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백 년 동안의 고독』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작가 소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20세기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학가 중 한 명으로 콜롬비아가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정통 문학으로서는 결코 성취하기 쉽지 않은 두 가지인 ‘문학적 고귀함’과 ‘상업적 성과’를 동시에 이루어낸 작가이다.
작가는 1928년 콜롬비아 북부의 작은 해안마을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자랐다. 그에게는 훌륭한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퇴역 군인으로 모든 것에 정확성을 기하는 노인이었고, 자신감이 넘치는 어른이었다. 마르케스는 할아버지에게 살아가는 법과 인생을 배웠다. 총명했던 작가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며 느꼈던 허전함을 책으로 채웠다. 후에 작가는 퇴역 대령인 외할아버지를 모델로 삼아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1961)라는 소설을 썼다. 또 외할아버지와 외가 사람들에게서 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근간으로 「「백 년 동안의 고독」(1967)을 탄생시킨다. 이는 물론 작가가 콜롬비아의 사회적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며 써낸 것이지만,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외가의 영향이 없었다면 쓰기 어려웠을 걸작이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어 작가는 그간 떨어져 살던 부모와 함께 살게 된다. 작가는 학업성적은 물론 언어구사력, 외국어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전 학년 장학생으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국립대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던 법률과 언론을 선택하여 공부하였다.
20세기 초부터 남미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조국인 콜롬비아의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남아메리카의 모든 나라가 혁명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국민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혈기 넘치던 작가 마르케스는 더 이상 학업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학교를 자퇴한다. 작가는 정치적 야망도 가지고 있었고, 1947년 자유를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관객 El Espectador」이라는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뛰어난 언어능력 덕에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유럽과 미국의 주재 특파원으로 보내진다.
민주화되고 발전된 나라에서 그는 지식과 자유를 배웠다. 유럽 특파원으로서 특유의 글 솜씨로 신문사의 이름을 드높이며 자신의 존재 가치 또한 높였다. 콜롬비아가 6.25 참전으로 인해 종전 후 후유증을 겪던 시기인 1954년, 그는 로마에 머물며 조국 콜롬비아의 부패와 억압, 장기 집권화의 음모 등을 비판하며 그의 조국이 훌륭한 국가로 탈바꿈하기를, 국민을 위하는 국가가 되기를 염원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나 이 일은 작가를 반평생 동안 유럽과 멕시코를 떠돌며 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귀국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는 더욱 더 날카롭게 잘못을 지적하는 문장으로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마르케스는 신문의 칼럼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작가가 이 시기 주변에 힘입어 쓴 작품 하나하나는 조국은 물론 남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읽히게 되었다.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의 경우 콜롬비아, 프랑스, 멕시코의 잡지에 부분적으로 연재되던 것을 모아 1967년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20세기 스페인어 소설 중 가장 걸출한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이 소설은 곧 세계 각 언어로 번역되며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또 다른 대표작인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무려 남미에서만 200만 부가 훨씬 넘게 팔리며 아직도 베스트셀러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삶과 생활을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풍자를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이용해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작품 속에 남미의 전설을 비롯해 신화와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집어넣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사실과 허구의 세계가 기묘하게 뒤섞이는 이런 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마르케스만의 매력적인 예술세계를 느낄 수 있다. 남미의 지성인으로 계속해서 훌륭한 작품들을 집필하던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4년, 향년 87세로 타계할 때까지 그는 현역으로서 식지 않은 글을 썼다.
*마술적 사실주의(마술적 리얼리즘)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문학 경향 중 하나로 기존 사실주의의 틀을 깨고 신화와 환상을 넘나들면서 마술, 꿈, 환상 등의 요소가 가미된 초자연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 기법은 20세기 중반 심각한 사회변동을 겪던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찾는데 기여했다. 작가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며 원주민과 흑인이 공존한 역사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문학작품에 등장시켰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신화, 민담, 무의식, 상징과 더불어 자신들의 처한 현실을 직시하였는데 즉 라틴아메리카의 기후, 지역성, 지리를 결합하여 작품 속에 녹여냈고, 이러한 과정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 확립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소설과 마술적 리얼리즘은 자신만의 역사와 언어를 만들어 가며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등장인물과 줄거리
소설은 20장으로 나누어져있다. 주로 초반에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중반에는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쌍둥이 형제’를 중심으로, 후반에는 그의 이름과 성격을 물려받은 고독한 청년 ‘아우렐리아노’를 중심으로 조명하는 편이다. 거시적인 흐름은 저 셋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편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소가 잘 드러나는 집안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간 중간 마치 뒤엉킨 정글처럼 이어진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우르술라의 남편이자 사촌이다. 사촌 간 결혼을 하면 돼지꼬리가 나온다는 예언 때문에 우르술라가 정조대를 차고 있어 잠자리를 한동안 함께 하지 못한다. 이를 가지고 비아냥거리는 친구 쁘루덴시오 아길라르를 죽였다가, 죽은 친구의 유령에 계속 시달리게 되자 원래 마을을 떠나 우르술라와 새로운 마을 ‘마콘도’를 개척하고 마을을 실질적 지도자가 된다.
초기에는 매우 근면 성실하고 패기넘치는 인물이었으나 집시들이 방문해서 망원경, 얼음 등 온갖 과학의 산물을 보여주고, 멜키아데스라는 집시와 친구가 된 것을 계기로 연금술과 철학의 세계에 너무나 몰두해 종국에는 미쳐서 밤나무에 묶인다. 그는 자기만의 정신적 세계에 빠져들어 그대로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다. 죽은 후에는 유령이 되어서 가족들에게 나타난다.
