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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EnerTravel 2023. 9. 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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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대학』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배경 요약

1-1. 『대학』의 탄생

 

『대학』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예기』를 알아야 한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배운 예와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기록을 남겼고 그 예설(禮說)들은 한(漢)시대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에 달하게 된다. 한무제 이후 여러 학자가 유학 경전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를 편찬하여 『예기』라는 유교 경전이 나오게 된다.

학계에서는 『대학』의 저술 시기를 두고 두 시각으로 나눠 얘기한다. 첫 번째 시각은 『예기』가 저술된 시기와 마찬가지로 진나라 말에서 한나라 초에 저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두 번째 시각은 공자 이후 맹자 이전 시기에 저술되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두 시각 이외에도 저술 시기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학』의 저술 시기와 관련한 확실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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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춘추전국시대

 

『대학』은 공자의 말을 담았으며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춘추전국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BC 770년, 주왕조의 뤄양 천도를 기점으로 그 이전 시대를 서주시대 그 이후 시대를 동주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눠진다. 춘추시대는 주왕조가 도읍을 옮긴 때로부터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인 한(韓)· 위(魏)· 조(趙) 삼씨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할 때까지의 시대이며 전국시대는 이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까지의 시대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정치적으로는 혼란기였지만 소수 귀족들에게 독점되던 지식과 학문이 일반 서민층에까지 확산되어 중국 문화가 발전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춘추시대 중기부터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대를 지닌 강국이 등장하여 춘추오패가 생겼으며 그들은 작은 제후국들을 멸망시키고 현(縣)이라는 지방행정단위를 설치하였다. 전국시대에 와서는 대다수의 약소국들이 강대국에 병합되고 소수의 강대국만 남게 된다. 이 강대국은 전국칠웅이라고 한다. 춘추시대 말에는 철제농구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전국시대에는 우경(牛耕)이 시작되었으며, 치수관개(治水灌漑) 공사도 각국에서 시행되어 경지면적이 증대하였다.

또한 이 시대에는 제자백가가 생겨나 활발한 사상활동이 진행되었다. ‘제자’란 여러 학자들이라는 뜻이고 ‘백가’는 수많은 학파라는 뜻이다. 따라서 제자백가는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얘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제자백가는 유가·묵가·법가·도가·명가·병가·종횡가·농가·음양가·잡가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 공자의 유가는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를 수립한 사상이다.

 

1-3. 수당시대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목받지 못하던 「대학」이 수당시대를 거치며 주목받는 사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은 본래 『예기』에 속한 일부분으로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사상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수와 당 시대에 들면서 도교와 불교가 크게 번성하자 유학자들은 불교를 믿으며 출가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는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하였으며 승려 계층이 증가하며 나타나는 사회적 폐단을 걱정하였다. 그들에게 개인의 수양으로부터 가족, 국가로 도덕을 확대해 나가야 함을 주장하는 「대학」은 불교를 비판하기에 적합한 근거였다. 따라서 불교를 비판하기 위한 유교적 이론으로 「대학」이 주목받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당시대는 어떠한 시대였을까? 수나라의 문제는 북쪽의 호족들을 물리치고 남쪽의 진(陳)을 멸망시켜 다시 중국의 통일시대를 연다. 문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병농일치제를 실시하여 세금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2대 황제인 양제의 동도 건설이나 대운하 건설 등과 같은 토목공사와 3번에 걸친 고구려 원정이 실패하자 각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며 수나라(581-618)는 3대를 넘기지 못하고 당나라에 멸망하게 된다.

