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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EnerTravel 2023. 5.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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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소유냐 존재냐』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ㅕㅊ

 

 

작가 소개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Erich Seligmann Fromm, 유태인 독일계 미국인)

- 생몰연도 : 1900.3.23. ~1980.3.18.

- 사회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

- 연보

1918(19) :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법철학과 입학.

1919(20)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옮겨가 사회학 공부.

당시 교수는 알프레드 베버, 카를 야스퍼스, 하인리히 리케르트 등.

1922(23)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사회학전공으로 철학박사학위 수여받음.

졸업 후, 하이델베르크 에있던 프리다 라이히만의 정신분석 치료소에서 정신분석학 연구.

1930년(31)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본산인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 들어가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 정립을 마침.

1934(35) :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게 되자 유태인이었던 프롬은 제네바로 갔다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로 자리를 옮김.

컬럼비아 대학교 재직 동안 프롬은 카렌 호나이와 공동으로 자기 분석에 대해 연구.

1943(44) : 워싱턴 정신분석학교에서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정신과 의사로 재직

1946(47) : 윌리엄 앨런슨 화이트 연구소에서 심리학자, 정신분석학 연구

1950(51) :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과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1957(58) :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교수직 수임.(~1961)

1962(63) : 뉴욕대학교에서 교수직 수임.

1974(75) : 스위스 무랄토로 이주.

1980(81) : 자택에서 별세.

 

 

작가의 사상

 

프롬의 사상적 특징은,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 분석 이론을 사회 정세 전반에 적응한 것에 있다. 그의 대표작인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는 파시즘의 심리학적 기원을 밝혀, 민주주의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밝히고 있다. 프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장이나 자아실현이 방해될 때에, 일종의 위기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위기는 인간에 대한 공격성이나 사디즘, 마조히즘 및 권위에 대한 복종 또는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권위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롬은 자아를 실현하는 생활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프롬은 스피노자처럼 행복은 덕의 증거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생산적인 생활과 인간의 행복이나 성장을 바라는 인도주의적 윤리르 신봉할 때에 사람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신경증이나 권위주의, 사디즘, 마조히즘 등은 인간성이 개화되지 않을 때에 일어나고 이것을 프롬은 인간적인 파탄이라고 했다.

 

프롬은 오랫동안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삶과 저작을 연구했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초기와 후기가 서로 모순됨을 발견했다. 그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프로이트는 인간은 욕망과 억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고 했으나, 전쟁 이후 프로이트는 생물학적으로 보편적인 삶과 죽음(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본능 가운데서 몸부림친다고 했다. 프롬은 프로이트와 그의 추종자들의 두 이론 사이의 모순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면서 비판했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이분법적 사고 역시 비판했다. 프롬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양 극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의식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이라고 한다. 또한 프로이트를 빈의 20세기 초반 가부장적 환경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는 여성혐오자라면서 비난했다.. 그러나 프롬은 이런 오류들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와 그의 성취에 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는 작가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역작으로 사실상 그의 평생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며, 이 책을 통해 심리학, 사회학, 신학, 역사, 철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난 통 찰력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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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내용 요약 

[서론] : 위대한 약속, 이행되지 않은 약속과 새로운 선택

 

1. 한 그릇된 환상의 종말

무제한의 생산, 절대적 자유, 무한한 행복이라는 삼위일체가 발전이라는 새로운 신앙의 핵심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성도의 자리에 발전이라는 지상의 새 도시가 들어섰다. 산업시대가 이룩했던 물질적 및 정신적인 눈부신 업적과 그것이 준 위대한 약속의 파장을 염두에 뒀을 때, 우리는 그 위대한 약속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오늘날, 야기되는 정신적 충격을 이해할 수 있다. 행복과 최대치의 만족은 모든 욕망의 무제한적인 충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복지상태(well-being)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2. 위대한 약속은 왜 실현될 수 없었는가?

