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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저자 소개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다. 그는 합리론의 대표주자이며 본인의 대표 저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 원리를 처음으로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1606년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래시 콜레즈에 입학하여 1614년까지 8년간에 걸쳐 철저한 중세식 그리고 인본주의 교육을 받게 된다. 1626년부터 2년 동안 수학과 굴절광학을 연구하며 미완성 논문 <정신지도의 규칙>을 썼다. 1628년 말,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저술 활동에 몰두해 《세계론》(Traite du monde)을 프랑스어로 출판한다. 1637년에는 《방법서설》에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가지 부분을 덧붙여 익명을 출판했다가 후에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완성한다. 1644년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라틴어로 《철학 원리》를 출판한다. 그 후 그는 여러 사람과 편지로 자기 생각을 전하곤 했는데, 보헤미아의 왕 프리드리히의 딸 팔츠의 엘리자베스에게 최고선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편지로 보낸 것들이 모여 1649년 출판된 그의 마지막 책, 《정념론》(Les passions de l'ame)이 된다. 1650년 2월 11일, 그는 폐렴에 걸려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방법서설』집필 배경
17세기 철학은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현대 철학의 시작이자 중세 철학, 특히 스톨라 철학으로 부터의 탈출로 간주된다. 이 기는 르네상스 철학의 계승이자, 계몽주의 시대의 선행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일부는 이 시기를 계몽주의 시대의 초기로 간주하기도 한다. 17세기의 기계론적 자연관 성립은 단순히 자연인식의 사고방식 전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널리 인간관, 가치관의 변환에도 관련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근대 시대의 데카르트는 크게 데카르트 주의, 합리주의, 기초주의 크게 세 가지의 학파로 볼 수 있다. 데카르트주의는 그가 제안한 철학적, 과학적 사상 및 그 사상을 발전 및 계승하려는 17세기의 사상가들이 가졌던 사조이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지식의 제일의 근원으로 보는 견해를 말한다. 진리의 기준은 감각적인 것이 아닌 이성적이고 연역적인 방법론이나 이론으로 정의한다. 기초주의는 정당화된 믿음이나 건전한 전제로부터 추론된 결론과 같이 확실한 기초에 의존하는 인식론을 말한다.
데카르트가 1636년에 집필한 방법서설의 원제는 <자신의 이성을 잘 이끌고, 학문들 속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 대한 연설, 그에 더해 그 방법의 시론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그리고 기하학>이다. 이처럼 방법서설이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방법서설>은 세 시론과 구분되는 한 권의 책으로 일반적으로 취급된다. 앞으로 다룬 얘기는 방법서설만을 다루겠지만, 앞서 세 시론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원본은 살펴보면,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을 다루는 부분이 1-413쪽으로 표시되어 있고, 목차에도 이 세 시론만이 언급되어 있으며 <방법서설>은 1-78쪽으로 별도로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방법서설>의 인쇄 역시 세 시론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시론 속에서 데카르트가 자신의 방법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방법서설>과 세 시론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의 1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2부에서는 방법, 3부에서는 도덕, 4부에서는 형이상학, 5부에서는 과학적 설명(자연학 의학), 그리고 6부에서는 대중들에 호소하는 내용을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
『방법서설』내용 요약
[1부]
상식은 세상에서 가장 잘 분배된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에서 만족해하기 가장 어려운 이들 조차도, 그들이 지닌 상식보다 더 많이 지니기를 전혀 원하지 않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식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지니는 능력을 강조한다. 즉, 잘 판단하는 그리고 거짓된 것에서 진실된 것을 가려내는 역량이 모든 인간 안에 자연적으로 동등하게 있다는 것을 오히려 증명한다. 또한 훌륭한 정신을 지니는 것으로는 충분한 것이 아니고, 제일 중요한 점은 정신을 잘 적용하는 것도 아니고, 제일 중요한 점은 정신을 잘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생각들을 다양한 경로로 이끌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가 실천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남들보다 좀 더 완벽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기억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행운이 따라와 젊은 시절부터 어떤 강들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데 겁내지 않아 한다. 이 길은 고찰들과 준칙들로 그를 이끌었으며, 그것들을 통해 한 방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서설에서는 데카르트가 어떤 길들을 따랐는지를 보여주고, 각자가 그것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의 삶을 표현하게 되었다며 기쁨을 표한다. 그는 각자 자신의 이성을 잘 이끌기 위하여 따라야 할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이성을 이끌려고 노력한 것이 어떤 종류였는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그는 다양한 민족들의 관습들에 대해 어떤 것을 아는 것은 우리의 관습들을 더 건전하게 판단하기 위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고대의 책들, 그들의 역사들과 우화들의 독서에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웅변술을 높이 평가했고 시를 사랑했다. 그는 이 둘은 교육보다는 정신의 타고난 재능이라고 봤다. 자신의 생각들을 분명히 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제안하는 것들을 항상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수학을 제일 좋아했다. 논거들의 확실성과 명중성 때문이다. 