그 후 장안을 함락시킨 이연은 당나라를 세운다. 당나라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수나라의 멸망을 교훈으로 삼았다. 당나라는 중앙집권제를 확립하면서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 결과 나라는 안정되고 끝없는 발전을 하게 된다. 당나라의 황금기로 불리는 ‘개원지치’시기를 다스린 사람이 현종이다. 그는 훌륭한 정치를 펼쳐 당나라의 번영기를 이룩하였으나 말년에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는 당나라가 융성에서 쇠락으로 넘어가는 시작이 되었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빠져 간신들에게 모든 정사를 맡겼다. 농촌에서는 균전제가 무너져 국가의 세입이 줄어들었고 부병제가 무너져 군대는 약화되었다. 반대로 변방의 절도사들은 군사력을 나날이 길러 당나라의 왕조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후 당나라는 안사의 난이 일어나 사분오열되어 오대십국이라는 혼란의 세계가 된다.[1]

 

1-4. 『대학』의 위치와 의의

 

 『대학』은 사서삼경 중 하나이다. 사서삼경은 유교의 기본 경전이다. 이 중 사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며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이다. 『대학』은 공자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나타내는 경서이며 원래는 <예기(禮記)>의 일부였다.  제42편에 속하는 부분이었다. 이것을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주자(朱子)가 다시<대학장구(大學章句)>를 만들어 주석(註釋)을 가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대학』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의의는 유교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공자, 맹자, 순자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된 유교 사상은 본래의 뜻과 달리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이해되기도 하였다. 『논어』 자로 편을 보면 그 시대에 정치가뿐만 아니라 유교 학자들도 유교 사상의 정확한 핵심을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그 당시 몇몇 사람들은 유학자들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편하게 놀고먹는 사람들이라며 비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은 내성외왕의 유교적 이념을 드러내며 유교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비판에 대응하고 유학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두 번째 의의는 『대학』이 도덕적 판단 척도를 정립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중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도덕관념이 해이해지던 시대였다. 많은 사람은 자기 잘못에 대해 변명을 하였고 주관적으로 해석되기 쉬운 모든 덕목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얘기하였다. 이 때문에 객관적인 도덕 판단 척도를 정립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대학』은 자기와 타인의 마음, 행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일체의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혈구(絜矩)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도덕적 판단 척도를 정립하였다.[2]

 

1-5. 『대학』의 해석

 

 『대학』은 여러 해석이 존재하는 책이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은 『대학』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주희의 관점과 왕수인이 주희의 대학관 중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다. 주희가 말한 ‘대학’은 ‘대인지학’으로써 쉽게 말하면 소학에서 배웠던 규범과 기예들의 원리를 파악하여 개인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도덕 행위를 하도록 가르치는 곳이다. 이러한 대학의 역할 때문에 주희는 『대학』의 목표 또한 ‘사물을 탐구하여 자신의 앎을 지극히 한다.’라고 정리하였다.

 그러나 왕수인은 주희의 관점으로 『대학』을 공부하다가 의문을 제기한다. 주희가 강조한 것처럼 ‘격물’의 이치를 파악하고자 했지만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격물’ 그 자체로만 알 수 있을 뿐 그에 깃든 이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왕수인은 사물을 탐구하라고 했던 주희의 주장에 의구심을 갖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주희의 대학체제가 아닌 고본 대학의 체제로 『대학』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소개

 

2-1. 『대학』의 저자

 

 『대학』은 그 저술 시기와 마찬가지로 저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송 시대 전까지는 『대학』의 저자를 두고 누가 쓴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주희가 『대학』의 저자가 자사와 증자라고 언급한 이후부터 많은 학자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희는 증자계열의 학자인 증자가 『대학』을 썼다고 주장하였다. 증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동시에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스승이다. 자사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인 공자의 보살핌을 받았다. 따라서 주희는 공자가 손자 교육을 자신의 수제자인 증자에게 맡겼을 거라고 주장한다. 주희는 이와 더불어 당시까지 증자에게 저서가 없었으므로 『대학』은 증자가 썼을 거라고 추정하였다. 그렇다면 주희가 주장한 『대학』의 저서 증자는 누구인가? 그는 부친의 권유로 16세에 공자를 스승으로 섬기며 그의 학설을 적극적으로 전파시켰다. 또한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학문을 전수했으며 자사는 맹자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공자의 사상이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가르침은 유교사상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그는 공자·안자·자사·맹자와 함께 동양 5성(五聖)으로 꼽힌다.

