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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해석

EnerTravel 2023. 6. 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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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88만 원 세대』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저자소개

 

우석훈(禹晳熏, 19682~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학사 학위하고 파리 제10 대학교에서10 생태경제학을 다룬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대 그룹 계파 예하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외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권일과 공저한 88만 원 세대의 출간으로 명성을 얻었다. 나는 꼽사리다에 출연했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문재인을 지지했고 국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았었다.

 

책의 배경

 

1980년대 후반, ‘물 찬 제비 학점이라는 것이 있었다. 1.0을.1.0 간신히 넘은 학점을 마치 제비가 물을 차고 날아가듯이 살짝 1점을 넘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이런. 학점을 받으면 F가 수두룩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학점을 받고, 겨우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취직은 골라가며했다. 그렇게 취직한 사람들이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과장 또는 부장으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 사기업에 취업한 이들의 연봉은 대체로 7천만 원에서 1억 원 사이. 고시를 본 친구들도 이보다는 다소 연봉이 적지만, 어쨌든 가만히 머리 숙이고 있노라면 인생의 황혼까지 큰 굴곡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오늘, 상황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정의니 진리니 외치던 1980년대 후반의 캠퍼스 이야기는, 지금의 20대가 듣기에는 배부른 사람들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낮에는 잔디밭에 앉아서 책이나 읽고, 해가 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버젓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음은 물론, 오늘날로 치면 거의 1001에 가까운 경쟁을 치러야 할 A급 회사에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참으로 믿기 어렵겠지만 1980년 후반에 소위 명문대를 다닌 사람들은 그런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날로 보자면 환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조금 더 앞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환상적이다. 학교는 수시로 휴교령이 내려져서 아예 등교를 할 필요가 없었고, 사회는 이런 대학생들에게 낭만이라는 그럴듯한 훈장을 붙어주어 이들의 일탈을 몽롱하고 아련한 눈으로 칭송하고 떠받들었다. 그때 그렇게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지금은 국회의원 아니면 연봉 12천만 원 이상의 국영기업체 감사 같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 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비단 열린 우리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 역시 상당수가 그 시절을 그렇게 살았다. 물론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들 역시 그 시절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대기업 임원들의 젊은 시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성실하게 살기를 강요받으면서 꼼짝할 수 없이 공부라는 틀에 묶여 있는 지금의 10, 20대와 젊은 시절에 낭만을 한껏 누렸던 사람들이 같은 사회 혹은 같은 국민경제 속에 살며 발생하게 되는 불균형에 관한 책이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 원에20대 급여의 평균 비율 74%를 곱하면 8888만 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 원에서 119119만 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88‘88만 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 탈출구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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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줄거리)

 

<1부 대한민국 10대와 20, 그들의 운명>

 

1장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

 

한국의 16세 소녀가 ‘엄마, 나 그 사람하고 동거하기로 했어라고 선언했다고 가정한다. 조용했던. 집안의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집안 망신‘미친년’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하고, 가족 간 갈등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나이의 소녀가 또래의 어떤 소년을 사랑하고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류 역사의 긴 흐름을 생각해 볼 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벌어질 수도 없고, 벌어져서도 안 되는 일이다. , 우리나라에는 인류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로막는 무엇인가가 있다. 유럽 사회의 16세의 동거 선언도 물론 조금 이르다 싶은 사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딸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축복으로 결론이 난다. 어린아이 같기만 한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출산과 가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는 상황에서 저주를 퍼부을 부모는, 적어도 OECD 가입국 중, 우리나라 외에는 거의 없다. 부모로서의 본성과 딸의 삶에 대한 애정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 사회와 우리 사회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는 꽤 슬픈 무엇이다. 단지 문화적 차이나 사회적 차이만이 아닌 무엇인가가 더 있다.

 

이 상황을 표준경제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예산제약이라는 용어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결혼생활인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이 없기 때문에 결혼도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것이다. 좀 복잡하지만 이것을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자면, 그냥 돈이 없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나이에 성적 충동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서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여성의 경우, 평균적으로 16세에서 14년이 더 흐른 30세에 첫 출산을 하게 된다. 즉 우리나라 남자 배우자가 군대를 7번 갔다 올 시간까지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미루는 셈이다. 사회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세대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학으로 이 문제를 설명한다면 전 세대에 비해서 10대들이 더 가난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예전에는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와의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의 평균적인 16세는 세대주로서 독립하거나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난해서 결혼할 수 없고, 그래서 1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는 우리나라 이팔청춘들의 사랑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이 제약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의 청소년들의 삶이 슬픈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더 큰 음모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선진국은 어떨까?