ㄱ. 산업주의 체계에 내재한 경제적 모순들
ㄴ. 그 체계 자체가 지녔던 두 가지 중요한 심리학적 전제들
a.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다시 말하면 최대치의 쾌락이라는 전제.
행복이라는 것을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소망 또는 주관적 욕구의 충족으로 이해(극단적 쾌락주의)
b. 자기 중심주의, 이기심, 탐욕(체계의 존속을 촉진시키는 특성들)이 조화와 평화롤 통하리라는 전제.

 

3. 인간의 변화를 위한 경제적 필연성

재난을 예방하려면 근본적인 경제적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이 경제적 변혁을 위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입장과 새로운 윤리라는 의미에서 의 근본적인 변화가 들어서야만 인간의 근본 가치와 그가 취하는 입장도 바뀐다. , 새로운 사회는 그 발전과정에 새로운 인간의 발전을 반드시 병행해야만 가능하다..

 

4. 파국에 대비할 다른 선택이 있는가?

욕구는 인간을 어리석게 한다. 심지어 전쟁 속에서도 따뜻한 자신의 집으로 못 떠나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치명적인 수동성의 해결책을 '소유양식''존재양식'의 분석을 통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제1부] :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1장 일반적 고찰

 

1. 소유와 존재의 차이의 중요성

소유와 존재는 두 가지 기본적인 존재양식이다. 양자택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보통 보기에 소유한다는 것은 삶에 포함된 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당연히 소유하고 사물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유하는 것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는 사회,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10억의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소유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양자택일이 있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바로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찍이 인생의 위대한 스승들은 소유와 존재의 양자택일에서 그들의 철학적 관점의 핵심을 찾아냈다. 석가모니는 제물을 탐하지 말라했고 예수는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고 예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받을 거라고 했다. 수사 에크하르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열어서 비우는 것”, 자아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것이 영적 부와 힘을 얻는 전제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사치야말로 빈곤과 마찬가지로 큰 악덕이며,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작가는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구체적인 고찰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두 실존양식의 차이를 이루는 경험적 토대를 찾으려 했다. 결론적으로 소유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체험의 두 가지 형태로서, 그 각 양식의 강도가 개인의 성격 및 여러 유형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결정한다.

 

2. 문학에 나타난 예

소유한 존재의 획득이지만 존재란 소유의 재고이다. 프롬이 여기서 말하는 존재란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고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그런 실존양식을 의미한다고 했다. 괴테의 수많은 작품에서 소유에 반대하며 존재의 편을 들었다. 아래에. 존재의 특질을 간결하게 표현한 짧은 시가 하나 있다.

 

고유의 재산 괴테

 

나는 알고 있네, 내게 속한 것은 다른 아무것도 없음을.

오로지 나의 영혼으로부터

거침없이 흘러나오려는 사상과,

자애로운 운명이 베풀어준,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향유하는 은총의 순간순간뿐임을

 

3. 언어관습의 변화

동사를 명사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갔다.(존재->소유)

 

) 사랑하고 있다.-> 사랑을 나누고 있다. : 사랑을 소유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가질 수 있고,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다.

 

4. 뒤 마레와 마르크스의 고찰

 

5. 오늘날의 언어관용

그것은 내게 있다. ->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존재용어가 소유용어에 앞서며 더 근본적인 것이다. 소유용법은 그 소유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존재용법은 인간이나 사물, 그 자체를 표현한다.

 

6. 두 개념의 어원

 

7. 존재에 대한 철학적 개념들

변화, 즉 활동하는 동안에 그 존재가 인정된다.

 

8. 소유와 소비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로 소비하면서 욕구는 충족되나 그것을 유지하고 충족되면서 잃은 그 충족감이 재발견을 위한 다른 소비가 이어진다.

 

[제2부] :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2장 일상적 경험에서의 소유와 존재

 

1. 학습

소유 -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다른 사람의 진술들의 집적의 소유자"가 된다.

존재 - 일단 관심을 가지고 듣고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새로운 사상이나 관념에 의해 강의 후 변화를 꾀한다.