우르술라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아내. 마콘도의 이브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실험에 미쳐서 집안의 돈을 탕진할 때나, 차남 아우렐리아노가 대령이 되어서 전쟁을 벌이느라 사정이 어려울 때에도 갖은 고생을 해가며 집안을 지탱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예우를 지키는 것에도 충실하여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친구를 사형시키려 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그를 말리고, 집에 알 수 없는 금화 보따리가 생겼을 때에는 그것을 주인이 올 때까지 지켜내기도 한다. 늙어서도 끝까지 집안을 지키려 하나 결국 치매에 걸리고, 실명하고, 몸이 씨앗만하게 쪼그라들어서 고독하게 죽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호세 아르카디오-우르술라 부부의 장남. 어릴 때 집시 소녀에게 반해 말없이 마을을 떠난 후 세계를 떠돌다 돌아온다. 큰 몸과 성기를 이용해서 창녀들과 자고 돈을 받는다. 피 안 섞인 여동생 레베카가 그의 남자다움에 반해 약혼자인 피에트로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부부가 된다. 그 후 사냥을 하며 평범하게 살다가 느닷없이 고독한 죽음을 맞는다. 아르카디오가 방에 들어간 직후, 총소리와 함께 아르카디오의 욕설이 들리는데 이후 문 밑으로 새어 나온 피가 스스로 어머니인 우르술라 발 앞으로까지 흘러간다. 이를 본 우르술라는 아들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통곡한다.
아우렐리아노 대령
호세 아르카디오-우르술라 부부의 차남. 전반부의 실질적 주인공이다. 태어났을 때도 울지 않고 주변을 침착하게 둘러보았고,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의자를 움직이고 일종의 예언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등 초인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아 금물고기를 만드는 취미가 있는 내성적인 청년으로 자랐다. 필라르와 사이에 아우렐리아노 호세라는 사생아가 있었지만 후에 총을 맞아 죽는다. 그는 몸을 파는 어린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져 취향에 눈을 뜨고, 마을에 부임한 시장의 9살난 막내딸 레메디오스에게 반해 그녀가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결혼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요절하고 이를 계기로 그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하며 참전 이후 한층 더 냉혹해진다. 그의 장인이 불법 선거를 하는 것에 반발해서 반정부 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수많은 전투를 벌이고, 전쟁 중에 17명의 아들을 낳는 매우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묘한 예지능력과 비범한 패기, 카리스마를 지닌 초인으로 부엔디아 가문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마르께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수많은 싸움을 벌였다가 결국 보수파에게 일방적으로 항복하여 장기적으로는 마콘도의 파멸에 기여한다. 훗날 우르술라는 아우렐리아노가 본디 타인에게 애정을 품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며, 그 성정 탓에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다고 평가한다. 나중에 자신이 항복한 것이 잘못된 일임을 자각하고 부패한 정부에 반기를 들려했으나,, 그의 전우들은 모두 정부에 흡수당하거나 제거당해 불가능했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결국 여생을 금물고기를 만들며 보낸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온 오는 날, 우연히 보게된 서커스 행렬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며 아버지가 죽은 밤나무 아래서 고독하게 죽는다.
아마란타
호세 아르카디오-우르술라 부부의 딸이자 호세 아르카디오,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여동생. 레베카와 피에트로 크레스피의 결혼을 질투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결혼을 방해하였으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레베카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결과 어린 레메디오스가 독을 먹고 죽어버리자 깊은 죄의식에 빠진다. 뜻밖에 호세 아르카디오와 레베카가 결혼을 하게 된 후, 아마란타는 그토록 바라던 크레스피의 구혼을 받지만 왜인지 칼같이 그를 거절한다. 크레스피는 결국 자살하고 아마란타는 깊은 죄의식과 회한으로 스스로 아궁이에 손을 넣어 자해한다. 남은 일생동안 아마란타는 손에 검은 붕대를 감은 채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처녀의 몸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자손들을 돌본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입을 수의를 짜기 시작했는데, 스스로 수의를 다 짜는 날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수의를 완성한 날 고독하게 죽는다.
레베카
호세 아르카디오와 우르술라의 자칭 친적이 보낸 여자아이. 친부모의 편지를 들고 부엔디아 부부를 찾아왔으나, 편지에 쓰인 친부모의 이름은 부엔디아 부부가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레베카를 양딸로 받아들였다. 어릴 때는 말을 제대로 안하거나 흙을 주워 먹는 등 기행을 보여 집안의 골칫덩이로 여겨지지만 미인으로 성장하고 흙을 먹는 습관도 고쳐 식구들과 잘 어우러진다. 그러나 피에트로 크레스피라는 남자를 두고 아마란타와 싸움을 벌이면서 흙을 먹는 버릇이 다시 생긴다. 크레스피가 레베카를 선택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어린 아내 레메디오스가 쌍둥이를 가진 채 죽는 바람에 그와의 결혼이 장례 후로 연기된다. 그리고 그 사이 양오빠인 호세 아르카디오와 눈이 맞아 집을 떠난다. 호세 아르카디오가 죽은 이후로는 세상과 단절된 채 평생을 홀로 살다가 깊은 고독 속에서 죽는다.
