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Tok/독서, 서평, 외국어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해석

EnerTravel 2023. 6. 3. 17:12
728x90

 

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 미셸 푸코의『감시와 처벌』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입니다.

 

 

 

작가 소개

 

미셸 푸코(1926.10-1984.6)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다. 구조주의란 언어적 기원을 파고드는 것으로, 즉 통용되는 일상적인 말을 분석하기보다, 표면적 의미 아래에 그런 의미를 뜻하거나 규정하는 숨어있는 것을 구조적으로 밝히려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한 부류이다. 이처럼 구조주의자들에게 언어란 항상 왜곡되고 은폐되어 투명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구조주의적 분석법을 다른 의미 양식에 적용함으로써 언어의 내밀한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 구조주의자였다. 특히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용한 법률과 억압적 통치 구조를 파헤쳤다. 또한 인간의 알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억압하는 권력과의 관계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즉 그는 지식이 권력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책 소개

저자는 국가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장치라고 할 수 있는 감옥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책이 권력의 정체를 폭로하고, 거대한 권력구조를 폭파할 수 있는 폭탄이 되기를 원했다. 흔히 감옥의 역사를 연상하게 되는 이 책은 사실상 역사적 서술이 아닌, 책의 앞부분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근대정신과 새로운 재판 권력과의 상관적인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목표로 씌어졌다. 그러므로 감옥, 죄수복, 쇠사슬, 처형장 등의 물질적인 형태뿐 아니라 범죄, 형벌, 재판, 법률 등의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푸코는 감옥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감옥과 감시의 체제를 통한 권력의 정체와 전략을 파헤친 것이다. 다시 말해 감시와 처벌권력이 인간과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적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기술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배경 지식

포스트모더니즘이란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체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을 뜻한다.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여성운동·흑인민권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근대 혹은 모던시대라고 하면 1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미셸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되었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 왔는지를 드러낸다. 미셸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지식과 권력 모두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이며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728x90

 

내용 요약(줄거리)

 

1부 신체형

 

(1) 수형자의 신체

서두는 1757년에 국왕을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붙잡힌 죄인이 끔찍하게 처형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펄펄 끓는 기름과 유황 불 등으로 지져진 후, 능지처참에 이르는 과정은 등골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 당시 처형에 이르는 과정이 그렇게 잔인했던 것은 당시 권력자들이 정치적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축제이자,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처벌하는 모습을 만인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였다. 권력자들을 비롯한 사법권을 가진 재판부는 형벌을 최대한 잔인하게 집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판결문 자체에 그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형벌을 집행하면서, 일반 평민들이 절대 군주에 대한 위엄을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이후 1837년 한 형무소의 규칙이 등장한다. 앞서 나온 공개 사형과 비교하였을 때, 자연스레 어떻게 새로운 법률과 체제가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전자는 다소 잔인하고, 정치적 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반면, 후자의 것은 고문이 지나칠 경우, 구경꾼들이 보다 못해 고문받는 사람의 편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심지어 난동을 부려 죄인을 풀어주기까지 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에 대한 두 형벌의 대상이 신체가 아닌 정신으로 옮겨감을 의미하며, 그와 함께 재판하는 대상의 본질 또한 변화하였다. 범죄자를 재판하는 동시에 정념, 본능, 비정상, 불구, 부적응, 환경 혹은 유전의 영향을 재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것들을 그림자라고 정의하는데, 이 그림자들이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속성이라고 보면 결국 그림자에 대한 처벌은 그 인간자체를 바꾸고 싶어 하는 권력의 욕망을 의미한다. 이로써 형벌은 범죄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개인을 감독하고 변화시키는 시도로 작용한다.

 

범죄자의 정신을 이해하고 교정하기 위하여 형벌집행인들이 아닌 행형시설의 관리, 의사,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교육자를 필요로 하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재판과정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라고 되어있지만, 실제로 이들의 평가는 재판 결과를 유보하거나 철회하게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사법기관과 법률 외적인 요소들과의 연계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법률 행위 내부에 비법률적 요소를 향상하고 지식과 기술과 담론이 총체적으로 권력과 함께 형성되고 교착된다는 것이다. 처벌은 복합적인 사회적정치적 결과물이며 형벌제도의 변화가 권력의 기술론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권력은 지식을 통해 복종하는 인간을 생성한다. 권력은 본래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서도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형벌제도는 명백하고도 규정된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권력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주체와 주변과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염두 해두어야 한다. 권력은 보편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권력의 양상은 권력을 행하는 기구나 양식의 특수성을 통해 드러날 뿐이다. 권력은 지배계층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지배계층과 피지배층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고, 이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이 없는 권력도, 권력이 없는 지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체를 연구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어느 일면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총체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신체를 지배하는 정신의 역사적 실재는 권력에 의해 규정된다.

 

(2) 신체형의 호화로움

신체형이란 형벌을 부여하는 일종의 기술로서 일련의 규칙과 과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형벌이 신체형으로 정의되기 위해서 어떤 분량의 고통이 만들어져야 하고, 거기에는 규칙이 수반되며, 형벌의 과정에 있어서 일종의 의식을 구성해야 한다. 신체형은 사법권의 위세를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마구잡이식 처벌이 아닌 정교하게 조직된 행사였다. 이러한 의식적 형벌의 집행은 희생자를 불명예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권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정교하게 조직된 과정이다.

 

신체형이 행해지던 시대의 사법절차는 모든 진행을 비공개로 진행했으며, 심문과 문서 작성에 있어 사법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칙들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무척 불리했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몇 가지 규칙들이 있었으나 이를 사법관만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 또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점이었다. 그럼에도 신체형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모든 사건이 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법관은 죄인에게 자백을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문이 발생한다. 고문 또한 엄격한 사법적 행위로 정제된 규칙에 의해 시행되었다. 그러나 고문에는 피고인이 강한 인내심으로 저항하여 자백하지 않을 경우 재판관이 직책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관과 피고인 사이에서 일종의 게임이 벌어지는 셈이었다. 이 경우 어느 정도의 증거가 확보된 상태이더라도 피고인에게 사형을 언도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죄질이 확실한 중죄인에게 고문을 가하지 않았던 이유도 고문에 저항할 경우 마땅히 받아야 할 사형을 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던 까닭이다.

