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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해석

EnerTravel 2023. 6. 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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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식물들의 사생활』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저자소개

작가 이승우

작가는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전남 장흥군 바닷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만조가 되면 그나마 있던 길도 끊겨 바지를 걷고 학교를 가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해 서 인지 이승우 작가 소설에는 아버지가 많이 등장한다. 작가는 소설 속 아버지라는 존재는 관념화 한 권위 · 법 · 신 · 제도로 인간 삶에 간섭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에서 아버지가 억압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승우가 기독교인이 된 최초의 종교적 체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화해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아버지를 찾은 느낌이 들며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어머니와의 관계였다. 신앙이 없는 어머니에게 신학대를 간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작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나갔다. 신학대 진학을 위해 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신학대에서 치르는 시험에 합격했다.

입학 후, 작가는 전도사가 갖추어야할 덕목이 없음을 느꼈다. 신학 공부에서 멀어진 결정적 이유는 소설에 있는데, 대학생 시절 등단한 뒤로 문단에서 그를 계속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회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신학은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작가는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는 사실 프랑스에서 더 인정받고 있어 소설 대부분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있다. 작가의 소설은 이청준 작가의 ‘소문의 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교수로 지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책 한 권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앞으로도 소설을 쓸 때 인간에 더 관심을 두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쓴 소설에서처럼 구조와 사회시스템의 압도적 힘에 억눌리거나 충돌해 피 흘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을 조명하기 원한다고 한다.

 

책 소개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어두웠던 1970~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며 비루한 삶속에서도 '사랑'만이 구원이 될 수 있음을 형형하게 담고 있다."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는 구절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소재이며 방향이자 방법이다. 땅에 박혀있는 상대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품고 땅속에 뿌리를 뻗어 그에게 닿고야 말겠다는 모든 식물들의 사생활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사랑함으로 상처받고 그 상처로 다시 사랑을 얻는 이 사랑의 변증법은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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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줄거리)

 

'왜 웃어요?' 라고 묻는 은색 루주를 바른 여자의 말로 책은 시작된다. 나는 은색 루주를 바르고 있는 여자를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여자는 반쯤 열어젖힌 내 차의 유리창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고서 있었다. '할 거예요, 말 거예요?' 하고 묻는 여자의 말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그 순간 형태를 채 갖추지 못한 웃음이 나왔다. 그런 질문에도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했다. '타'라고 비로소 어려운 결단을 한 나의 옆자리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가 탔다. 여자의 천박함이 불쾌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나는 '역겨운 소리 그만하고 두꺼운 화장이나 지워'라고 위협을 했다. 여자가 화장을 다 지우기 전에 내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목욕탕 표시와 함께 '에덴'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여자는 흥분해서 씩씩 거렸다. 나는 이미 선불을 지급한 상태였다. 나는 투덜거리며 뛰쳐나오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긴 뒤 다시 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여자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너도 다리병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들어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단순하고 맹하고 겁이 많고 순종적일 것이라고 단정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형의 다리가 잘려나간 것은 5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가족이 보고 싶어 마을에 갔다. 그리고 다리가 없어진 형의 모습을 보고 내 굴욕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내가 형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겠다는 결단은 아니다. 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기대를 송두리째 접어버린 부모님은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형이 저렇게 되고 난 후 아버지가 실어증에 걸렸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의 동물적인 욕정처리를 위한 보조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리 없는 아들을 둘러업고 사창가를 헤매 다니는 모정이 슬펐지만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형은 글쎄, 싫다니까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어디 가냐고 묻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리고 나는 그들 몰래 택시를 타 따라갔다. 어머니의 승용차가 멈춘 곳은 연꽃시장이었다. 연꽃시장은 사창가인데, 형을 업고 걸어 다니는 어머니의 발걸음을 본 나는 당황했다. 사창가의 여자가 '들어보니까 참 딱하더라고요, 아들이 되게 똑똑했나 봐요. 근데 군대에서 저지경이 되었대요. 그래도 아들의 생리문제까지 신경 써주다니..‘라는 여자의 말을 듣고 연꽃시장을 빠져나와 술을 마셨다. 하지만 결국 어쩌겠다는 작정도 없이 다시 돌아갔고 어머니는 그 집 앞에 여태 서 있었다. 아들이 들어간 집의 유리문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생소하지가 않았다. 큰아들이 자신의 혐오스러운 몸뚱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속의 욕정을 배출하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무슨 기도를 한 것일까. 나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 형의 멱살을 잡았고 어머니는 내 뺨을 쳤다.