철학은 수 세기 전부터 영위한 가장 훌륭한 정신들에 의해 일궈져 왔는데도, 사람들이 논쟁하지 않은 것, 따라서 결과적으로 의심스럽지 않은 어떤 것도 철학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그는 철학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공하기를 희망할 자만심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학문들(수학, 철학, 신학 등)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음 글을 보면 그가 학문을 통해서 고찰한 것이 나타나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관습들만을 단지 고려하는 한, 나는 거기에서 나를 확신시켜주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해서, 그것들에서 내가 예전에 철학자들의 견해들 사이에서 발견했던 만큼 거의 같은 정도의 다양성에 주목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그것들에서 끌어낸 가장 큰 이득은, 비록 그것들이 우리에게 도를 벗어나고 터무니없는 듯싶을지라도, 다른 위대한 민족들에 의해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승인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여러 가지 것들을 감지하며, 나는 예시와 관습에 의해서 설득된 것을 너무 굳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웠다. …(중략)… 나는 어느 날 나 자신 속도 공부하기로 그리고 내가 따라야만 할 길들을 선택하는 데 내 정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고자 결심했다. 그는 이성을 온전히 사용하여 사물을 바라보고, 이성적인 생각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을 한다고 생각했다
[2부]
그는 독일에 있던 당시 전쟁 상황 때문에 소집되었었다. 겨울이 시작할 무렵, 그를 방해하는 염려나 정념들이 없어 그는 생각들에 관해 스스로 이야기하는 완전히 한가한 때를 가지게 된다. 책에서 오는 학문들, 적어도 근거들이 개연적일 뿐이고 증명들이라고는 전무한 학문들은,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견해들에 의해 조금씩 구성되고 확대되었으므로, 상식적인 한 인간이 현전 하는 사물들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추론들보다 진리에 결코 더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만일 태어났을 때부터 이성을 온전히 사용하고 끌려 다녔다면, 단호하거나 순수한 판단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첫째는 내가 한 사물을 이러이러하다고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도 결코 진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둘째, 내가 검토할 난제들을 각각 가능하고, 더 잘 해결하기 위해서 요구될 정도의 부분들로 나누는 것이었다.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끄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내가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모조리 열거하고 철저히 전반적인 점검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장 단순한 것들과 가장 인식하기 쉬운 것들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단지 그들(수학자들)이 검토했던 동일한 것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비례들 일반만을 검토하며, 그것들을 더 쉽게 인식하는 데 쓸모 있는 주제들 속에서만 그것들을 가정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비례들을 인식하기 위해 때로는 그것들을 단지 기억해 두거나, 여럿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주의했다. 그는 정말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인 것들에서 시작하면서, 그리고 내가 발견한 각각의 진리를 이후에 다른 진리들을 발견하는 데 쓸모 있는 규칙으로 삼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3부
데카르트는 이성이 우리의 판단에 있도록 강요하는 동안 그들의 행위들에 결코 우유부단한 채 머물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는 3-4개의 준칙들로 이루어진 임시적인 도덕을 만들었다. 첫째로는 내 나라의 법률들과 관습들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가장 분별 있는 이들에 의해 실천 속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멍 견해들을 따르며, 다른 모든 것에서 자신을 통제하면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신의 고유한 견해들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아래 부분에서 데카르트가 실천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별 있는 이들의 견해가 진정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기 위해,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이 실천하는 것에 주의해야만 했다.” 데카르트가 법률들을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항상 똑같은 상태로 머무는 것을 막고 좀 더 완벽한 판단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제한했을 뿐이다.
두 번째 준칙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행위들에 가장 확고하고 가장 단호해지는 것이었고, 내가 견해들을 일단 결정하면, 만일 그것들이 아주 확실하다면, 심지어 가장 의심스러운 견해들이라도 지속해서 따르는 것이었다. 삶에서 행위들은 어떤 지체도 흔히 허용하지 않으므로 가장 참다운 견해들을 분별하는 능력이 우리 안에 없을 때, 우리는 가장 개연적인 것들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은 매우 확실한 진리이다.
세 번째 준칙은 운보다는 오히려 나를 극복하려고, 그리고 세상의 질서보다는 나의 욕망들을 바꾸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 외부에 있는 좋은 모든 것들을 똑같이 우리 능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서 간주한다면, 태어날 때 당연히 받을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그것들을 결여하고 있을 때, 결여하고 있는 것에 우리가 더 유감스러워 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모든 것들을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연습과 흔히 반복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데카르트는 이런 도덕의 결론으로서, 인간들이 이 삶 속에서, 최고의 것을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 갖는 다양한 활동들을 검토하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는 기존에 하는 활동을 지속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성을 계발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진리의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그는 인생의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준칙들은 자신을 계속해서 스스로 가르치려는 것을 지속하려는 계획에 오로지 근거를 둔 것이다.
