한 내 견해를 점점 악의에 찬 쪽으로 몰아갔다. 비뚤어진 복수심으로 자신도 이해 못하는 이상한 글을 써서 발표하며 그들의 합평을 비웃고, 남의 글을 찢어발기고 난도질했다. 결국 문학회에 대한 비뚤어진 복수심으로 회원들을 조롱하다가 쫓겨나게 되었다. 회장은 영훈을 나르시시즘에 취해 천재의 흉내를 내는 속물이며, 그런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곧잘 공격적으로 나오는 비겁자라고 했다. 김형도 그런 영훈을 알고 있었지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영훈에게 통과의례가 필요한 것 같았기 때문이라며 모임 만이지 문학의 대지 자체를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4. 주점 쩌그노트의 추억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 것은 아무래도 문학회를 들락거리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쩌그노트’란 술집에서 일년간 붙어살다시피 마셨다. 그러 다보니 기억에 남는 술자리가 많았다. 돈이 없어서 그들은 술을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맡기고 술을 마셨다.

 

5. 사랑 놀이

 

영훈은 회색으로 낮게 드리운 도희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혜연을 회상한다. 둘은 처음 자연과학관의 한 강의실에서 만났는데 그 당시 영훈은 술집을 드나들 대라 수업을 빼먹고 성적 역시 좋지 않았다. 혜연은 평소 성실한 학생으로 나는 그녀에게 노트를 빌리려 했지만 이내 거절당하고 만다. 그 다음날, 혜연은 깨끗하게 정리된 노트 한권을 내밀었다. 그렇게 사랑 놀이가 시작되었다. 둘만의 공간들과 애틋한 정애를 느꼈던 거리를 떠올린다.

 

둘의 결말은 괴로움의 날에 받았던 상처의 흉터였다. 우선 혜연과 나는 살아온 과정 부터가 일부로 대비시키려고 찾아 세운 듯 달랐다. 나는 고아나 다를 바 없이 떠돌며 자랐고, 혜연은 유복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명문 만을 거쳐 올라왔다.

나는 첫번째 다른 점의 당연한 결과였지만 의식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이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들은 점점 우리를 가로막게 되었다. 나는 자존심을 계속 세우고 투정을 부렸다.  한바탕 다툰 후, 나는 사과를 대신한답시고 청혼한다. 우리 사이의 벽을 궁극적으로 허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혜연은 거절하고 종말을 맞이했다.

 

6. 해따기

 

무지개 도시를 찾는 여순례의 부탁을 받은 순례자가 해를 따기 위해 고초를 겪지만 나무, 공룡, 까마귀, 기괴한 인간들을 만난다. 순례자는 그녀에 대한 연모는 더 깊어졌다. 순례자는 결국 해를 따지도 못하고 죽어서 몸은 뼈까지 썩었다. 나무는 그 시체에서 자양을 얻어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순례자의 심장만은 썩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서서히 빛과 열을 뿜는다. 그때 늙고 지친 여순례가 돌아와 나무가 주는 열매을 받아 먹는다. 여순례가 순례자의 심장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것은 푸른 하늘 가운데로 사라져 별이 되었다. '해따기'는 지금까지 이야기와 판이한 설화 같은 이야기이다.

 

7. 새지 않는 밤

 

1960년대 말에 서울에서 빈털터리가 안정된 주소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행운에 속했다. 하지만 나는 용케 얻은 그 행운조차 술과 낭비로 망쳐버리고 다시 거리로 쫓겨났다. 그해 구월 중순의 일이었다. 그 지경이 될 때 까지 두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되돌려보려고 애를 썼다. 형에게 간청하여 하숙비를 송금 받으면서도 가정교사로 입주했고, 또 따로 시간을 쪼개 그룹지도까지 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늦어버린 뒤였다. 조금이라도 값나갈 만한 물건은 모조리 전당포에 가 있었고 겨울 옷가지는 시장통 술집에 있었다. 가정교사로 입주해 있는 집에서는 늦은 귀가와 술 때문에 빈번이 쫓겨나고 애써 모은 과외 그룹도 불성실한 지도로 흩어지게 되었다.