아르카디오
호세 아르카디오와 점쟁이 창녀 필라르 테르네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인은 자신이 호세 아르카디오의 동생이자 우르술라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다.. 그 때문에 필라르 테르네라가 친모인 것도 모른 채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려고 들었다. 필라르는 아르카디오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산타 소피아 데 라 피에다를 소개해 주었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혁명군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마을을 떠난 후 시장 겸 사령관으로 마을을 지배하였는데, 필요 이상의 잔악무도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다. 결국 정부군이 다시 마콘도를 점령했을 때 용감히 저항하다가 붙잡혀 고독하게 총살당한다. 산타 소피아 데 라 피에다와의 사이에서 미녀 레메디오스와 쌍둥이 형제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를 얻었다.
산타소피아 데 라 피에다
필라르 테르네라의 유곽에 있던 여자. 아르카디오의 아내. 작품에서도 이상하다고 언급되는 이 긴 이름은 ‘자비의 성녀 소피아’라는 의미이다. 미인이고 매우 순종적이며 착하고 겸손하고 인내력 있고 근면하여 헛간의 짚더미에서 잠을 잘 만큼 욕심도 없다. 며느리인 페르난다에게 종종 하녀로 오해받을 만큼 조용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부엔디아 집안을 위해 평생을 다해 헌신한다. 훗날 본인과 아르카디오 사이의 세 자식이 모두 죽은 뒤 나이가 들어 조용히 죽는다. 부엔디아 사람이지만 부엔디아 혈통이 아니기 때문인지 죽음에 대한 묘사가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
미녀 레메디오스
아르카디오와 산타 소피아의 장녀. 책에서는 지상 최고의 미녀로 묘사되어 미녀 레메디오스로 불린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인간세계의 모든 형식, 틀, 관습, 인습을 초월한 인물로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식사도 맨손으로 하는 등 거의 백치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어떤 남자든지 미녀 레메디오스를 한번 보면 죽음을 느낄만큼 깊은 매력에 빠지게 되고 실제로 미녀 레메디오스에게 연정을 품은 남자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남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어느날 미녀 레메디오스는 아마란타, 페르난다와 마당에서 이불을 정리하던 중 말 그대로 이불에 감싸여 고독하게 승천한다. 레메디오스의 승천(또는 죽음)은 마술적 리얼리즘 묘사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쌍둥이 아우렐리아노 세군도/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
아르카디오와 산타 소피아의 아들들. 소설 중반부의 주역이다.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은 쌍둥이로, 소년기에 둘이 서로를 뒤바꾸는 장난을 자주 하다가 정말로 서로가 뒤바뀌게 되었다. 부엔디아 집안에서 이름이 같은 사람들은 비슷한 운명을 맞는 경향이 있는데, 이 쌍둥이의 경우는 서로가 뒤바뀐 탓에 이름에 맞는 삶을 살게 된다. 청년이 된 이후로는 생김새가 달라진 탓인지 바꾸는 장난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의 모습을 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바나나 농장의 감독관이었다가 전향해 노동 운동을 선동한다. 그 결과로 파업을 일으킨 노동자들이 집단 학살 당하는 가운데 간신히 살아남아 탈출한다. 그는 이에 트라우마를 얻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정부의 은폐와 언론통제로 인해 죽을 때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이후 평생을 방안에 은둔하면서 멜키아데스의 수수께끼 예언이 담긴 양피지를 해독하면서 보내다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죽자 같은 순간에 그도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복권 장사를 하는 페트라 코테스라는 여자의 정부가 되었다가 카니발을 계기로 미녀인 페르난다에게 반해 결혼한다. 그러나 페르난다는 불합리한 구습에 젖은 꽉 막힌 여자였기 때문에 결국 그는 다시 페트라에게로 돌아간다. 때마침 페트라의 집에선 가축들이 이유없이 불어나서 큰 부를 쌓았기 때문에 흥청망청 살며 온 집안을 돈으로 바르거나 음식 많이 먹기 대회를 벌이는 등 기행을 벌이면서 산다. 그러나 홍수 때문에 온 재산이 날아가고, 이유없는 가축의 증식이 멈추면서 그는 처음으로 가장으로서 돈을 버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게다가 원인 모를 병까지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모든 부를 잃고 몸까지 망가졌기에 창녀들에게조차 조롱받는 비참한 꼴이 되지만, 페트라와는 정신적으로 교감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또 마지막으로 딸인 아마란타 우르술라를 브뤼셀로 유학 보내기 위해 가축 경매에 매달린다. 그 과정에서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뚱뚱했던 체형이 살이 빠져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비슷한 외모가 된다. 막내딸 아마란타 우르술라를 부뤼셀로 보내고 쌍둥이는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장례식장에서는 아우렐리아노의 친구들이 찾아와 소동을 벌인 타에 관이 서로 뒤바뀌어버린다. 이는 어린 시절 뒤바뀌었던 서로가 죽은 뒤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감을 상징한다.