4부
그가 고찰한 형이상학적이고 아주 약간만 일반적인 성찰들이 담긴 이야기라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파트이다. 데카르트는 그때 진리 탐구에만 오로지 열중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오든 것을 반대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 후에 전적으로 의심할 나위 없는 어떤 것이 나의 신뢰 속에 남아있지 않는지 보기 위해서, 최소한의 의심일지라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거짓된 것으로 내던졌다. 그는 증명들이라고 이전에 취했던 모든 근거들을 거짓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이때 모두가 아는 데카르트의 진리가 나타났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는 회의주의자들의 가장 기상천외한 모든 가정들로도 그것을 흔들 수는 없다는 것에 주목하여, 그것을 찾고 있는 철학의 제일 원리로써 불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다른 사물들의 진리를 의심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바로 그것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게 그리고 매우 확실하게 따라 나왔다. 본질 또는 본성이 단지 생각하는 것일 뿐이고, 존재하기 위하여, 어떤 장소도 필요하지 않고, 어떤 물질적인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한 실체였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는 우리가 아주 뚜렷하게 그리고 아주 구별되게 받아들이는 사물들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 규칙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구별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어떤 것들 인지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하여 의심보다는 인식에 주의를 두기 시작했다. 내가 존재했던 것보다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찾기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더 완전한 어떤 본성의 존재였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다른 진리들을 찾고자 원해, 스스로에게 기하학자들의 대상들을 제안했다. 위에서 말한 규칙에 따라, 이 증명들 안에는 그것들의 대상의 존재를 자신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에도 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데카르트는 자신이 내세운 근거들에 의해서, 신과 그들 영혼의 존재에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 인간들이 아직도 있다면, 그들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덜 확실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랬다. 그는 그들의 의심을 지워내기 위해 충분한 근거도 제공한다. 그가 주장했던 규칙과 신이 존재한다는 것, 나아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신에게 나오는 것이므로 신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상상이 아닌 우리의 이성에 대해서도 집중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에게 우리가 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그처럼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전혀 명령하지 않기 때문이다.
5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는 학자들 사이의 논쟁을 내버려두고, 새로운 세계에서 일어날 것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어떤 의심을 할 수 있는 모든 법칙들을 증명하려고 노력했고, 그는 특히 지구에 대해 말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불이 어떻게 생기고 커지는지, 재와 연기로 변환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산, 바다, 샘들 그리고 강들이 자연스럽게 지구에서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자신이 가정한 방식으로 창조되었다고 추론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신이 세계를 창조한 작용과 보존하는 작용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즉, 신이 자연의 법칙을 세웠으며, 우리가 현재 그것들을 보고 있는 그대로 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이 이성적인 영혼을 창조했고, 자신이 서술한 어떤 모종의 방식으로 이 몸에 영혼을 결합했다고 가정했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는 심장과 동맥들의 운동에 대한 설명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심장을 직접 해부해보는 등,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두 개의 방과 심실들이 잘 보이도록 한 뒤 그것을 분석했다. 대동맥 입구의 세 판막은 심장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허락하지만,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가로막는다. 그리고 그 판막 수에 대해서는 정맥성 동맥의 입구가, 달걀형이라 편하게 닫힐 수 있는 반면, 다른 것들은 둥글어서 입구는 세 개로 더 잘 닫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자연의 규칙들과 동일한 기계장치의 규칙들에 따라, 많은 것들이 모든 것을 위한 충분한 자리가 없는 한 동일한 장소를 향해 함께 움직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을 때, 심장에서 뇌로 흘러가게 되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을 이전에 출판하고자 한 개설서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서 동물 정기에 따른 움직임과 인간 몸의 신경들과 근육들의 구조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는 인간과 짐승 사이에 있는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데, 이성에 대해 데카르트는 인간이 동물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성적 영혼을 서술하였다. 이성적 영혼은 어떤 식으로든 물질의 역량에서 조금도 끌어낼 수 없으나, 그것은 명백하게 창조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처럼 진정한 인간을 구성하기 위해서, 이성적 영혼은 몸과 아주 긴밀하게 결합해야 하고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인간의 중심이 있고, 이성이 있다.