프랑스는 보통 청소년들은 열여섯에서 열일곱 사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꾸릴 것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서 독립해 별도의 삶을 가지게 되는 나이는 조금 빠르면 열여덟 그리고 대개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이다. 이때부터 부모와 독립한 별도의 경제주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집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설사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장인이 되기 위해 공방에 들어가거나 혹은 꼭 하고 싶었던 자신만의 일을 찾아서 자연스럽게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 나이 즈음에 첫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왜 우린 18세에 독립하지 못하는가?

OECD국가 중에서 18세에서 20세의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동거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사실은 우리 청소년들의 이런 슬픈 현실이 일본식 교육 문화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식민지 기간 동안 일본식 교육을 받았는데, 이때부터 다른 선진국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현상이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군주의의 틀에 갇혀 두발단속 같은 것에 시달리고, 동거권 같은 자연적인 권리를 강하게 압박받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소년들이 18세 이후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집을 나와 독립하고, 동거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를 크게 보면 경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조금 더 본격적으로 얘기를 짚어보자면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16세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독립을 희망한다. 물론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를 수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사교육에 묶여서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그 순간에 그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갈 준비를 시작한다. 한국의 청소년들과 적게는 6년에서 많게는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한국 남자들의 경우 군복무라는 2년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는 ‘18세 독립은 물론 ‘20세 독립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에는 당연히 가야 하고 그다음에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는 일은 지적 노동이며, 그것도 경쟁이라는 명확한 틀을 가지고 이는 중노동이다. 그러나 정말 10대들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고통은 이러한 공부의 부담만은 아니다. 입시의 긴 터널을 통과한 한국의 청소년이 다른 나라의 청소년처럼 독립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살 곳이 있어야 독립하지

독립을 하려면 일단 살 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평균 주거비용, 더구나 서울의 평균 주거비용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부모한테 용돈을 받아서 휴대폰을 샀지만, 그 휴대폰 요금마저 감당하기가 벅찬 10대들에게 주거 비용은 상상해 볼 수 있는 범위 밖의 금액이다. 10대에 독립한 청소년이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주거형태는 쪽방, 반지하, 옥탑 이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체 국민의 50%가 집이 없는 현재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10대나 20대 초반 동거 커플의 주거권 같은 얘기들이 사회적 의제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 외국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기에 18세에서 20세 사이에 독립이 가능한 것일까? 물론 주거비용이 싼 것도 큰 작용을 한다. 방 하나 혹은 두 개를 빌려서 산다고 가정할 때, 40만 원에서그리고 지방에서는 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아니에는 당연히 소득이 적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는 혼자 살거나 혹은 커플로 동거를 하더라도 50%에서 60% 정도의 월세 보조금을 지급한다. 동거의 경우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지방단체도 있고, 학생의 경우 학생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기도 한다. 저소득층에 적용되는 사회안전망이 당연히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젊은 커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조금 큰 틀에서 유럽을 살펴보면 그 사회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주거권과 생활지원을 보장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대학등록금이 보여주는 현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서는 스위스는 경제 운용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스웨덴, 덴마크와 함께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라고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그런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은 고작 27% 정도다. 스위스 사람들은 대학은 물론 평생교육 체계와 함께 매우 잘 발달된 자영업을 중심으로 하는 마에스트로 시스템을 통해 그 분야의 장인이 되거나 공공 일자리 등에서 중산층 정도의 경제적 지위를 누리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임금으로 비교해 봐도 그들의 임금이 우리나라 대졸자보다 낮지 않다. 이제 얘기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을 하거나 동거를 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경우로 옮겨보자. 이 문제를 대처하는 선진국의 방법 중 유럽은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면서 기존의 사립대학들을 국립대학으로 전환하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냈다. 국가가 대학을 직접 운영하면서 형평성과 함께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푼 셈인데, 90년대까지 연간 1010만 원 수준에서 유지되던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요즘은 5050만 원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사회적인 고실업 시대를 맞으면서 많은 청소년들이 대학으로 몰리게 되니까 국가의 운영 부담을 약간이라도 덜기 위해 등록금을 인상한 것이다. 하지만 연간 5050만 원이라는 상향 조정된 등록금도 연간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 영미형의 고등교육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과 철학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0만 원 정도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비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해법이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사립대학 중심의 교육시스템은 미국식이지만 사회적 간접자본과 같은 각종 장학재단이 형성되지 못한 것은 일본과 비슷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선진국에 비해 역사가 짧아서인지 교육 형평성에 대한 요구가 유달리 약했기 때문에 결국 국민소득 대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식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이 상식이 된 우리나라의 시스템에서는 중산층 정도의 소득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세대의 독립이 늦어지는 현상, 다시 말해 사회적인 지체 현상이 발생한다. 즉 한국의 청소년들은 보호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성인이 되지 못하도록 강요받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체 현상은 개인적인 불행이기도 하지만, 시스템 전체로 볼 때에도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의 등장과 같은 원치 않는 결과들을 발생시킨다. 10대 후반에 독립하고 동거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선진국의 10대와 지체 현상 속에서 종속된 존재로서 어둡게 20대 초반을 맞는 우리나라의 10대들이 경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 결국 노벨상을 타거나 세계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창조적 정신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서양 세계에서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10대 초기 단계에서 미숙아 상태로 20대를 맞게 된 우리나라 10대들과 다른 선진국 10대들과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조숙한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스스로 일궈나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은 곧 현실적 벽에 부딪혀 절망하게 될 것이다. 결국 독립이나 동거생활 같은 불투명한 미래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부모와의 삶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어딘가에 선진국과는 다르고 대단히 왜곡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다.

