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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EnerTravel 2023. 9. 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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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책의 배경 

 

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떤 책인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저자인 괴테가 베츨라에 머물렀던 1772년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에 둔 소설이다. 당시 괴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녀에겐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결국 단념하고 그녀 곁을 떠난 괴테는 이후 베츨라에서 동료로 지냈던 예루잘렘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예루잘렘은 괴테와 마찬가지로 유부녀인 엘리자베트 헬트라는 여성을 사랑했으며, 이 사랑이 결실을 얻지 못하자 권총으로 자살한다. 25살의 괴테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게 된다.

 

-책의 구성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서간체 소설’이다. 이는 18세기에 유럽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형식이다. 서간체 소설은 편지 형식으로 인물의 생각이나 감정을 작가의 개입 없이 상세히 전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로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그 편지는 1771년 5월 4일에 시작해서 1772년 1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소설 전체가 (베르테르가 작성한) 편지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2부 중반 (베르테르가 자살을 한 이후)에 이르면 편집자가 등장하고, 이에 따라 서술의 관점도 교체된다.

 

-책의 제목

이 책의 제목은 흔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있으나 사실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나 ‘젊은 베르테르의 고통’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제목이 다양하게 번역된 이유는 ‘Leiden’이란 독일어 단어를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나뉜다. 원어를 고려하면 ‘고통’이나 ‘괴로움’ 혹은 ‘고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시대적 배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의 1770년에서 1780년에 걸쳐 독일에서 일어난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작이다. 슈투름 운트 드랑은 ‘질풍과 노도’로 번역되며, 이러한 명칭의 유래는 클링거의 희곡(1776)에서 왔다.

슈트름 운트 드랑은 문명과 문화 발전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고, ‘자연’을 옹호했다. 이는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의 영향인데, 루소는 계몽주의 철학자이면서도 반문명적 성향을 보이며 자연주의를 내세웠다.

슈투름 운트 드랑은 ‘감정 예찬’과 ‘천재 숭배’(자연이 선사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를 내세웠는데, 이는 18세기의 계몽주의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계몽주의는 ‘이성’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투름 운트 드랑이 계몽주의에 전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계몽주의가 항상 이성을 우위로 두었다면, 슈투름 운트 드랑은 이러한 점을 비판하고 감정의 가치 절상을 열정적으로 추구한 것이다.

 

이처럼 독일의 계몽주의가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이러한 성향을 띠게 된 것은 30년 전쟁 이후 지방분권체제로 인해 시민계급을 보호해줄 세력이 없어 독일의 시민계급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투름 운트 드랑 운동은 사회적 규칙과 규범 등을 거부하고 사회 밖에만 머무르려 했기에 정치적인 행위 없이 이러한 문학과 같은 예술세계에서만 두드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따져봤을 때 ‘베르테르’의 수동적이며 사회적이지 못한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슈투름 운트 드랑 운동이 사회규범에서 벗어난 점을 보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베르테르’의 자살은 ‘사회의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한 탈출구’로 볼 수 있다. 당시 이 책을 읽고 베르테르를 따라서 자살한 청년들이 많아져 이와 같이 선망하는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따라서 자살하는 것을 가리켜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괴테 문학 강의』라는 책을 보면 “흉악한 사형수일지라도 죽을 때는 성직자가 동행하여 기도를 해주기 마련인데, 베르테르의 장례식에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다>. 괴테는 베르테르의 자살을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라고 나와있다. 이를 통해서 저자인 괴테는 베르테르의 자살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며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한 사람들은 그의 의중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괴테는 자신의 치유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이였기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열병을 치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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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가)  저자의 생애

-괴테의 출생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28일 (이는 베르테르의 생일과 동일하다) 독일 상공업의 중심 도시였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괴테의 조부가 부유했기 때문에 자손들은 꽤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괴테의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이였고, 어머니는 시장의 딸이었다. 이러한 유복한 환경 아래에서 괴테는 16살 때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법학보다는 문학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괴테의 삶에 가장 큰 인기를 가져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2년에는 부친의 제안에 따라 독일제국 고등법원에서 법관 시보로 근무하게 되었으나 역시나 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어느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샤를로테 부프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파우스트』조차도 이 인기를 넘지는 못할 정도였다.) 이 소설을 발표한 이후 지인들과 함께 스위스를 여행하던 괴테는 우연히 바이마르 공국의 아우구스트 대공을 만나 1775년 바이마르 공국으로 가서 다양한 직책을 맡는다.