 

2. 기억

소유 - 사물이나 메모를 통해서 기억을 소유한다고 착각, 결국 표면적인 기억밖에는 해당 안된다.

존재 - '자유연상', 단일데이터에 창의적으로 많은 데이터 결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므로 이해하면서 기억한다.

 

3. 대화

소유 - 상대방의 상태와 자신의 상태를 먼저 분석하고 대화하기에 대화 폭이 좁다.

존재 - 상대방의 존재 자체가 무한한 관심을 갖게 하며 따라서 대화의 폭이 넓다.

 

4. 독서

소유 - 이야기의 줄거리에 집중한다.

존재 - 지은이의 의도에 집중한다.

 

5. 권위행사

소유 - 사회, 직위에 따른다.

존재 - 능력에 따른다.

 

6. 지식

소유 -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존재 - 나는 알고 있다.

 

7. 신앙

소유 - 인생의 확실한 답을 위해 비합리적으로 확보한 개인이나 집단을 따라 똑같이 같게 되는 것, 사람들 속의 신념

존재 - 경험이나 내적 확실성에 근거한 신념. , 신념 속의 사람

 

8. 사랑

소유 - 대상을 구속하는 데 쓰임, 각자 간에 수동적 사랑

존재 - 대상을 사랑하는 것에 만족, 능동적 사랑

 

 

3장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에크하르트 수사의 저술에 나타난 소유와 존재

 

1. 구약성서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유대인은 소유양식을 가지고 살았으나 모세를 통해 광야로 나가면서 존재양식과 소유양식 양립하게 되었다.

 

2. 신약성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마태 4:4, 누가 4:4)

 

3. 에크하르트 수사

소유 -소유하되 그 소유가 자유를 방해치 않도록 해야 한다.

존재 - 선을 향한 끊임없는 활동, 그 자체가 존재다.

 

4. 소유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개념

 

5. 존재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개념

 

4장 소유적 실존양식

 

1. 이윤추구의 사회 소유적 실존양식의 바탕

우리는 사유재산, 이윤, 권력이라는 기둥 위에 정립된 사회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은 극히 편파적이다. 취득, 소유, 이득은 산업사회에서 사는 개인의 실질적인 불가침의 원리이다. 그 사유재산이 어떤 경로로 취해졌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것을 소유함에 그 어떤 구속(의무)도 받지 않는다. 그 원칙은 이렇다. “내가 내 재산을 어디에서 어떻게 취득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 누구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법을 저촉하지 않는 한 나의 권리는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이다.”

 

이런 형태의 재산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누릴 때 타인을 완전히 배제하고 나를 그것의 소유주로, 그것을 관장하는 유일한 주인으로 하기 때문에 사유재산이라고 부른다. 이런 형태의 재산은 명목상으로는 당연하고 일반화된 것이지만 선사시대, 특히 여타 생활영역에서 경제가 우선을 차지하지 않았던 유럽권 외의 문화를 포함한 전체 인류역사를 고려했을 때, 사실상 그것은 예외에 더 가깝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러 규범은 사회구성원의 특성(“사회적 특성”)을 규정한다. 우리가 살고ㄹ 있는 산업사회의 경우 그 규범은 재산을 취득하고 그것을 지키며 확장하는 것, 즉 이윤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산자이므로, 이 무산자들이 재산을 확보하고 지키려는 열정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느냐 하는 복잡한 문제가 제기된다. 무산자이면서 어떻게 스스로 유산자로 느끼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첫째, 거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무엇인가는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자산가가 자본에 매달리듯 그들의 적은 소유물에 매달린다. 둘째, 그들은 그들의 재산을 지키며 아무리 작은 액수라도 늘리려는 소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지만, 아마 가장 큰 보람은 물질적 소유보다는 삶의 실체를 소유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보람일 것이다. 소유양식은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특징이 있다.