 

형벌 당시의 대중 앞에서의 자백, 죄인이 저지른 죄의 재현, 신체형이 갖는 화려함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해보았을 때, 신체는 군주가 행사하는 권리를 질서 있고 강렬하게 표출하는 도구이다. 과거에는 군주의 의지와 법이 일치했으므로 법의 훼손은 군주의 인격, 나아가서는 군주의 신체를 해치는 행위였다. 이에 상응하여 신체형은 범죄자의 신체를 응징하여 군주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대중에게 공포심을 부여하는 작용을 했다. 신체형의 집행인은 국왕의 입장을 대변하는 결투사와 같았으며, 성공적으로 형을 집행했을 경우 갈채를 받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벌을 받기도 했다. 신체형의 집행으로써 군주는 범죄자가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표현하고 승리를 과시했다.

 

신체형의 주된 요소인 잔인성은 범죄의 끔찍함을 표상함과 동시에 징벌자의 분노를 나타냈는데 이 잔인성이 소멸한 데는 신체형 의식의 일부인 민중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민중은 군주가 행사하는 권리를 체험하고 공포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접 처형에 참여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는 신체형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민중이 처벌을 거부하여 불합리한 처벌을 받는 죄인이나, 연약한 죄인의 입에서 나오는 신성모독이나 왕권모독의 말들을 옹호하고 때로는 영웅시하기도 하였다. 혹은 범죄자들을 때로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규모로, 때로는 법과 권력에 대항한 저항자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더하여 신체형을 당함에 있어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어떤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셈이었기에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때로는 처벌이 민중이 권력을 거부하여 반항심을 폭발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8세기에는 식견이 있는 철학자들이 재판에 관여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하층민으로부터 발생한 소동이 권력의 민감한 반응과 정치적으로 불안한 사태를 낳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개혁자들은 권력을 과시하는 공포의 장이어야 할 형장이 오히려 민중을 결합시켜 사형집행인을 공격하고 죄인의 시신을 빼앗는 등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게 만드는 위험을 인지했다. 결국 처형이 단순히 민중을 위협하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되어 처형제도의 폐지를 요청하게 되었다.

 

2부 처벌

(1) 일반화한 처벌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범죄자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이 형벌 결정의 표적이 되며, 교정하고 변화시키는 대상이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러한 주장에서의 인간은 권력에 대한 척도로서의 인간이다. 그렇다면 척도와 인간성은 어떤 방식으로 상호 연결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1717세기말 이후에는 유혈범죄가 대폭 감소했고, 대신에 절도나 사기 같은 재산범죄가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면서 비판의 대상은 사법의 약체성과 극단성으로 향했고, 그 바탕인 군주제의 과잉권력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형벌제도에 관한 새로운 법 이론은 정치경제학논리를 담는다. 요컨대 사법관들이 그들에게 공통되는 목표로부터 출발하여 그들을 서로 대립시키는 권력의 갈등을 단서로 삼아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준비했던 것이다. 여기서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을 처벌하는 권력을 만들려는 생각이 나온다. 이러한 기호 기술론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주요한 법칙들에 근거한다 : 분량의 최소화 법칙, 관념성 충족의 법칙, 측면적 효과의 법칙, 완벽한 확실성의 법칙, 보편적인 진실의 법칙, 최상의 특성화 법칙

 

분량의 최소화 법칙: 범죄의 이익보다 형벌의 불이익이 더 높아야 하되 그 분량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관념성 충족의 법칙: 형벌 자체의 고통보다는 그 고통에 대한 관념을 충분히 인식시켜야 한다.

측면적 효과의 법칙: 형벌의 최대 효과는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커야 한다. 형벌이 범죄자에게는 최소한의 양이 되고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에게는 최대한의 양이 되게 해야 한다.

완벽한 확실성의 법칙: 범죄, 처벌에 관해서는 아주 명확하게 공시되어 누구나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보편적인 진실의 법칙: 형벌의 실무는 공통적인 체계, 과학적인 증명, 명백한 사실, 상식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은 공평한 진실이나 사법권력과는 상관없이 만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최상의 특성화 법칙: 모든 종류의 위법행위와 범죄는 그 성격이 규정되어 분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의 기호체계가 필요하고, 이는 범죄를 정의하고, 형벌을 규정하는 완전하고 명백한 것이어야 한다.

 

(2) 유순해진 형벌

처벌의 방법은 표상의 기술론 전체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 과거, 제재로서의 낙인이 신체형을 구성하였으나, 이제는 신체 처벌의 관념이 범죄를 지양하게 만드는 장애로서의 기호가 형벌의 새로운 장치를 구성해야 했다. 이 장애로서의 기호가 작동되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따라야 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범죄에 대한 형벌이 최대한 자의적인 것이어야 한다.

형벌은 범죄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법은 사필귀정인 것처럼 보여야 하며, 권력은 부드러운 자연의 힘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범죄에 유혹을 느끼게 만드는 욕망을 감소시켜 형벌이 두려운 것임을 깨닫게 하는 이해관계를 증대시키고, 죄와 벌 사이의 강렬한 비중관계를 역전시켜 형벌과 그것의 불이익이라는 표상이 범죄와 그에 따르는 쾌락에 관한 표상에 비해 훨씬 더 선명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는 범죄를 발생시킨 이해관계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유익하고 훌륭한 관심을 북돋아 주는 것이 있다.

3. 형벌의 시간적 조정과 배분이 효용성을 갖춰야 한다.

시간의 문제가 징벌 고유의 효력을 거두어야 하며 형벌의 내적인 구조는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수형자 측에서 형벌은 여러 가지 기호와 이익계산, 시간의 분배량 등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예로서는 수형자의 노동의 가시적인 모습은 사회에 도움을 줌과 동시에 수형자의 형벌이 만인의 정신 속에 범죄에 대한 징벌이라는 기호를 주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수형자의 처벌이 공중도덕에 대한 교훈, 담화, 판독 가능한 기호 등과 관련한 교묘한 경제적 광고효과를 산출해야 한다.