페르난다 델 카르피오
쌍둥이 중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아내. 독보적인 미녀로, 카니발을 이용해 마콘도 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추종자들을 제거하려는 정부의 음모도구로서 마콘도로 오게 되었다. 그 때 페르난다를 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한눈에 반해서 그전까지 만나고 있던 페트라 코테스를 뒤로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페르난다는 폐쇄적인 카톨릭 집안에서 여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고고하게 자랐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된 사람은 천박한 인간이라 충격을 받아 기독교적 보수성과는 거리가 먼 부엔디아 가문을 평생 경멸했으며 자신의 신념을 부엔디아 가문에 관철해서 집안의 분위기를 본인처럼 철저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딸 레난타 레메디오스(메메)가 천한 남자와 사귀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수도원에 강제로 넣어버리기도 했다. 보수적인 동시에 아주 속물적인 인물이다. 마술적인 성향으로 가득 찬 부엔디아 집안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악역이다. 미녀 레메디오스가 하늘로 날아가자 그녀가 몸에 감고 간 이불은 어쩌냐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속물적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매우 집착하는데, 부인병에 걸렸을 때에도 제대로 된 치료를 피하고 철저히 숨기며 딸 메매를‘좋은 아이’로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억압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부엔디아 가문의 누구도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거나 존경하지 않았으며 그녀 역시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멸시했다. 딸 메메의 아들인 아우렐리아노를 데려와 키우긴 하였으나 결국 페르난다는 남편이 죽고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난 상황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집안의 고독 속에서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느끼며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호세 아르카디오
앞의 호세 아르카디오와는 동명이인으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 사이의 장남. 페르난다의 바람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성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청소년기부터는 집을 떠나 신학교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훗날 페르난다가 죽은 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마콘도로 돌아오며,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단 둘이서 고독하게 생활하게 된다. 작품 초반에 우르술라가 훗날을 위해 숨겨놓았던 금을 발견하게 되는 인물이며, 이 금으로 동네의 사춘기 아이들과 흥청망청한 생활을 하다가 금을 노린 아이들에 의해 욕조에서 고독하게 익사한다.
레난타 레메디오스(메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 사이의 딸. 어머니는 레난타를, 아버지는 레메디오스라는 이름을 서로 고집하여 결국 둘 모두를 붙여 이름이 지어졌다. 레메디오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답게 아주 예쁘다는 묘사가 있다. 보수적인 어머니와는 다른 성격으로, 아버지와 성격이 잘 맞아 서로 감정적으로 교감하며 자유분방하게 자란다. 바나나 공장의 수습공인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메매 사이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태어난다. 마우리시오가 메매를 만나기 위해 집의 목욕탕으로 오간다는 것을 알게 된 페르난다가 목욕탕에 포수를 대기시키고 있다가 집으로 넘어오는 그를 쏘아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바로 뒤에 메메는 페르난다에 의해 수녀원으로 쫓겨나 그 뒤로 소설에서 등장하지 않으며 폴란드에서 늙어 죽었다고 언급된다.
아마란타 우르술라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 사이의 막내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의 이모로, 이름의 기원처럼 아마란타와 우르술라의 특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성격은 정상적이던 시절의 아마란타의 활발함과 우르술라의 의지와 생명력을 이어받은 것처럼 묘사된다. 마콘도에 알 수 없는 향수를 느껴 망해가던 마을을 다시 일으키는 것에 시도한다. 훗날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브뤼셀로 유학을 가며, 그곳에서 비행장 사업을 하는 부자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홀로 남아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자신에게 욕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한 번 관계를 맺은 후 서로에게 빠져든다. 부엔디아 집안의 사람들은 전부 사랑의 결여를 겪는데, 둘의 사이는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을 찾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함께 돌아온 남편이 둘의 관계를 알고 떠나가 버리자 그녀는 돈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임신을 했다가 출산 후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
페르난다의 딸 메매와 그녀의 애인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페르난다에 의해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로 자랐기 때문에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자신의 이모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우렐리아노 대령과 성격과 외모가 무척 닮은 것으로 나오며, 비범한 능력도 이어받아서 책에 있는 수많은 지식을 모두 알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정세와 같은 책에 없는 내용도 왜인지 알 수 있었다. 사회적 교류 없이 반쯤 갇혀서 성장했기 때문에 다 자라서야 처음으로 상점에서 물건을 사며, 돈이 아닌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만든 금물고기를 책값으로 지불하기도 한다. 청년이 된 후로 집안사람들이 몇 번이고 해독하려고 한 집시 멜키아데스가 쓴 예언의 양피지를 해독하는 데 시간을 보내며,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죽은 이후로는 작품의 주역이 되어 다른 가문 사람들이 죽거나 집을 떠날 때 꿋꿋이 집을 지킨다. 아마란타 우르술라와 근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아내는 아들을 낳고 출산 후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이에 충격을 받아 방황하던 사이 아들도 죽는다. 결국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아들이 죽은 후에야 집안의 역사가 미리 쓰인 양피지를 해독할 수 있었다. 그가 양피지의 내용 해독을 마치고 진실을 깨닫는 순간 마콘도는 거센 바람이 몰아쳐 공중으로 날아가 소멸되며 부엔디아 가문은 완전한 종말을 맞는다.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 역시 부엔디아 가문과 함께 흔적 없이 고독하게 사라진다.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예언서는 ‘백 년의 고독을 운명으로 타고난 가계는 두 번 다시 이 지상에 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아우렐리아노(돼지꼬리)
아마란타 우르술라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 사이의 아들. 근친의 증거인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났다. 그는 부엔디아 집안 내에서 진정한 사랑에 의해 태어난 유일한 인간이자 집안에 뿌리 박힌 고독을 없앨 수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아내의 사망 이후 창녀 집과 술집을 전전하는 사이 이 아들은 개미떼에게 뜯어 먹혀 고독하게 죽는다.
