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 프란츠 카프카『변신』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작가 소개
188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학 시절인 1904년에 첫 작품 [어느 격투의 기술(記述)]을 집필할 만큼 문학 창작에 삶의 의미를 두었으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프라하의 국영 보험회사에서 십사 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 카프카는 내적 충동에 따라 머릿속에서 작품을 구상했다가 그것이 무르익으면 한꺼번에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창작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1912년에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판결]을 완성했고 11월에는 [변신]을 탈고했다. 1914년 완성한 [유형지에서]는 형식적으로 가장 잘 완성된 작품 중 하나다. 1917년에 이미 폐결핵 진단을 받았던 카프카는 1922년 [성]을 집필하는 등 작품활동을 계속했으나 1924년 끝내 폐결핵과 후두결핵으로 숨졌다.
카프카의 문체의 특징은 간결하고 사실적인 기술이다. 미사여구란 없다. 그러나 기술되는 내용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버러지보다 나을 게 없다>라고 하는 대신 카프카는 버러지가 되어버린 인간의 상황을 더없이 사실적으로 그려간다. 이런 간결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묘사된 사건의 불가사의함이 이루는 뚜렷한 대조, 일상적인 것과 환상의 결합, 그 <꿈같은 현실성>은 카프카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이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장이 따로 쉼표로, 세미콜론으로 길게 이어지고, 서술은 피상적인 단언을 피하여 한번 서술한 사실을 뒤집어보고 또 뒤집어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모처럼 얻었던 독자의 결론도 언제나 결국은 또다시 의심받게 된다. 그것은 진실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문장 하나 점 하나에도 실려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
카프카가 살던 시대는 20세기 초반 산업사회를 막 벗어나 제1차, 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전쟁의 전운이 감도던 암울의 시대였고 당시 유럽사회는 지배계급의 착취에서 초래되는 인간멸시, 인간소외 등 사회적 부조화가 총체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경제 논리 때문에 직업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 군상들과 이들을 벌레 보듯 취급하는 사회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프란츠 카프카『변신』내용 요약
이 작품은 카프카 생전에 간행된 소수의 작품 중의 하나이며, 변형기담(變形奇譚)에 특유한 유머와 이상한 사건을 예사로운 일처럼 묘사하는 작자의 냉정하고 사실적인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실존(實存)의 차원과 부조리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박력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인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세계 속에 유폐된 소시민의 생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카프카 문학 중에서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소유의 세계의 대립적인 긴장 가운데서 그것으로 하여 개인이 겪는 압박과 소외가 마침내는 무력한 한 인간을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케 하는, 그리고 그 해충마저도 아버지가 던진 사과 한 알에 치명상을 입어, 그리고 그보다 더욱 쓰라린 고독으로 하여 죽어가는 길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숫자 3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한 주인공 잠자가 자신의 방에 철저하게 고립 밀폐되어 있다가 밖으로 나와 가족과 합류하려고 시도하다가 저지당하는 횟수와 일치한다. 결국 잠자는 두 번째 시도에서 아버지가 던진 사과를 맞고 생긴 상처가 덧나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제1부>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잠자는 “‘한숨 더 자서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잊어버리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으나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무수한 다리를 지닌 채 납작한 몸체를 한 해충의 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자세를 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자는 한참 동안 몸을 뒤척이다가 언뜻 자명종 시계를 쳐다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곗바늘이 벌써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판원이었던 그가 타는 기차가 5시에 떠나니까 그에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 누이, 아버지도 그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고 걱정이 되어 밖에서 소리를 질러 그를 깨우기 시작했다. 잠자는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으나 그의 음성도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식구들이 그의 방으로 들어가 사정을 알아보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다. 잠자가 방문을 잠그고 자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30분을 허비하는 사이 잠자의 직장 상사인 지배인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잠자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다그쳐서 데려올 심산이었다. 잠자는 문을 열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는 자신의 태도에 분노하는 지배인의 목소리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족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또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진 빚을 갚기 위해 회사로부터 상당한 돈을 빌린 상태였다. 상사에게 밉게 보여 해고라도 당한다면 큰일이 아닌가. 생각이 이에 미치자 잠자는 필사적으로 방바닥에 몸을 던져 문 쪽으로 기어 입에 열쇠를 물고 가까스로 몸을 세우고는 간신히 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잠자의 행동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상사의 두려움만 불러왔을 뿐이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흉측한 모습으로 변신한 그를 두려워했다. 지배인은 그를 보더니 “벌어진 입에다 손을 갖다 대고” 줄행랑을 쳤고, 어머니조차도 혼절했다가 깨어나서는 “사람 살려요!”라고 외치며 “넋이 빠진 사람처럼, 정신없이 빨리 뒷걸음질 쳐, 식탁 곁에 이르자 황급히 그 위로 올라앉았다.” 특히 아버지는 그에게 “적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가, 급기야 “지배인이 모자 외투와 함께 소파에 버려두고 간 단장을 집어 들고 왼손으로는 식탁에서 커다란 신문을 집어 들며 그레고르를 그의 방으로 돼 몰아넣으려 했다.” 이후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안에 철저하게 고립된 채 동물처럼 사육된다.
