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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EnerTravel 2023. 5. 1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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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작가 소개

 로버트 L. 하일브로너(Robert L. Heilbroner, ~ 2005)는 미국의 진보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사학자. 하버드대학교에서 폴 스위지, 조지프 슘페터 등 기라성 같은 경제학자들 아래서 공부하고 1940년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2차 세계 대전 동안 저명한 제도주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가 지휘하는 연방물가관리국에서 일했다. 1963년에 이 책『자본주의』로 박사 학위를 받고 뉴스쿨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1년에는 미국 경제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005년 85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일브로너는 대가다운 문제의식과 글 솜씨로 독자들을 정치 경제학과 공공 정책이라는 복잡한 문제로 이끌고 가서는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그는 경제학을 넘어서 현대의 위대한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20여 권의 책을 썼으며 그의 책들은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책 소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종언이 회자되면서,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떤 모습과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물음들이 있어 왔다. 이 책은 인류의 여명기에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고 있는 책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1962년에 초판을 펴낸 이래로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에 발맞추어 5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13번의 개정과 보증을 거친 살아있는 경제사 고전으로, 하일브로너 최고의 인기작 『세속의 철학자들』과 쌍벽을 이루는 저작이다. 마치 재미난 ‘경제사 산책’과 같은 범속한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왔던 물질적 생산과 분배를 둘러싼 극적인 사회적 힘들을 다시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본주의가 여러 개의 상충되는 이념들로 구성되며 진화해 왔음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는 경제학 교과서의 추상적이고 완결된 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아이디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지난 역사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들과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대처하며 자신의 모습을 유동적으로 변모시켜 왔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준다.

 

내용 요약

[1장] 경제 문제
 경제학이란 모든 인간 사회에 나타나게 마련인 과정 즉 사회의 물질적 안녕에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단순 명료하게 경제학은 인류가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확보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1. 개인과 사회


 가장 원시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부족들로 다가갈수록 개인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몇 배로 줄어든다. 농부들은 그들의 경작지나 사냥감과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기에 스스로의 삶을 최소한 일정기간 동안이나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사람들은 일상의 물질생활은 용이하게 해결하나 동시에 타인에 지독하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떤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그 평균적 거주자들이 도움 없이 홀로 생존하는 능력은 확실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 노동 분업 : 우리가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누군가를 고용하면 된다.
 이것을 거치게 되면, 우리 자신의 기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술까지 갖추어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이 거대한 이득에는 일정한 위험도 따라온다. 일의 양에 비해 노동자의 수가 적다는 것. 그래서 간혹 지독한 파업이 벌어져 경제 작동의 요충지를 맡은 소수가 맡은 바 작업을 중단하게 되면 경제라는 기계 전체가 비틀린다.
■ 경제학과 희소성 : 인간이 희소성을 느끼게 되는 원인에는 자연의 결함뿐만 아니라 물적 재화에 대한 소유욕이 포함된다. 우리가 부자가 될수록, 우리의 능력이 점점 쌓여가며 자연의 결실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길수록 희소성은 더욱더 두드러진다.
■ 경제 사회의 임무 : 사회란 ①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충분한 양의 재화와 용역의 생산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조직해야만 한다. ②자신이 생산한 결실이 차후에 더 많은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게 분배되도록 안배해야 한다.

2. 생산과 분배


■ 동원을 위한 노력 : 생산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생산이라는 목적에 맞도록 인간 에너지를 동원시켜 줄 수 있는 사회 제도를 고안해 내는 것이다.
■ 적재적소의 배치를 위한 노력 : 사회의 여러 경제적 제도는 충분한 양의 사회적 노력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적재적소에 배분되도록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 생산물의 분배 : 사회가 스스로를 계속 물질적으로 충전할 수 있으려면 생산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성원들에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도록 해야만 한다.

3.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세 가지 방법


 3대 경제 체제는 전통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 명령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 시장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라 부를 수 있다
■ 전통 : 오랜 역사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관습과 신앙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유지되어 온 여러 절차들에 기초하여 생산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조직의 양산이다. 이것은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 경우 경제적 진보는 포기해야 한다.
■ 명령 : 권위적인 명령의 강제로 경제적 존속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전통의 방식처럼 생산과 분배라는 쌍둥이처럼 붙은 두 문제 모두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 전통 방식을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저지하는 거대한 제동 장치에 비유한다면, 경제적 명령이라는 방식은 변화를 재촉하는 거대한 박차에 비유할 수 있다
■ 시장 : 사회의 시장 조직은 사회로 하여금 전통이나 명령에는 최소한만큼만 의지하면서도 그 스스로의 필요를 조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장] 시장 이전의 경제


1. 고대의 경제 조직


■ 고대 사회의 농업적 기초 : 모든 고대 경제들이 압도적으로 농업적 성격을 가졌었다.
■ 도시의 경제생활 : 고대 사회의 기초는 농업 계층이었으나, 고대 사회는 농민들을 활발한 시장에서 대체로 배제했다. 그리고 이것은 고대 경제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측면을 만들었다. 다양하고 격정적인 도시의 경제생활. 농민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 사회와 고대 도시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고대 도시에서 시장의 기능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 노예제 : 고대 도시와 오늘날의 시장 사회를 구별하는 두 번째 차이점은 고대의 도시가 노예 노동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규모의 노예제는 고대의 거의 모든 경제 사회를 떠받치는 초석이었다.
■ 사회적 잉여 : 어떤 사회에서든 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연으로부터 뜯어낸 잉여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즉 그 사회가 경제적 생산의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존속에 필수적인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활동을 이루어냈다는 것을 뜻한다.
■ 부와 권력 : 고대 문명에서 부란 일반적으로 경제적 활동의 보상이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혹은 종교적 권력 및 신분에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前시장 사회에서 부란 권력을 쫓아가는 경향이 있었으며, 권력이 부를 쫓아가는 경향을 갖는 일은 시장 사회가 도래한 뒤에야 벌어진다.

2. 중세의 경제적 사회


■ 로마의 몰락 : 로마가 몰락하자 제국이 제공하던 안전과 안보가 사라지고 각 지역이 폐쇄적인 단위로 쪼개져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먼 거리로 여러 상품을 운반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 되고, 활기찼던 대도시의 생활도 유지될 수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급자족을 통해 목숨을 부지하는 수세적 형태의 경제 조직에 의존하게 된다. 이에 새로운 요구가 생겨나니, 이는 존속 가능한 사회 조직의 형태를 가능한 최소의 규모로 압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생활의 고립성과 극단적인 자력갱생이 중세의 경제를 특징짓는 성격이 되었고, 이를 우리는 봉건제라 부른다. 
■ 장원의 사회 조직 : 봉건제와 함께 경제 조직의 기본 단위로 새로이 등장한 것이 장원이다. 장원을 “소유” (땅의 주인뿐만 아니라 보호자, 재판관, 보안관, 행정관 등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자는 봉건 영주였다. 장원에 귀속된 농노들은 이주할 수 없었고, 그 신분에 따라 일련의 의무를 부과받았다. 이것이 장원이라는 경제 조직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 안전의 제공 : 농노가 영주에게 노동과 자신이 일군 것의 많은 부분을 바치면, 영주는 그 대가로 농노가 스스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제공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일정하게 인신의 안전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 장원 생활의 경제학 : 첫째, 장원은 그 이전의 다른 사회들처럼 전통 방식으로 조직된 경제 사회의 한 형태였다. 둘째, 장원 경제는 화폐 거래가 없었다.
■ 도시와 정기시 : 도시는 장원의 여러 법률과 관습이 적용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중세적 부역의 의무에서 자유를 얻어냈고 봉건제의 법적 의무로부터도 자유를 얻어냈다. 정기시는 일종의 유랑 시장으로 전 유럽의 상인들이 여기에 모여 국제적인 교환을 행한 곳이었다. 
■ 길드 : 길드는 중세기의 사업 단위였으며, 노동자들의 조합이 아닌 장인(匠人)들의 조합이었다. 장인들은 독립적 제조업자로서 각자 스스로의 작업장을 가지고 함께 모여 길드 자치 정부를 세워서 이를 통해 길드 내부의 여러 문제들을 처리하는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이들이었다. 
■ 길드의 기능들 : 길드의 목적은 현대 기업과는 달리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일정하게 질서 잡힌 생활 방식을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독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를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길드였던 것이다.
■ 공정 가격 : 어떤 것을 그 가치대로 팔며 그 이상 받지 않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어떤 것을 그 공정 가격보다 비싸게 팔려고 사기를 치는 것은 이웃을 속여 손해를 보게 하는 짓이므로 큰 죄악이다.”
■ 이득은 부끄러운 것 : 고리대 즉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보고 교황은 죽음에 이르는 대죄라는 칙령까지 내린다. 고리대금업자를 사회의 추방자로 보았다.