6.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범죄에 관한 전통적인 담론은 전도될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서 담론은 법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며, 보편적인 새로운 기호체계의 변함없는 원칙이 된다고 여겨졌다.

 

감옥은 효과와 표상으로서의 형벌, 일반적 기능의 형벌, 기호와 담론의 형벌과 양립할 수 없었기에 형벌로서의 감금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순식간에 감금은 징벌의 본질적인 형태가 되었다. 범죄의 성격과 형벌의 정확한 대응 관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점과 모순되게, 감옥으로 인해 다양한 범죄들을 획일적이고 단조롭게 처벌하게 된 것이다.

감금이 짧은 기간 안에 합법적 징벌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된 것에 대한 빈번한 설명은, 처벌하는 수단으로서 감금의 몇 가지 중요한 모형들이 고전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감금의 모형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 1596년에 개설된 암스테르담의 라스푸이다. 이곳은 수형자를 끊임없이 훈련시켜 교육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개조한다는 16C의 이론과, 18C후반기에 상정되었던 형벌 기술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었다. 강의 형무소는 수형자들을 경제적 인간과 더불어 종교적 양심을 재건하는 교정 시설이 되었다. 글루세스터는 독방에의 감금과 규칙적인 노동, 종교 교육의 강화가 부분적으로 실현된 감화원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월넛 스트리트감옥의 수감자에 관한 지식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월넛 스트리트의 행정당국은 수형자를 접수하면서 그의 범죄, 그것이 저질러진 상황에 관한 보고서, 그들이 감옥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 등 수형자에 관한 정보를 받게 된다. 이로써 감옥이 지식의 도구로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위에서 말한 교정 시설과 개혁자들에 의해 상정되었던 모든 징벌 형태들 사이에서 일치점과 차이점을 밝힐 수 있다. 일치점은 범죄를 예방하는 것으로 현실적, 잠재적 죄인을 개조하는 것이며, 징벌은 어떤 종류의 교정기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형벌을 개별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구한다는 것과 형벌의 제도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화에 따른 교정 기술을 규정해보려는 일이 문제 될 때, 교정시설과 개혁자들은 모형과 제안 사이에서 의견이 갈라진다. 개혁자들은 처벌에서 범죄자의 역할은 법전과 범죄라는 현상을 앞에 두고 기호 내용의 실상을 재도입하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교정은 기호체계와 그것에 의해 확산되는 표상의 강화를 통해 법 주체로서 개인의 재규정화 과정을 확고히 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교정 중심의 형벌 기구는 형벌의 적용 지점은 표상이 아닌, 신체 그 자체이고 시간이고, 날마다의 동작과 행동이며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는 지점의 정신이기도 했다. 처벌기관의 관여에 제시되는 기본 요소의 근본 원칙이 신체와 정신이기에 계산되고, 훈련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사람들이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은 사회계약의 기본적 이해관계 속에 걸려 있는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복종하는 주체이고, 습관이나 규칙, 명령, 권위에 복종을 강요당하는 개인인 것이다. 결국, 감옥의 출현과 함께 처벌하는 권력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처벌하는 권력은 사회의 기능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거나 교정시설이라는 폐쇄된 장소 속에 몰입되었다.

 

개혁자, 교정시설 어느 쪽이건, 18C 말 사람들은 처벌의 권력을 조직화하는 세 가지 방법에 직면하게 되었다.

1. 낡은 군주권에 기반을 가지고 여전히 작용하던 방법, 신체형이다.

2. 개혁적인 법학자들의 계획안에서 처벌은 개인을 법의 주체로 재규정하기 위한 것으로, 징벌의 장면을 보여주어 처벌을 표상의 총체적 기호체계로 이용하려는 방법이다.

3. 감옥 제도가 구상되는 계획에서 처벌이 개인에 대한 강제권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계열은 18C 후반 상호 출동하는 세 가지 형벌 구조의 특색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처벌의 권력이 의존해서 행사되는 방식들로서의 세 가지 권력 기술론이다.

그 중, 어떻게 하여 강제권의 기술이 주도적인 것으로 부각되었는지, 또한 강제권, 신체, 독방, 비밀을 중심으로 한 처벌 권려의 모형이 어떻게 표상 무대, 기호, 공개, 집단을 중심으로 한 모형으로 교체되었는지에 대해 저자는 물음을 던진다.

 

제3부 규율

(1) 순종적인 신체

권력은 신체의 수사학을 통해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권력의 목적에 따라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체란 전근대시대에 고문의 대상이 되었던 형벌의 대상으로서의 신체가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는 정치경제 영역의 대상으로서의 신체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신체는 권력의 축약된 모델로 그들의 명령에 따라 조종당하는 하나의 ‘자동인형’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부터 신체는 분명히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었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새롭게 기술적인 측면을 도입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치밀한 형태로 신체를 복종시켜 나갔다.

 

첫째, 피지배자의 신체는 분해되어 그 마디마다 미세한 권력의 투입이 가능해졌으며, 둘째, 외적요소보다 동작의 구조나 유효성 등이 중요해지면서 통제의 대상이 내적 조직으로 변화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도식 가능한 활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권력이 피지배자들에게 작용되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활동 과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체계적으로 권력을 피지배자들의 신체에 적용시키기 위한 ‘훈련’과, 신체를 기호체계화하고 영구적으로 복종시키기 위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권력이 하나의 장치가 되어 신체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역학의 기술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신체는 유용성은 높아지면서 반대로 저항력은 낮아지는 ‘순종’적인 성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효율적으로 ‘순종’, 즉 ‘복종’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 중 한 가지는 분할의 기술이다. 먼저 그 시작을 폐쇄성으로 특정 지을 수 있는데, 규율은 피지배자들의 장소를 타인과 분리시킴으로써 그들을 일련의 ‘질서와 규율’의 행렬에 위치시킨다. 예를 들어, 사립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시킴으로써 그들이 부여하는 공간의 틀에 학생들을 가두고, 대량 생산의 기능을 맡는 공장도 직공들을 건물 안에 집합시켜 오직 권력자들의 신호에 따라 노동력을 움직인다. 그들이 폐쇄성을 의도하는 이유는 지배자들의 목적에 방해되는 외적 요소를 차단함으로써 의도하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도출해 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만일 폐쇄성만을 규율의 장치로 삼았을 경우에, 권력자들은 피지배자들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도 바깥세상과 같이 작은 사회를 만들어 권력에 방해되는 요소를 점차 만들어낼 것이라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로 인해 더 구체적으로 권력자들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개인의 위치를 결정하고, 분할함에 따라 집단으로의 도모를 막아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마치 수도원에서의 칸막이 방과 같은 개인의 고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피지배자들을 파악하기 쉬운, 힘없는, 고독한 존재로 전락시켰다.