 

2. 소유의 본질

소유적 실존양식은 사유재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이 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의 것으로 하는 것과 그렇게 취득한 것을 보유하는 무제한의 권리이다. 소유지향의 태도는 타인을 배제하며, 나의 재산을 지키고 그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고 부심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에게 다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교에서 욕진이라고 부르고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탐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태도는 모든 인간과 사물을 죽은 것으로, 나의 힘에 종속된 대상으로 변질시킨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구절은 주체인 나와 객체인 무엇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이 말은 주체나 객체 모두가 영속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 양자가 영속적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언젠가 죽어갈 것이며, 지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사회적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객체 역시 영속성을 지니고 있지 못한다. 그것은 파괴될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고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다. 무엇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진술은 파괴되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전제한 그릇된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 객체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나의 행위는 삶의 과정에서 스쳐가는 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주체)는 무엇(객체)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은 객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빌려서 나의 자아를 정의하고 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이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나와 나의 소유물 사이에 살아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소유물은 물론 나도 사물이 되며, 내게 그것을 소유할 가능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지금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관계도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나를 소유하기도 한다. 내가 나 자신임을 확신하는 느낌이나 나의 심리적 건강이 그것과 가능한 한 많은 사물을 소유하는 데에 의존하는 경우이다. 이렇듯 소유적 실존양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살아있는 관계나 생산적 과정에 의해서 생각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사물로 만든다. 그 관계는 살아있는 관계가 아닌 죽은 것이다.

 

 

1. 구약성서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유대인은 소유양식을 가지고 살았으나 모세를 통해 광야로 나가면서 존재양식과 소유양식 양립하게 되었다.

 

2. 신약성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마태 4:4, 누가 4:4)

 

3. 에크하르트 수사

소유 -소유하되 그 소유가 자유를 방해치 않도록 해야 한다.

존재 - 선을 향한 끊임없는 활동, 그 자체가 존재다.

 

4. 소유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개념

 

5. 존재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개념

 

4장 소유적 실존양식

 

1. 이윤추구의 사회 소유적 실존양식의 바탕

 

우리는 사유재산, 이윤, 권력이라는 기둥 위에 정립된 사회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은 극히 편파적이다. 취득, 소유, 이득은 산업사회에서 사는 개인의 실질적인 불가침의 원리이다. 그 사유재산이 어떤 경로로 취해졌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것을 소유함에 그 어떤 구속(의무)도 받지 않는다. 그 원칙은 이렇다. “내가 내 재산을 어디에서 어떻게 취득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 누구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법을 저촉하지 않는 한 나의 권리는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이다.”

 

이런 형태의 재산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누릴 때 타인을 완전히 배제하고 나를 그것의 소유주로, 그것을 관장하는 유일한 주인으로 하기 때문에 사유재산이라고 부른다. 이런 형태의 재산은 명목상으로는 당연하고 일반화된 것이지만 선사시대, 특히 여타 생활영역에서 경제가 우선을 차지하지 않았던 유럽권 외의 문화를 포함한 전체 인류역사를 고려했을 때, 사실상 그것은 예외에 더 가깝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러 규범은 사회구성원의 특성(“사회적 특성”)을 규정한다. 우리가 살고ㄹ 있는 산업사회의 경우 그 규범은 재산을 취득하고 그것을 지키며 확장하는 것, 즉 이윤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산자이므로, 이 무산자들이 재산을 확보하고 지키려는 열정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느냐 하는 복잡한 문제가 제기된다. 무산자이면서 어떻게 스스로 유산자로 느끼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첫째, 거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무엇인가는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자산가가 자본에 매달리듯 그들의 적은 소유물에 매달린다. 둘째, 그들은 그들의 재산을 지키며 아무리 작은 액수라도 늘리려는 소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지만, 아마 가장 큰 보람은 물질적 소유보다는 삶의 실체를 소유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보람일 것이다. 소유양식은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특징이 있다.