 

1318 마케팅:인질 경제의 등장

한국에서 가장 나쁘고, 저급하면서 장기적으로 시스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을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1318 마케팅과 다단계 판매를 지목하고 싶다. 1318 마케팅은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들을 겨냥한 마케팅 용어다. 이런 마케팅 전략이 13세에서 18세에 해당하는 자체적 경제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계층에 대해 대규모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진행된 화장품 회사들의 기본 전략은 “13세에 기초화장을 18세에 색조화장을”이다. 13세 소녀 때부터 자신들이 만든 화장품을 사용하게 해서 평생 고객으로 전환시킨다는 처절한 전략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소녀들이 가장 일찍 화장을 시작하는 나라가 되었고, 가장 많은 화장품을 10대가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다. 청소년들과 10대 대다수를 이 같은 무차별적 마케팅과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는 찾기 어렵다. 한국 사회를 강타한 1318 마케팅은10대들의 정신세계만 황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10대들의 다양한 감수성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을 과시적 소비로 채워버린 셈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사라진 대신 소비되는 화장품의 종류만 다양해졌다. 10대들을 아무런 방어 장치 없이 마케팅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는 현대 자본주의도 아니고 건전한 자본주의도 아니다. 그저 노동자 대신 10대를 노린 세대 착취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220대가 만나게 될 세상

 

현재의 20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10대들은 20대보다 훨씬 균일하고 공교육이라는 시스템 내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개념적 실체로서 다루기가 훨씬 용이하다. 그러나 20대는 이미 수없는 분할이 시작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과 재벌 상속자, 이미 독립한 사람과 아직 독립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사람과 벌써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사람들을 하나의 추상화된 범주로 묶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위험은 세대 혹은 연령별 기준에 의한 범주를 설정하는 순간에 이미 내포된 위험성들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20대를 경제적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들은 IMF 1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는 실제로 IMF 경제 위기 이전의 한국이 가지고 있던 삶의 방식이나 경제적 규칙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IMF를 맞았고, 이후 몇 년 동안의 격변기를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세대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지만 포스트 포디즘 1세대라고 정의하는 방법도 있다. 1920년대 이후 2차 대전의 복구와 함께 서구 경제의 영광의 30년이 종료되면서 1990년대 초기부터 포디즘의 시대가 사실상 종언을 고하였고, 이에 ᄄᆞ라 국제경제 시스템이 변화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세계화라는 또 다른 국제 분업 체제와 혼돈의 무한 경쟁 시대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 경제의 변화와 함께 한국 경제가 1960년대 이후에 누렸던 소위 신 국제분업시대도 끝나게 되었고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도 점차 포스트 포디즘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20대가 만나게 된 시대의 조건

