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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BookTok은『시계태엽 오렌지』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작가 소개
저자 | 앤소니 버지스 (Anthony Burgess)
본명은 존 앤소니 버지스 윌슨으로, 1917년 맨체스터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다. 1919년 어머니를 여읜 후 이모와 양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2차 대전에 참전했다. 1946년부터 버밍엄 대학과 교육부에 재직했으며, 틈틈이 작곡을 공부했다. 1954년 말레이와 브루나이에서 장교로 복무하며 말레이 삼부작을 완성했다. 영국에 돌아와 뇌종양 판정을 받고 12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이때부터 홀로 남을 아내를 걱정하여 열정적으로 소설 집필과 평론, 연구에 매달렸다. 하지만 얼마 후 의사의 진단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고 그는 33년을 더 살았다. 그동안 32권의 소설, 2편의 희곡과 다수의 시편 및 16권에 달하는 문학 연구서와 에세이를 남겼으며, 여러 작품을 번역했다. 유수의 신문과 잡지에 정기 기고자로 활동하다 1959년부터는 전적으로 창작에 집중했다.
1956년 첫 소설 『긴 하루가 저물다』를 발표한 이래 『응답할 권리』, 『한 나라의 악마』, 『시계태엽 오렌지』, 『부족한 씨앗』, 『악인의 왕국』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1962년 『시계태엽오렌지』 발표 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 등지에서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며 영화 각본과 문학 연구서를 포함하여 다양한 저서를 냈으며, 교향곡과 오페라, 재즈 음악 작곡에도 혼신을 기울였다. 1993년 암으로 별세했다.
책 소개
저자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신학적·철학적인 문제를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함으로써 그 환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리고 나아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내는 알렉스라는 비행 청소년의 상황에 투영하고 있다. 이 소설에 그려진 비행 청소년들의 행각은 너무나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특히나 큐브릭 감독이 충실히 영화로 재현한 덕분에, 작가가 도덕적으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작품의 전반부에 나오는 폭력 묘사에만 관심을 한정시킨다면 후반부(알렉스가 루도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이 되는 부분)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대한 질문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 작품의 전반부가 비행 청소년들의 행각을 그리는 것에 중심이 있다면 후반부는 이들을 교도 하기 위해서 국가가 개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빼앗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루도비코 요법으로 짧은 시간 안에 세뇌를 통해 범죄자들을 개조한 후에 교도소에서 방출한 뒤 남은 공간에는 사상범들을 수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문제를 교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국가 권력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육체적 또는 정신적 태엽 장치를 달아서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고발하려 한다. 저자가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이면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경험한 국가의 폭력, 좁게는 군대 조직에서 경험한 권력의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동시에 여기에는 조지 오웰이라는 1940년대 문학적 우상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당시에 오웰이 체스를 두던 클럽을 찾아가서 그를 만나기도 하고, 그의 <동물농장>을 읽기도 했다. 또한 저자는 그의 자서전에서 1940년대를 오웰이 주장한 바처럼 전체주의적인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책의 배경
2차 대전이 끝나고 대영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던 식민지가 거의 다 독립을 선언한 이후, 60년대 영국 사회에는 극도의 좌절감과 가치관 혼란이 찾아왔다.. 더 이상 영국은 강대국이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사회는 계속적으로 불안해졌고,, 치안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시계태엽 오렌지"의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로 설정되어 있지만, 주인공 알렉스의 범죄 행각에 대한 묘사들은 사회 불안을 타고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60년대 청소년들의 행태를 여과 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저자는 강제적으로 청소년의 폭력성을 길들이려는 사회의 모습만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사회가 잠재적으로 청소년들에게 폭력과 범죄에 대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려 하였다. 소설 전반부에 알렉스가 자신의 패거리들과 함께 자주 찾는 ‘밀크바’란 1960년대의 영국 십 대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이 소설이 쓰인 1960년대 영국에서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를 매개로 하는 십 대 문화가 역수입되었다. 술 대신에 우유와 같은 비알코올 음료를 주로 마시며 쥬크박스에서 음악을 듣는 십 대의 모습으로 대표되는 이 문화는 피임약의 개발과 함께 불어 닥친 개방적인 성 풍조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다. 십 대 문화의 극단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알렉스의 비행은 이런 시대에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타락한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여기에 그려진 사건들은 버지스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밀크바’와 함께 주요한 배경이 되는 ‘뉴욕 공작’이라는 선술집은 버지스가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깡패들에게 행패를 당할 뻔한 일을 겪은 ‘요크 공작’의 소설화라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을 초월한 가까운 미래상을 보여주는 듯한 이 소설은 실상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의 사회상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
내용 요약(줄거리)
주인공 알렉스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약, 강간과 살인 등을 저지르던 비행청소년이다. 그러다 친구들의 배신으로 인해 감화원에 들어가게 되고, 정부가 새롭게 개발한 ‘루드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으로 선택된다. 알렉스는 실험을 통해 폭력적인 것과 성적충동을 느끼면 심한 구토를 느끼도록 개조된다.