 

2. 소유의 본질

소유적 실존양식은 사유재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이 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의 것으로 하는 것과 그렇게 취득한 것을 보유하는 무제한의 권리이다. 소유지향의 태도는 타인을 배제하며, 나의 재산을 지키고 그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고 부심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에게 다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교에서 욕진이라고 부르고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탐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태도는 모든 인간과 사물을 죽은 것으로, 나의 힘에 종속된 대상으로 변질시킨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구절은 주체인 나와 객체인 무엇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이 말은 주체나 객체 모두가 영속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 양자가 영속적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언젠가 죽어갈 것이며, 지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사회적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객체 역시 영속성을 지니고 있지 못한다. 그것은 파괴될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고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다. 무엇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진술은 파괴되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전제한 그릇된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 객체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나의 행위는 삶의 과정에서 스쳐가는 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주체)는 무엇(객체)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은 객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빌려서 나의 자아를 정의하고 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이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나와 나의 소유물 사이에 살아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소유물은 물론 나도 사물이 되며, 내게 그것을 소유할 가능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지금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관계도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나를 소유하기도 한다. 내가 나 자신임을 확신하는 느낌이나 나의 심리적 건강이 그것과 가능한 한 많은 사물을 소유하는 데에 의존하는 경우이다. 이렇듯 소유적 실존양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살아있는 관계나 생산적 과정에 의해서 생각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사물로 만든다. 그 관계는 살아있는 관계가 아닌 죽은 것이다.

 

소유 - 저항

소유적 실존양식, 재산과 이윤을 지향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권력에의 욕구, 말하자면 권력에의 의존석을 낳는다. 지배하려는 상대 생명체의 저항을 깨부수기 위해서 나로서는 폭력이 불가피해지며,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앗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맞설 힘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가지려는 욕망은 노골적으로든 내심으로든 남의 것을 강탈하기 위해서 폭력을 쓰고 싶은 충동을 우리의 마음속에 부추긴다.

 

4. 소유적 실존양식을 부추기는 그 밖의 요소들

. 언어 : 이름, 명사 따위

소유지향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인자.

실체의 배후에 이렇다 할 실재가 없음

. 살고자 하는(불멸) 욕망 : 종교적인 것 -> 재산으로 대체되어감

5. 소유적 실존양식과 항문애적 특성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바, 소유지향의 지배적 특성은 완전한 성숙기 이전에 나타나며, 그 특성이 이후의 삶에도 계속 두드려지면 그것은 병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6. 금욕주의와 평등

 

. 금욕주의

끊임없이 포기와 단념에 몰입하는 금욕행위는 어쩌면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물론 금욕주의자는 표면상 그런 욕구들을 몰아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소유와 소비를 억제하려는 바로 그 노력을 통해서 끊임없이 소유와 소비에 몰두하고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과잉보상행위에 의한 거부현상은 매우 흔히 일어나는 정신분석학적인 사례이다.

ㄴ. 평등

중요한 것은 지나친 사치와 빈곤을 근절시키는 일이다. 물질적 자산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양적으로 똑같이 분배했다고 해서 그것이 평등을 의미할 수는 없다. 평등이란 사회계층이 다르다고 해서 판이한 생활경험을 가져올 정도로 극도로 극심한 소득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개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이른바 미숙한 공산주의를 거론함으로써 이와 같은 측면을 지적했다.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는 시기심의 성취이며, 최소한의 소유라는 상상적 가설에 바탕을 둔 평준화의 완성에 불과한 것이다.”

 

7. 기능적 소유

생존을 위한 소유는 합리적으로 조종되는 충동이다. 지금껏 다뤄온 성격으로 규정된 소유는 사물을 자기 것으로 하고 보존하려는 강렬한 본능을 뜻하는데 이는 생래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적 조건이 발달하는 가운데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치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듯이 개발되어 온 충동이다.

실존적(기능적) 소유는 존재와의 갈등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격으로 규정된 소유는 존재와 충돌한다. “의인이나 성자라고 해도 그들이 인간인 이상 기능적 의미에서의 소유를 마다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기능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성격학적 의미에서의 소유를 원한다.