 

또한 그들은 공간에 특정한 기능을 부여시켰다. 즉, 공간은 권력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분화되어 공간에 대한 감시를 더욱 철저히 받았던 것이다. 분할된 공간이 맡은 바 그 용도를 다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감시시설, 감시기술이 중요시되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의 항구라고 함은 각종 전쟁물자들과 전쟁병사 등이 유입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임과 동시에 질병의 전염이나 병사의 도주 위험이 있는 위험지역이기도 했는데, 권력자들은 이러한 이중적인 공간의 속성에서 득이 되는 요소만을 여과시키기 위해 의학적 보호, 탈주병의 군사적 통제 등을 만들었다. 즉, 그들이 분할시킨 공간을 오직 유용한 쓰임으로만 기능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이 공간을 분할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않았던 요소는 ‘경쟁’이다. 권력은 ‘질서와 규율’의 기준에 따라 집단이나 공간 각각을 서열화했지만, 그러면서도 영원히 고정된 서열은 피함으로써 피지배자들이 상위에 위치하고자 하는 경쟁심을 부추겼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조를 나누어 대결적인 양상을 만들고 그 승패를 결정했다. 학생들은 집단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부여하는 ‘질서와 규율’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이것은 그다지 많은 공을 들이지 않고도 학생들을 ‘상호적으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운동의 요소’로 편입시키기에 충분했다.

 

권력자들은 건축 기술학을 통해 규율의 운용을 조직화했고, 이것은 시간의 효율성을 최상의 상태로 증진시키면서 그들이 작성하는 경제표인 ‘일람표’가 꽤 만족스러운 내용으로 서술되도록 도움을 줬을 것이다. 일람표를 작성한다는 것은 그들이 피지배자들의 지식과, 공장물품, 군사경영의 생산과정을 통제하고 조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일람표를 통해 추상적인 가치의 척도가 등급화되고 서열화되면서 개인의 능력은 개별화되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권력자들은 개별적으로 평가된 능력이 집단의 한 부분이 되도록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푸코가 말했듯이 ‘독방 중심적’이라는 권력의 전술이 권력의 미시 물리학을 위한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방 중심적’인 권력 기술에 이어 권력자들은 시간표를 만들어 활동을 통제했다. 즉, 24시간을 분할하여 피지배자들의 시간이 권력자들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시간에 엄정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본래 수도원 사람들이 회원들의 시간 씀씀이를 지표로 그들의 신앙심을 평가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근대시대에서는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학생들의 문제풀이능력을 최대화시키기 위해서 규칙적인 시간표를 만들었다. 이것은 대략적인 시간의 분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세밀화되면서, 초의 단위로까지 피지배자들의 시간을 지배할 만큼 체계화되었다. 권력자들은 시간의 낭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시간표를 작성하고자 했으며, 이것은 피지배자들에게 정확성과 집중을 요구해서 할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정신과 육체의 포화상태가 일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즉 그들은 권력이 시키는 일만 할 수 있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권력자들이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을 엄밀하게 말하면 시간을 해부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권력자들은 시간을 해부하고 시간, 분, 초, 또는 초보다 더욱 작은 단위의 시간마다 행동을 명령했다. 이들은 언제나 시간을 가장 완벽하게 사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들이 요구하는 행동은 단 하나의 여유와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권력자들은 시간을 통제하면서 효율성과 성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명분 뒤에는 피지배자들의 동작을 한눈에 주시함으로써 단 하나의 오류라도 걸러내고자 하는 권력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피지배자들은 이에 따라 권력이 요구하는 동작을 몸과 일체화시켜야 했고, 이것은 연필 쓰기의 올바른 자세, 망치질을 하는 동작, 더 나아가 일종의 군사작전의 규칙으로 자리매김하여 명시화·강제화 되었다. 시간은 이용의 원리를 통해 신체를 소비시킨 것이다. 시간으로 활동을 통제하는 것은 ‘독방중심적’인 기술에 이어서 자연적이고도 ‘유기적’인 신체를 만들기 위한 권력의 기술방법 중 하나였다.

 

공간을 분석하거나 시간을 자본화시키기 위하여 권력자들은 네 가지 절차를 사용한다. 첫째, 시간의 각 부분은 특정한 경계의 끝 지점까지 닿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피지배자들이 어느 한 단계가 끝냈다고 해서 자율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다음 단계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단계들은 하나의 분석적 도식에 속해서, 단순하고 기본적인 동작과 행동이 강조되었다. 셋째, 권력자들은 피지배자들의 동작에 목적, 즉 목표를 부과하였으며 이것에 대한 평가를 시험으로 택했다. 넷째, 연속적인 계열화의 확립과정을 통해 개인은 수준이나 능력에 따라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규정받는다.