<제2부>
저녁 어스름녘에야 그레고르는 혼수상태와도 비슷한 깊은 감에서 깨어났다. 충분히 자고 충분히 쉰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방해가 없었더라고 오래지 않아 깨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현관으로 나가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는 소리와 빨리 걸어가는 발 걸음 소리가 자기를 깨운 것 같았다. 그레고르의 왼쪽 옆구리에 길게 한 가닥 흉터가 생겨 불편하게 당겼으며 그는 좌우 두 줄 다리들을 규칙적으로 절뚝거려야 했다. 더군다나 다리하나가 아침나절에 있었던 사건으로 심하게 다쳐서 다리 하나만 다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문께에 와서야 그는 대체 무엇이 그를 거기로 유혹해 왔던가를 알아차렸으니, 그것은 무언가 먹을 수 있는 것의 냄새였다. 거기에는 달콤한 우유가 든 접시가 있었고, 잘게 자른 흰 빵 조각이 적셔져 있었던 것이다. 아침보다 한결 더 배가 고팠던 터라 하마터면 그는 웃을 뻔했으며, 얼른 눈이 잠길 지경으로 머리를 우유 속에 박았다. 그러나 곧 그는 실망해서 물러났다. 불편한 왼쪽 옆구리 때문에 먹는 것이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헐떡거리며 함께 움직여야만 먹을 수가 있었다.
<제3부>
그레고르 잠자는 그 후에도 두 번 더 자신의 방안에서 나가려고 시도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없는 사이 그가 방 안에서 “불쑥 나왔다가” 그의 모습을 본 어머니가 기절을 했다. 때마침 돌아온 아버지가 그 광경을 보고 그에게 식탁 위에 있던 과일 접시에서 사과를 던지기 시작했다. “약하게 던진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을 스쳤으나 상처를 입히지 않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즉시 뒤이어 날아온 것은 그러나 그레고르의 등에 호되게 들어가 박혔다.”
사과 공격을 받고 다시 자신의 방에 갇힌 그레고르는 한동안 숨죽여 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점점 그의 존재를 잊어 갔다. 그의 방 청소도 점점 뜸해져 짐승의 우리가 되어 갔고, 그에게 넣어 주는 먹이도 점점 허술해졌다. 그러는 동안 그의 가족은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전하려고 하숙생 셋을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숙생들을 위해 연주하는 누이의 바이올린 소리에 마치 보이지 않는 실처럼 이끌려 잠자는 자신도 모르게 방을 나와 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들의 방으로 천천히 기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하숙생들이 먼저 그를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하숙생들은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구하며 즉각 방을 비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마침내 누이동생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으며, 자신은 앞으로 이 괴물을 오빠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 있지요?” 아버지가 하숙생들을 달래는 사이 잠자는 아무런 위해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죽음을 예감한 걸까? 누이의 매정한 말을 모두 들었건만 마음은 담담하고 편안하다.
그날 밤 “그는 제법 쾌적하게 느꼈다. 온몸이 아프기는 했으나, 고통이 점점 약해져 가다가 마침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등에 박힌 썩은 사과와, 온통 부드러운 먼지로 덮인 곪은 언저리도 그는 어느덧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감동과 사랑으로 가족들을 회상했다. 자신이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데 대한 그의 생각은 아마도 누이동생의 그것보다 한결 더 단호했다. 시계탑 시계가 새벽 3시를 알릴 때까지 그는 내내 이런 텅 비고 평화로운 사색의 상태였다.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도 그는 보았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가 자신도 모르게 아주 힘없이 떨어졌고 그의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약하게 흘러나왔다.”