 

5장 존재적 실존양식

 

*존재양식은 소유양식과 달리 정의하기가 어렵다. 소유양식은 정지된 것, 즉 사물과 같으나 존재양식은 살아있는 것, 즉 사람의 내면과 같다.

 

1. 능동성

사람들은 소유양식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을 거라 하지만 그것의 부재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능동성이 있다.

 

2. 능동성과 수동성

'소외된 능동성' - 자신과 격리된 행동주체 ex) 강박증, 최면술

'소외되지 않은 능동성' - 자신이 행동주체 = 생산적 능동성 = 자발적 능동성(생산적 의미에서 전자는 수동성, 후자는 능동성)

 

3. 위대한 사상가들이 보는 능동성과 수동성

 

- 아리스토 텔레스 : 소외된 노동 또한 nous(그리스어:정신, 지성)의 능동성이며 praxis(프락시스:실천)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 vita contemplativa(비타 콘템플라티바; 관조적 생활). 내적 평온과 정신적 지식에 전심하는 생활을 인간 능동성의 최고 형태로 본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크 : 능동성은 궁극적으로 윤리적이고 정신적 요구에 뿌리박고 그것을 표현할 경우에만 '건전한' 것이다.

- 스피노자 : 능동성이라는 속성은 또 하나의 속성인 이성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 마르크스 : 자본주의의 소유의식이 인간의 자발적 능동성을 마비시킨다.

 

4. 실재로서의 존재

나의 성격구조가 행동의 진정한 동기(motivation)이며, 그것이 나의 현실존재를 구성하고 있다. 나의 행동이 부분적으로는 나의 존재를 반영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보통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쓰는 가면이다.

 

5. 베풀고, 나누고, 희생하려는 의지

우리 인간에게는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이 날 때부터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을 표현하고 능동성을 갖고 타인의 관계를 맺고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이다.

 

6장 소유와 존재의 그 밖의 측면

 

1. 안정-불안정

사람들은 시험된 것이나 내 것인 것을 소유했다는 확신 속에 안정감을 갖지만 그러한 소유양식은 변화가 가능한 것으로, 불안정한 것이고 존재양식은 그 양식이 매번 도전적인 것이기에 불안해 보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존재의식이 생겨나며 이러한 양식은 영원하다.

 

2. 연대감 적대감

소유 중심의 사람은 그들의 영웅을 찾지만 이는 경쟁, 적의, 공포에서 기인한 것으로 적의가 그 본질이고, 존재 중심의 사람은 경쟁할 이유도 없기에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다.

 

3. 기쁨 쾌락

불교에서는 쾌락을 배격하는 한편, 열반의 상태를 기쁨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반면 쾌락은 능동성을 요하지 않는 욕망의 충족. 말초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나 사람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시키지는 못한다.

 

4. 죄와 용서

아담의 불복종행위인 원죄는 이기적인 입장으로의 '분리'에서 나온다. 이성과 자의식이 완전 격리, 즉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용서는 보상이고 이는 중세영어 합체에서 유래한다. 즉 신과의 관계 회복인 것이다.

 

5.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삶에의 긍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생명을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삶을 긍정하면 두려움도 없는 것이다.

 

6. 여기, 지금 - 과거, 미래

존재 양식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한다. 소유양식은 다만 시간 속에서만, '과거, 현재, 미래' 속에만 존재한다.

 

[제3부] :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7장 종교, 성격 그리고 사회

 

1. 사회적 성격의 토대

개인들 간의 의존성이 사회를 만들었다. 또한 사회의 변화는 인간의 욕구와 관련한다.

- 사회적 성격 대 사회구조 : 새로운 사회구조는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갖게 한다. 특히 현대는 엘리트 중심 사회이며 이는 모든 사람을 엘리트화 시키며 이는 결국 사회를 과거와 같이 서열화시키고 오로지 소유의식 속에 살게 만든다. 그렇다고 개인적 변혁의 불완전성을 사회변혁의 초석으로 삼는 것은 무리한 바람이다..