지금 20대가 만나게 된 세상은 확실히 30대와 40대가 만났던 한국사회와는 다르다. 옛날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종합상사의 문은 크게 열려있었고, 꼭 그렇게 큰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퍼상이라 불리던 소규모 수출 대행업자와 같은 것을 혼자 운영할 수도 있었다. 인력이 모자라서 지방을 해체하며 수도권으로 노동자들을 불러내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문은 이제 닫혔고,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 경제의 질서는 매우 가혹하게 변했다. 지금의 20대가 소위 경제인으로 자리 잡기 이전, 즉 그들이 10대를 보내고 있을 때 한국 경제는 IMF 경제 위기라는 한국 경제의 진행 과정 중 가장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비경제적 관계 즉 가족이나 우정, 사랑과 같은 가치들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야말로 문학이 죽고 시가 죽고 예술이 우는 시기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신 경제나 경영 혹은 재테크나 부동산 같은 얘기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런 내부적 변화를 사회적인 용어로 규정한다면 승자 독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관찰 하나 : 지체된 성장, 늦은 데뷔

대한민국의 20대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들의 데뷔가 굉장히 늦다는 것이다. 평균 학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시기가 평균적으로 길어짐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취업 전에 휴학을 하거나 기타 취업 준비 등의 이유로 졸업이 늦어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며 또 해외 어학연수와 같이 정규 공교육 과정 이외에 개인적인 준비를 위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와 더불어 초봉 혹은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주택 구매시점을 계산하면 현재의 20대는 이전 세대보다 몇 배는 늦게 첫 주택을 구입하게 된다. 이런 삶의 크고 작은 변화들은 혼인 연령을 낮추고, 덩달아 여성들의 출산 연령도 늦춰지게 한다. 이 세대의 사회적 성숙은 지체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지체는 각 개인들의 정신적 성숙이나 육체적 성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경제적 조건 혹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여건에 의해서 발생한 것일 뿐이다.

 

관찰 둘 : 모든 과 어떤 의 딜레마

모든과 어던의 딜레마가 가장 특징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소위 386세대의 경우이다. 이 세대에 속하는 어떤 사람들은 30대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 세대가 자신들의 후세를 출산하기 시작할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원정 출산이라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정 출산이란 산모가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나 괌, 혹은 미국 본토로 가서 아이를 낳은 것을 말한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부여해 주기 위해서 벌이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잉의 사랑을 보였던 부모들은 곧이어 영재교육과 조기교육이라는 또 다른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연이어 초등학교 사교육 붐을 주도하고, 드디어 386세대가 낳았던 첫 번째 자녀 세대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특수고등학교의 설립을 외치게 된다. 이렇게 과도할 정도로 자식들의 교육에 집착하는 현상들은 386세대의 삶 속에서 명확히 관찰되는 사실이고 이럴 때 어던과 모든에 대한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변형된 승자 독식 게임 :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

사람들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진행된다고 할 때 같은 나이, 즉 동년배끼리 경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동기라는 말이 생겨난 이후 공교육 시스템과 대학 입시가 결합되면서 세대 내 경쟁, 그중에서도 같은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경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교실에서 경쟁하고, 지역별로 경쟁하고, 마지막에는 전국적으로 경쟁을 해서 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더 좋은 대학에 배당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경쟁은 경제적인 의미와는 별로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경쟁이란 주로 이런 틀을 의미한다. 현재 이 시스템의 최상부에는 서울대학교나 삼성 그리고 사법고시와 같은 몇 개의 스테이지들이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경쟁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항간의 상식과도 부합된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승자 독식이라는 게임에서 살아나는 방법이라고 선생님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10대와 20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금 20대가 어렵다면 같은 경향 속에서 지금의 10대는 더 어렵고, 더 강화된 승자 독식의 시스템에서 배출될 것이다. 이런 경향성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세대 독립의 지체 현상은 더 강화될 것이다. 아울러 삶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더욱 높아지지만 직업의 안정성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여기에 객관적 상황을 하나 추가한다면 지금 20대에게 진행되는 불공정한 세대 간 경쟁 혹은 세대 간 착취의 결과로, 지금의 20대가 30대가 되면 새로운 20대를 더욱 격렬하게 공격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원래 그렇게 생각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지금의 40대와 50대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적 혜택을 다음 세대에게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더욱 격렬하게 지금의 20대는 30대가 되었을 때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기업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내부의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제2: 20대에 숨통을 10대에 생존을>

 

1장. 위기의20대 자멸인가 세대 착취인가?