 

2-2. 공자와 증자

 

『대학』에 실린 말을 한 유교 학자 중 공자는 누구인가? 그는 춘추전국시대에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제자백가 중 하나인 유가를 이끈 사람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오늘날 중국의 산둥성 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살 때부터 계(季)씨 가문 창고지기로 일했지만 계속해서 주나라 관제와 예법을 공부하여 예(禮) 전문가가 되었다. 그는 48살이 되며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공자는 중도(中都)를 다스렸고 벼슬을 지냈다. 공자는 노년에 들어서 제자를 가르치며 문헌을 정리하는 데 전념했다. 공자가 살던 시기는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의 자리를 탐내는 상황이 빈번했다. 이 때문에 그는 ‘극기복례’를 주장하며 주나라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출신과 지위에 상관없이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는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유교무류’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들이었다. 공자는 정치를 맡아 다스릴 군자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을 하였는데 그는 타고난 신분보다 능력과 덕성을 중시한 사람이었다.[3]

 

2-3. 『대학』의 편집자, 주희

 

『대학』의 원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이 접하는 『대학』에는 주희가 편집한 것이 있다. 주희는 남송의 사상가로서 성리학이 새로운 유학의 모습으로 자리 잡도록 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지적으로 성숙하여 5살 때부터 문장을 공부하였다. 그가 어릴 적부터 남달랐음은 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나는 5, 6세부터 생각에 잠겨 괴로워했다. 대체 천지사방의 바깥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사방은 끝이 없다고들 사람들이 말하지만 나는 꼭 끝이 있을 것만 같았다.”

주희는 1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학문에 정진하다 18살에 지방의 과거 예비시험인 해시에 합격한다. 그 후 1151년 22살이 되자 이부 임관시험에 합격하여 종 9품의 좌적공랑이 된다. 그는 관료로 일하며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하고 학교를 재건하는 등 많은 공적을 세웠지만 그의 가치는 학자로서 더 크다.

주희의 가장 큰 공적은 1190년에 『중용』, 『논어』, 『맹자』, 『대학』을 ‘사자’라는 이름으로 모아 새로 간행한 것이다. 주희는 기존에 있던 『대학』의 가르침이 폐기되어 세상의 도덕이 어지러워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어지러워진 도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불교의 교의를 폐기하고 『대학』의 가르침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주희의 말로 살펴볼 수 있다.

 

 “천운은 순환하니 항상 가면 되돌아온다.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정치 교화가 아름답게 밝아졌다. 이리하여 하남의 두 분 정자가 탄생하여 맹자의 전수를 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실로 이 『대학』을 신봉하여 널리 선양하였으니, 이미 그 편차도 지었고 그 대의도 천명한 연후에 옛날 태학에서 교육하던 법규와 성인이 지은 경(經)과 현인의 전문(傳文)의 요지가 찬란하게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 비록 내가 불민하기는 하나 다행히 두 분 정선생을 사숙하여 깨달은 바가 있게 되었다. 다만 그분들의 책이 상당히 흩어지고 없어졌기 때문에 나의 고루함을 망각하고 채집하여 편집하면서 그 사이에 내 생각도 덧붙여 빠지고 소략한 부분을 보충하여 후세의 군자를 기다린다. 참유(僭踰)한 일임을 너무 잘 알아 그 죄를 피할 수는 없으나, 국가가 백성을 교화하고 미풍양속을 이룩하려고 뜻과 배우는 사람의 수기치인의 방법에 있어서는 작은 보탬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연적인 올바른 이치(理)와 그것이 인간 본성으로 내면화된 성(性)을 중심으로 『중용』, 『논어』, 『맹자』와 더불어 『대학』까지 네 가지를 정리하여 하나의 체제로 묶었고 이것을 유교의 사서 체제로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한 사서는 성리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중국의 학교 교육과 관료 선발시험의 공식적인 기본 교재가 되었다. 그는 일생을 『대학』에 쏟았다. 48세에 『대학혹문』을 완성하였고 60세에는 『대학장구』를 완성하였다. 그는 『대학』을 학문의 기반으로 여겼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도 『대학』을 보완하는 데 힘을 들였다.[4]