핵심 줄거리
사촌인 우르술라와 호세 아르카디오는 근친상간으로 인해 돼지 꼬리가 달린 자식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고향을 떠나 마꼰도라는 고립된 도시를 세운다. 초기에 도시를 방문한 집시들이 신기한 외부 문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소개한다. 이는 호세 아르카디오로 하여금 외부 세계의 과학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기제가 된다. 마꼰도의 고립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시장의 등장, 내전, 철도 건설, 외국인 바나나 공장 건설 등의 사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한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공장 노동자들이 대거 학살당하고, 폭풍우와 가뭄으로 농장이 망해 외국인 바나나 공장이 철수하자 마꼰도는 다시 고독에 휩싸인다.
작품 해설
소설의 죽음을 막은 「「백 년 동안의 고독」
지금까지 세계 문학의 중심 밖에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소위 붐(Boom) 세대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944년 작가는 현재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 있는 첫 행을 썼지만 작가 스스로 하려고 하는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고, 자신이 쓰려고 하는 것이 믿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술적·언어적 요소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작가가 23년 동안 생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이 1967년 6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판되었을 때는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출판되기 전 여러 잡지들이 그 일부를 미리 게재했었고, 작가가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던 제1장을 읽은 카를로스 푸엔떼스(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멕시코 작가)도 아낌없는 극찬을 보냈다. 비평가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즉각적인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재판이 이루어졌고, 출판된 지 몇 개월 만에 동·서 유럽의 20개 언어로, 현재는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 특히 ‘고갈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작가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그런 성공에 힘입어 이탈리아에서는 치안치아노 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에서는 가장 뛰어난 외국 소설로 지정되었다. 미국 비평가들은 1970년대의 가장 훌륭한 열두 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으며, 1971년 컬럼비아 대학은 작가에게 가장 권위 있는 베네수엘라의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수상했으며, 결국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작품으로 소위 ‘소설의 죽음’이라는 주장에 반기를 들게 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명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책꽂이에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로 소설의 부활에 대해 언급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학은 이제 라틴아메리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유럽 및 세계 문학 속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다른 작품들 까지도 문학계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면서 독자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수많은 비평가들은 이미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고, 앞으로도 노력 여부에 따라 문학사를 바꿀 가능성이 예견되는 그의 눈부신 글쓰기가 현대 세계 문학사의 멋진 순간을 계속해서 장식하면서 21세기를 여는 초석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고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 : 또 다른 리얼리즘의 극치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심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방법을 모색하던 라틴아메리카 소설가들은 역사적·문화적으로 큰 혼란을 겪어온 라틴아메리카만의 독특한 문학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중남미 학자로서는 아르뚜로 우르라르 삐에뜨리가1948년 처음으로 썼지만, 이것을 새로이 규정 지은 사람은 앙헬 플로레스였고, 쿠바의 작가 알레호 까르뻰띠에르는 이를 ‘경이로운 사실’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기도 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좁게는 리얼리즘의 한 유형, 넓게는 세계 인식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분히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현실을 실제의 삶보다 더욱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현실’이란 개인 심리적·사회적·수평적·역사적·외면적 측면뿐 아니라 집단 심리적·수직적·만화적·미신적·환상적·추상적·탈시간적·내면적 측면까지 포함한다. 바꾸어 말하면, 죽음의 세계는 삶의 세계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부재와 현존은 한 사물이나 현상의 동시적 속성이며, 환상과 실제 사이에는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현실은 불가시적 세계로 둘러싸인 포괄적인 전체를 뜻하기 때문에 소설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일상적인 것을 환상적으로, 환상적인 것을 일상적으로 구사하여 허구와 환상을 융합시키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첨가한 이런 신화적인 요소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 즉 고독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작가가 환상과 현실을 격리시키고 있는 벽을 제거하는 데 무척 고심한 작품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자랐는데, 미신을 믿고 신비적인 것을 아주 좋아하던 외가의 분위기에 흠뻑 젖은 채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분석적이고 증언자적인 태도를 배제하는 대신 유년기부터 들어온 전설이나 신화로 포함되어 있는 잠재의식을 따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펴냈다. 그만의 필체와 서사적 관점을 사용하여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융합시켜 놓음으로써 특유의 제3현실, 즉 총체적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 냈다. 이러한 창조적 행위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만들어진 제3현실은 독자의 개념적 세계를 환상적 세계로 대치시킴으로써 독자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의 마술적 장치는 실제로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만 풀 수 있는데, 작품에 나타난 그 예들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팔팔 끓고 있는 얼음’, ‘인물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활약하는 모습’,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이’, ‘흙과 벽에서 긁은 석회를 먹고사는 레베카’, ‘항해 도중 바다에서 잡은 바다용의 뱃속에서 발견된 십자군 병정의 투구, 허리띠, 무기’, ‘난로에 얹어둔 우유가 끓지 않아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았을 때, 그 안에서 득실거리는 구더기’, ‘담요나 양탄자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인물들’에 관한 것 등이다. 특히 호세 아르카디오의 죽음(한 발의 총성이 울린 후)에 일어난 ‘사실’을 표현하는 데서는 극치를 이루고 있다.