 

연꽃시장의 소란이후 일주일 동안 우리 집은 조용했다. 너무나 조용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형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아들을 등에 업고 사창가를 찾아가는 일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이해의 벽을 넘지 못했다. 형이 훈련 도중 터진 폭발물에 다리를 잃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집에 없었다. 형이 군인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날 때도 나는 집에 없었다. 형은 강제로 징집되었고, 1년이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 어머니는 형이 보통 땐 괜찮은데 어쩌다 한 번씩 분별력을 잃으면 자기 몸을 자해하고 손으로 자위를 하고 이내 죽은 듯이 잠이 든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는 형의 병이 성충동 쪽으로 발산되고 있다는 것 같다고 했다.

 

바로 '발작'이었다. 어머니는 단순하고 무분별한 모성애가 아니라 일종의 치료 수단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이왕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내가 그 일을 맡겠다고 했다.내가 생각한 방법은 연꽃시장으로 형을 업고 가는 대신 변두리 모텔을 이용해 여자를 골라 집어넣었다. 일이 끝난 이후 형과 나는 산책을 했다. 다음날 나는 혼자 형의 산책로를 걸었다.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능 입구에서 끝까지 걸었다. 끝에 다다르자 숲에 대한 자신의 설명할 수 없는 동경에 대해 토로했다. 마치 육체에 얽매인 자신의 욕망을 헐뜯는 혹은 어루만지듯 소나무를 휘감은 때죽나무의 애욕에 대해 숨 가쁘게 말했었다. 때죽나무는 옷을 벗은 여자의 몸처럼 매끈하고 날씬했고, 소나무를 휘감고 있는 관능적으로 생긴 나무였다. 형은 원래 사진을 찍었었다. 사진을 포기한 것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가치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진은 객관적 사실과 시대의 진실을 증명하는 기록이었다. 형의 사진 찍기는 예술이나 취미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싸움이었고, 그의 사명감이었다.

결정적이라고 해야 할지 치명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형과 나 사이에 한인물이 끼어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순미였다. 단발머리였고 언제나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에 흰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순미와 형은 연인사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녀를 향해 불처럼 타올랐는지 형에 대한 내 감정은 날로 사나워졌다. 그녀에 대한 말 못 할 사랑이 간절해질수록 형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형이 집을 비운 날 나는 형의 방으로 스며들어갔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순미의 냄새가 났다! 이내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며 형의 물건을 거칠게 뒤졌다. 형이 눈치를 챈 것은 다음날이었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혹시 자기 방에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형은 그날부터 외출할 때 방문을 잠그고 나감으로써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노출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방에 들어갈 수 있었고 순미의 향에 취해 잠들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사태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형의 발길에 깨어 일어난 다음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형은 몹시 화가 나있었다.

형이 언제부터 순미에 대한 내 사랑을 눈치 챘는지 는 알 수 없다. 자기 방에 누워 잠들어 있던 나를 개 패듯 두들기던 그날은, 자기 예감에 확신을 갖게 된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길질 몇 번으로 내 마음이 돌려세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집을 찾아간 것은 그 열정과 환상이 나를 내몰았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도심 한복판에서 규모가 큰 집회가 열린다고 한 날이었다. 형은 아침 일찍 카메라를 메고 나갔고 나는 순미가 사는 동네로 나갔다. 순미의 집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는데 그녀는 도서관에 갔다고 했다. 나는 무작정 기다렸고 10시쯤 되자 어떤 남자가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순미를 좋아하고 사랑을 고백하려 왔다고 했다. 그 남자는 형부였고 나의 마음을 비웃었다. 이러한 광경을 순미는 지켜보고 있었고 내 바람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리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순미가 나를 알아보고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말없이 지나쳐갔다는 사실이 나를 미칠 것 같은 심정 속으로 몰아넣었다.

"너는 쓰레기, 개새끼다."라고 형이 말했다.