 

내용 요약

 

3-1. 『대학』의 구성

 

『대학』은 경1장 전10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전1장부터 전10장까지는 모두 증자의 말을 문인들이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내용은 3가지 강령과 그 강령들의 8가지 실천 조목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를 ‘삼강령 팔조목’이라고 한다.

 

삼강령

 

①     밝은 덕을 밝힌다. (명명덕, 明明德)

②     백성을 새롭게 한다. (친민, 親民)

③     지극한 선에 머문다. (지어지선, 止於至善)

 

팔조목

 

①     사물을 탐구한다. (격물, 格物)

②     앎을 지극히 한다. (치지, 致知)

③     의지를 성실히 한다. (성의, 誠意)

④     마음을 바르게 한다. (정심, 正心)

⑤     몸을 닦는다. (수신, 修身)

⑥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 (제가, 齊家)

⑦     나라를 다스린다. (치국, 治國)

⑧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평천하, 平天下)

 

3-2. 경1장

 

경1장은 공자의 말을 증자가 서술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길 인간은 육체와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있고 이중에서는 육체보다 마음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음의 근원은 ‘성(性)’이고 ‘성’은 인간존재의 본질이다. 그것은 마음과 삶이 결합된 것으로 ‘살려는 의지’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덕(德)’은 ‘곧게 발휘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이다. 이는 ‘살려는 의지’가 변질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는 ‘덕’이 ‘밝은 것’으로 서술된다. ‘덕’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육체가 가장 완전한 삶을 유지하도록 하며 남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최선의 상태가 될 수 있다.

‘살려는 의지’는 우리로 하여금 피곤하면 쉬도록 배고프면 먹도록 심장이 잘 뛰도록 유도하지만, 덕이 없다면 남과 이기기 위해 ‘살려는 의지’의 명령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몸이 상하게 된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사람은 ‘살려는 의지’가 바른 방향으로 흐르고 이를 따르기 때문에 육체가 가장 완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덕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 이해 타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같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행동하기 때문에 남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일만 생기게 된다.

우리는 모두 본래 ‘덕’을 갖고 태어났지만 살면서 남과 경쟁하고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점차 ‘덕’을 잃는다. 『대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밝은 덕’을 밝혀 덕을 가진 사람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덕으로 타인을 대하면 타인도 결국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친민’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계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자연스레 지극히 좋은 상태가 된다. 이러한 사회를 일컬어 ‘대동 사회’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라는 뜻이다. 『대학』의 목적은 이러한 이상 사회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그곳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어지선’이다.

 ‘지어지선’을 위해서는 천하를 태평하게 해야 하는 데 천하는 각각의 나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나라는 가정으로 나눌 수 있고, 가정은 나로, 나는 몸으로, 몸은 마음으로 점차 구체적으로 좁힐 수 있다.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사물을 접하며 그것의 이치를 인식한다면 저절로 올바른 지혜를 가질 수 있고 이것이 널리 퍼져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다.

 팔조목 중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수신의 내용으로써 개인의 마음속에서 행해지는 과정이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수신의 결과로 개인의 몸 밖으로 퍼져 나타나는 효과이다. 따라서 모든 일에는 수신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3-3. 전1장

 

 전1장은 삼강령 가운데 명명덕에 관한 설명이다. 『서경』의 강고에서 덕을 밝히는 것, 태갑에서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아 그 명을 따르는 것, 제전에서 능히 큰 덕을 밝히는 것 모두 명명덕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인간존재의 본질인 ‘성, 살려는 의지’는 나와, 타인, 그리고 우주 만물에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려는 의지’는 나의 본질이 되기도 하지만 나에게 국한되지 않는 전체적인 존재이기도 하여서 그 전체성을 ‘천’이라고 표현하고 개별성은 ‘성’이라고 표현한다.