3. 변화의 조건


■ 경제 활동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 시장 사회가 작동하려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득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윤, 변화, 사회적 이동성 등에 대한 의구심과 불편한 감정이 그런 태와 활동을 고무하고 찬양하는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 경제생활의 화폐화가 진행되어 완성되어야 한다 : 시장 경제란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판매와 구매의 교환 과정이 벌어진다는 것을 함축한다. 즉, 시장 사회가 존속하려면 사회에서 수행되는 거의 모든 일이 화폐로 보상되어야 한다.
■ 사회의 여러 경제 활동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 사라지고 자유롭게 작동하는 시장 “수요”의 압력이 들어서야 한다 : 모든 것을 아우르는 화폐 수요의 흐름이 사회를 추동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되어야 하며, 이는 모든 경제적 활동이 화폐 화함에 따라 생겨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3장] 시장 사회의 출현


1. 변화를 가져온 여러 세력들


■ 유랑 상인 : 나름의 무장을 한 채 불규칙한 주기로 중세의 제대로 닦이지도 않은 거친 길들을 총총 뛰어다니던 작은 무리들, 유랑 상인이다. 이들은 자유로운 모험가들이었으나, 사회적 신분이 낮아 귀족들의 눈에는 방자하고 일상의 질서를 교란하는 놈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신기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유랑 상인의 서비스에 의존했다. 그렇게 유랑 상인들은 고립된 공동체들을 찾아다니며 경제적 상호 의존의 망을 짜나갔다.
■ 도시화 : 유랑 상인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 도시와 촌락의 창출이었다. 이를 통해 중세적 생활이 천천히 도시화를 겪기 시작했다. 
■ 십자군 : 중세 최고의 종교적 모험이었던 십자군 전쟁이 교회가 그토록 반대하던 사회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역을 혐오하고 영리 활동에 아무 개념이 없던 유럽 봉건제 사회’와 ‘도시의 활력으로 가득 차 돈벌이에 몰두하던 비잔티움&베네치아에서 번성한 사회’가 접촉을 하게 된다. 
■ 국가 권력의 증대 : 조각조각 나뉘어 있던 유럽의 경제적 정치적 단위들이 조금씩 큰 덩어리로 합쳐진 것은 경제생활이 서서히 상업화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이다. 로마 제국이 붕괴함에 따라 경제생활도 붕괴되면서 강력한 경제 사회는 강력하고도 폭넓은 정치적 기초를 필요로 하게 된다. 막 피어나고 있던 도시의 시민들이 중앙의 왕권과 든든한 동맹군이 되어준다. 기초가 부실한 왕권을 위해 완국 건설에 필요한 현금을 제공해 주면서 중앙 집권화가 되어갔다. 법률과 통화가 통일되고, 상업과 산업이 발전했다.
■ 탐험 :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장려했다. 연결망도 없이 멀리 위험한 여정을 떠나기 어려워했던 모험가들이 국가/왕실이 장려해 주면서 성공적인 탐험을 했다. 이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 신대륙의 귀금속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유럽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식민지 건설과 신세계와의 교역을 통해 유럽은 상업 사회로 변할 추동력을 얻었다.
■ 종교적 분위기의 변화 : 이익이나 고리대를 혐오하던 교회는 십일조와 성직록을 통해 유럽 전체에서 화폐를 거두어들이고 또 분배하는 가장 큰 존재가 된다. 당시 은행이나 안전한 현금 보관처가 없었는데, 봉건적 재산의 대부분이 보관되었던 곳이 교회이다.
■ 칼뱅주의 : 핵심은 예정설, 즉 신께서는 이미 태초부터 지옥으로 떨어질 자와 구원받을 자를 미리 정해놓으셨고, 그 명단은 지산의 어떤 인간도 고칠 수 없는 불가침의 문자이다. 그래서 구원의 희박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직 흠결 없는 삶을 사는 수밖에 없다. 칼뱅주의자들은 청렴하고 엄격한 삶을 살라고 강조했고, 무엇보다 ‘근면한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 장원체제의 붕괴 : 물가가 오르고 화폐화된 생활 방식이 더욱더 확장되어 감에 따라 영주의 현금 지불 능력이 바닥이 났다. 그러면서 그들의 경제적 쇠퇴의 과정이 가속화되었고, 서서히 경제적 권력을 잃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16세기부터 몰락한 귀족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
■ 현금 경제의 발생 : 장원 체제는 현금 경제와 양립할 수 없었다. 귀족들은 올라가는 물가와 멈춰 있는 소득 사이에서 쪼들려가고, 현금이 몰려들게 되어 있는 상인 계급은 꾸준히 힘을 키워갔다. 

2. 인간 생활의 경제적 측면이 모습을 나타내다


■ 노동, 토지, 자본의 출현 : 과거와 달리 일정량의 인간 노력으로서 시장에서 제일 좋은 가격으로 구입하는 상품이 된 노동. 시장 가격이 붙은 재산이 되어 공장을 세우건 무엇을 하건 아무 용도로나 사용가능하게 된 토지. 그리고 재산은 더 이상 이런저런 재화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고 무한히 탄력적이면서 이자나 이윤을 벌어들이는 능력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자본이 되었다. 
■ 울타리 치기 : 13세기부터 현금 압박을 받아온 토지 귀족들이 자기들의 땅을 봉토가 아닌 현금 수입을 더 끌어낼 수 있는 원천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환금 작물 스스로가 먹고 쓰기 위해 기르는 작물이 아니라 애초부터 시장에 내다 팔아 높은 현금 수익을 올리기 위해 경작하는 작물.
을 더 많이 키우려고 그전에는 공유지로 여겨지던 땅에다가 울타리 치기를 시작했다. 자기의 이익을 쓰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울타리치기 과정은 봉건적 유대가 해체되고 시장 사회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다. 농민들을 알거지로 만들어 새로운 종류의 노동력이 창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 프롤레타리아의 출현 : 길드가 좀 더 영리적인 기업으로 조금씩 변화한 것과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 일부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 생산 요소들 : 임금으로 생활하는 자유 계약 노동자, 이윤을 낳는 토지, 투자를 불러들이는 유동적 형태의 자본과 같은 것들은 전혀 자연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이들은 시장 이전의 사회가 시장 사회로 거대한 전환을 이루면서 생겨났고,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생겨난 것들을 생산의 제요소라고 부른다.
■ 임노동과 자본주의 : 노동력을 임금이라는 명목의 돈으로 구입한 덕에 고용주는 자신이 소유한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들을 모두 가질 권리를 얻는다. 한마디로 고용주들과 임금 계약을 맺는 모든 이들은 자기들이 노동으로 창출하는 모든 생산물에 대한 청구권을 모두 포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 잉여가 지배 계급의 수중에 곧바로 들어가 사치를 위한 물품으로 사용되곤 했는데, 새로운 자본주의적 형태에서는 사회가 창출한 잉여가 고용주-자본가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 자본주의와 이윤 동기 : 자본주의 질서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 하나가 있다. 이는 자본주의가 온 사회에 일반화시킨 새로운 행위 형태 즉 소득을 극대화하려는 충동이다. 이를 위해 모든 이들이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이나 여타 자원을 팔고 또 재화를 구입하며 또 가장 좋은 조건을 놓고 흥정을 벌이는데, 사업적 용어로 이러한 충동을 이윤 동기라 부른다. 