“호세 아르카디오가 침실문을 닫자마자 권총 소리가 집 안을 진동했다. 한 줄기 피가 문 밑으로 새어 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가, 울퉁불퉁한 보도를 통해 계속해서 똑바로 가서, 계단을 내려가고, 난간으로 올라가, 터키인들의 거리를 통해 뻗어나가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다른 길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돌아, 부엔디아 가문의 집 앞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닫힌 문 밑으로 들어가서, 양탄자를 적시지 않으려고 벽을 타고 응접실을 건너, 계속해서 다른 거실을 건너고, 식당에 있던 식탁을 피하기 위해 넓게 우회해서 베고니아가 있는 복도록 통과해 나아가다, 아우렐리아노 호세에게 산수를 가르치고 있던 아마란타의 의자 밑을 들키지 않고 지나, 곡식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우르술라가 빵을 만들려고 달걀 서른여섯 개를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던 부엌에 나타났다.”
또한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과 생존권 문제를 놓고 벌였던 시위의 진압 과정에서 실제로는 13명이 죽은 사실을 3천 명이 죽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런 과장에 대해 벽년 후에는 3천 명이라는 환상적 숫자가 역사적 숫자로 믿어지고 13명이라는 역사적 숫자는 믿기 어려운 환상적 숫자로 퇴색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때는 사람들이 역사보다는 자기 픽션을 믿을 것이라 말하는 작가는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그 사실과 유사한 이미지들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영역으로 이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공간 : 나선형적 시간
사람 하나를 죽임으로써 고향을 떠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 건설해,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영고성쇠, 즉 고통, 절망, 사랑의 결여, 백 년 동안의 고독이 펼쳐지고 있는 마꼰도는 콜롬비아 지리(리오아차, 시에나가 그란데)와 신화(원죄 이전의 축축하고 고요한 낙원, 마법에 걸린 지역) 등에 뿌리를 박고 있다. ‘마꼰도’라는 이름은 작가가 첫 소설을 쓸 때인 1951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는데, 이는 그의 고향인 카리브해 연안의 원시적인 마을 아라까따까에 있는 자신이 어렸을 때 머물곤 했던 농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마꼰도는 신화적 레벨에 있어서 에덴의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죽음이 없는 세계이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이런 이중 구조 안에서 마꼰도라는 곳은 고독이 지배하는 곳으로 장치되는 것이다. 마꼰도는 아주 명확하게 정의된, 그렇지만 동시에 열려 있고 복잡한 상징이다. 우선 마꼰도는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변두리 마을과 일반적인 지방을 대변한다. 그러나 초기의 단절과 고립으로부터 식민화, 미 제국주위화로 이행되는 소위 일탈 또는 전도의 역사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주민들이 그때까지 알고 있던 그 어떤 마을보다 잘 정비되고 부지런한 마을’인 마꼰도는 여러 면에서 ‘에덴동산(무릉도원, 유토피아)’을 연상시킨다. 자원이 풍부하고 위기의식도 없으며, 그 누구도 사망한 적이 없는 영생의 낙원인 것이다. 하지만 원시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마꼰도는 점차 현대 문명과 그 제도의 침투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고독에 휩싸인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 거주하는 고독한 마을로 변해 백 년이 흐른 후 결국은 소멸되고 만다.
이처럼 현실적인 공간이자 신화적 공간인 마꼰도는 ‘직선적(역사적)’이고 원형적(신화적)‘인 시간이 중첩·혼합된 시간 구조, 다시 말하면 ’ 나선형‘시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내재되어 있는 핵심 테마인 ’ 고독‘을 찾아내는 데 열쇠가 되는 것은 직선적으로 진행되는 역사, 즉 마을의 설립과 발전, 쇠퇴와 파괴라는 역사를 보완하고 소설의 시간적 차원을 확장시키며, 새로이 생명력 있게 펼쳐지는 확장된 현재의 꿈을 묘사하는 나선형적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연속성보다는 동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시간, 직선적인 시간을 보완하고 소설의 시간적 차원을 확장시키는 것과 부엔디아 가문에 총체적으로 선고되어 있는 고독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 다시 말하면 소설의 ’ 고독한 ‘시간적 구조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기 때문이다.
사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는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이 어지럽게 깔려 있지만 진지하게 읽어보면 지속적인 어떤 흐름, 즉 시·공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리듬과 패턴이 발견된다. 수많은 민속 모티브, 신화, 에피소드들이 도처에 깔려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여성 주인공들, 특히 도덕성의 화신인 우르술라, 풍요와 성의 상징적 여신에 비유될 수 있는 필라르 테르네라(필라르는 기둥, 축을 의미하고 테르네라는 암소를 의미한다), 아마란따(그녀는 출산의 여신이나 그 자신의 처녀로 남아 있는 그리스의 대모신 아르테미스를 의미한다) 등은 위와 같은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나선형적 시·공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면모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이름 짓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부엔디아 가문의 남자 자손들은 아우렐리아노 또는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여자 자손들은 우르술라, 아마란따, 레메디오스라는 이름들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들은 충동적이며 모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은 명민하며 은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이름들은 심리학적·생물학적으로 지속적이고 동일한 패턴의 성격적 특성을 계승해 나가기 때문에 인물들은 역사적 개인임과 동시에 또 다른 관점에서는 하나의 추상적 개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일으키거나 겪은 서른두 번의 반란은 콜롬비아 독립 이후 끊임없이 진행되었던 좌·우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역사를, 4년 11개월 2일간 지속된 대홍수와 1010년 동안 지속된 가뭄은 ‘낙원’에서 저질러진 타락의 정화와 다가올 신생을, 그리고 동시에 신생에 대한 소망의 무참한 좌절과 고독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10년 주기로 3월에 마을을 찾아오는 집시들,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는 화요일들, 부엔디아 집에서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수많은 일들 또한 시간의 동시성과 순환성,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고독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신화 속의 ‘페넬로페’를 생각나게 하는, 아마란따가 낮에는 수의를 짰다가 밤에는 다시 푸는 행위와 아우렐리아노가 고독을 지탱하기 위해 황금을 녹여 작은 황금 물고기를 만들고, 황금 물고기를 판 금화를 녹여 황금 물고기를 만들다가, 마침내는 팔기를 단념하고 순전히 만들기만을 위해서 황금 물고기를 녹여 다시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행위는 시간의 순환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마꼰도라는 실제적인 공간과 소설이라는 공간(양피지라는 공간)이 아주 교묘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서사의 나선형적 시간의 특성은 죽음(라틴아메리카 사회가 선고받은 것처럼 보이는 정체의 운명 또는 수동적인 혼수상태)으로부터 시작해 과거로 회귀하고 재정립하고, 더 나아가서는 현재를, 미래를 정립하고 여는 생명의 순환고리를 연결해 가는 데 있는 것이다.