형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순미의 형부라는 작자가 비웃음을 날리고 난 직후였다. 형의 얼굴은 붉었고 나를 개처럼 끌고 풀밭 위에 내팽개쳤다. 그는 내 몸 위에 올라타고 주먹질을 해대었고 나의 존재를 치욕스러워했다. 사흘 후 나는 가출했다. 나를 가출하게 만든 건 형이 아니라 순미였다. 그 냉담한 반응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진노하며 나의 가출을 결행하도록 부채질했다. 집을 나갈 때 나는 내 가출을 기념할 상징적인 의식으로 형의 카메라를 취했다. 카메라는 그의 눈이고 그의 입이었다. 나는 그 카메라를 몰래 팔아넘겼다. '이안에 필름 든 거 아니에요?'라는 주인남자의 말에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필름은 시대의 증거였고,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집에 찾아와 형의 방을 샅샅이 뒤졌고 사진들을 모조리 가지고 갔다. 그리고 형과 형의 동료들을 연행해 갔고 군대로 끌고 갔으며 형의 다리를 잘라냈다. 형은 순미 역시 잃었다. 그녀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이것이 내 빚의 내용이다.

내가 수년 전에 판 카메라를 구입해서 형에게 내밀었을 때, 형은 아무 말도 하지않고 시선을 돌렸다. 나는 형이 다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형은카메라를 책상 위에 사흘 동안 장식물 저럼 놓았다. 나는 형에게 '카메라를 다시 들어. 카메라로 세상을 다시 봐. 형의 카메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증거 하게 해. 그러면 나는 조금은 용서받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라고 했다. 이내 형의 얼굴은 도화지처럼 창백해졌다가 휴지처럼 구겨지는 걸 보았다. 그는 솟구치는 충동을 억제하려는 듯 온몸을 비틀었다. 짐승의 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자기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옷이 완전히 뜯겨나가자 자기 살을 할퀴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당황한 나머지 손을 쓰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헉! 하고 형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도무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아버지를 불렀지만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별로 놀라지 않고 이내 내버려 둬라라고 한마디 했다. 형의 발작은 반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방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 마냥 처참했다. 아버지는 형을 안아 비누질까지 해서 침대에 뉘었다.