 

이렇게 연속화된 활동의 계열화는 권력의 끝없는 연장선으로 파악할 수 있다. 권력이 개인을 원자화시키고 배열하였으니, 피지배자들을 하나의 데이터로 파악하고, 그들을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권력을 미화하는 방법은 그것을 진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행정과 경제면에서 봤을 때, 권력은 ‘진보’하는 진화였고, 규율의 기술을 봤을 때, 권력은 ‘생성’을 촉진시키는 진화였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들이 생산 공장이나 인쇄소를 통해 직공들의 생산성을 가속화했고, 이것이 역사 속에서 ‘진보’했던 진화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권력의 진화방식에 따라 발전되어 왔다. 이것은 즉, 어쩌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권력에 대한 복종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권력자들이 공간과 시간의 분할로 얻은 힘의 산물은 다시 한번 조립될 필요가 있었다. 전근대시대의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배치대신 전체의 일부로써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배치가 요구된 것이다. 이것은 빈틈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계장치’를 만들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기계장치에서 주요 변수로 작동하는 것은 다른 기계장치와의 연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지 신체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영향을 미쳐 피지배자들의 시간이 늘 다른 시간과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끊어낼 수 없는 권력의 순환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힘의 조립을 위해서는 권력자의 명령이 필요했고, 그것에 순응하고 복종하며 반사적으로 행동할 피지배자들의 숙련도 필요했다. 권력자들은 하나의 ‘전술’을 만들어 피지배자들의 자동적인 복종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규율을 인식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것이 형법이나 그것에 대한 제재보다 사소하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근대사회의 권력은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들어 인간의 일상을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권력이라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누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움직이는 지도 모르고, 심지어 권력자들의 존재조차도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소하고 일상적이라는 말을 뒤집어보면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너무 작아서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원하는 장소에 있을 자유, 시간을 관리할 자유, 편하고 익숙한 동작으로 행동할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규율은 일상부터 파고들어 단순히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통째로 지배해서 인간을 기계화한 것이다. 이제 근대사회의 시작부터 이어져 온 권력의 통치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서, 권력이 없어지게 되면 신체와 정신의 쓰임을 어느 방향으로 작동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면에서는 권력은 어쩌면 필요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피지배자들만이 서열에서 유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들도 언젠가는 서열의 순위에서 밀리고, 과거의 피지배자가 권력자들의 위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권력의 실체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효과적인 훈육방법

권력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것을 일률적으로, 그리고 전체로서 굴복하게 만드는 대신 분리하고 분석하고 구분하며, 그 분해 방법은 필요하고 충분할 정도의 개체성에 이를 때까지 계속 추진된다. 규율을 근간으로 하는 권력의 성공은 아마도 단순한 수단을 사용한 점에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 수단이란 위계질서적인 감시의 눈빛, 규범화된 상벌제도, 그리고 이들을 이러한 권력에 특유한 방식인 시험을 통하여 결합시키는 방식 등이다. 군대의 야영지로 예를 들자면, 그것의 통로의 기하학적 배열 텐트의 수량과 배치, 텐트 입구의 방향 설정 가로 세로열의 배치 등이 정확이 규정되고, 그로 인해 서로 감시하는 시선의 그물눈이 가려지게 된다.

규율의 제도는 인간행위를 관찰하는 현미경처럼 기능하는 통제장치를 확산시켰다. 그 제도로 실현된 미세하고 분석적인 분할에 의해 사람들 주위에는 관찰 기록 그리고 훈육의 기구가 형성되었다. 그 제도로 실현된 미세하고 분석적인 분할에 의해 사람들 주위에는 관찰, 기록, 그리고 훈육의 기구가 형성되었다. 관찰을 목표로 한 이러한 장치 속에서, 어떻게 시선들을 보다 세분하고, 그것들 사이에 중계나 연결수단을 확립할 수 있을까? 그러한 여러 시선의 계산된 다양성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동질적이고 연속적인 권력이 생기도록 할 수 있을까? 완벽한 감시의 장치라면,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영구히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중심점이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을 비추는 광원이 되는 동시에 알아야 될 모든 사항이 집약되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시는 생산도구에 내재해 있는 부품인 동시에, 규율과 징계의 권력 안에서 작동하는 특정한 톱니바퀴인 한 경제의 결정적인 작용요서가 된다. 감시의 여러 기술에 의해서 권력의 물리학 그리고 신체에 대한 지배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과격한 행위, 힘이나 폭력에 포소 하지 않고, 광학과 역학의 모든 법칙, 그리고 공간, , , 다발, 비율 등의 모든 작용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더욱더 교묘하게 물리적으로 될수록 표면적으로는 한층 덜 신체 중심적으로 되는 그러한 권력인 것이다.

규율의 구조는 일종의 하위의 형벌제도를 확립해 둔다. 즉 법률에 의해서 공백인 채로 방치되어 있는 공간을 바둑판 모양으로 분할하여 대규모의 형벌제도가 무심히 지나쳐 버린 모든 행위들을 평가하고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규율 중심적 형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규칙위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일체의 사항, 모든 일탈행위이다. 또한 규율에 따른 징벌은 일탈행위를 없애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 벌은 본질적으로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벌로 시키는 숙제). 그리고 규율에서의 처벌은 보상제재라는 22 중적 체계의 한 요소일 뿐이다. 서열이다 등급에 의한 분류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차이를 명시함 & 상벌을 주는 목적). 요컨대 규율 중심의 권력의 체제 속에서 처벌의 기술은 속죄를 목표로 삼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정확히 억압을 목표로 삼지도 않는다 (사법적 형벌제도와 모든 항목에서 구별됨). 시험은 감시하는 위계질서의 기술과 규격화를 만드는 상벌제도의 기술을 결합시킨 것으로 학교는 전 학기에 걸쳐서 교육활동을 배가시키는 끊임없는 일종의 시험기관이 된다. 시험은 권력행사의 일정한 형태와 지식 형성의 일정한 형식을 연결 짓는 구조를 갖으며, 권력 행사에 있어서 가시성의 경제를 역전시켜 놓는다 (개체들이 보여져야 함). 시험은 또한 개인을 자료의 영역 속으로 집어넣는다(개인적인 것을 권력관계의 내부로 끌어들인 최초의 형식화를 나타냄). 시험은 기록에 관련된 모든 기술을 통하여 각 개인을 하나의 사례, 즉 케이스로 만든다, 지식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권력의 포획물이 되는 그러한 사례이다.