 

2. 사회적 성격과 종교적욕구

종교를 집단 공유하는 사상 및 행위의 체계로 본다. 사람은 그러한 종교를 믿는다. 다시 말해 지도와 같이 인간은 '지향구조'를 필요로 하며 '헌신의 대상' 또한 안정감을 위해 찾게 된다. 이는 본능이 아닌 자의식, 이성, 상상에 의한 행동의 발달에 의한 것이다.

 

3. 서구 세계는 기독교적인가?

예수 - 그는 힘을 사용하지 않았고, 지배하기를 원치 않았고, '소유'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순교자(기독교의 영웅)의 특징은 '존재'하고 주고, 나누어 갖는 것이지만, 영웅의 특징은 '소유'하고, 착취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탐욕의 역사 : 전쟁, 개척 과정을 거치면서 서구사회는 기독교를 사회적 결합을 위한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산업종교 : 산업혁명 이후 인간에게 인간 자신이 만든 경제와 기계의 노예가 되기를 강요한다. 예수 신앙에 대한 대체

 

* '시장적 성격''사이버네틱스 종교'

 

-시장적 성격 : 자신을 상품으로 경험하고 자기의 가치를 '사용가치'로서가 아니라 '교환가치'로서 경험하면서 발생(극도의 경제적 인간화)

-사이버네틱스 종교 : 기술에 대해 인간은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고 있다.

 

4. 휴머니즘의 저항

보수적인 낭만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로 양분

 

-마르크스 : 생명과 인간성에 있어서 경제학자가 당신으로부터 빼앗아간 모든 것을 그는 돈과 부의 형태로 되돌려 준다.

-슈바이처 :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유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이 속한 집단에 의해서 인도된다. 사상의 독립을 희생함으로써 우리는 진실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렸다.

 

 

8장 인간의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과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특성

 

고통받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원인을 인식하고, 방법을 인정하고, 변혁을 용인한다.

 

1. 새로운 인간

소유양식 포기, 존재에 대한 욕심, 완전한 능동성, 현재에 대한 존재, 나눔의 기쁨,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경, 소유욕 줄임, 우상숭배 안 함,, 사랑과 사고능력 동시 개발, 자기도취(나르시시즘) 탈피, 인간생존의 한계 용인, 수양과 현실 존중 필요 인식, 구조 안에 삶 인정, 상상력 개발, 속고 속이지 않음, 자신을 자세히 앎, 자연에 대한 외경, 질서 속의 자유 누림, 파괴성은 성장의 실패에서 도래, 야심 버림, 성장의 삶 가운데 행복 누림

 

9장 새로운 사회의 특성

 

1. 새로운 인간과학

 

소비자운동, 참여민주주의

 

. 산업광고와 정치적 선전에 있어서 모든 세뇌적 방법은 금지되어야 한다.

 

. 풍요한 국민과 가난한 국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의 대부분의 불행은 연간 보장해 줌으로써 없어질 것이다.

 

. 여성은 가부장제 지배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 최고문화회의를 설립하여 정부, 정치가, 국민에게 지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문제에 관하여 조언을 해주는 것을 그 직무로 삼도록 해야 한다.

 

. 효과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보급하는 체제도 확립되어야 한다.

 

. 과학적 연구는 산업분야와 방위에 그것을 응용하는 일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존재지향이 인간성에 잠재하는 매우 강한 가능성이라는 전제에 다시 도달한다. 소수자만이. 소유양식에 완전히 지배되고 있으며, 또 다른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양식에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 둘 다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느냐는 그 사회구조에 달려 있다. 주로 존재지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소유경향은 말라죽고 존재양식이 자란다. 우리 사회와 같이 주로 소유지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운 생존 양식은 언제나 이미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인간은 낡은 인간과 천지 차이가 있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방향변화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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