 

-고전주의로 들어선 괴테

그러나 뜻한 일이 순조롭지 않자 1786년 이탈리아로 떠나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고대 조형예술에 큰 감명을 받는다. 이러한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있어 ‘슈투름 운트 드랑’운동에 거리를 두고, 고전주의적 예술관을 추구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1794년 시인 실러와 친구로서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며 1805년 실러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에 괴테는 큰 충격을 받고 말년에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집필에 몰두하고, 1832년 2월 22일 83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나)  저자의 인류사에 미친 영향

 

-문학: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독일 '질풍노도(Sturm und Drang)'운동과 바이마르 고전주의 운동의 지도자였고, 유럽에 낭만주의를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어는 '짐승의 언어'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천대받고 있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불어와 영어뿐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작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자 독일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괴테는 또 문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학식을 지닌 천재였다. 생물학, 해부학, 지질학 등 과학 분야에서 14권의 저서를 펴냈고, 화가로서 3천점에 이르는 그림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업적과 영향력을 기려 독일 정부는 자국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른 나라에 세우는 해외문화원의 명칭을 '괴테 인스티튜트(Goethe Institut)'라고 지었다

 

다)  저자와 관련을 맺은 주요인물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유년시절부터 타고난 독서가였으며 특히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7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폴레옹과 괴테는 1808년 10월 2일에 에어푸르트에서 만났다. 나폴레옹은 괴테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한 부분을 가리키며 “자연스럽지 않다”며 왜 그렇게 된 거냐고 질문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가리킨 부분이 어느 부분이었는지에 대해서 괴테가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이 일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샤를로테 부프: 괴테가 사랑했던 여인이다. 괴테는 베츨라에 머물 당시 샤를로테 부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샤를로테는 이미 크리스티안 케스트너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젊은 괴테는 이 두 사람과 한동한 미묘한 삼각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단념하고 그녀를 떠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된다. 극중 베르테르가 사랑했던 여인의 모티브이며, 결국 괴테가 작가로서 큰 명성을 떨치게 된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이후로 괴테는 샤를로테 외에도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며 그녀들과의 사랑을 통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수많은 작품들을 쓰기도 했다.

-실러: 실러는 시인으로 괴테와 실러의 세계관은 달랐으나, 그들은 생전에 깊은 우정을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프랑스에는 괴테와 실러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실러 괴테 박물관’이 있을 정도이다. 실러와 괴테는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내용요약 

 

가)  등장인물 설명

 

<베르테르> (굉장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인물)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극중에서 베르테르는 로테 역시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다. 하지만 극중에서 로테가 베르테르를 친구 이상으로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어떠한 구체적 행위도 나타나 있지않다. 그러므로 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성적인 베르테르의 성향에 근거할 수 있다.

당시 이성만능주의였던 계몽시대에 반발하여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창조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현실적이지 않고) 자연을 사랑한다.

이 일로 해서 나는 앞으로도 오직 자연에만 의지해 그림을 그리겠다는 내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되었지. 오직 자연만이 무한히 풍요로우며, 오직 자연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드는 법이라네. 물론 마치 시민 사회를 예찬하듯, 규칙의 장점을 찬양할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규칙은 어떤 것이든 간에 자연의 진실한 감정과 표현을 파괴하기 마련이라네[2]

(베르테르는 위와 같이 사회 규범이나 규칙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연을 찬미했다. 이러한 베르테르의 성격은 결국 그를 사회에서 동떨어지게 만들며 그를 자살로 몰아넣는 이유가 된다.)

 

<로테>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자)

-알베르토라는 약혼자가 있다.

-베르테르와 문학적 교감을 나눈다.