3. 경제학의 발명


■ 교역의 철학 : 새로운 질서에는 사회가 어떻게 붕괴하지 않고 작동할 것인가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라는 철학이 필요했다. 국내로 보화를 가지고 들어오는 상인 활동을 찬양하는 논리를 펼치는 중상주의자들과 상인이 아닌 농업가들의 미덕을 높이 평가한 중농주의자라는 학파가 나타났다. 
■ 노동 분업 : 완벽한 자유의 체제를 갖춘 나라는 기본적으로 그 노동의 생산성을 꾸준히 증가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며,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사람이 일을 해도 그 생산량은 계속해서 증대되게 되어 있다. 이 생산성 증가의 배후에는 갈수록 정교해지는 노동 분업에 있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 애덤 스미스의 성장 모델 : 스미스는 우리에게 어떤 사회를 성장의 길로 몰아가는 추동력뿐 아니라 그 사회가 그 길을 계속 따라가게 만들어주는 자기 조정 메커니즘까지 제시했다. 추동력은 개선하려는 욕망, 이는 모든 제조업자들이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려 들 것이 함축되어 있다. 경제 성장에 이르는 길은 스미스가 축적이라고 불렀던 것, 좀 더 현대적 용어로 자본 투자의 과정에 있다. 
■ 자본주의 체제의 동학 : 분명히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임금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나면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진다. 따라서 노동의 가격은 올라가지 않는다. 
■ 시장 메커니즘 : 시장 사회의 중심 메커니즘은 경쟁이다.
■ 시장과 자원 배분 : 시장 메커니즘은 생산물 가격에만 경쟁이라는 보호 장치를 달아주지 않는다. 사회가 욕망하는 재화의 수량도 올바르게 조절해 준다. 
■ 자기 조정 체제 : ①개인의 자기 이익이라는 동기가 시장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데에 필요한 원동력 제공하는 과정 ②경쟁이 작동하여 누군가 시장에서 정한 것보다 높은 가격을 뜯어내려 하는 것을 막아내는 과정 ③사회의 욕망이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이 더 원하는 재화가 생산되고 원하지 않게 된 재화의 생산이 감소되는 과정, 이것은 시장 체제가 자기 조정 과정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려준다.

[4장] 산업 혁명


1. 거대한 전환점


■ 기술 변화의 속도 : 산업 생산이 사회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토록 늦어진 이유는 그 시대에 산업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 지속적인 이해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특히 화폐화가 진척되지 않은 정태적 환경에서 대규모 산업 생산이라는 생각 자체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산업화의 속도는 아주 느렸다. 
■ 1750년대의 영국 : 산업 혁명은 왜 유럽 대륙이 아닌 영국에서 벌어졌을까? 첫째, 영국이 더 부유했다. 둘째, 영국은 봉건 사회가 가장 철저하고 가장 성공적으로 상업 사회로 전환한 곳이었다. 셋째, 영국은 유독 과학과 공학에 대해 열광했던 나라이다. 
■ 신인류의 발흥 : 소규모 철 생산자의 아들이었던 존 윌킨슨이 쇠 풀무를 만들어냈고, 이를 이용해 제임스 와트가 매튜 볼튼과 함께 최초의 증기 기관 제조업체를 세웠다. 증기 엔진이야말로 산업 혁명 최고 최대의 발명품이나 산업 혁명이 거기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섬유 산업과 관련된 발명으로 아크라이트의 제니 방적기도 있다. 
■ 산업의 혁신 기업가들 : 신인류에 해당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들이면서 완전히 새롭게 나타난 계급이었다. 이 위대한 개척자들은 그 누구도 귀족 출신이 아니다. 아무도 화폐 자본을 소유하지 않았다. 즉 사회가 이름 없는 모험가들이 올라서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 만큼 사회 체제가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 졸부들 : 신인류의 다수가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팽창, 성장에 관심을 두었고 그래서 투자를 위한 투자를 목적으로 삼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혁신 기업 조직가들이었던 신인류는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고, 이 에너지는 결코 다하는 법도 없었고 또 잠시를 가만히 있는 법도 없었다. 
■ 산업과 사회에 미친 여러 충격 : 새로운 산업 부문의 생산 속도를 어마어마하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속도 증가는 산업 혁명이라 할 만한 것을 거친 나라 어디에서나 반복되었다.
■ 공장의 발흥 : 산업혁명은 본래 상업적 농업적 사회였던 영국이 이제 그 경제생활을 조직하는 지배적 양식인 산업적 제조업인 사회로 변형되는 과정이다. 이는 경제생활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체의 중심으로 공장이 떠오르는 과정이라 특징지을 수 있다. 
■ 노동 조건 : 공장의 출현도 혐오스럽지만 내부의 생활 조건은 더 혐오스럽다. 아동 노동이 일상화되었고, 노동시간은 동트기 시작할 때부터 완전히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였다. 노동자 학대가 밥 먹듯 벌어졌다. 
■ 초기 자본주의와 사회 정의 : 이 시대가 어마어마한 사회적 고통을 짊어지고 있으나, 산업 자본주의의 탄생기를 회고할 적에 명심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①산업 혁명의 빈곤상이 대중의 삶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②초기 산업 자본주의에 대한 당대의 가혹한 비판은 경제학보다는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서 도출된 것이었다. ③산업 혁명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장기적으로 경제적 안녕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니, 이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지속되고 있다. 

2. 이론적 관점으로 본 산업 혁명


■ 자본과 생산성 : 어떤 사람이 경제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수행할 힘을 증강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자본을 구성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자본을 이야기할 때 보통 그 의미를 자본재로 제한한다. 생산 과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회가 생산한 도구, 장비, 기계, 건물의 축적. 이런 자본재들은 그 모습은 다양해도 생산 과정에서 공통의 효과를 낳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 노동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 자본재는 인간에게 글자 그대로 초인적 차원의 기계적이고 물리 화학적인 능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 자본과 전문화 : 자본은 인간 노동의 전문화를 촉진한다. 인간들이 각자 자기가 전문인 작업 하나만을 돌보게 되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똑같은 수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다.
■ 자본과 저축 : 우리는 자본이라는 물질적 인공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저축이라 부르는 행위가 반드시 그 이전에 있어야 한다. 저축은 금융적 용어로, 우리의 화폐 소득 중 지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뜻한다. 
■ 저축과 투자 : 저축과 투자 활동은 불가분으로 연결된다. 저축이란 소비 활동에서 일정한 자원을 해방시키는 것이며, 투자란 이 자원을 사용하여 자본재를 만드는 활동이다. 이 둘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동전의 양면이다. 성장의 속도가 높든 낮든, 어떤 사회의 투장의 양은 그 사회가 다른 목적을 위해 쓰고 있지 않은 자원과 인간 노력의 양을 결코 넘을 수 없다.
■ 초기 자본주의의 성장 : 가난한 경제에서 경제 성장 과정은 필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특히 빈곤으로 인해 최초의 저축 수준이 낮다면 성장률도 따라서 낮아진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저축이 발생했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소비하지 못했던 자원이 미래를 위한 산업적 기초가 되면서 발생했다. 
■ 자본 형성 메커니즘으로서의 시장 : 제조업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자본재를 생산했다. 

[5장] 산업 기술이 가져온 충격


1. 발명이 가져온 충격의 어떤 사례


■ 미국이 자동차 왕국이 되다 : 1905년이 되면 자동차 공장이 121개가 되었고 1만 명의 임노동자들을 고용했다. 1923년에는 자동차 공장이 2,471개로 늘어나 미국에서 가장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1960년에는 자동차 산업의 피고용자들에게 지급된 봉금과 임금을 합치면 1890년의 미국 전체 국민 소득과 같게 된다. 

2. 기술이 사회 전반에 가하는 충격


■ 도시화 : 기술이 사회 전반에 가져온 첫 번째 충격은 도시화가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기술은 농업이 비농업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증대시켰다. 
■ 상호 의존 : 두 번째 충격은 산업 기술이 꾸준히 성장함에 따라 보통 시민들의 경제적 자립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노동의 성격이 전문화되면서 모든 업무를 혼자서 다 감당할 줄 알았던 19세기 사람들과 달리 보통의 공장 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는 사회 전체 작동의 오직 작은 한 부분만을 수행하도록 훈련받고 고용되어 있었다. 그 사회적 작동은 오늘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복잡해져 버렸고, 기술은 현대 공동체 내부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 사회학적 결과들 : 세 번째 충격은 산업 기술의 팽창은 노동의 성격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인간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노동이란 혼자 혹은 작은 집단을 이루어 들판에 나가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육체 활동이었다. 이를 산업 혁명은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노동은 점점 더 반복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지고, 자연의 변덕에 대처하기 위해 온갖 재주와 판단력을 발휘하기는커녕, 그저 항상 똑같은 노동 과정의 일개 작업만 수행할 줄 알면 충분한 것이 되었다.