 

영훈은 세 끼 먹을 것과 누울 잠자리도 근심해야 할 만큼 영락하고 말았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청량리 역 부근의 무허가 여인숙에서 모르는 사람과 동숙 해야했다. 열 너덧 정도의 동숙자는 남루한 겉옷을 벗자 땟국에 절은 내의를 입고 있어 이가 내 이불 속으로 기어드는 느낌으로 온몸이 근질거렸다. 나는 갖고 있는 삼천 원을 소년이 훔쳐갈 까봐 돈을 책 속에 넣어 베개로 베어 잘 작정이었다. 소년은 영훈에게 소설가냐고 물으며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하였다.

 

영훈은 부모에게서 버려진 후 구두닦이 똘마니, 고아원 탈출, 앵벌이를 한다는 소년의 신세타령을 들어주었다. 아빠는 새엄마가 네명이나 있었는데, 임신만 하면 엄마를 버렸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만났더니 자기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며 그래서 소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임신만 하며 아내를 버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년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굶는 사람, 떠는 사람, 앓는 사람 등이 없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오만삼천 원이 든 통장을 보여 주었다. 열심히 의지를 가지고 사는 소년을 보고 나는 소년을 의심한 점이 부끄러워 용서를 구했다.

 

8. 여름의 끝

 

유난히 길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다시 열린 것은 구월 하순이었다. 선배의 호의 덕분에 임시를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나머지 생활은 속수무책이었다. 개학해 만나보니 김형도 하가도 어지간히 지친 기색들이었다. 하가는 방학 사이에 해병에 지원을 해서 입소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고, 김형은 그 학기만 마치고 일년 정도 휴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가는 월남전에 참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김형은 소설을 쓰겠다고 휴학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며칠 안돼 하가는 정말로 등교를 중단했고, 김형도 학교에서 잘 만나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릴없이 교정을 어슬렁거리는 내 앞에 같은 학과의 친구들이 셋 나타났다. 시간이 있으면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제의였다. 술을 나누면서 그들이 물어온 것은 우리 과를 중심으로 한 민속 연구 서클에 들어올 의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큰둥한 반응으로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이 이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는 기분이 든 것은 아무래도 그 며칠 후 김형이 끔찍한 일을 당하고 나서부터였다. 김형이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 뇌진탕으로 죽었다. 영훈은 이 사건을 겪고 학업을 포기하고 이 도시를 떠나겠다고 다짐한다.

 

 어지간히 지친 하가는 해병에 지원하여 월남으로 도피하려고 했다. 김형은 휴학하여 상금을 받기 위해 소설을 쓰겠다던 김형은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뇌진탕으로 죽었다. 영훈은 학업을 포기하고 이 도시를 떠났다. 철 이른 낙엽이 날리는 시월의 오후 한 때는 아픔이요 시련이었으되 이제는 다만 애틋함이요 그리움일 뿐인, 아, 그 기쁜 우리 젊은 날. (책의 구절)

 

3부 그해 겨울

 

십이 년 전이 되는 그해 겨울 나는 경상북도 어느 산촌의 술집에서 ‘방우’로 있었다. ‘방우’라는 말은 원래 시골 사람에게 흔한 고유명사였지만, 당시 그 술집에서는 허드레 일꾼, 즉 불목하니의 뜻을 가진 보통명사로 쓰이고 있었다. 물론 내가 애초에 나의 도시와 학교를 떠난 것은 그런 곳에서 방우 노릇이나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처음 나는 광부가 될 작정으로 강원도로 갔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밥벌이가 쉽지 않을 때라, 난데서 굴러 들어온 신통찮은 건달에게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번 개인 탄광에 들어가 볼 기회를 얻었는데 그만 내가 질려버렸다. 갱에 들어간 첫날에 막장이 내려앉아 두 사람이 묻히는 것을 보고 질겁을 한 나는 그날로 광부 노릇을 단념하고 말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동해안의 조그만 어촌이었다. 거기서 고기잡이 배나 한번 타볼까 했던 것인데, 배의 선주라는 사람은 공부나 하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길을 닷새나 걸어 도착하게 된 곳이 바로 술집이었다.