-모성애가 있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로테는 여전히 죽어가는 여인을 보살피고 있네. 그녀는 언제든 남을 돕는 마음씨 고운 사람인지라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고통은 줄어들고 행복이 솟는다네[3]

(극중에서 로테가 얼마나 목가적이고 따뜻한 성품을 가졌는지는 수시로 알 수 있다. 그녀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이들을 잘 돌보며, 아픈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을 돌봐주는 등의 행위로 보아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

 

<알베르트> (베르테르와 대비되는 이성적인 인물)

-로테의 약혼자

-착실하고, 이성적이며 마음이 넓다.

(베르테르조차 “그는 착실하고 훌륭한 남자인지라 누구든지 호의를 품을 수 밖에 없네[4]”라고 할 정도로 그는 착실하고 점잖은 사람이다. 또한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알면서도 베르테르가 자신이 있는 것을 불편해할까봐 자리를 피해주는 넓은 마음씨를 가졌다.

이런 알베르토는 베르테르와 굉장히 대비되는 인물로 감성적인 베르테르와 다르게 굉장히 이성적이며 그런 점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시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다.)

 

<여주인을 사모하던 젊은이> (제2의 베르테르)

-여주인의 하인으로 여주인을 사모하다가 결국 쫓겨나고 새로 들어온 하인을 죽이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

(베르테르는 이 젊은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그를 변호하려고 애쓰나 결국 실패한다. )

 

<하인리히> (제3의 베르테르)

-로테를 사모하다 결국 고백했고, 그로 인해 해고를 당해 미쳐버린 인물

나)  내용 요약

 

베르테르는 어머니의 유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도시로 떠나온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참석하게 된 무도회에 가는 길에 로테라는 여인을 만나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는 나날이 더욱 로테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로테를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에 결국 로테를 떠나서 궁정에 취직한다. 하지만 백작의 초대를 받아 간 모임자리에서 신분 때문에 귀족들에게 크게 창피를 당하는 사건을 겪고, 로테를 닮아 호감을 가졌던 B양에게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한다.

그리고 사직서를 내고 그곳을 떠나 고향에 머무르는 등 마음을 추스르려고 하지만 결국엔 다시 로테 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두 인물을 만나면서 베르테르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또한 이러한 베르테르의 존재는 알베르트와 로테의 관계에도 불편함을 주었기에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자제해달라고 하며 성탄절 전야까지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로테의 말을 따르지 않고 그 전에 찾아가 로테에게 키스를 한다. 이에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어요!”라고 외친다. 결국 베르테르는 죽을 각오를 하고, 알베르트에게 여행을 갈 예정이나 권총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베르테르는 그 권총을 로테가 꺼내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을 하고 만다. 소식을 들은 로테는 충격을 받아 쓰러지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호메로스, 오시안, 『에밀리아 갈로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여러 문학작품들이 등장한다. 그중에 가장 눈여겨볼 세 개의 작품이 바로 ‘호메로스’와 ‘오시안’ 그리고 베르테르가 자살할 때 그의 책상에 펼쳐져있던 레싱의 『에밀리아 갈로티』이다.

 

(아래는 책 ‘젊은 베르터의 고통’과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의 뒤쪽에 있는 ‘해설’을 참고하여 요약한 내용입니다)

“내게 필요한 건 자장가야. 한데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 충분히 있어. 얼마나 자주 나는 그의 시를 읊으며 들끓는 나의 피를 잠재우고 있는지 몰라”

 