 

3-4. 전2장

 

 전2장에서는 친민을 설명한다. 탕임금의 세숫대야에는 ‘진실로 날로 새롭고 날로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말이 쓰여있는데 이는 몸을 씻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신한 정치를 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말은 친민과 깊은 연관이 있다. 누군가 모두를 위한 이론을 제시하여 권력을 얻게 되었을 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친민’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백성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의 입장에서 필요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과 내가 하나가 된 상태인 친민의 상태가 되어 백성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친민과 비슷한 ‘신민’은 새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사회를 위해 새로운 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수의 신민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

 

3-5. 전3장

 

 전3장에서는 어진 선왕들의 덕을 칭송하는 시들을 인용하여 명명덕한 사람이 백성과 하나가 됨으로써 나타나는 지어지선의 모습을 설명한다. 그중 『시경』의 대아 문왕편을 통해서는 지어지선을 위한 ‘인(仁)’과 ‘경(敬)’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인은 모든 사람들을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며 경은 본래의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고 곧게 나아가도록 마음의 상태를 간직하는 행동이다. 경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신하가 경의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충(忠)’과 ‘의(義)’이다. 충은 임금을 도와 백성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임금이 폭군이 되면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이다. 자식이 경의 마음을 갖는 것은 ‘효(孝)’이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나의 정신적 고향이자 행복의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바로 효이다. 부모가 자녀를 향해 경의 마음을 갖는 것은 ‘자(慈)’이다. 자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욕심이 나고 화가 나더라도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자녀를 믿고 위로해야 함을 의미한다.

 

3-6. 전4장

 

 전4장은 다른 장들과 달리 삼강령 팔조목의 해석이 아닌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도 백성들의 소송을 들어 시비를 가려주는 재판관이 존재했다. 그러나 공자는 아예 소송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소송은 대개 서로 이익을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는 것인데 공자는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던 밝은 덕을 잃기 때문에 소송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소송하던 사람들은 공자를 보고 자신이 잊어버렸던 본마음을 기억하게 되고 소송을 취하하게 되었다. 여기서 본마음이란 우주 만물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그 마음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공자는 소송에서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본마음을 회복시켜 소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3-7. 전5장

 

 지혜를 이룬다는 말인 ‘치지’는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치지에서 말하는 지혜란 인간의 성이 갖추고 있는 지혜로써 양지이며 인의예지의 지이다. 결국, 지혜를 이룬다는 것은 성을 회복한다는 말과 같다. 장재는 자기 존재의 본질은 ‘성’이고 타물의 존재 본질은 ‘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둘은 같다고 표명하였다.

 지혜를 이루는 것은 사물에 접근하여 그 사물의 이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나의 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나의 성은 타물의 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점차 자라며 자신의 성을 잃게 되고 지혜도 잃게 된다. 그래서 잃어버린 성을 회복하고 지혜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물의 이를 파악하고 그것이 나의 성임을 깨 닫아야 한다.

『대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하의 모든 사물을 접하도록 하고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사물의 이치를 근거로 더욱 궁리하여 가장 궁극적인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우리는 모든 사물의 이치가 하나로 정리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이치를 깨우친 사람은 행동할 때 자신만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지 만물 전체의 현상을 유지하도록 행동하게 된다. 『대학』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지혜를 이룬다는 말로 설명한다.