 

봉건제도에서는 개인화가 군주권이 행사되는 편에서 거나 권력의 상층부에서 최상의 것이 된다. 많이 권력을 보유할수록 개인으로서의 특성을 더 드러내기 때문이지만 규율 중심의 체제 안에서는 개인화가 오히려 하강 지향적이 된다. 즉 정상을 기준으로 삼는 비교의 척도에 의해서 공적에 의해서 라기보다는 차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규율의 체제 안에서는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개인화하고 환자가 건강한 사람보다 먼저 개인화하며, 광인과 비행자가 보통사람이나 비행자가 아닌 규범인보다 더 개인화한다.

 

(3) 판옵티콘 감시체제 / 일망 감시방법

[나환자 관리에서 페스트 관리의 방법으로의 전환]

페스트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모든 외출은 금지되었고, 구역들로 세분화되었으며,, 감독을 받았다. 밖으로 나갈 시 사형 당했다. 감독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권력에 의해 조사를 받으며, 모든 것이 기록되고, 줄곧 검사, 구분된다. 규율은 분석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페스트의 취급은 나병환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나병환자는 배척, 추방-봉쇄되어 개개인의 분화는 중요하지 않다. 분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환자를 페스트 환자처럼 다룬다. 감금의 혼란스러운 공간에 규율의 치밀한 세분화를 투사한다. 공간을 조직하고 추방된 자들을 개인화하며 그 추방을 명시하기 위하여 개인화의 방식을 사용한다. 과거 나환자들의 추방을 이제는 전혀 다른 대상들에게 적용시킨다. 비정상인들을 측정, 통제, 교정하기 위한 모든 기술과 제도가 페스트의 규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망 감시시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창문에 대응하며,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있어서 빛이 독방에 구석구석 스며든다. 중앙의 탑 속에는 감시인 한 명을 배치하고, 독방에는 한 사람씩 감금한다. 역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감독자는 수감자의 윤곽을 정확히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그를 볼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대상이 완전히 개체화된다. 개체화된 수감자는 권력의 자동적 기능 아래 가시성의 지속적, 의식적 상태로 끌려간다. 즉 감시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언제 감시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감시자의 시선을 스스로의 행동 속에 무의식적으로 반영한다. , 수감자 자신이 권력의 주체가 된다.

이러한 감시의 방법은 죄수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불충분하지만, 죄수는 실제로 감시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충분한 방법이다.

권력의 근원은 군주와 같은 어떤 인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표면, , 시선 등의 신중한 구분 속에, 그리고 내적인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관계 속에 있다. 따라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장치만이 있을 뿐이다. 권력은 점차 무형적인 것이 된다.

또한 일망 감시시설은 인간에 관한 실험을 할 수 있고, 또한 인간에게 적용되는 변화를 확실하게 분석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공간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식 권력이 작동하며 개인화가 이루어진다.

 

[일망 감시시설의 효과]

일망감시시설은 병원, 작업장, 학교 등 어떤 임무나 행위를 부여해야 하는 개인들을 상대해야 할 때 유용하다. 이는 권력대상의 수를 증가시킬 수 있으면서, 권력행사의 수는 줄일 수 있다. 또한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고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운용되며 효과는 다른 기관과 연결되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작동한다. 건물과 배치 외에 다른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이러한 감독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권력이 강화되어도 폭정의 위험이 없고 오히려 민주적으로 통제된다.

페스트 관리의 권력에서는 완벽한 통제이지만 폭력적인 모델인데 비해 일망 감시방법은 전혀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서 개인을 통제한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생산성과 발달의 결과를 가져온다. 비가시적 감시의 대상으로 유입된 개인의 자발적인 통제 행위는 사회의 여러 역량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권력의 물리학이 성립된다. 권력의 강력한 힘은 군주에게서 아닌 여러 관계에 의해 개인화되는 신체 속에서 발생한다.

 

[규율의 확대 재생산]

규율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봉쇄적인 규율(페스트적인), 부정적인 기능으로 치우친 폐쇄적인 기구로서의 규율이며 / 다른 하나는 일망 감시방식을 포함한 메커니즘의 규율에 있다.

(1) 규율의 기능적인 전환

규율에 대해서 사람들은 개개인의 효용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적극적인 역할을 원하게 되었다. 규율은 유용한 개인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작용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주변적 위치에서 벗어나고, 추방이나 속죄, 감금이나 후퇴 등의 형식에서 멀어진다. 종교적인 규칙성과 폐쇄성과의 연결은 끊어지고 생산적인 부문에 정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공업 생산, 지식 전달, 능력과 수완의 보급, 전쟁 기구 등 중요한 기능들과 연결된다.

(2) 규율 구조의 확산

규율의 시설들이 다양해지는 반면 구조 그 자체는 자유로운상태에서 확산되는 보인다. 이제 통제 방식은 유연성을 확보하여 여러 통제시설들을 근거로 삼아 확산된다.

(3) 규율의 메커니즘에 대한 국가관리 : 경찰조직

고전주의 시대에 경찰은 절대 왕정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규율과 연결된 경찰 조직의 권력은 모든 것을 대상화해야 하는 책무를 수행하게 된다. 사소한 여러 가지 사건, 행동, 행위, 여론, 등 모든 일을 관찰한다. 경찰이 있으므로 우리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나, 일시적인 현상이라도 완벽하게 추적하려는 경찰의 무한한 단속대상이 된다. 이것은 무한히 작은 정치권력이다. 18세기 경찰 조직은 범죄자의 추적, 사법기관의 보조역할, 정치적 통제를 위한 도구 등의 본래의 역할 외에 징계적인 역할을 덧붙여 갖고 있기도 했다. 경찰 조직을 통해 규율의 일반화가 가속화된다..