3. 대량 생산


■ 대규모 생산의 경제성 : 생산 규모의 증가 덕분에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다량 생산에 필요한 기계류는 비싸지만, 생산량이 워낙 빠르게 증가하기에 생산물 1 단위당 비용이 실로 극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4. 산업 변화를 추동한 행위자들
■ 대 혁신 기업가들 : 18세기말 영국 산업화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신인류라는 종족이 나타나 영향을 준 것처럼, 산업 크기의 확장 과정에서도 또한 모종의 사회적 유형과 특이한 영리 활동의 환경이 조성되면서 가속도와 추동력이 붙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혁신 기업가들은 아크라이트나 와트와 마찬가지로 출신은 미천하나 사업의 성공을 거두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투지를 보였다. 철강 산업의 카네기, 철도의 해리먼, 석유의 록펠러, 코크스의 프릭, 식육 가공업의 아머와 스위프트, 농기계류의 맥코믹 등이 있다.
■ 업계의 지배자 : 거의 모든 사업 부문에서 자신들의 개성과 능력을 통해 지배하는 업계의 우두머리가 나타났다. 이 19세기의 선도적 기업가들은 한 세기 전의 영리 사업가들과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 그들은 지도력의 원천이 발명이나 공학적 기술이 아닌 전체 사업의 세부 계획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능숙한 기술을 가진 이들이었다.
■ 도처에 나타난 트러스트 : 거의 모든 사업 부문에서 경제 권력을 이용하여 독점적 위치를 창출하는 일이 일어났다. 

5. 시장 구조의 변화


 대담한 혁신 기업가들의 충동적 행동과 스스로를 확장시켜 가는 대량 생산의 경향성이 합쳐지면서, 시장 구조 자체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래 시장 생산 체제의 특징은 무수한 소규모 기업들이 우글거리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아주 소수의 아주 크고 강력한 기업 단위들이 생산을 집중시킨 생산 체제로 변질되어 버렸다.

6. 대규모 독점 자본의 발흥


■ 경쟁의 변화 : 대규모 독점 자본주의로의 경향으로 인해 시장 구조의 경쟁의 정도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확장되고 격렬해졌다. 전국적 규모의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꿈을 꿀 만한 수단도 동기도 없었던 과거와 달리 생산력이 증대되어 경쟁이 사방으로 확장되었고 그 비용도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된다. 기업들은 모두 엄청나게 불어난 고정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갈수록 덩치를 불려 가면서 황소들이 뿔을 섞듯 그 엄청난 덩치로 서로 맞붙어 싸워야 했다. 
■ 경쟁의 제한 : 시간이 흘러 거인들은 경쟁을 피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영국과 미국의 법 전통인 보통법의 지배 아래에서 경쟁자가 가격이나 생산 계획을 고정시키도록 구속하는 계약은 모조리 무효이다. 따라서 경쟁자들 자신이 스스로 협력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었다.
■ 트러스트, 합병, 기업 성장 : 1880년대 동안 효과적인 통제 장치가 나타났다. 자기 소유의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는 대신 그 주식 지분에 해당하는 것과 동일한 만큼의 이윤을 배당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트러스트. 주식회사들이 다른 주식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등장한 기업 합병이 있다.
■ 독점 자본주의의 위협 : 사상 최초로 기업의 크기가 각 단위의 정부의 크기에 맞먹을 정도에 달하기 시작했다. 
■ 반트러스트 입법의 발흥 : 미국 대법원에서 주식회사들은 법적 인격체이므로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마땅한 법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함부로 그 재산을 빼앗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자, 트러스트들에 대한 주 단위에서의 규제는 거의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그래서 연방 정부가 나서는 방법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나온 것이 셔먼 반트러스트 법 교역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모든 계약, 합동,  공모는 불법이다. 이를 위반하는 자들은 무거운 벌금과 동시에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었고, 부당한 가격 조작 때문에 경제적 피해를 입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이들은 세 배의 배상액을 얻을 수 있도록 되었다.


[6장] 대공황


1. 경제 성장의 경로


■ 1929년의 미국 : 이 시대의 미국은 인구가 늘어났고, 그 가운데 급격한 도시화를 했다. 실업이 줄었고, 미국은 낙관적 분위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 주식 시장의 붐 : 당시 미국인들은 거의 누구도 엄청난 경제적 재난이 시작될 것이라는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와중에 거대한 주식 시장 붐이 일어났다. 어찌나 대단한지 1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시장에 끌어들여 아무 고통이나 노력 없이도 돈이 저절로 불어나는 즐거움을 그들에게 선사했다.
■ 대폭락 : 2년에 걸쳐 천정부지로 끌어올려졌던 주가가 단 몇 주 만에 무서운 기세로 폭락했다. 1929년 10월 29일, 주식 매도의 산사태가 벌어지면서 뉴욕 증시는 마비되었다. 명성 높은 투자 신탁인 골드만삭스조차도 이 하루 동안에 그 주가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 대폭락은 훨씬 더 무시무시한 공황을 불러들인다.
■ 대공황 : 국내 총생산이 1929년에서 1933년까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어버렸다. 실업률은 하늘로 치솟았다. 특히 전국적으로 주택 건설은 90퍼센트나 하락하여 사실상 새로 지어지는 주택이 씨가 말라버렸다. 은행들도 문을 닫으면서 9백만 저축 계좌가 사라졌고, 도산한 업체의 수는 8만 5천에 달했다.
■ 대공황의 여러 원인들을 추측해 본다 : 사태를 재촉한 즉각적인 원인은 투기 열풍이었다. 대박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철학이 온 나라를 풍미하면서 정상적인 영리 활동과 은행업이 갖추어야 할 조심성이 망가졌다. 
■ 농업의 취약성 : 투기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금융적 상부 구조 때문에 경제가 심하게 취약했다. 그리고 1920년대에 걸쳐서 농업가들은 미국 경제에서 경제적 병자들이었다. 매년 자기 땅을 잃고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농업가의 숫자가 늘어났다.
■ 수요의 비탄력성 : 가격 변화에 비례해서 양이 변해주지 않는 수요를 비탄력적인 수요라 부른다. 수요가 이러한 성격을 띠는 생산물의 경우에는 공급량을 크게 늘리게 될 경우 판매자만 가난해지는 결과가 나온다. 
■ 제조업의 취약성 : 농업 부문뿐만 아니라 제조업이나 광업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생산은 꾸준히 늘고 있었으나 고용이 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급속한 기술적 진보가 나타난 산업에서는 모두 고용이 감소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 기술과 고용 : 기술 발전은 고용 창출에 항상 호의적이지 않다. 
■ 소득 분배의 악화 : 소득의 불균형 상태로 경제 체제 전체가 충격에 아주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생산에서 생겨난 것들 모두가 구매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손에 있지 않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아주 빠르게 지출되는 경향이 있기에 구매력으로 빨리 돌아오나, 이윤, 기업의 이자, 개인의 아주 높은 보수 따위는 구매력으로 빨리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소비 대신 저축으로 가기 십상이다. 

2. 자본 형성의 결정적 역할


■ 투자와 예상 이윤 : 소비재와 달리 자본재들은 내구성이 크기 때문에 그것을 새것으로 대체하는 일도 쉽게 나중으로 미룰 수가 있다. 또 자본재는 오로지 그것을 사용하여 일정한 이윤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다. 만약 이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명시한다면 예상과 기대가 자본 형성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투자 감소의 여러 효과 : 대공황으로 인해 1929년에서 1933년의 기간 동안 주택 건설, 제조업 설비와 장비, 상업용 빌딩, 재고 축적 등에서 물가 인상률을 감안했을 때 투자재 생산은 88퍼센트가 감소했다. 이 산업들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대단했고, 1933년경 전체 실업의 3분의 1은 이 산업들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었다.
■ 승수 효과 : 노동자 한 사람이 해고당하게 되면 그 노동자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기 가족의 지출을 악착같이 줄인다. 그렇게 되면 가족이 보통 소득을 지출했던 품목의 장사가 또 손해를 입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또 직업을 잃거나 임금을 삭감당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종의 눈덩이가 불어나는 효과, 즉 전문 용어로 승수 효과라고 부르는 것이 나타났다.