형이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던 충동과 실체와 나는 정면으로 조우했다. 바깥 공기를 마셔야 할 것 같아서 집을 빠져나온 나는 왕릉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을 길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갔고 그곳에서 굵은 소나무에 팔을 두르고 있는 때죽나무의 부드럽고 매끈한 가지를 보았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울창한 숲의 깊은 어둠과 마주했다. 그 순간 내면의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 것처럼 보이던 형의 깊은 얼굴이 떠올랐고, 그의 정신의 가장 안쪽에 순미가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렇다, 형의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연꽃시장이 아니라 순미다. 순미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순미를 훔쳐보며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때 순미의 방에 양복 입은 남자가 들어왔고 (순미의 형부) 그 남자의 손이 넝쿨처럼 그녀의 몸을 끌어안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굴욕의 시간을 재현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빠른 걸음으로 옥상을 내려왔다. 그녀는 아침 여덟시 이십 분에 집에서 나왔다. 지난밤에 나는 그 도시를 떠나지 못했다. 나는 하루종일 그녀의 일상을 따라다녔고 그녀가 한 도서관의 서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발견한 순미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의 표시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할 이야기가 있어요, 나에 대한 건 아니고 형에 대한 이야기예요.순미 씨가 형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온 거예요 ' 말없이 서가에 책을 꽃던 그녀가 반응을 보인 것을 그때였다.'우현 씨가 어쨌다는 거예요?" 놀랍게도 그녀는 형의 현재상태에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묻는 대로 답했고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말은 형이 다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사흘간의 출장 계획을 밝히면서 왕복 기차표를 구해오라고 했을 때 나는 내게 맡겨진 얼굴 없는 의뢰인의 청부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며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시험해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를 쫓아갔고, 어머니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내렸다. 언덕에서 산 쪽으로 외줄기 길이 하나 있었다. 키가 큰 풀들이 길을 덮고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길을 해안선에서 치솟아 오른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거짓말같이 집이 한 채 지어져 있었다. 집 앞에는 키가 거의 이백 미터쯤 되어 보이는 늘씬한 야자과의 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 있었다. 그 나무의 뿌리가 줄기만큼 크다면 틀림없이 절벽을 뚫고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상상했다. 바람개비 모양의 기다란 잎자루가 거의 하늘에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야자나무는 돛대를 연상시켰다. 어머니는 저 배 안에 타고 있을까? 조급증을 주저앉히느라 애를 먹었다. 그 나무 아래로 어떤 움직임이 감지되었고 두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이 몸이 불편해 보이는 다른 한 사람을 부축하고 나왔다. 나는 부축한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을 굳이 망원경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보았다. 어머니는 부축하고 온 사람을 나무 아래 평상에 머리를 약간 높게 해서 뉘었다. 야자나무의 기다란 그늘이 이불처럼 그의 몸을 덮었다. 나는 평상에 누운 사람이 남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윽고 어머니는 그 사람의 얼굴을 만졌다. 더할 수 없이 감미롭고 부드러운 손놀림이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신경까지 찌릿하게 만들 정도로 감도가 높은 온정과 친밀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남자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금빛으로 빛을 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녀는 평상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야자나무 뒤로 돌아갔다. 이윽고 에덴동산의 최초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몸을 가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평상 위로 가만히 올라갔고 , 그들의 몸은 대칭을 이루며 한 몸을 만들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형과 함께 남천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형에게 제안했지만, 내키지 않아 했다. 옆에서 듣던 아버지는 형에게 같이 다녀와라 기다리고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왜 남천으로 갔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가 한 그루의 나무로 변신하는 꿈을 꾸었다. 아버지의 몸에서 뿌리가 나오고 가지가 뻗고 잎이 생겼다. 나무는 두꺼운 땅을 뚫고 뿌리를 깊이 내려 바다에 닿았다. 거기서 나는 꿈밖으로 뛰쳐나왔다. 남천으로 향할 때의 내 기분은 형에게 사진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킬 만한 장소로 그곳만 한 데가 없다는 기대감으로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남천까지 가는데 형은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천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는 건물이름을 하나 댔다. 나는 그곳까지 가는 길을 알고 있었고 이윽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나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하루사이에 많이 수척해 보였다. 나는 어제의 어머니의 벗은 몸이 떠올라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며 식은땀을 흘렸다. 어머니는 그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어나갔다. 돈이 없어 민들레의 종업원이 되었고 음식 값 계산하는 일을 두 달 동안 했다고 했다. 그 나이에 어머니는 민들레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같이 온 사람들은 그 남자를 비서관이라고 불렀다. 어느 순간부터 인가 그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을 내보였고, 그녀는 은근한 시기와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일시적이나마 안식을 제공하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왔다, 사랑은. 마치 눈에 띄지 않은 사이에 꽃봉오리가 벌어지듯이, 그렇게 천천히. 사랑이었을까, 그것이. 그러나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여자를 (어머니의 예명은 윤희, 본명은 서영숙) 남천으로 데리고 갔고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는 윤희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했고 윤희는 그 시간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아했다. 그해 겨울 예기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었고 어제야 비로소 만나게 될 수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심한 조사를 받고 어딘가에 감금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뱃속에서 아이가 다섯 달쯤 자라고 있을 때 남자는 반공법에 의해 잡혀갔고, 아내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 사실은 윤희의 마음에 불을 질렀고 거기서 첫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어떻게 남천을 떠났는지 어떻게 남천을 떠나 서울을 왔는지 그 이틀간의 일정이 이십년처럼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 순미에게 연락이 왔고 도서관에서 만났다. 순미는 나를 만나면 형이 정말로 사진을 다시 찍을까요?라고 물어왔고 나는 무엇에

손톱 밑을 찔린 듯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또 형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 호텔에 넣어줘요 나는 창녀예요 창녀나 진배없어요라고 했다. 그렇다, 순미는 연꽃시장 아가씨의 역할을 맡으려 하려 한 것이다. 대화 후 그녀는 도서관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녀가 가르쳐준 대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가 빠져있는 심연은 형부였다.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창녀를 자처하게 만든 자가 그자였다. 나는 그자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시각 그자는 순미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었으며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순미를 울었고 나는 무작정 그녀를 끌어내서 내 차에 태워 남천으로 왔다. 혹시 하고 시동을 걸어보았지만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조금만 걷자고 했고, 내가 아는 그 길, 사 파른 벼랑 위에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야자나무 앞에 섰다. 나는 무엇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고, 어이없게도 신비주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나무는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형의 문장이 입안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내가 그녀를 찾을 때 명분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형을 만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내가 있다. 나무가 되고 싶은 형과 그녀가 되고 싶은 수미 사이에 내가 있다. 나무가 되고 싶은 형과 창녀가 되고 싶은 수미의 염원의 안쪽 동기는 같다. 그것은 사랑이다. 더 정확하게는 좌절된 사랑에 대한 보상이다. 그들은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라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을 이루려고 한다. 나무가 아니고 창녀가 아닐 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 이루려고 한다. 순미는 형을 남천으로 데려올 계획에 동의했다. 이곳에서 형에게 순미의 사진을 찍게 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형을 만날 장소는 호텔이 아니었다. 그녀는 창녀가 아니었고, 창녀여서도 안 되었다. 야자나무가 있는 남천의 그 바닷가 보다 그들에게 더 어울리는 공간은 없었다. 형을 데리러 서울에 거의 도착했을 때 ,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빨리 와라, 빨리 좀 와라 하고 다그치듯 말했다. 어머니는 무엇 때문인지 몹시 허둥거리고 있었다. "형이.. 니 형이 없어졌다." 형이 없어지다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문득 여관에서 데려오는 길에 길을 갔던 날 밤이 떠올랐고, 형이 나에게 때죽나무와 소나무, 소나무의 굵은 줄기를 끌어안고 있는 여자의 피부처럼 매끄러운 때죽나무에 대해 말했고, 또 "여기 서서 저 울타리 너머의 빽빽한 숲 속을 상상해 하늘을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적으로 발돋움하는 키 큰 나무들과 저 안 어딘가에 있을 깊은 동굴을 상상해. 몸 비비며 어우러져 사는 나무와 풀들, 새들과, 벌레들, 흙과 짐승들을 상상해 들어가고 들어가면 나도 그 나무를 볼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리면 간절한 염원을 얘기했었다. 숲 속은 조용했다. 그 고요는 창백하고 불안했다. 가시줄을 벌리고 울타리 안쪽의 어둠 속에 어렵게 발을 들여놓으면서 나는 태초의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상상을 했다.