고독, 성관계, 근친 상간 : 마꼰도와 부엔디아 가문의 인간 조건
고독과 연계해서 볼 때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가장 특징적인 인간들은 마꼰도의 설립자인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로서, 고독이라는 기호는 그들의 온몸과 영혼에 나 있는 상처이자 종양이자 가족의 혈통 속에 녹아들어 있는 피할 수 없는 인자라고 할 수 있다.
부엔디아 가족 가운데서 가장 고독한 인물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다. 그의 고독한 운명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나타났었다. 어머니 우르술라가 노령에 이르면 생기는 통찰력으로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울었던 것은 ‘그가 사랑을 하는 데는 무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듯, 그는 모든 가족들 가운데서도 타인과의 우정이나 내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가장 많았던 인물이다. 고독하게 자란 그는 나중에 보수파와 자유파 사이의 1,000일 전쟁의 영웅으로서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게 되어 ‘이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남자처럼 보였을 때’도 하얀 백묵으로 그려진 허상의 원 안에 격리된 채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 위치하게 된다. 어떤 때는 그의 명령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미리 실행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르술라는 그의 과도한 권력은 거의 완벽한 도덕적 타락을 나타낸다고, 다시 말하면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권력을 상실한 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다시는 전쟁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작은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서 순환적인 고독을 누림으로써 치유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묶여 있었던 밤나무 아래에서 고독한 시체로 발견된다.
‘고독’은 부엔디아 가문이 위치하고, 가문을 지배하는 공통의 조건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고독으로부터, 심지어는 부엔디아 후손의 어머니인 우르술라조차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녀는 소경이 됨으로써 노쇠의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고독 속에 잠겨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마찬가지로 깊은 사색에 빠진다. 그러나 아들의 깊은 사색이 명상의 한 형태로 선택된, 실제적인 것이었던 반면에 적극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르술라의 고독은 본의가 아니었다. 이처럼 고독은 아우렐리아노와 그의 어머니에게서 반대되는 효과를 유발했는데, 아우렐리아노가 고독 속에서 몽상가적인 화려한 권력을 차츰차츰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우르술라는 눈이 멀어짐으로써 고독 속에서 사물들을 더 잘 보게 된다.
결혼에 의해 가족이 된 산타 소피아 델 라 피에닷, 페르난다 델 카르피오. 우연히 혈연관계를 맺게 되는 필라를 테르네라,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가족의 절친한 친구 멜키아데스 등 모든 인물이 고독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부엔디아 가문의 집 자체, 그 안에 있는 가재도구까지 고독한 존재로 나타난다. 이들은 고독을 피하기 위해, 고독을 향유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거나 강제로 죽고, 결국은 근친상간에 함몰하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고독과 관계된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이 작품의 마지막 세 페이지에 드러난다. 부엔디아 가문의 최후 생존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개미떼에 의해 끌려가는 갓 태어난 아들의 몸을 보는 순간,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적힌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고는 자신의 운명이 양피지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멜키아데스의 방에 처박혀 백 년 전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해석했다. 그 해석을 마치는 순간마꼰도가 바람에 의해 부서져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 버릴 것이고, 또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운명을 타고난 가문들은 이 지상에서 두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양피지들에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지 않는다고 예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양피지를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반복될 수 없는 고독한 행위이며 죽음의 행위가 되어 고독의 극치에 이른다. 말은 비극으로 끝나고 삶 자체는 반복될 수 없으며, 한번 지나간 시간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백년 후에 ‘사랑에 의해 비로소 삶을 받은 자’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끊어질 운명에 있던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은 그들만의 업보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백 년 동안의 고독」 속의 인물들은 고독과 사랑에 관해 무능함으로써 고독이라는 순환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의 운명, 다시 말하면 라틴아메리카의 조건을 가장 잘 정의하는 고독이라는 개념은 사랑에 무능한 사람들의 ‘황폐’와 ‘단절’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부엔디아 가문에서 우르술라 이구아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성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남자들은 삶을 성적인 욕망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성은 이들의 삶의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의 한 출판사가 작가에게 “관대히 용서할 수 있는 실수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마르케스는 “허리 밑에서 저지르는 실수”라고 말했다시피, 인간에게 성은 권력과 더불어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스럽고, 강력한 욕구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성이 고독과 더불어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 정도와 의미가 일상을 넘고 있다. 즉 성은 고독을 해소하고, 동시에 고독을 더욱더 심화시키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대한 독서에서 마꼰도 설립의 근원을 이루고, 부엔디아 가문과 그 혈통의 고칠 수 없는 경향으로 지속되고, 결국에는 재난을 유발하는 서사의 중심 모티프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불완전하다. 그것은 바로 작가가 “내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내게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친상간에 의해 고착되어 있는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시피, 고독과 더불어 이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근친 상간이다. 사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동시에 「백년 동안의 근친 상간」으로 치환될 수 있을 정도로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가장 깊숙이 내재된 두 가지 현실, 즉 고독과 근친 상간의 문제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부엔디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가장 뚜렷하게 특징짓는 것은 바로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한 가족에 속하는 근친 상간에의 유혹이며, 그들 모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근친상간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런 근친 상간의 내면에 바로 고독이 존재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텍스트의 순환적 리듬은 수많은 사건들이 부엔디아 가문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고독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인 근친 상간과 연결되어 진행되면서 그 주기와 형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 리듬 속에 위치하는 근친 상간과 그것의 금기는 부엔디아 가문의 기본적 틀을 형성한다. 