석방된 알렉스는 예전에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에 의해 잔인한 보복을 당한다. 괴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자살 기도를 시도하게 되고, 병원으로 이송된다. 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알렉스가 받았던 비인간적인 실험의 실상이 공개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부관리가 병원에 찾아온다. 그리곤 수많은 신문기자들 앞에서 그의 손을 잡는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알렉스는 한 여인과의 섹스를 상상하면서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중얼거린다.
“나는 완전히 치유되었다” 고 말이다.
알렉스와 ‘폭력’
이 소설은 주인공 알렉스의 폭력성에 따라 세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폭력 성향의 알렉스, 두 번째는 폭력 거부의 알렉스, 세 번째는 다시 돌아온 알렉스이다.
1) 폭력 성향의 알렉스
알렉스를 리더로 하는 그들의 갱단은 또 다른 갱단인 빌리 보이 일당을 두들겨 패고 차를 훔쳐 교외로 향한다. 작가인 알렉산더의 집에 가면을 쓰고 쳐들어간 알렉스 일당은 남편 앞에서 젊은 아내를 범한다. 집에 돌아온 알렉스는 베토벤을 들으며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 학교를 빼먹은 알렉스는 민생위원의 방문을 받은 후 레코드 점에서 두 여자를 유혹해 집에서 섹스를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패거리에게 징벌을 가한다. 그날 밤 캣우먼 집에 침입해 그녀를 죽인 알렉스는 패거리의 배신으로 경찰에 잡힌다. 이처럼 소설의 서두에서는 알렉스 개인의 잔혹성이 드러난다. 그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행동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오로지 ‘최악의 인간쓰레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2) 폭력 거부의 알렉스
사회정화 차원에서 행해진 폭력배 소탕으로 교도소에 잡혀 들어간 알렉스는 폭력성향의 근본적 제거라는 실험에 동의하고 이후 눈도 감지 못할 정도의 고문에 처해진다. 그가 치료받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 그의 눈에는 철사 같은 장치가 고정된다. 그리곤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을 지켜봐야 했다.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면서 말이다. 2주 동안 그가 지켜본 영상은 세계대전 중의 한 장면 같은 기록필름이다. 폭격기가 다량의 폭탄을 지상으로 쏟아붓고,, 사람들이 가득 찬 광장에서 히틀러가 사열을 하며, 한 여자가 집단으로 윤간당하는 내용의 기록필름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웅얼거림과 베토벤의 음악들이 배경으로 쓰인다. 알렉스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도 좋아하던 베토벤의 9번 "합창"의 4악장을 들을 수 없다. 이전엔 그 음악을 들으면 흥분하였지만, 이젠 그 악장을 들으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이다. 중반부에서는 황폐해진 알렉스의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알렉스는 분명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나라가 그에게 행한 실험은 부당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무대 위에 던져져 자신을 때리는 사내의 구두를 핥고 육감적인 여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알렉스는 치료결과 선택의 의지를 박탈당한다. 육체의 고통이 두려워 해괴한 자기비하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나쁜 짓을 못할 뿐더러 도덕적인 판단이 불가하게 되었다.
알렉스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좋아하고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서슴없이 사람을 강간하고 폭행하는 구제불능의 문제아이다. 그런 그를 교화한다는 이유로 정신의학자들은 인간의 본능까지 말살하여 개조하려는 폭력을 휘두르고, 국가권력은 이를 사회적 승리로 치부하려 한다.. 즉, 현대의학이 개발한 새로운 약품을 통해 그를 온순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후, 알렉스는 완전히 세뇌를 당해 모범시민으로 인정받고 사회 속의 정해진 위치로 포섭된다.
3) 폭력 성향으로 다시 돌아온 알렉스
피를 흘리며 도착한 곳은 작가 알렉산더의 집. 그는 그때의 상처로 휠체어 신세이다. 알렉산더는 알렉스가 개조되었음을 알고 반정부운동에 이용하려 마음먹으나 예전의 기억에 대한 보복으로 베토벤을 억지로 들려준다.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한다. 그 덕분에 그에게 장치된 것이 꺼져 버린다. 온몸에 깁스를 한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정치적 이용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높은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예전의 폭력적 성향을 가진 알렉스로 돌아오게 된다.
알렉스의 폭력은 마치 그가 정상적인 사회와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지만, 그것을 막기 위한 또 다른 국가의 폭력. 그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아이러니에 놓이게 한다. 작가는 독자가 소설 속에서 과연 누가 옳은 것인지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에 혼란을 느끼게 만든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일 수 없으며 다만 태엽 달린 오렌지처럼 수동적인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의지의 무조건적 긍정은 주인공 알렉스의 무차별적인 폭력의 자유와 맞물리며 보다 첨예한 문제의식을 요구한다. 저자는 알렉스가 저지르는 폭력과 공동체에 미치는 해악의 강도를 극단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폭력의 자유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선과 악, 그리고 자유의 한계라는 통념을 모두 거스르는 인물로 알렉스를 설정함으로써, 자유와 윤리에 대한 상식적인 논리의 구도를 깨뜨리려 한다.