숲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물푸레나무였고, 숲 자체가 이미 깊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그 자리엔 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있는 형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연꽃시장에 가보려고 집에서 나왔는데, 우현이가 이 산책길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와봤다. 우현이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 이윽고 아버지는 "너는 이미 나무다. 나무는 꿈꾸는 사람은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이미 나무인 것이다."라고 형에게 답했다. 밤의 숲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어두운 숲속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에게 어둠은 발광체였다. 얼마 전에 한 남자가 나를 찾아왔었다, 하고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그 노인은 오래전에 너희 어머니가 사랑했고, 그 이후 한 번도 그 사랑을 거둬본 적이 없는 한 남자였다. 너희 어머니와 너희 어머니가 낳은 아들을 몹시 보고 싶어 하는 듯하다고 , 나는 거절하고 싶었다. 특히 우현이에게.. 하지만 나는 나흘간의 고민 끝에 노인의 요구를 수용했다.." 아버지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너희 어머니는 나에게 사랑하는 행복을 알게 해준 첫 번째 사람이고, 유일한 사람이다, 그 이유만으로도 너희 어머니는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모르겠다만, 너희 어머니가 우현이를 낳은 것은 남천, 그 절벽위에 세워진 그림 같은 집에서였다. 너희 어머니가 거기서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 나는 그곳까지 만삭인 너희 어머니를 태우고, 핏덩이 우현이를 내 손으로 받았다. 그 이후에도 너희 어머니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주변을 맴돌았다. 그것은 너희 어머니를 지켜주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내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형은 이틀 동안 누워있었다. 나는 남천에 있는 순미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형을 사랑한다. 어머니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는 형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순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밤새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나는 실제처럼 선명한 꿈을 꾸었다. 내 꿈은 다음날 있을 일에 대한 예고편과도 같은 것이었다. 남천이 무대다. 태초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은 야자나무 한 그루 있다. 야자나무 아래 한 여자가 서 있다. 여자는 옷을 입지 않았다. 옷을 벗은 순수, 그녀의 이름은 순미다. 그리고 형이 그 앞으로가 내가 사준 카메라를 들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형의 모습은 모처럼 밝고 환하다. 형은 다시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본다. 이제 형은 카메라에 들어오는 순미를 통해 세상을 본다. 그 세상은 사랑의 세상이다.

 

감상


이 소설에는 나무를 인물에 비유한 표현들이 등장하며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불륜의 관계 등. 일반적이지 않아서인지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엔딩을 맞이하는 점이 참 인상 깊다. 소설 속 ‘남천’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것처럼 이 책 자체가 현실감을 담기보다는 이런 사랑도 사랑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또한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라는 책 속의 구절처럼 현실에서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처절한 현실을 승화시킨 것 같다. 이성 간의 '사랑'은 과연 상대적일 때만이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사생활의 일부로서 치부될 수는 없는 것일까? 라는 기존의 논리를 반박하고, 사랑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얼마든지 가능함을 그 한계의 끝은 없음을 보여주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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