 

3-8. 전6장

 

전6장은 팔조목 가운데 성의를 해석한 부분이다. ‘성(性)’이란 단절되거나 왜곡됨이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의 형용사적 표현이며 이러한 성에서 발동되어 구체화된 마음이 ‘정(情)’이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에 존재하는 마음이 ‘의(意)’이다. 의는 성에서 발동은 했으나 정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마음을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성은 나의 존재의 본질이자 남의 존재의 본질이다. 남과 나를 동시에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인 성이 지속되다가 정이 되면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악한 짓을 많이 하고 타인에게 착한 척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식은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원래 착한 사람이라면 굳이 선행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선함이 전달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남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아닌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느냐이다.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덕을 갖추어야 하고 덕은 성에서 곧게 발휘되는 마음의 능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이 굴절되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대학』에서는 ‘성의’라고 한다.  

 

3-9. 전7장

 

 전7장은 팔조목 가운데 수신과 정심의 관계를 설명한다. 같은 이름의 감정이라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덕에 의하여 성이 그대로 발휘된 감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이 왜곡되어 발휘된 감정이다. 후자의 감정은 몸을 상하게 한다. 따라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음은 육체를 조종한다. 마음의 의지가 없다면 육체의 행위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몸을 닦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3-10. 전8장

 

 전8장은 팔조목 가운데 제가와 수신의 관계를 설명한다. 정은 몸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몸에서는 올바른 정이 나오게 된다. 착한 것을 향한 올바른 정은 그것을 더욱 착하게 만들고 나쁜 것을 향한 정은 미운 방향으로 향해 그것이 뉘우치도록 한다.

 그러나 닦이지 않은 몸에서 나오는 정은 정당한 정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착해서 좋아하는 마음이 아닌 다른 이유로 좋아하는 마음이 된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정을 줄 수 있다. 정은 두려움, 공경심, 동정심 등으로 인해 편벽될 수 있다. 그렇게 편벽된 정을 주면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을 받아도 고무되지 않고 미움을 받아도 뉘우치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한 이유로 좋아한다면 그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모른 척할 것이 아니라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자식의 나쁜 점을 보지 못한다면 그 나쁜 점은 어느새 크게 자라 가정을 망치게 된다. 이것이 몸이 닦이지 않아서 정이 편벽되면 그 집을 안락하게 만들 수 없다고 하는 이유이다. 집안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이 생기도록 몸을 닦아야 한다.

 

3-11. 전9장

 

 전9장은 팔조목 가운데 치국과 제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집은 나라의 소단위이다. 따라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기의 집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그 둘은 영역의 크기만 다를 뿐 인간을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같다. 집을 잘 다스리면 아이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이것이 나아가 효도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고 형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한다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서경』의 강고편에서는 백성을 갓난아기 보살피듯이 정성을 다하여 대하라고 얘기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仁)은 남을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한 집의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여 한마음 한뜻이 되면 그 집은 인하게 되는 것이고 그 인이 널리 퍼져 모든 백성이 인한 마음을 갖게 되어 나라 전체가 인하게 된다. 자신은 이익을 좋아하면서 남에게 착하기만을 요구한다면 상대방은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인을 갖춘 사람만이 어진 마음을 남에게 권하고 자신의 포학함을 없앤 후에 남의 포악함을 비판할 수 있다.

 서(恕)는 자신의 마음과 남의 마음이 같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잃을 남에게 권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남이 못하게 하지 않는다. 나라를 좋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인과 서를 명심해야 한다. 집에서도 인과 서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경』의 여러 편에서는 집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 집을 안락하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3-12. 전10장

 