이튿날 아침 그가 죽자 몇 개월 동안 그 때문에 마음고생하던 가족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교외로 소풍을 갔다. 그들은 전차 속에서 얼른 기분전환을 한 뒤 잠자의 시체와 짐을 빨리 처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로 계획까지 세운다. “그들 모두가 탄 칸은 따뜻한 햇볕이 속속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좌석에 편안히 뒤로 기대고, 장래의 전망에 대해 논의했는데 좀 더 자세히 관망해 보니 장래가 어디까지나 암담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작품 해설
이 작품에선 주인공인 그레고르를 끊임없이 불안과 고통에 떨게 만드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카프카가 주인공을 "변신"하도록 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첫째는 그를 공포에 몸서리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최초엔 순수하게 이변에 놀라워하고, 다음으로 자신의 흉측한 몰골에 혐오를 느끼며, 마지막엔 가족들의 홀대와 질시 속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요컨대 그는 타성적인 생활로부터 떨어져 실존적이 된다. 이런 그를 더욱 실존적이게 만드는 존재로 아버지가 등장함도 눈여겨볼 만하다. 카프카가 보기에 아버지는 언제나 자리에 없다. 심지어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원인[3]이다. 주인공이 필요로 할 때 아버지는 사라지고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가장 체념하고 있을 때에 나타나 숨통을 조인다.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의 몰락은 주변인의 변심으로 굳건히 확인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여동생이 그 역할을 한다. 그레고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여동생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으나, 여동생은 그의 몰락이 사실로 확인되자 냉정히 떠나간다. 혼자 남은 주인공은 그 모든 현실을 떠안고 떨며 죽어갈 수밖에 없다.
변신에서 보여 주듯 카프카의 실존이란 다른 실존주의 작가들과는 또 다른, 어찌 보면 우리가 아는 실존주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령 사르트르의 주인공이 실존하는 까닭은 주인공과 사회가 서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이란 철학적이고 모던하다. 카프카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을 향해 일방적으로 돌팔매가 날아온다. 주인공은 표적이 되어 일방적으로 맞아야 하고 거기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그래서 카프카는 직관적이고도 원초적이다. 주인공은 인간성을 상실한 벌레가 되어 자기를 밟아 죽이려는 천적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렇게 보면 소설 변신은 인간의 실존을 벌레의 생존에 빗대어 놓은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이다. 다른 작가들은 적어도 인간인 채로 끝을 보았는데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카프카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실존주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카프카는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사람이다. 카프카의 작품이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주의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카프카의 작품을 실존주의 소설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고, 현대인의 소외를 그린 것이라는 해석, 종교적인 해석[4],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 당시의 유대인 담론과 연관시키는 해석 등 다양한 관점에서 비평이 이루어진다. 실존주의라는 비평이론으로 카프카의 작품을 보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카프카의 작품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그레고르가 변한 '벌레'에 대한 번역에 대해서는 역자마다 많이 달라진다. 원판에서는 독일어로 'Ungeziefer'라고 적혀있는데, 이 단어는 해충을 뜻하는 'geziefer'라는 단어에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un-'[5] 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로, 해충의 의미가 나쁜 방향으로 강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독일어에서 느낄 수 있는 이 단어에 대한 뉘앙스를 한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어에 대해서는 '해충', '갑충', '독충', '벌레' 등 다양한 형태로 번역된다. 일단 소설 속의 묘사를 보면 크고 꺼림칙한 바퀴벌레로 추정되나, 늙은 하녀는 말똥벌레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카프카는 처음 <변신>을 출판할 때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레고르가 변신한 곤충 모습을 표지 그림에 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래서 이 소설 초판의 표지에는 어두운 방으로 통하는 문에서 얼굴을 가리며 멀어져 가는 젊은 남자의 그림이 나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벌레로 변신'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레고르 자신의 강박증과 정신이상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이전의 그레고르와 전혀 닮지 않은 벌레가 되었는데 가족들은 신기하게 벌레=그레고르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상당히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와 가족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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