그 집에 든 첫날 내 마지막돈으로 숙박비를 치르고 술까지 청해 거하게 마신 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니 암담 하였다. 빈털터리가 된 채 낯선 곳에 버려져 있었다. 나는 마음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머슴자리라도 하나 소개해 달라고 매달렸는데 자신이 월급 같은 것은 없고 먹고 자는 것 외에 잡비나 몇 푼 보태 주겠다는 조건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광부나 선원이 되려 한 것은 몸이 혹사 당해야 혼란과 피로로 지친 정신이 휴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있던 그 술집은 조그만 산골 면소재지에는 지나치리만큼 큰 규모였다. 내가 맡은 일은 주로 그 아홉 개의 방에 걸린 남포등이 항상 밝고 고른 빛을 내개 하는 것과 그 온돌을 밤새도록 따뜻하게 데워 놓는 것이었다.

이제 그 ‘때’ 를 얘기하겠다. 내가 몸담아 있던 그 집이 조용한 시골 여관에서 갑자기 색시 예닐곱과 아홉 개의 밀실을 가진,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명의 손님이 들끓는 요정으로 변하는 때를.

 

 

통칭 ‘감정원’ 이라 불리는 일단의 별정직 공무원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매주 리어카가 넘는 고급 안주, 많은 은 방과 색시가 필요하다는 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원들이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이야말로 그 지방의 주산물인 잎담배의 등급을 매기고 무게를 달 사람들이었다.

 

매일매일 벌어지던 술자리와 색시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 그리고 경작자들의 아첨에 둘러싸인 그 감정원들을 보고, 색시들이 쓸쓸하고 가엾다고 여겨졌다.

 

어쨌든 처음 얼마 동안 그곳의 생활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자신의 근육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그 생활의 청산을 강요하는 사람이 둘이나 생겼다. 그 하나는 온 지 얼마 안되는 윤양이란 색시였다. 무조건적인 관심이 부담이 되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그곳 지서의 차석이었다. 우연히 그 술집에 들러 나를 본 후 그는 왠지 내게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학생증을 보여주자 끔찍한 범죄자 취급을 하였고, 이래저래 나는 결국 그곳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바다로 향했다. 이백 리 넘는 길을 다니며 많은 행인들을 만났다. 모두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그 창백한 폐병쟁이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여행은 적어도 바다까지는 유쾌하고 만족스런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폐병쟁이를 보고 나 스스로 더욱 비참함을 느꼈다.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이념은 나를 배반했고 아름다움은 내 접근을 거부했으며 학문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라고.

 

나는 괴로운 상념 속에서, 무엇을 좀 먹어야 한다는 것도 술을 마실 것도 모두 잊고 터덜거리며 걸었다. 그 날 오후 늦게 나는 조그만 개울을 따라나 있는 가로수 길을 걷고 있었는데, 모닥불의 연기를 보았다. 다가가 보니 한 노인이 숫돌에다 칼을 갈고 있는 중이었다. 언뜻 지나쳐가는 눈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서늘하게 가슴을 찌르는 데가 있었다. 그의 얼굴에도 어딘가 예사롭지 않은 원한과 살기가 서려 있었다.

 

쓸쓸한 황혼에 Y면에 다다라 저녁을 때우려고 중국집에 들어가려 할 때 서너 살 위인 친척 누나를 만났다. 나는 미인인 그녀가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유부남을 사랑해서 인생을 망쳤다는 풍문을 들었었다. 그녀가 가자고 하여 그녀의 자취방으로 갔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할 거라며 나에게도 학교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나중에 교수가 되었지만 그 밤은 불행하게 끝난 사랑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술을 마시던 그녀는 울었다. 다음 날 폭설로 떠나려는 말렸지만 영훈은 하룻밤 지낸 자취방을 떠났다.