 이 장은 치국과 평천하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시경』 소아 남산 유대 편에서는 덕을 가진 임금이 자기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을 헤아리는 방법을 가지고 다스림으로써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고 따르게 될 거라고 얘기한다. 한 나라의 임금이 그와 반대로 행동하면 백성들은 그를 버릴 것이고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백성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를 유지하려면 백성의 뜻과 하나가 되어 백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덕과 재물 중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덕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물을 우선시한다면 남을 아끼는 마음이 없어지고 재물을 갖기 위한 투쟁심이 생기게 된다. 임금이 백성의 재물을 거두는 것에만 관심을 두면 백성은 그 재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재물을 거두지 않고 나눈다면 백성들은 저절로 모이기 마련이다. 재주가 없어도 본마음이 순수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용납할 수 있기 때문에 백성을 편안하게 돌볼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이 신하를 등용할 때 그 사람의 재주 유무를 고려하는 것이 아닌 본마음의 순수성 유무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백성과 한마음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마음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 자신의 본마음은 남들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므로 그것을 실천한다면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재물을 원하는 것은 이렇게 본마음을 회복한 이후에 해야 한다. 본마음을 회복했다면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을 늘리고 정치나 교육 등에 종사하는 사람 중 불필요한 사람을 줄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생산은 늘고 소비는 줄어든다. 재물을 축적하는 목적도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임금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백성들도 물건을 횡령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이처럼 임금은 재물이 아닌 의로움을 우선시해야 나라를 좋게 다스릴 수 있고 이 마음이 퍼져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다.

 

감상

원래 나는 유교사상이 고리타분하고 옛것에 얽매인 사고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자나 유교 경전이나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는 거라고 치부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의 고정관념을 깨 준 고마운 기회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고민은 끝없는 의문을 물고 올 뿐 해답을 찾기는 힘들었다. 『대학』을 읽는 순간 세상의 이치에 통달하고자 노력했던 유학자들의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옛 유학자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다룬 내용은 여러 장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끌었던 장이 2개 있었다. 첫번째는 전5장이다. 그 장은 ‘지혜를 이룬다.’의 말 뜻을 정확히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고 그 뜻을 해석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혜롭다’는 말 뜻을 그냥 단순히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의미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보통 여기던 의미와 달리 이 말은 더 큰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지혜를 이룬다.’와 국어사전에서 다루는 ‘지혜롭다’의 의미는 모두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성과 이를 통해 ‘지혜를 이룬다’를 설명한 것은 매우 신선한 해석이었다.

두번째는 전6장이다. ‘성’, ‘의’, ‘정’, ‘악’ 네 가지의 용어가 뒤섞여 하나의 가르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상깊었다. ‘성(性)’에서 구체화된 마음이 ‘정(情)’이고 그 중간 과정에 존재하는 마음이 ‘의(意)’라는 연결 과정이 새로웠다. 그리고 이 장은 그 근거가 그럴 듯해서 더 신기하게 읽은 부분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성은 나의 존재의 본질이자 남의 존재의 본질이다. 남과 나를 동시에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인 성이 지속되다가 정이 되면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의 성립 과정을 정의내린 것 같았다. 성이 굴절되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의’라고 정의될 때는 정말 놀라웠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인 데 이 책은 이런 저런 마음들을 짧은 한 글자에 담아내어 설명하였고 또, 그것의 인과관계와 우리가 왜 옳은 것을 추구해야 하는 지 논리정연하게 설명하여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대학』이 아직까지도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꼽아 보았다. 첫 번째는 영원성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변해도 우리 모두는 남과 살아가는 삶에서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모두가 한번쯤을 해 볼 만한 고민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 같다. 이 책에 적힌 모든 말이 세상의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꽉 막힌 고민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고민하지 않는, 남과 더 이상 살지 않는 세상이 와야만 이 책이 그 영원성을 잃을 것 같다. 두 번째는 흥미성이다. 나는 이 책이 옛 문서의 이야기들을 인용하여 주장의 근거를 든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추상적이고 어렵다. 그러나 『시경』이나 『서경』 등 다른 옛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함께 설명되며 조금은 더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것 같다.

 

주안점

 

- 다른 사물의 성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만 하면 자기의 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맞는 설명일까?

 

: 장재나 정이, 주희와 같은 학자들은 나의 성과 타물의 이를 동일시하여 타물의 이나 성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나의 성 또한 그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신만의 성과 남의 성이 정말로 같을 수 있을까? 이 주장은 각각의 고유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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