알렉스는 사회적 용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범죄를 저지르나, 그는 아직 열다섯 살에 불과한 미성년자며, 자신의 행위의 영향이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한다. 또한 대중문화의 사회 통제적 속성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고급문화의 향유자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아닌 미성숙한 인물, 모든 통제에 반대하며 절대적인 자유를 원하나 그 자유의 한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완벽한 반항아로서 알렉스는 윤리적, 문화적, 세계관적 자기모순에 빠진 현대인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선과 악이란, 그것이 종교적인 덕목이든 공동체의 규범이든 법적인 규칙이든,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자유의지 또한 선이나 악 어느 쪽으로 정향(定向)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어떤 강요나 억압이 가해질 때, 즉 순수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경우, 그것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강요된 선 대 선택된 악이라는 설정은, 그것들의 결과인 선과 악으로서 판단되기 이전에,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지냐 아니냐의 문제가 놓여 있으며, 이것이 보다 근본적인 우리의 ‘주제’ 임을 환기시킨다.
죄악의 근원에 대한 통찰
작품의 배경이 된 미래의 런던은 온갖 범죄가 난무하며 이에 맞서는 사회 통제 또한 범죄의 강도에 못지않은 폭력성을 지닌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학교나 교도소 등의 국가 장치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며, 오직 순응적 인간과 비순응적 인간을 격리하는 데 주력할 뿐이다. 알렉스의 폭력성과 비 규범성이 이러한 환경에 의해 키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체포된 후 겪는 교도소 생활은, 어떠한 환경적 요인을 통해 인간의 심성을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무용함을 보여준다.
알렉스가 자원하는 루도 비코 요법은, 인위적인 수술을 통해 인간의 범죄적 속성을 통제하려는 환경결정론의 극단화된 형태다. 피수술자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와 같은 환경결정론의 오류는 죄악의 근원을 따져보려는 사고방식이 일종의 무균질 인간이라는 허구를 전제하고, 한 인간이 겪는 복잡다단한 삶의 이력을 통제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는 인위적 시술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데 있다.
저자가 교도소 신부의 입을 빌려 펼치는 “강요된 선보다는 선택된 악이 낫다.”라는 모순적인 주장은, 무엇이 보다 인간적인가라는 반문이며, 그것의 토대 위에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조건의 개선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악의 근원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인간적 진실의 질문, 즉 자신의 사고와 행위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점차 박탈되어 왔으며, 현대에 들어 그 양상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데 있다. 신화와 종교, 사회적 기제라는 외부의 권위와 위협 속에서 한 개인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어 왔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 통제의 장치가 고도화되고 대중 매체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커짐으로써, 사유하고 반성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제목 그대로 태엽 장치를 달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주체적인 반성의 능력을 잃어버리면서, 윤리와 도덕에 대한 의식 또한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조건이 곧 죄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감상(시사점)
책의 시작부터 노인을 줘 패고 여성을 강간하고 마약을 하는 등 별 놈의 짓거리를 다 하고 다니는 주인공 패거리를 보면서, 이런 책을 왜 인문학 리스트에 두었는지 속에서 천불이 났었다. 하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끝까지 읽게 되었고, 중반부에서부터 작가의 숨겨진 의도를 조금씩 알아챌 수 있었다. 저자는 온갖 폭력을 행하고 다니는, 말 그대로 인간쓰레기의 표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뒤, 이를 저지하고 교화시키는 사회의 권력(또 다른 폭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분명 죽여 마땅한 사람이거늘, 루드비코 요법을 통해 온갖 고문을 가하고, 폭력성과 주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주인공. 이 과정에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 이유에는 주인공이 겨우 열다섯 가량의 청소년이라는 점이 컸다. 십 대들의 비행과 폭력 가운데에는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지만, 정부가 그의 인간성과 반성에 대한 주체성을 무시한 채 실험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게 정당한 것인지? 더욱 놀라운 것은, 경찰과 신부님, 정부의 높은 사람들까지 단지 폭력의 제어에만 관심이 있지, 폭력의 순화나 원인 제거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소설의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시계태엽이라는 장치와 오렌지의 조합이라니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작가가 제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담겨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이 제목의 의미는 작가조차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런던 동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시계태엽오렌지처럼 ‘괴상한’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밝혔으나, 시간이 흐른 뒤, 사람을 의미하는 ‘orang’을 이용한 말장난이라 하였다. 그러나 또 얼마 있지 않아, 즙이 많고 달콤하며 향이 좋은 한 유기적 독립체가 기계장치로 바뀌는 것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제목의 기원은 여러 가지로 불분명하지만, 개인적인으로는 기계장치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말살되는 개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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