 

유신 세대와 8888만 원 세대

73년에서 80년 사이에 자신의 경제적 삶을 시작한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기성세대'이자 '유신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사회적 연금체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한 국민연금 체계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사회안전망 속에서 불안한 노년을 기다리고 있을 이 유신 세대는 지금 20대의 부모 세대들이다. 이러한 유신 세대의 경제적 불안은 그들과 가정 내에서 협력관계에 있는 20대들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사회적으로 독립이 지체되어 있는 20대의 경제적 곤란은 유신 세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유신 세대는 지금의 20대와 달리 세대 내 단결력이 높은 편인데, 유신이라는 동일한 경험과 함께 한국 경제의 영광의 30년에 대한 20대와 30대 시절의 기억이 강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는 20대의 부모들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의 세대에게 주어질 무엇인가를 떼어서 20대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한다는 사회적 대화의 장이 열린다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협의나 대화의 방식보다는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보다 빠르다는 유신 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성장에 대한 향수를 통한 결집에 익숙해져 있고, 지역으로 묶이는 것을 대단히 선호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대는 세대라는 이름으로 모이기보다는 지역으로 모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같은 지역의 동일한 세대라면 엄청나게 높은 결집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20대가 누려야 할 경제적 몫을 가장 많이 노리는 약탈지이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그들과 부모 관계로 협력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86 세대와 8888만 원 세대

지금의 20대와 586 세대는 경제적 관계에서 직접적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경쟁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안정적 직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세대 간 경쟁은 더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586이 내걸었던 대의명분들이 세대 간 분배의 문제를 다루었던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더욱 격렬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대 간 경쟁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앞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발적으로 양보할 만한 경제적 동기는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조직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감이 극렬해지듯이 586세대는 지금의 20대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고, 지금의 20대 역시 586 세대를 혐오하거나 질시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적대적 관계는 지금의 두 세대가 경제적 생활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날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은퇴 후에도 사회적 연금을 놓고 세대 간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연공서열제와 종신교용제가 깨어진 지금 586 세대는 다음 세대를 돌보아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으며, 또한 세대 내 경쟁과 함께 세대 간 경쟁을 치러야 하는 20대로서도 586세대에게 존경을 표시하거나 조직 내에서의 위계관계를 떠나 그들을 받들어야 할 아무런 사회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X세대와 8888만 원 세대

586세대와 20대 사이에 x세대가 존재한다. 현재의 20대와 바로 앞선 x 세대를 비교하면 이 두세 대는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인데, 이미 진출한 앞세대가 뒷세대에 비해 조금이나마 유리한 것은 확실하다. 승자 독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X세대와 20대는 대부분의 경제조직에서 거의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을 하게 될 터인데, 20대에게 부여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대부분 X 세대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10년 전, IMF 경제 위기를 맞았던 X세대에게는 그나마 아직 사회적 여력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벤처기금과 중소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X세대는 벤처 붐이라는 사회적 장치의 도움을 받아 지금보다는 훨씬 쉽게 창업을 할 수 있었고, 코스닥이라는 새로운 재정 조달 장치를 통해 일종의 중소기업 등에서 훨씬 유리하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시작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유통 분야의 독과점화가 지금처럼 진행되지 않아 프랜차이즈와 유통할인매장의 틈새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이 비교적 폭넓게 열려있었다. 지금의 3~40대가 IMF 이후에 잠깐 열렸던 문을 열고 지나간 텅 빈 그 공터에 지금의 20대가 놓여 있는 셈이다. X세대의 이러한 전략은 지금의 20대에게는 성공적인 모범 사례가 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하였지만 지금의 20대에게 유효한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X세대가 다음 세대들에게 알려줄 만한 전략들이 별로 유효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기계적으로 모방해서는 곤란할 것이라는 점이 지금의 20대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20vs 20: 같은 세대끼리의 배틀 로열