 

나는 눈 덮인 창수령을 넘으며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아름다움의 창조와 관련된 삶을 갖고 싶었다. 몸이 어지간히 지쳐 있었기에 갑작스런 피로가 몰려왔다. 누이 덮인 고갯길을 세 시간이 넘게 헤쳐 나왔기 때문에 나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별수 없이 나는 전진을 단념하고 그 재를 벗어나 첫번째 만난 주막으로 갔다. 고맙게도 따뜻한 주막방을 송두리째 비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막 점심을 먹고 일어났을 때 방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틀 전 개울가에서 만났던 칼갈이 노인이었다. 노인 인줄 알았지만 중년의 남성이었다. 칼갈이도 대진(바다)에 간다고 했다. 칼갈이는 “나는 죽이러 가고 자넨 죽으러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칼갈이는 동란 전야에 자유 평등의 이름으로 거창한 꿈을 꾸었는데 하나가 먼저 꿈에서 깨어나 칼갈이와 동무들을 고발했다. 그들은 곧 칼갈이와 동무들을 체포하고 고문했고 재판에 넘겼다. 칼갈이는 감옥에서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배신자에 대한 증오로 버텼다고 했다. 복수를 맹세했고 그 표지가 바로 개울가에서 갈고 있던 바로 그 칼이었다고 했다.

감옥에서 십구 년이나 썩고 나온 마흔 살 정치범에서 사회 복귀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칼갈이는 가장 충실하게 배신자를 좇았다. 칼갈이란 직업은 합법적으로 칼을 소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 아니라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바로 그 배신자는 대진에 있어 바다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나와 칼갈이는 헤어져 영마루를 넘고 추위와 눈보라 속을 걸어 바다에 도착했다. 나는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파도가 언 발등을 녹였다. 바닷가 바위에 기대어 한동안 울었다. 바닷가에서 확인한 절망은 영훈에게 귀중한 자유를 주었다. 절망이야 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며 구원이었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

 

칼갈이 사내가 다시 나타난 것은 내 원인 모를 슬픔과 허탈이 어느정도 수습된 후였다. 그는 헤어질 때와는 달리 몹시 초라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나는 왠지 새삼 서러워진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가지고 있던 상자 안에서 갈고 있던 칼을 들었다. 잠시 알 수 없는 집착의 눈길로 그 칼을 바라보다 이내 결단을 내린 듯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이유를 물었다. 배신자를 찾아갔지만 그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병든 아내와 부스럼투성이 남매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배고파 울고,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배신자는 죽여달라고 빌었고, 칼갈이는 이내 거절했다고 했다.

이튿날 나는 중앙선의 상행 열차를 타고 있었다. 활짝 갠 늦겨울의 오후였다. 열차는 어느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그 줄기 끝마다 바알갛게 맺혀 있던 것은 분명 그 어느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이었다.

 

감상

젊은 날의 초상 은 젊은 주인공이 정서적 충동과 지적 모험을 겪으면서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데,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인 나에게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작가는 성장기에 겪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뇌에 그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자신이 체험한 바 있는 젊음의 시절, 그 정신적 충격과 아픔의 시련 등을 근간으로 소설적 구성의 완결성을 시도하였다. 그가 끈기 있게 추적하고 있는 젊음의 시기는 성년의 단계로 입문해 가는 가장 격렬한 변화의 시기이며, 이 시기에 겪는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방황과 그 고통은 성숙한 인간으로서 기성의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 의례 같다. 같은 시기를 지나는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로서 그 방황이나 갈등의 근본적인 뿌리는 같은 곳에 있다고 본다.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갈등과 방황은 대체로 그 원인이 내면적인 것에 있다기 보다는 외면적인 것에서 찾아진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부조화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영훈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노력을 지속하는데, 삶의 현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단계를 올라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소설의 핵심에 해당된다. 방황을 통해 더 큰 것으 찾고자 하는 데에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나 자신과 싸워 가면서 작품 속 주인공이 얻은 깨달음과 삶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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