[7장] 공공 부문의 성장


1. 뉴딜


 “의회와 온 나라가 대통령이 쏟아놓는 무수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이런 일은 미국 역사에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유명한 뉴딜 1백 일이다. 이 기간 동안 절반은 계획으로 또 절반은 순전히 우연으로 정부와 민간 경제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패턴의 기초가 마련되고, 이 패턴은 미국 자본주의의 조직에서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변화란 경제 내에서 공공 부문이 주요 세력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시장에 대한 개입 : 정부가 시장을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명쾌한 답은 없으나, 정부의 권력을 조심스럽게 활용하여 시장을 더욱 잘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타나면서 자본주의의 철학적 진화에 새 장이 열렸다.
■ 여러 형태의 새로운 정부 개입 : 트러스트 독점체들을 때려잡는 활동이 정부 개입의 한 형태로 인정되었으며, 그 명분은 시장이 더욱 잘 작동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 민주적 정치체 내부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경제적 활동과 비경제적 가치들 사이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정부밖에 없다.
■ 은행업 문제의 역사적 배경 하나 : 정부는 항상 자국 영토 내에서 특권을 가졌고, 화폐를 창조할 권한을 가졌다. 하지만 초기부터 이러한 화폐 권력의 독점을 침해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부유한 상인 은행가들이다. 그들은 자기들 돈을 대출해 주고, 없는 돈까지 만들어 대출해 주었다. 그들은 약속 어음을 발행했고, 이것은 황금과 동일한 효력이 있었다.

2. 중앙은행의 발흥


 민간 은행업의 성장은 자연스레 정부가 자국 영토 내의 통화량을 결정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을 침식하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중앙은행이 설립되었고, 모든 민간 은행들이 여기에 그 지급준비금을 예치하도록 함으로써 정부는 자신의 주권을 점차 회복해 나갔다.

3. 통화 정책


■ 뉴딜의 새로운 정책 : 통화 정책의 중심 목표는 경제 자체의 성장 회복을 돕는 것이다. 
■ 공공 지출이라는 새로운 힘 : 공공 지출의 증가는 뉴딜이 가져온 변화 중에 가장 크게 중요한 변화였다. 이전에 전국 단위의 공공 지출은 양도 적고 본질적으로 수동적 역할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양도 늘어났을 뿐 아니라 종종 민간 투자 지출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전략적 성격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 정부 지출은 공황을 해결하겠다고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바로 그것 때문에 재계가 겁을 먹고 마비 상태에 빠져버렸고, 이것이 오히려 공황을 더 연장시키는 꼴이 되었다. 
■ 투자 부족을 보충해 주는 정부 지출 : 정부는 스스로의 지출 능력을 경제의 완전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했다. 
■ 정부 개입에 대한 공포 : 정부 지출이란 본질적으로 낭비이며 국가 부채가 쌓여간다는 것은 우리가 파산에 이를 지경으로 낭비를 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 전쟁의 충격 :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지출이 엄청난 양으로 팽창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정부나 경제 일반에 대해서 태도의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인들은 정부가 이제 강력한 공공 부문이라는 것을 익숙히 여기게 되었고, 또 그 기간 동안 역사를 다시 쓸 만큼 놀라운 생산을 달성했다. 
■ 뉴딜의 세 R(구호, 회복, 개혁) : ①경기 하락으로 삶이 파괴된 이들에게 즉각 구호를 제공한다. ②1935년에 생겨난 실업보험은 급격히 소득이 줄어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소득 보전을 해주었다. ③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개혁하고, 노약자 및 병자들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업과 가계의 기대를 바꾼다.
■ 전쟁의 귀결 : 1945년 전쟁 종결 후, 아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경기 호황이 찾아왔다. 

4. 재정 정책의 등장


 재정 정책 즉 정부 지출과 조세 감면을 통해 전체 경제를 앞으로 밀고 나가든가 조세를 증가시켜 뒤로 후퇴시키는 등으로 경제를 통제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재정 정책은 통화 정책과 함께 모든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스스로를 멀리하는 수난을 이룬다.

5. 공공 부문을 보는 시선


 공공시설은 정부의 의무일 뿐 재정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적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경제 성장을 유지하거나 가속화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미스와 케인지의 저서 그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 하지만 재정 정책은 세계 경제에서 나타나는 새롭고도 당혹스러운 문제들의 발생 속에서 계속 중대한 수단의 역할을 맡을 것이고, 우리는 의존하게 될 것이다.

6. 지출의 흐름과 거시경제학의 탄생


 모든 구매자들의 지출, 즉 사회자체를 추동하는 지출 흐름의 거대한 물줄기가 관심을 받는다. 총지출이란 항상 모든 시장 시스템의 추동력이 되는 것이다. // 지출은 민간 지출과 기업이 행한 지출로 구성된다. 그중 민간 지출은 소비 지출과 투자 지출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뉜다. // 정부의 지출이 전체 지출을 증가시킴으로써 한 나라 경제의 장래를 극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민간 지출과 정부 지출 모두 우리의 경제에서 핵심적인 개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지출의 개념은 경제학자들이 거시경제학이라 부르는 것의 기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8장] 유럽에 현대 자본주의가 출현하다


1. 봉건제
■ 국가 간 경쟁 :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진화가 차이를 보이게 된 데에는 계급의식의 유무뿐만 아니라 정치적 통일로 엄청난 크기의 시장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미국과 달리 국가 간 경계선으로 인해 산업 성장 또한 비좁은 공간 속에서 계속되는 국가 간 경쟁의 분위기에 젖어 자라나야 했던 유럽의 상황 때문이었다. 
■ 생산성의 지체 : 20세기 초가 되었을 때, 유럽의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아주 심각하게 뒤쳐졌다. 이러한 차이는 부분적으로는 지질학적 차이도 있으나 수많은 제약으로 영업을 제한하는 여러 관행들 때문이었다. 그 결과 20세기 내내 유럽의 생산성을 꾸준히 떨어졌다.
■ 유럽 무역의 결정적 역할 : 유럽 자본주의 발전은 국제 무역의 확장에 의존했다. 유럽 대륙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기에 국제 무역이 대외 경제생활에서 지속적이고도 중차대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 미국은 시장이 여러 나라의 국내 시장으로 파편화되지 않아 큰 규모의 경제를 노릴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신속하게 생산력을 높여갔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2. 국제 무역의 붕괴
 앞날이 창창했던 국제 무역은 왜 끝났을까? 가장 먼저 1차 대전의 충격을 들 수 있다. 전쟁으로 유럽 대륙을 잇던 무수한 무역로가 갈가리 찢겼다. 또 패전국들에 대한 처벌의 차원에서 엄청난 배상금 청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전쟁 기간에 각국 정부가 걸머졌던 부채들의 문제, 통화 가치의 혼란 등이 벌어지며 전쟁 자체에 버금가는 파괴적인 충격이 나타났다.
 여기에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이 온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한 나라씩 한 나라씩 스스로를 격리시키려 들었고, 다른 나라와 경제적으로 접촉하는 일을 막기 위해 더 높은 장벽들을 쌓아 올렸다.
■ 유럽 사회주의 : 유럽에서 사회주의 성향을 띤 정부가 정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사회주의 사상은 대부분의 유럽에서 상승세를 보였다. 이때, 많은 이들은 이제 유럽의 자본주의가 끝장이 났다고 보았다.