다른 세대와의 경쟁에서 20대는 서로를 소외시킬 확률이 높은데, 여러 가지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단결하고 뭉치도록 배우고 또 그렇게 살아온 앞의 세대와는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에서 인사권을 가진 세대는 유신 혹은 586 세대이지만, 곧 그 권한은 586 세대로 넘어갈 것이다. 이 상황에서 별도의 그룹을 만들지 않을 확률이 높은 20대의 아주 일부가 윗세대에게 포섭되어 대다수의 20대를 소외시키는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연공서열제가 사라진 상태에서 발생할 첫 번째 일이 바로 이것인데, 사회적으로 새로운 균형 상태가 나타날 때까지는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언젠가 자신들에게 인사권을 비롯한 경제적 권력이 쥐어질 날을 기다리면서 버티는 것이 대부분의 20대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밖에서 보면 20대가 20대의 적이라는 상황으로 해석될 것이다. 20대에게 주어진 승자 독식 게임은 사실 세대 간 경쟁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매우 거칠고 불행한 승자 독식 게임이다. 소비와 생산이 겹쳐지는 특수지대에서 20대의 소비자들이 20대의 생산자들을 야박하게 대하고, 경쟁에서 밀어내는 셈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20대 사이의 세대 내 경쟁은 더욱 극심해진다. 이 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20대 생산자는 20대 기업가에게 20대 소비자는 고상하지만 자신들에게는 야박한 소비자가 되는 셈이다.

 

고졸, 여성, 그리고 개미지옥

세대 내 경쟁에서 가장 불리한 집단은 고졸 이하 집단과 여성이 될 것이다. 고졸 이하 집단의 경우 문제의 원인은 학력과잉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언론도 보인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식으로 엉뚱한 화풀이를 하고 있다. 정답은 따로 있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듯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게 직접적인 원인이다. 한국사회의 특징인 학벌주의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에 따라 능력 있는 고졸자들에게 그나마 열려있던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다. IMF.IMF 이후 은행과 공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수를 다시 고용했다. 여전히 필요한 인력이었기 때문, 제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시 고용한 인력은 거의 다 비정규직이었다.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으로 교체되었다. 예전에 괜찮은 일자리였던 것이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여성의 경우 27세 이후부터 또래 남성에 비해 현격히 급여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32세 이후부터는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출산과 육아라는 요소로 인해 경력에 단절이 있다는 점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정규직의 여성화라 부르는 흐름 때문이다.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남성 비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 사이에는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심하다.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고작 36.9였다. 특히 한국의 여성들은 감정노동이라 불리는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식당 종업원, 은행창구의 텔러, KTX 승무원, 텔레마케터 등 서비스 관련 직업들 상당수가 이런 감정노동에 속한다. 젊은 여성에게 대형할인매장에서 오가는 차를 향해 인사를 시키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뿐이다. 추운. 겨울 한국의 거리에서 맨 살이 다 드러난 옷 때문에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는 홍보도우미들을 만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녀들은 입술이 얼어붙어 미소조차 지어지지 않는데도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항상 웃고 있어야 한다. 젊다 못해 어린 여성들에게 이런 일을 하게 만드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자국의 청년세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여기기란 불가능하다.

 

88만 원: 덩어리

20대는 30대에 비해 구매력이 약하다. 그러면 그러 수록 이 한정된 구매력을 염두에 둔 매우 세밀한 마케팅이 발달하게 된다. 사실은 20대를 겨냥한 별도의 마케팅 전략이 있다기보다는 30대 초반의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들에게 사용했던 마케팅 전략을 약간의 파생상품처럼 재사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유통자본이 20대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사회의 흐름에서 가장 먼저 이런 변화를 포착하는 것은 흐름에 민감한 드라마 시장이다.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30대는 자신들이 20대에 열광했던 사람들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의 20대는 10년 전 혹은 20년 전의 20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세대의 영웅들을 지지해 줄 충분한 경제적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대변할 그들 자신의 영웅들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20대는 특별한 구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개념들을 만들기보다는 확실한 구매력이 있는 집단을 겨냥한 마케팅 방식을 수정해서 20대에게 적용하게 된다.