(4) 일망 감시시설의 역사화

벤담의 일망 감시시설은 계획에 그쳐 버리고 말았지만 그 욕망이나 메커니즘 자체는 역사 속에 현존하고 있었다. 율리우스는 벤담의 이 계획을 하나의 완결된 역사 과정을 파악하였다. 현대 사회는 거창한 구경거리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인 것이다. 프랑스 근대사에서는 특히 나폴레옹 1세의 존재가 상징성을 갖고 있는데, 그의 존재는 통치권의 군주적이며 제식본위의 행사와, 무한정한 규율의 위계질서적이고 지속적인 행사가 접합되는 지점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대의 권력과 근대 권력의 접합 지점에서 나폴레옹의 절대 권력은 최대로 발휘되었다.

 

[규율 사회의 형성]

(1) 다수의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기술

규율 권력의 기본적인 전술은 1)1) 경비가 들지 않고 2)2) 권력의 효과가 최대한으로 파급, 확산되며 3)3) 이러한 경제적인 증대와 권력이 행사되는 기관과 결부, 세 가지다. 규율의 이러한 세 가지 목표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역사적 상황과 일치하는데, 18세기에 갑자기 늘어난 엄청난 인구증가이다. 이제 권력은 선취-폭력이라는 낡은 원칙에 대신하여 규율을 통해 부드러움-생산성-이익의 원칙을 갖게 되었다. 이 원칙에 의거하여 규율은 다수의 인간과 생산 장치의 다양화를 조정할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

(2) 효율의 극대화 : 교묘한 방식으로의 객체화

규율은 집단 다수의 본래적이고 적대적인 힘에 맞서서 연속적이고 개체화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집단 다수의 개별적인 요소가 갖는 특별한 혀용을 증대시키면서 가장 신속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수단을 이용한다. 신체로부터 최대한의 시간과 힘을 추출하기 위하여 시간표, 집단 훈육, 역습 등 총괄적인 동시에 상세한 감시 등 정체적 방안이 마련된다. 효율성을 위해 규율은 다수의 조직 안에 있으며 다른 여러 기능과 연관을 맥고 경제적으로 운용된다.

(3) 인간의 축적, 자본의 축적 : 규율의 인간 신체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을 필수 요건으로 움직이는 자본의 축적을 가속화시켰다..

(4) 계몽의 역설 : 법률적으로는 평등주의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했지만 동시에 규율은 불평등주의적이고 불균형적인 권력의 모든 체계를 형성했다. 자유와 평등이 규정된 시대였지만 규율은 힘과 신체의 복종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 계몽주의 시대는 또한 규율을 발명한 시대였다.

(5) 규율의 고착화, 불변화 : 규율을 대체할 것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그것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기기도 한다. 규율이 그 실제에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도처에서 권력관계의 불균형을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회와 그 균현의 토대 자체라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규율이 물리적-정치적인 하나의 기술집합체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잘것없는 형태이긴 하지만 모든 도덕의 구체적인 형태로 계속 통용되게 만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6) 규율에서 지석 권력으로

규율은 통제의 수단으로 움직이는 기술적인 단계를 넘어서 각 기관과 연결되어 질서화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권력의 모든 확대가 가능한 모든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구가 되어버렸다. 규율의 요소 안에서 임상의학, 정신의학, 아동심리학, 교육심리학, 노동의 합리화 등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체계에 고유한 이러한 관계를 그 출발점으로 해서였다.

 

제4부 감옥

(1)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

감옥은 인류에의 접근을 확실히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력이 사법제도를 지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를 위해 자칭 평등한재판, 불균형한 사법 장치 등의 특정한 지배방식을 도입했다. 감옥은 세 가지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유의 박탈, 시간에 따른 형벌의 수량화, 개인을 변모시키는 도구 등이다. 감옥의 발달과 함께 여러 형태의 기술체계도 생겨났는데 이를 테면 증거조사, 감옥의 기능 통제 혹은 개선 단체, 다양한 출판물들이 그것이다.

발타르는 감옥을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라고 했다. 감옥은 끊임없는 규율과 징계의 기구이며, 기능이 중단되지 않는 완벽한 교정시설이다. 이러한 감옥은 세 가지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격리이다. 이를 통해 범죄를 저지하고, 교정을 촉진하며, 권력의 행사를 보장한다. 둘째는. 노동을 통한 수감자들의 변화이다. 노동을 통해서 육체, 정신적 구조에 영향을 미쳐 질서와 규칙성을 배우고 또한 권력의 엄격함을 전달하며, 감시를 행사한다. 수감자는 생산의 주체임과 동시에 생산물 자체이다. 셋째는. 감옥권력의 증대이다. 형벌이 재판상의 결정이라도 형벌의 전개는 사법권이 직접적인 권한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감옥의 실무자들 즉 간수들, 소장, 부속 사제, 또는 교사가 더 훌륭하게 본래 목적을 수행한다. 이렇게 하여 감옥의 독립선언이 이루어졌다.

재판관들은 감금 기구에 대한 감독권을 요구하여 행형 담당의 재판관이 생겨났다. 감옥은 수형자들에 대한 관찰의 장소이다. 일망감시 장치는 수형자에 대한 감시와 기록을 수행하는 체계이다. 행형장치가 사법의 범위에서 수형자를 받지만 그것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은 범법행위, 범법자가 아닌 비행자이다. 비행자는 판단근거가 행위가 아닌 생활태도라는 점에서 범법자와 다르다. 비행자에 대한 관찰은 개인의 전기적인 조사에까지 이른다. 그의 성향, 경향, 선례 등을 아는 것뿐 아니라 그것들은 통제하고 정정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내적 제안과 그 객관적 실재는 서로 적용시키고, 형성시키며, 수단을 적용시키는 등 서로를 형성하고, 나타낸다. 범죄는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이다. 감옥은 은밀히 처벌되는 권력의 객관적인 영역을 상징한다.