3. 유럽 자본주의의 회생
■ 복지 자본주의 : 유럽의 자본주의는 끝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이 끝나자 전례 없는 경제 성장기로 힘차게 들어섰다. 1인당 경제성장률이 올랐고, 미국 경제의 실적을 크게 따돌리거나 앞질렀다. // 이러한 변화가 생긴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변화였다. 사회주의 정부들이 혁명이 아닌 개혁을 목표로 하는 정권임을 보여주며, 정권을 잡게 되자 사회 보장 제도 등을 개선하며 복지 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유럽 시장의 국가별 분리를 극복하려는 운동이 보수층 내부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에 유럽경제공동체, 혹은 공동시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했다.
■ 공동시장 : 미국은 전쟁으로 박살이 나버린 유럽의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보조금과 대부를 유럽에 주었는데, 이것이 마샬 플랜이다. 마샬 플랜은 전후 유럽의 생산이 살아나는 데에 결정적 원동력을 제공했고, 공동시장은 여기에서 탄생했다. 전쟁 전의 침체기로 유럽이 되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몇몇 용감한 국가 지도자들이 유럽의 전통적 경 제거 장벽을 허물자고 하는 진정 대담한 계획을 내놓았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4. 코포라티즘
 공공과 민간 부문 사이, 그리고 노동과 경영 사이에 좀 더 협조적 관계를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 이러한 관계의 발전은 1980년대부터 코포라티즘이라 불렸다. 이것은 세 가지의 제도적 변화를 특징으로 삼는다. ①노동과 경영 사이의 사회 계약 형태를 띤다. ②노동자들을 경제적 불안에서 보호하는 여러 규제들을 채택했다. ③전 세계의 생산에서 그 나라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동의를 창출한다.

5. 유럽, 침체를 맞다
 마샬 플랜의 도움을 얻어 유럽 경제는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가 되면 의심의 여지없는 강력하고도 제대로 작동하는 실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것은 1980년대까지였다. 그때부터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다. 이 둔화가 코포라티즘이 더욱 발전하는 데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유럽의 실업률이 두 배로 뛰어오르고, 코포라티즘을 지지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도 각박해졌다.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우호적 관계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9장] 자본주의의 황금시대


1. 전후 세계에 열린 가능성
 2차 대전은 1천만 명 이상의 죽음을 가져왔다. 유럽의 지리가 바뀌어버렸고 세계 정치는 새롭게 규정되었다. 유럽과 일본의 기간 시설과 산업 생산 설비는 초토화되었다. 대조적으로 미국 경제의 생산 능력은 크게 확장되었다. 
 전쟁이 끝나게 되자 전쟁 기간 동안 제조업을 크게 진작시켰던 자극도 함께 사라졌다.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도 있었다. 하지만 1945년에서 1973년의 기간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한 시기,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 알려져 있다.

■ 국제적 세력 관계 : 미국은 전쟁 이후 국제 경제 관계의 틀을 결정할 전후 세계의 제도들을 고안하는 데에 주도권을 행사했다. 1944년에 열린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황금시대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세 가지 제도를 탄생시켰다. ①국제통화기금(IMF) ②국제은행 ③국제 통화 체제를 규제하는 일련의 규칙이다. 그리고 국제적 협조를 더욱 심화시킨 두 가지 제도가 더 있다. ①1947년 23개국이 조인한 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 협정(GATT) ②마샬 플랜이다.
■ 지정학의 등장 : 전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국 사이의 소위 냉전이었다. 냉전은 2차 대전 이후의 지구적 경제를 규정하는 데에 결정적 중요성을 띠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 모두가 경제 정책을 만들어낼 적에 서로와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들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한편, 미국에서는 : 미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려면 국내의 수요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자 정부 지출은 확실하게 줄어들어 보였다. 민간 투자는 전쟁을 하는 4년 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 또 대규모 생산 라인이 모조리 비행기 생산으로 전환했기에 자동차도 생산되지 못했고, 전쟁 기간 동안 필수 물자라는 이유에서 가솔린뿐만 아니라 식료품까지 배급에 묶여버렸다. 군복 생산 대문에 보통의 의류 생산은 뒷전이었고, 신규 주택 건설 또한 정체 상태였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자 승리와 평화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굶주려왔더니 소비자 물품에 대한 욕구를 맘껏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2.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들
■ 기술이 도움을 내려주다 : 전쟁 기간 동안 새로운 생산기술들이 발전하였고, 여기에는 생산 과정의 자동화도 있었다.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많은 분야에서 성장의 자극제가 나타났다. 
■ 자본-노동 협약 :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가져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임금 상승을 포기하겠다고 동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 결정적 역할은 생산성 향상에 적극 협력한다는 협정이었다. 생산성이 상승함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보상도 올라가게 되었고, 그래서 이러한 노동과 자본의 협정은 호황을 오래오래 지속되게 만들었다.
■ 정부가 제자리를 찾다 : 전후 경제를 지도하는 데에서 정부가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전쟁 기간 동안 총생산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몫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 미국은 군사적 지배력을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특히 소련 공산주의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 // 정부의 확장된 생산 능력을 민간 경제의 여러 목적에 맞도록 전용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3. 세계의 번영과 수렴 현상
 자본주의 황금시대에 벌어진 정부 역할의 증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발견된다. 나라마다 정책은 다양했다. 과거의 경험, 현재의 정치적 통합과 비전,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국민적 문화 특질이 반영된 결과로써. 

■ 황금시대가 종말을 고하다 : 전후 기간은 간혹 세계사의 유례없는 기간이라고 묘사된다. 주요한 기술 변화, 급속한 경제 성장, 나라 국내에서 여성 및 소수자들의 민권 상승 등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몇 가지 단독 성공 사례를 제외하고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인플레이션의 등장 : 황금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이정표로 하나의 현상을 집어낸다면, 오래도록 지속되어 결국 미국 경제에 기겁할 만한 현실을 가져온 인플레이션이다. 이것은 1965년 미국의 전면적인 베트남 전쟁 때문에 시작되었다. 전쟁 비용의 팽창이 가격 수준을 상승시킨 원인 중 하나이다.
■ 오일 쇼크 : 석유가 악당 역할을 맡았다. 황금시대 동안 미국이 세계 석유 생산을 지배했었다. 그래서 미국의 소비자들은 유럽 소비자들처럼 석유를 아껴 쓰지 않았다. 황금시대 기간 동안 자동차의 보급 대수 또한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의 석유 생산으로 미국 국내 소비조차 충당할 수 없게 되면서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라고 불리는 중동 중심의 석유 카르텔이 나타날 무대가 조성된다. 오펙이 이스라엘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 선진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자 오펙은 이에 맞서 해외로의 석유 선적에 항해 금지령을 내려 석유 공급량을 삭감해 버리고 석유 가격이 상승해 버렸다. 이것이 1차 오일 쇼크이다. 하지만 1979년 커져가는 물가 상승률로 인해 오펙 카르텔 전체 수익의 실질 가치가 줄어들자 오펙은 다시 한번 생산을 감축하는데, 이것이 2차 오일 쇼크이다. 
■ 스태그플레이션과 정책 딜레마 : 강력한 인플레이션과 미약한 투자가 결합되어 나타나자 경제적 환경이 아주 취약해졌다. 실업률이 낮아서 임금 상승이 벌어지고 이것이 다시 여러 비용을 상승시켜 그 결과 물가가 오르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려고 케인즈 경제학이 주목받는다. 하지만 케인스주의적 합의는 곧 깨지기 시작한다. 가격 인플레이션과 성장 및 고용의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버렸다.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4. 성장률의 감소가 불평등 증가로 이어지다
 황금시대는 미국인들의 소득 총액은 꾸준하고도 만족스럽게 증가한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또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격차가 느릿하게나마 꾸준히 줄어들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20여 년의 기간 동안 이러한 바람직한 경향이 뚝 끊겨버리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뒤집혀버렸다.

[10장] 사회주의의 발흥과 몰락


1. 사회주의 對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신통치 않은 실적을 보여주었던 지난 20년의 기간은 또 자본주의의 역사적 대립물이었던 공산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두 체제는 20세기 초반 이래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경제 체제를 통치하는 원리 역할을 해왔다. // 세계 대전은 해외에서는 자본주의적인 식민 제국들의 해체를 그리고 국내에서는 사회주의적 복지 정책을 가져오게 되었다. // 자본주의가 운이 다한 반면, 사회주의는 그 운수가 형통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 당시의 실정이다.