 

2장. 아단성1세대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

 

출발을 위한 점검 하나

상상 속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여러분들이 좋은 선택을 내려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이순신 장군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나 많은 원균 장군들에 둘러싸인 채 별로 좋은 장비도 갖지 못한 열악한 조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경우와 비슷한데, 여러분들은 이순신 장군과 그의 동료들과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세대 간 경쟁의 문제는 스스로 내리기 되는 선택의 문제에 가깝고 윗세대가 대신해 주거나 대리인이 전문가로서 알아서 해줄 수 있는 성격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출발을 위한 점검 둘

지금 우리에게 몇 가지 제약 조건이 존재한다. 일단 혁명이라는 방식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이 상황에서 첫 번째 예산 제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동학란 아니면 농민란과 같이 혁명 혹은 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세대 간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혁명과 같은 사회변화 프로그램은 쓸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두 번째 제약 조건은 세계화라는 조건이다. 세계화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심각해져 버린 세대 착취의 한 가지 이유라는 사실은 분명하고 또 세계 역사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계속될 그런 현상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세 번째 제약 조건은 우리는 포디즘으로 돌아갈 수 없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한국 경제는 세계적으로 낮은 임금에서 대량생산의 공장 역할을 했다. 싼 임금에 값싼 물건을 만들던 시기인데, 이 시기로 우리나라가 다시 돌아가지는 못한다. 물론 억지로 가자고 하면 갈 수 있기도 한데, 전체적으로 국민소득 55천 달러에서 66천 달러 시대로 돌아가면 다시 우리나라는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에 대한 장면>

 

첫 번째 장면: 인질 경제의 현장

2000년대 이후 국민 경제 전체가 중고등하생들,, 즉 10대를 인질로 붙잡고 있는 인질범(사교육)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작게는 월 5050만 원에서 많게는 월 수백만 원을 부모들이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인질극은 가난한 부모와 부자 부모 모두를 힘들게 하는데 전체적으로 모두 패자가 되었고, 이 게임에서 유일한 승자는 학원들과 이 게임을 흔들면서 자신들의 월급을 받았던 교육부를이다. 80년대의 전두환이 했던 것과 같은 조치를 할 수 없는 것은 이제는 자신들의 산업을 일구면서 성장한 사교육 종사자들의 이권 때문인데, 이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전체 국민경제가 저당 잡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인질극에서 부모들이 몸값을 지불하고 겨우 풀려난 인질들에게서 발생하게 된다. 이건 유괴사건의 인질들이 사건의 충격으로부터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외상 후 충격을 앓는 것과 똑같다. 오랫동안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6년 동안 사교육에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정상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두 번째 장면: 획일화에 의한 승자독식의 현장

문제는 20대를 비롯한 다음 세대의 삶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의 전체적인 몰락으로 이어지고 노무현식 선택과 집중의 덫에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이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하는20대들의 취업을 위한 경쟁은 눈물겹지만 시장과 정부라는 두 개의 주체만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 여기에는 제3의3 요소가 필요한데, 왜냐하면 정부도 자신이 약속한 선택과 집중을 전환시킬 명분이 없고, 스스로 경쟁 중인 기업도 일단은 이렇게 발동한 독과점화에서 3위 기업 안에는 들어야만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원가를 높이게 될 정규직 전환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이렇게 가다가는 서로 망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비정규직의 비중을 높여나갈 수밖에 없는데, 제삼자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구조공황이 발생할 때까지 계속된다.

 

세 번째 장면 : 적자생존과 공룡의 비극

육식 공룡 중에서 가장 컸던 티라노사우르스는 지구상의 존재했던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동물이다. 포식을 마치고 난 티라노 사우르스의 발자국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동물이 멸종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자는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한 것을 의미하지 반드시 강하거나 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사장들과 종사자들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계를 노예 계약이라고 흔히 표현하는데, 점잖게 말하면 비대칭적 관계라고 하고 우리말로 할 때는 후려치기라고 한다. 때때로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참기 어려운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목을 매는 중소기업 사장에 대한 뉴스를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받게 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관심이 지난 수년 동안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지만, 정부에서는 무엇보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이 거론한다.