6부
그는 어떤 확실한 증명이 없는 새로운 것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수 있는 글은 전혀 쓰지 않겠다고 항장 주의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 중 몇 개는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그가 이 서설을 작성하게끔 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이 아주 강해서 서로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자연학에 대해 몇 가지 일반적인 개념들을 획득하자마자 다양한 난제들에 대한 개념들을 증명하면서 어디까지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지금까지 사람들이 사용했던 원리들과 얼마나 그것들이 다른지를 주목했다.
그는 인간들이 지금까지 지녔던 것보다 더 현명하고 숙달된 인간이 되게끔 하는 수단을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이 의학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각자 자신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실험에 기여하여 그 이상으로 넘어 서게 노력하도록 권유하는 것을 최고의 치료법으로 판단했다. 실험은 사람들이 지식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감각들 자체에 나타나는 실험은 가장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왜냐하면 원인들은 아주 특별하고 아주 작은 것들이어서, 원인을 알아차리기에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작가는 세상 속에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원리들 혹은 최초의 원인들을 일반적으로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그 원인들에서 연역할 수 있는 최초이자 통상적인 결과들이 어떤 것들인지 미리 검토해본다. 그런 연후에 자신의 감각들에 언젠가 나타난 적이 있던 모든 대상을 스스로 정신 속에서 다시 되돌아보면서, 발견했던 원리들에 의해 아주 편리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도 거기서 주목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의 폭넓은 역량으로 원리들이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추론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커다란 난점은 통상적으로 그 방식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결과가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는 조금이라도 중요하다고 판단할 모든 것들을 지속해서 진정으로 써 내려가야만 하며, 그것들을 인쇄하기를 원하면 이 작품에 동일한 정도의 주의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들이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하는 것보다 여러 다른 사람에 의해 눈에 띄어야만 믿는 것을 항상 더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가 진리의 인식에 이르는 데 방해하는 모든 난점과 오류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말로 전투들을 하는 것이고, 다소 일반적이고 중요한 소재에 대하여 어떤 잘못된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투에서 하나를 잃는 것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장된 원리들을 이미 지니고 있을 때, 거대한 진보를 하기에 필요한 것보다, 이전에 있던 동일한 위치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이후에는 훨씬 더 많은 술책이 필요하다.
내가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도 그것들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다른 인간들의 다양한 모든 견해들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그것들이 생기게 하는 반론들에 의해 내가 종종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될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반론들이 유용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들과 소통하여 받을 유용성으로 말하자면, 유용성은 내가 그것들을 아직 아주 멀리 이끈 게 아니므로, 생각들을 적용하기 전에 많은 것들을 거기에 덧붙여야 할 필요가 있는 만큼 대단히 크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며 그는 그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사람들은 스스로 발견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탁월한 정신의 인물들에게 그의 견해를 소개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되풀이할 때, 그가 전달하는 것을 거의 항상 변질시키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후손들에게, 그들이 설명하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출처를 자신이라고 믿지 말라고 한다. 철학하는 그들의 방식은 아주 평범한 정신들만을 지닌 이들을 위해서는 아주 편리하다. 그리고 이 철학자들에게는 자신이 사용하는 철학의 원리들을 출판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의 원리는 아주 단순하고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정신들조차도 그의 원리들을 인식하고자 하는 기회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지 않은 체하는 허영보다 진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더 선호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이 더 선호할만한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이 서설에서 이미 말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데카르트가 했던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가 발견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말할 것도 없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증명들에서부터 찾은 모든 진리를 사람들이 가르쳐줬었더라면, 그래서 그 진리를 알아가는 데 어떠한 고통도 없었더라면, 그는 아마 다른 어떤 것들도 아마 알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스스로 배우려는 계획이 겪는 지연을 날마다 점점 더 목격하면서, 내게 필요한 수많은 실험 때문에,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성공했는지를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의 글들에 대해 말k면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전혀 예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글들을 검토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출판업자에게 자신의 진리와 더불어 반론에 대한 답변들도 함께 첨부했다. 그래야 독자들도 수월하게 그의 진리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잘못들을 스스로 인식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을 제공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여가를 방해하지 않고 즐기도록 해주는 사람들에게 항상 더 충실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서설을 마친다.
감상
데카르트는 ‘방법론’ 이 아닌 ‘방법서설’ 이라고 한 이유는, 이 작품이 서론 또는 방법에 대한 소견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 서설을 통해 자신의 의도가 방법을 가르치기보다는 방법에 대해 말하려는 데 있음을 명확히 하고 싶어 했다. 이 서설을 통해 데카르트가 중시했던 것처럼, 그의 이론보다는 방법의 ‘실천’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데카르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서문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간략하게 적혀있는 내용도 많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정신과 물질을 전혀 다른 별개로 본다. 그는 정신을 통해서 세계를 확인한다고 했다. 이런 그의 철학이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사회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화두를 던지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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