2. 역사적 전환에 대한 설명
 ① 자본주의는 변화하였다. 선진 자본주의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변화하였고 특히 퇴직 연금, 실업 수당, 건강 보험 등 사회적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정책들이 크게 증가했다.  ② 사회주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경제적 정치적 난점들을 드러냈다. 첫째는 이 중앙 계획 경제 체제가 후진 경제 혹은 파멸에 처한 경제를 늪에서 끌어낼 능력이 있다는 점, 둘째는 자본주의의 비효율성과 낭비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이 사회주의 체제에 도박을 걸게 만들었으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3. 소비에트 체제
 러시아의 체제가 자본주의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진화해 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체제는 1917년 혁명 이후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 소비에트 정부의 기본 목적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국가 소유로 대체하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를 진행시킬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를 달성할 것인가였다.

■ 시장 대 계획 : 시장 경제에서 혁신 기업가들은 수요가 생겨날 것을 예측하거나 혹은 이미 생겨난 수요에 반응하여, 미래에 이런저런 생산 설비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사적 자금을 지출하는 위험을 무릅쓰며 그 설비를 세운다. // 수요와 공급 각자의 포격이 빗발치고 교차하는 가운데에 성장을 위한 전체 경제의 노력을 통합해 내는 예민한 사회적 도구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시장 경제이다. 그런데 시장이 없다면, 이 메커니즘을 중앙의 통제 및 계획 기관의 직접 명령이 떠맡아야 한다.
■ 중앙 계획의 비효율성 : 여러 계획들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과제이다. 가장 세련된 중앙 계획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 과정은 느리고 둔하고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시적인 부족 상태, 정지 상태, 주어진 계획량 초과 달성 등의 문제를 낳는다.

4. 자본주의로의 이행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나타나는 어려움이 있다.
■ 시장을 도입하는 것과 그것이 가져올 변화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 자본주의를 통해 회춘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시장 사회가 가져올 여러 개선을 강조한다. 시장 사회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실업, 인플레이션 등은 말하지 않는다.
■ 골치 아픈 제도적 법적 문제들이 한 묶음 존재한다. 

5. 사회주의의 미래
 한때 중앙 계획으로 작동하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이며 조만간 자본주의를 밀어 치우고 그 자리에 들어설 것으로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중앙 계획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난 지금, 과연 사회주의라는 것에 무언가 남아 있을까?
 강력한 중앙 계획을 중심으로 해서 세워진 사회주의 사회는 최소한 발전된 산업국에 관한 한 경제 사회의 형태로서는 전망이 아주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후진적 농업 사회를 근대적 산업 사회로 바꾸려 노력하는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중앙 계획이 성공적일 수가 있다.

6. 유토피아적 이상으로서의 공산주의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를 기점으로 수십 년간 이어졌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분열은 종식되었다. 이 소비에트 통치가 종말을 맞으면서 개인들이 여러 자유를 얻게 된 것을 축하하나, 공산주의라는 생각에 체현되어 있었던 유토피아적 차원까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론상으로 보면 공산주의는 평등, 공정함, 협동에 기초한 체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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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

 

1. 모습을 바꾸는 세계 경제
 오늘날 경제학에 새로이 등장한 단어가 있다. ‘지구화’ 이것은 세계 전체가 새롭고도 아주 중요한 경제적 시각에서 조명받게 되는데, 인도, 브라질, 중국, 동아시아 일반 등의 지역이 전면적으로 세계 경제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또 몇몇 지역은 경기 침체와 빈곤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 황금시대가 저물고, 1944년의 브레튼우즈 협정의 폐기가 결정되었다. 달러와 금 사이의 고정된 교환 비율이 사라졌다. 초기 미국의 금 ‘창구’에서 거래가 벌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달러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또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의 수입이 수출을 초과했고 이 수입초과로 인해 뿌려댄 달러가 세계 시장에서 넘쳐나게 되었다. 게다가 미국이 베트남 전쟁까지 뛰어들면서 외국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미국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서 문제를 악화시켰다. 결국 만성적인 달러 부족이 이제 달러 과잉으로 역전되었다. 이 달러 과잉으로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나타난 직접적인 위험은 미국이 축적해 둔 금이 모조리 빠져나갈 위험이 생겼다는 점이었고, 미국 닉슨 대통령은 1973년 8월, 공식적으로 금 창구를 닫아버렸다.
■ 변동 환율제의 시대 : 금 창구가 닫히면서 국제적 통화 협력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오늘날까지 전혀 소생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게 고정 환율제가 사라지자 변동 환율제가 등장했다. 즉 모든 나라 통화의 교환 비율이 그 통화들에 대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체제이다. 이것의 의미는 어떤 강력한 정부라 할지라도 자국 통화의 가치를 보장할 능력이 없는 새로운 경제적 공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2. 생산과 금융의 지구화
■ 자본이 전 지구를 돌아다니다 : 경제적 지구화란 여러 나라의 시장들 사이에 상호 연결이 증가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 과정은 국제 무역과 해외 투자의 증가 그리고 특히 국제적 금융 흐름의 증가에 반영되어 있다. 이것들의 공통적 특징은 자본의 국제적 이동성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 갑절로 대약진 :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많은 나라들과 지역들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너도나도 들어오게 되었다. // 인도의 경우 1947년 독립 이후 전혀 볼 수 없었던 규모로 외국 무역과 투자에 개방하는데, 이 과정에서 16억이라는 숫자의 노동자들이 새로이 지구적 노동력에 추가되었다. 이것을 보고 리처드 프리먼은 “갑절로 대약진”이라고 불렀다.
■ 신흥 시장(브릭스(BRICS)의 발흥) : 많은 곳에서 지구적인 지각 변동이 벌어지면서 각국 내부에서나 또 국제적으로나 승자와 패자들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도 강력한 경제국가로 부상하는데,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이른바 BRICS)은 소득과 수출 경쟁력에 있어서 대단한 성장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세계 시장과 지구적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중요한 행위자들로 떠올랐다.
■ 지구화의 정도 : 1960년대 이후 특히 1980년대 이래로 세계 경제 활동에서 무역과 투자가 차지하는 몫이 계속 증가해 왔다. 1982년 이후 국내 총생산으로 측정한 전 세계 총생산의 증가율보다 세계 무역량의 증가율이 훨씬 더 높다. 하지만 이 수준은 오늘날과 비교하면 세계 대부분이 개방이 훨씬 덜 된 경제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 외주화 : 새로운 정보 기술들은 생산의 파편화 생산 과정을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을 다른 나라들에 찢어놓는 것
에 있어 괄목할만한 증가를 가져왔다. 회사들은 이제 생산을 갈수록 기업들의 네트워크로 조직하게 되었고, 그 네트워크가 국제적일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 초국적 기업들의 해외 투자 혹은 외국 기업들의 하청을 통해 생산의 파편화가 진행되었는데, 이와 연관되어 외주화의 발흥이 이어졌다. 

3. 국가 주권의 축소
 생산과 금융의 지구화로 상당한 경제 변화가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생겼다. 생산은 이제 세금이 높고 규제가 심한 지역에서 심하지 않은 지역으로 가볍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국가 주권이 불안정해졌다. 국제 시장이 국내 시장과 똑같이 중요해지게 되었고 기업들이 갈수록 국가 간 활동을 통합할 수 있게 되자, 기업의 국적이 점차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4. 지구적 경제의 균형이 무너지다
 지구화는 경제적 불균형을 낳았고 안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양의 무역 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 또한 속도는 느렸으나 적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1990년경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는 110억 달러 정도였고, 2007년이 되면 그 수치가 2,560억 달러로 불어난다. 중국 정부는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였고, 2010년이 되면 그 증권 보유액은 1조 달러 이상으로 늘어난다. 

5. 불균등 발전의 문제
 지구화 과정에 모든 나라가 포용된 것은 아니었다. 경제생활의 지구화가 진행된 지난 20년간 여러 나라의 내부에서 또 그 나라들 사이에서 불평등이 증가했다. 어떤 나라들은 아주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다른 나라들은 절망적인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심지어 글조차 못 읽는 군중들도 존재한다. 이것은 세계의 자원이 불균등하게 배분되었기에 벌어진 상황이다. 