 

 

(2) 위법행위와 범죄

감옥은 형사사법의 대 실패작으로 비난받는다. 감옥은 범죄발생률을 감소시키지 못한다. 즉, 아무리 감옥을 확장하고 늘리고 변화시킬 수 있다 해도, 범죄와 범죄자의 수는 일정하거나 오히려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구금은 재범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서 죄수들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그곳에 다시 들어갈 기회가 이전보다 더 많아지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감옥이 수감자들에게 부여한 생활방식 때문에 감옥은 어김없이 비행자들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독방 속에 격리시킨다거나 나중에는 쓸데없는 노동을 그들에게 부과한다는 것은 어쨌든 사회 속에서의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무익하고 위험한 반자연적인 생활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둘째, 감옥은 수감자들에게 극단적인 부자유를 강요함으로써 범죄자를 만들어낸다. 셋째, 감옥은 비행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계층질서를 이루고 미래의 모든 공모관계를 예비하는 비행자 집단의 조직을 가능하게 만들며, 그것을 조장한다. 넷째, 석방된 수감자들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운명적으로 재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경찰의 감시 아래 있기 때문이고, 거주지가 지정되거나 체류가 금지되기 때문이며, 어디를 가든 지니고 다녀야 하는, 유죄판결이 기재되어 있는 통행허가증을 발급받고서야 석방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감옥은 수감자의 가족을 빈곤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비행자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감옥에 대한 비판은 시종일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감옥이 교정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그곳에서의 행형기술이 초보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교정에 역점을 두면 감옥에서 징벌의 효력이 상실되고 진정한 행형기술은 가혹한 행위이며 직접적으로는 감옥의 내적 경비와 간접적으로는 감옥에 의해서도 억제되지 않는 비행성으로 인한 손실 비용 때문에 감옥은 이중의 경제적 오류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감옥은 분명히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자체의 목표를 버리지 않고 있다. 위법행위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다른 모든 형태의 위법행위를 상징적으로 요약하면서도, 사람들이 묵인하고 싶어 하거나 묵인해야 하는 것들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는 어떤 형태의 위법행위를 도안하여 별도로 취급하고 강조한다. 이러한 형태가 바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비행이다. 비행을 위법행위의 가장 격심하고 가장 해로운 형태, 다시 말해서 그것이 나타내는 위험 때문에 형벌 기구가 감옥을 통해 그야말로 줄이려고 애써야 하는 행태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오히려 위법행위들을 구별하고 정돈하며 통제할 수 있게 하는 형법체계의 결과이다.

대상으로서의 범죄를 설정하는 과정은 위법행위들을 분리하고, 그것들로부터 비행을 격리하는 정치적 조작과 일체를 이룬다. 감옥은 이 두 가지 기제의 접합점으로 그것들로 하여금 서로를 보강하고 범법행위 뒤에 놓여 있는 비행을 객관화하며, 위법행위의 움직임 속에 비행을 고정시킬 수 있게 해 준다. 감옥의 성공은 그토록 대단한 것이어서, 한 세기 반에 걸친 ‘실패’ 후에도 감옥은 언제나 존재하면서 동일한 효과를 낳고 있으며, 감옥을 폐지하자고 하면서 사람들은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실정이다.

 

(3) 감옥 체계

푸코는 감옥제도가 공고히 형성되는 시기를 18401 얼22일 메트래의 소년감화원이 문을 연 때로 본다. 메트래는 강제적 기술체계가 집중되어 있는 모범기관으로 가족모형, 군대모형, 작업장 모형, 학교모형, 사법기관의 모형이라는 5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수감자를 통제한다. 이를 탁월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간부들을 양성하는 전문학교를 감화원 안에 설치했다. 이 학교에서 간부들은 수감자들과 똑같은 수습과 강제력을 실제로 행함으로써 습득되고 전달되는 ‘인간성’에 기초한 학문으로써의 규율의 기술을 익힌다. 또한 규율을 근간으로 통제책들은 의학, 정신의학의 틀에 둘러싸여 과학성의 형식을 갖추었다.

감옥체계의 치밀한 제도는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감금의 역할을 하게 했다. 이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수감의 원인이 무질서에서 법률위반으로, 법률위반에서 규칙, 규범의 일탈 등으로 서서히 변화한다.

다양한 절차를 통해 다양한 비행자들의 징집을 가능케 한다.

처벌권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형벌행위의 관용의 기준을 떨어뜨렸다.

새로운 형태의 법인 규범을 개발하여 합법성과 자연성, 규칙과 구조를 절충시켰다.

신체에 대한 현실적 지배와 동시에 신체에 대한 영속적 관찰을 확고히 한다.

감옥의 견고성을 뒷받침해 준다..

오늘날 감옥에 대한 문제는 교정의 역할을 실행하는가, 감옥에서 재판관, 정신병의사, 사회학자 등이 간부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규범화 장치들의 확산과 새로운 객관화의 정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권력효과에 대한 것이다.

 

신체형에서 감옥체계로의 변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중요한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권력의 중심이 아닌 다양하고 복잡한 조직망이 존재한다.

감옥 체계로 된 도시 모형은 다양한 성격, 요소를 대상으로 한 전략적 배치이다.

감옥은 법륜, 법전, 사법기구의 산물이 아니며, 법원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법원이 감옥에 종속되어 있다.

감옥은 고통을 덜어주고 치료하고 구제하는 다양한 장치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장치의 목적은 획일적으로 법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격과 역할을 가진 모든 각종의 위법행위들에 관련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기구나 제도의 운용이 아닌 전투의 필연성과 전략의 규칙이다.

 

복잡한 권력관계의 결과와 도구, 다양한 ‘감옥’ 장치들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와 힘, 그러한 전략의 구성요소인 담론의 대상들 사이에서, 곧 중심적이고 중앙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시를 들어야 한다.

 

감상

가장 파격적이었던 부분은 책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잔인해서 눈을 찡그릴 만큼 징그러웠기 때문이다. 흥미를 돋우는 강렬한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책의 전체적인 큰 부분들 요약하자면, 1부의 내용은 권력과 형벌의 밀접한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즉,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잔인한 형벌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한 것. 2부는 형벌과 군중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군중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바로 형벌. 3부는 규율에 관한 내용이다. 유럽의 다양한 교육제도들이 나오는데, 군대 이야기도 나온다. 일정한 규율은 사회 전반의 조직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는 점. 4부는 감옥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옵티콘이 등장하는데, 아마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