무엇보다도 근친 상간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타락은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재촉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동종교배가 열등한 자손을 낳듯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 또한 근친 상간이라는 동종교배를 통해 점점 더 열등한 자손을 낳고 그 결과 부엔디아 가문이 멸망하고 마꼰도가 폐허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는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마지막 순간에 해석해 낸 양피지에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사실 마꼰도 설립의 근본 동기도 사촌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결혼한 우르술라가 근친 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부 생활을 거부하게 되고, 이를 비웃는 프루덴시오 아길라르를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죽임으로써 이루어졌던 것이다. 근친 상간의 결과에 대한 가공할 만한 공포로 인해 우르술라는 후손들에게 엄한 주의를 주지만 근친혼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가문의 삶에서 근친 상간은 피할 수 없는 굴레이기 때문에 가문의 혈통에 흐르는 근친 상간적 경향은 영원히 바로잡을 수 없다. 형 호세 아르까디오와 동생 아우렐리아노는 필라르 테르네라를 공유하고, 자매간인 레베카와 아마란따는 피아트로 크리스피를 동시에 사랑하고, 형제간인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패트라 꼬데스를 공유하며, 레베카는 친오빠처럼 자란 호세 아르까디오와 결혼하고, 아마란따와 조카 아우렐리아노 호세도 근친 상간 직전까지 이른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모와 조카 사이인 아마란따 우르술라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관계를 맺어 돼지꼬리가 달린 자손을 낳고, 선조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종말을 고한다. 이 외에도 실제로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근친 상간의 경향이 드러나는 관계 또한 많이 발견된다. 아르까디오의 어머니 필라르 테르네라에 대한 욕정, 미녀 레메디오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열일곱 아들들과의 관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자신의 딸 레나따 레메디오스와의 관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 사이에서 태어난 호세 아르까디오와 증조고모할머니 아마란따와의 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는 근친 상간과 더불어 시작되고 혈통의 미로를 통해 여러 세대에 걸친 모색 후 그 순환이 완성되는 바, 결국 돼지꼬리 달린 아이와 마꼰도의 파괴는 서양 세계와의 진정한 족외혼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에서 빈번히 실패하고서 수세기 전부터 지속된 고독 속에 갇힌채 아직까지도 확실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 : 삶과 문학에 대한 화두
「백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창세기이며 묵시록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작품을 통해 가장 라틴아메리카적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더욱 넓고 깊게 바라봄으로써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초월적 지역주의, 다시 말하면, 좁게는 콜롬비아 넓게는 라틴아메리카라는 특정한 지역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추구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즉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을 타파하기 위한 지난한 시도인 것이다.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삶의 정수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그의 소설 세계는 객관적 사실과 시적 환상이 마술적으로 융합되어 현실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시키면서 20세기를 위협한 부조리한 요소들을 까발리고, 도덕적 분로를 표출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원한 가치인 사랑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재평가하도록 하며 현대 사회의 삶, 그리고 문학에 새로운 좌표를 형성해주고 있는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출판된 지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비평가들과 독자들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문학적 거울이 되는 이소설에 여전히 놀라움과 감동을 표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과 역사를 비추고 전망해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 작가의 의식 세계와 라틴아메리카라는 실체가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사실을 총정리한 소설로서 그 대륙을 체계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죽음’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소설의 삶과 소설의 미래에 대한,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화두일 수 있기 때문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대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부엔디아 가문이 이어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근친상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가 궁금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가가 정확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알아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었다. 작가는 콜롬비아는 물론 혼란했던 라틴아메리카에서 문학적, 사회적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그 의도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고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전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글보다 문학을 통해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하는 작가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이고 마르케스가 천재같이 느껴졌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근친상간은 ‘연결’의 역할을 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연결 때문에 마콘도는 고립되고, 그 고립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상황과 연결지어서 생각해보면, 작가는 마콘도가 근친상간으로 인해 멸망한다고 서술하여 라틴아메리카의 고립을 끊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것 같다.
그런데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관대하게 용인할 수 있는 실수는 ‘허리 밑에서 저지르는 실수’라고 언급한다. 물론 성이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근친상간이 왜 금지되어야하는지 반박불가능한 이유를 생각하던 나는 작가의 이 대답을 듣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실수라도 근친상간은 금지되어야 함에 틀림없다고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지난 서양철학 시간에 배운 미셸 푸코의 철학이 생각났다. 이성주의자들에게 저항했던 미셸 푸코는 근친상간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할 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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