6. 초기 산업화와 후기 산업화의 대비
 18세기의 나라들의 산업화 과정의 출발점은 섬유 산업이었다. 그리고 과거나 오늘날이나 모두 제조업 전반의 노동 및 경영 기법, 마케팅, 기계 건설의 발달은 모두 이 핵심 산업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이러한 기법과 기술이 일단 발전하게 되면 그 기법과 기술은 다른 산업들을 탄생시키는 데에 활용된다. 하지만 과거와 오늘날의 산업화 과정은 차이가 있다. 초기 산업화는 발명과 혁신으로 추동되었던 것에 반해, 후기 산업화 시대는 혁신보다는 모방으로 특징지어진다.
■ 아프리카는 경제 개발이 불가능한가? :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저발전의 악순환 속에 갇혀 있으나 아프리카를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프리카도 발전 전망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최소한의 기간 시설을 갖추고 거기에 기초하여 산업 발전에 착수하게 된다면, 이 과정에서 계속 민주적인 정치 변혁을 요구할 지속적인 동력이 생겨나게 될 터이며 따라서 성공적인 신규 산업 국가들의 경로와 비슷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7. 국제기구들의 역할
 국제적 차원의 통로들이 중요하다. 여러 국제기구가 일국 차원의 개발 노력과 긴밀히 결합하여 역할을 한다. 브레튼우즈 협정의 일부로서 생겨난 IMF와 세계은행은 경제 발전 과정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국제 제도가 되었다. 그 뒤 1944년, WTO(세계무역기구)라는 세 번째 국제기구가 대외 무역을 규제하기 위해 등장했다. 

8. 신자유주의 : 기회와 도전
 IMF, 세계은행, WTO가 장려하는 시장 친화적 경제 개발 접근법(신자유주의)은 여러 나라에게 엄청난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국내적으로는 심각한 부작용을 안고 있기도 했다. 실질 임금 인하, 금융 위기에 대한 나라 전체의 취약성 증대 등 말이다. 

[12장] 역사적 시각에서 본 “대침체”


1.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08-2009년의 대침체의 직접적인 원인은 주택 가격의 하락,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급증, 그리고 주택담보대출 및 주택 시장의 건전성이 유지되어야만 가치를 지탱할 수 있었던 모든 금융 상품들이 갑자기 대폭락을 겪었던 것 등이다. 주택 가격의 하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서였다. 이 때문에 주택 가격 거품이 터지자 줄줄이 연쇄반응을 낳았고, 이것을 기초로 삼아 나온 각종 유가증권들의 가치도 폭락하면서 세계 금융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2. 위기를 낳은 장기적 경향들 : 가계 부채와 금융화
■ 임금의 정체와 가계 부채 : 2000년대에는 가계의 소비 수요가 건실하게 경제 성장을 추동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기간 동안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결국 임금이 정체된 것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차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 주택 가격 거품 : 주택 시장에서의 가격이 오르자 주택 구매를 위한 차입이 증가했다. 시간이 흘러 여러 요인이 결합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의 양은 도저히 지속가능할 수 없는 크기로 불어났고, 그러다가 이자율이 오르자 거품이 터졌고, 집을 소유한 이들이 다달이 내야 할 돈도 그들의 능력 밖으로 불어났다.
■ 금융 탈규제와 “금융화” : 경제활동이 금융화된 원인은 각종 금융 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은행 및 금융 부문에 벌어진 탈규제에도 있다. 1999년에 벌어졌던 글라스-스티걸 법의 철폐가 중요한 계기 중 하나이다. 은행들의 주식 시장 투자 금지, 투기적 성격의 축소 등이 포함되어 있던 이 법이 철폐되자 은행들은 여타 금융 기관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3. 유럽에서의 위기
 미국에서의 금융 붕괴와 함께 대침체가 시작되었고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유럽 또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세계의 기축 통화를 쥐고 있는 데에다가 미국 국채 또한 항상 수요가 있게 마련인지라 경기 침체의 문제를 대부분 피해 갔으나 이런 특권이 없던 특히, 유럽은 피해 가지 못했다. 유럽은 유로 체제에 묶여 있었기에 고정 환율을 유지해야만 했고, 이 때문에 자국 통화 가치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자국 통화 가치로 매겨진 부책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 힘들었다.

4. 대침체 대 대공황
■ 왜 거품이 생겨났으며 왜 터졌는가 : 금융 위기가 벌어지는 원인은 금융 자산의 가치 평가에 대한 신뢰의 붕괴에 있다고 본다. 매번 금융 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엔 다르다” 생각하며 경제가 좋아졌고 투자자들이 똑똑해졌기에 붕괴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 호황기의 자신감이 금융 위기로 이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정책 대응(뉴딜 대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 : 1930년대의 중앙은행이 너무나 수동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오늘날의 연준은 대단히 공격적으로 정책을 펼쳤다. 위기의 사회적 손상을 일정한 크기로 제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은행 예금에 대한 보증이나 실업자들에 대한 수당 지급 등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렸다.

5. 자본주의가 기초부터 흔들리다
 2008~2009년의 대침체는 자본주의가 그 기초까지 흔들리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구조적 변화가 벌어졌다. 정부의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 널리 공유되었다.

[13장] 우리가 처한 문제들, 우리에게 놓여 있는 가능성들


1. 전통 원리로 작동하는 사회들
 우리의 먼 조상들에게 미래란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응시하는 숙명이 아니다. 미래가 어떤 모습일까. 미래는 과거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변화시키고 말고 할 것이 없다.

2. 명령으로 작동하는 사회
 전통 원리로 작동하던 사회들이 기원전 5000년과 4000년경 4대 강 유역에서 명령으로 작동하는 사회로 전환하였다. 정착 농경 및 최초의 금속 제련 기술이 나타나면서 그보다 옛날의 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 구조들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사회도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졌는가? 아니다. // 위대한 정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는 이들은 과거를 참조해야 한다. 왜냐면 인간 세상의 일들은 항상 예전 시대의 일들과 항상 비슷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3. 자본주의
 미래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태도는 근대의 경제 사회가 출현했을 때가 되어서야 변화했다. 자본주의 세상이 출현하면서 미래가 성장, 축적, 팽창, 변형 등과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관념 되기 시작했다.

4. 미래를 분석하다
 자본주의의 구조와 동학 특유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예언과 분석이다. 예언은 주로 결과에 관심을 두며, 분석은 그런 결과가 나오는 과정들에 관심을 둔다. // 경제적 예언을 할 때에는 분석이 더욱 무게를 가지게 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예언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두는 여러 경향들의 근저에 어떠한 경제적 힘들이 작동하는지를 가능한 한 명쾌하게 밝히는 것이다. 

5. 세 가지 주요 이슈
■ 실업과 늘지 않는 소득 : 미국은 지속적으로 실업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기업의 규모 축소로 인해 비교적 보수가 좋은 일자리도 사라졌고, 새롭게 나타난 일자리들도 별 숙련을 요하지 않는 저임금 노동이었다. 그 결과 평균 가구 소득은 1989년에서 1994년 사이에 2천 달러 이상 떨어졌다.
■ 불평등 : 부의 재분배가 계속해서 상위 10퍼센트 아니 1퍼센트의 가계를 향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 지구화 : 지구화라는 현상은 시장 사회의 형성이라고 보면, 지구화의 힘은 자본주의가 이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더 넓은 부분을 지배하는 경제 체제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6. 사회주의
■ 중국이 다른 길을 뚫다 : 오랜 세월 소비에트와 상당히 닮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중국은 정치적 중앙 집중화는 여전했지만, 여기에 국내 및 외국 민간 기업에 고도의 재량권을 부여한 자본주의와 비슷한 장려책이 결합된 형태가 나타났다. 이것은 소련과는 대단히 다른 정책들이었다.
■ 서구의 사회주의 : 서구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초점은 항상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였다. 총체적인 경제적 재구조화는 아니었다. 사회주의가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종식시킬 것을 옹호했지만, 결코 시장 자체에 반대한다든가 일정 규모 이하의 사적 소유에 반대한 적도 없다.

※. 참고문헌
로버트 하일브로너,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미지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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