베르테르가 찬미하는 호메로스의 세계는 소박한 자연적 형태의 사회이다. 베르테르는 규칙과 같은 법규가 존재하는 현실세계를 견디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호메로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가 백작이 초대한 자리에서 귀족들에게 창피를 당할 때도 호메로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10월 12일 일기에서 “오시안이 내 마음속에서 호메로스를 쫓아 버렸네! 이 영웅이 나를 이끌고 가는 곳은 얼마나 장엄한 세계였는가!” 라고 한다. 이는 호메로스가 주는 마음의 안정도 일시적이며 결국 그를 영원히 충족시켜줄 수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호메로스가 ‘자장가’ 역할을 했다면 오시안은 베르테르가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결말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베르테르가 자살할 때 그의 책상에 펼쳐져 있던 ‘에밀리아 갈로티’는 괴테가 ‘자살’로 끝낸 소설의 결말에 대해 비윤리적이라는 지탄을 피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이다. 에밀리아 갈로티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여성이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주요인물들은 귀족계급과 시민계급으로 나뉘며, 시민계급은 정치에서 제외된 피지배 계급이므로 바깥세계에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괴테는 베르테르의 자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길 바랐던 것이다.

 

 감상 및 소감 

 

가) 한계점 및 아쉬운 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분량이 그리 두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베르테르의 지나친 감성에 공감이 잘 되지 않아 읽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시대적 배경을 알아본 후에야 논란이 될만한 소재였던 베르테르의 자살이나 베르테르의 지나치게 감성적인 면모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베르테르가 지나치게 감성적인 것 외에도 또다른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로테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수차례 언급만 할 뿐 로테를 위해 어떠한 적극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던 점이다. 그렇기에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로테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로테에게 그저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베르테르의 태도는 굉장히 수동적이고 이기적이게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베르테르의 수동적인 태도는 당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던 시민계급의 한계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독자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여 읽기 어려운 책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한계점이 아닐까?) 그래서 베르테르에게 동정심이 가기보다는 베르테르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로테와 알베르토가 안쓰럽게 여겨졌다. 로테를 향한 자신만의 사랑을 주장하는 베르테르와 달리, 로테와 알베르토는 최대한 그를 인내하고 이해하려 애썼던 행동들을 여러 차례 보였기 때문이다.

 

나) 책을 통해 배울 점

 

이성을 중시하던 계몽주의의 흐름에 ‘감성’을 외친 이 작품은 당시 큰 충격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당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피지배계층인 시민계급에게 많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작가인 괴테조차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을 시도할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내 생각에 괴테는 베르테르의 파멸을 보여줌으로써 수동적인 베르테르를 비판하고, 시민계급에게 적극성을 부여해주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베르테르는 감성을, 알베르트는 이성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는데 두 인물 모두에게 헛점이 있었다고 본다. 베르테르가 지나치게 감성적인 구석이 있긴 했지만 (그래서 공감이 어려웠고) 알베르트와 베르테르의 대화장면을 읽으면서 알베르트의 논리에도 100퍼센트 공감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요즘 자주 쓰는 용어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베르테르는 지나치게 ‘오글거리는’ 감성을 갖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계몽주의 시대가 그랬듯,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성’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글거린다’라는 용어가 나온 후로 우리는 대다수의 감성을 ‘오글거린다’고 치부해버렸다. 그렇기에 이런 시대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더욱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작품을 가리켜 우리는 고전(古典)이라고 한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이 작품이 고전으로서 갖고 있는 가치가 바로 ‘감성과 이성의 조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글쓰기’나 ‘자존감’과 같은 아이콘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부상하는 이유는 이성에 치우쳐 있는 지금의 현실에 ‘감성’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 아닐까?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이 우월한 가치를 갖고 있는 시대에 ‘오글거린다’라는 말을 잠시 제쳐두고, 좀더 감성에 호소하고 자신의 내면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5.토론하고 싶은 주제

 

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  이성=감성 / 이성>감성 / 감성<이성, 이 세가지 경우 중 무엇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극중에서 ‘알베르트’와 ‘베르테르’는 극명하게 갈린다. 알베르트는 이성적인 인물인 반면. 베르테르는 굉장히 감성적이다. 나는 처음에 알베르트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처럼 합리적으로 무언가를 나누는 것에는 어떠한 헛점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즉 베르테르의 논리를 어느정도 수용한 것이다. 물론 베르테르는 위에도 언급했듯이 내게 있어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 인물이었음에도 말이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성이 감성의 우위에 있었다. 나는 지금의 우리 사회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시대에 감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상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혹은 나와 다르게 그 반대의 경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이 더 우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다같이 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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