 

네 번째 장면 : 편의점과 주유소의 알바

편하게 알바 시장이라고 부르지만 2만 달러 국민소득과 관련된 모든 논리가 정지하는 곳이다. 법정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부모 동의를 받지 않은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고용계약서 같은 것도 쓰지 못한 상태에서 불법과 성희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공평한 것은 알바 시장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오랫동안 알바 시장에서 일했던 가난한 집안의 청소년들은 나름대로 대처 방법이 생겨서 조금 낫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부모가 동의해 줄 리 없는 부자 집안의 청소년들은 부모 동의서가 없기 때문에 온갖 불법과 편법에 노출되게 된다. 우리나라의 모든 청소년들은 이 알바 시장에서 평등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슬픈 평등이다. 물론 부모들은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른다. 그랜져를 타고 간 부모가 주유소에서 자신들의 자식을 만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유원들이 쓰는 야구모자로 얼굴을 황급히 가리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장면 : 우리에게는 자연이 있다.

골프장에는 한국 경제의 모든 모순이 숨어 있다. 왜 우리한테 300개의 골프장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하면 사실 왜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물론 당연히 세대 착취가 이 골프장에서도 벌어진다. 20대 비정규직이며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캐디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세대 착취의 현장이 벌어진다. 고용의 불안과 잦은 성희롱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캐디들의 삶은 또 다른 세대 착취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캐디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 또 다른 20대인 KTX 여승무원들은 경제적으로 캐디들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고 평균 교육도 높지만 그들보다 개인적 자산이 낮고 또 단결하기가 어려운 캐디들이 노동자들의 힘이 가장 높았던 90년대에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지금 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캐디들이 맞부딪혀야 하는 골프장 주인들은 대기업이거나 아주 상대하기 어려운 지방 토호들로 구성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성희롱을 가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들이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권력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짜 조직폭력배들도 골프장에는 많다. 판사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이 막강하 사람들 앞에서 캐디들이 현실적으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좋은 생태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발을 통해서 자연이 줄 수 있는 혜택을 줄이고 단순한 관광의 대상이나 집을 지을 수 있는 공간 정도로만 인식 돼왔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공의 재산인 자연이 이 문제에 대해서 출구 하나를 제공할 수 있다. 어차피 지금과 같이 세대 간 경쟁에 의한 불균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금의 20대나 그 밑의 다음 세대 중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인구는 5%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20대의 95%를 위해서 자연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극단적인 양극화 속에서 5%를 위해서 자연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여섯 번째 장면 : 예술 시장과 정치 시장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세대 착취의 현장에서 한국의 20대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곳도 사정이 열악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음반 시장은 극단적으로 위축되고 있고, 영화도 배급사들에 의한 구조 개편이 완료되어서 아직 실력을 검증받지 않은 20대 감독들이 설 자리가 거의 없다. 게다가 주로 20대에 집중되어 있는 시나리오 시장이나 방송국의 작가들은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있고,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을 향해서 달려가지만 경제의 실질적 생산과 일견 괴리되어 있는 이런 예술 시장이라고 해서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곱 번째 장면 :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만나는 곳

세대간 불균형은 세 나라 모두 존재하는 일인데 현재로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심하지만 곧이어 경제의 팽창 일변도로 나가는 중국의 경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세 나라의 20대와 10대는 쇼비니즘 마케팅에 노출되어 있고, 윗세대의 팽창주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이러한 대결의 양상은 점차적으로 심해지고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예전에는 일본을 그리고 때때로는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쉽게 세 나라 사이의 의사 결정 문제를 암묵적 합의에 의해서 끌어나간 셈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세 나라의 삼국지가 펼쳐지는 셈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 다안성 1세대의 출현을 기다리며

모두 자신만을 위한 유령들을 만나 짧은 여행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진행되는 20대의 모습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모두 우리의 20대들이고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그들의 불행은 미래의 불행이기도 하고, 우리의 불행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여성과 노약자, 생태계의 말 못 하는 존재들 그리고 개발경제시절 쓰러져간 원혼들까지 모두 웃을 수 있는 그런 완전균형의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작품 감상

 

MZ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88만 원' 세대를 다룬 이 책은처참할 정도로 암담한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20대의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586세대와 유신세대에게 치여 현재의 20대들은 자신들의 힘을 발휘할 수도 없고, 발휘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압박을 이겨내 20대도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이 책이 마지막으로 제안한 과제인데 사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국가에서도 20대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 않은 실상이고, 이미 자리 잡은 세대가 586세대와 유신 세대가 자신의 세대들만을 위한 이득을 위해 힘쓰고 있음에도 사회와 정부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20대는 최근 'MZ세대'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들으며 더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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