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장자』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책의 배경/저자 소개
『장자』는 장자에 의해 완성된 책이 아니라 그와 그의 후계자들이 공동으로 저작했다. 『장자』는 여러 주석가들이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편수나 편차를 재정비했고 그중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진나라 곽상의 33편의 주석본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장자』다. 곽상의 『장자』는 크게 내편과 외편, 잡편으로 분류되어 있다. 내편은 외편과 잡편에 비해 비교적 오래되었고 장자의 근본 사상이 실려있다. 내편에 속하는 것은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로 7편이다. 외편에 속하는 것은 「병무」, 「마제」, 「거협」, 「재유」, 「천지」, 「천도」, 「천운」, 「각의」, 「선성」, 「추수」, 「지락」, 「달생」, 「산목」, 「전자방」, 「지북유」로 15편이다. 잡편은 「경상초」, 「서무귀」, 「칙양」, 「외물」, 「우언」, 「양왕」, 「도척」, 「설검」, 「어부」, 「열어구」, 「천하」로 11편이다. 장자의 사상과 지향에 대해 사마천은 그의 중심 사상은 노자에 근거하며 그는 「어부」, 「도척」, 「거협」 편 등을 통해 공자의 추종자들을 공격하며 노자의 학술을 밝혔다. 장자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들을 비판하며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 했고 몸이 편안한 상태로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을 지인, 진인, 신인 혹은 성인이라고 불렀다.
장자는 장자의 성은 장(莊)이고 이름은 주(周)이며 자는 자휴(子休)이고 몽(蒙) 출신이다. 사마천의 의견에 따르면 장자는 기원전 370년에서 기원전 301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장자는 생애에 칠원리라는 하급관리를 지냈다고 하는데 당시 장자는 관영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말단관리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장자』의 저자 장주는 노자(老子)의 사상을 이어받아 도가사상(道家思想)을 대성시킨 사람이라고 하여 노장사상가(老莊思想家)라고 불린다. 노장사상[老莊思想]은 도가의 중심인물인 노자(老子)와 장자(壯子)에 형성된 사상이다. 장자는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의 혼란이 지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일어났다 주장했다. 지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서로 상반된 이론의 논란밖에 일으키지 못하고 이러한 논쟁은 인간을 회의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실을 도피하여 관념적 자유를 추구했다. 반대로 노자는 지식을 부정하고 초월하는 장자의 사상에서 더 나아가 지식을 형성하는 인간의식을 문제로 삼아 인간의 의식에서 비롯된 물욕(物慾)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노장사상이라고 통칭하나 노자와 장자는 각각 소국과민처럼 사회 정치적 개혁을 강조하고 상대적으로 내면의 인식론적 접근의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노장사상은 철학적 차원, 종교적 차원, 이념의 차원인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노장사상에서 철학적 측면을 나타내는 중심개념은 도(道)이고 종교적 측면은(無爲), 이념적 측면은 소요(逍遙)이다. 즉, 노장사상은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대자연의 변화에 맡기고 자연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내용요약
(1) 『장자』의 주요 개념
도(道)
도는 자연의 질서를 뜻하는 말로 『장자』에서 사용하는 도는 단순히 자연의 질서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라 때로는 모든 존재의 원천이며 모든 변화의 원인자라는 의미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천(天)과 인(人)
‘천’이라는 글자는 하늘, 자연적인 것 등을 나타내고, ‘인’이라는 글자는 사람, 후천적인 것, 인위적인 것 등을 나타낸다. 장자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유가에서는 천을 도덕적 근원으로 삼고, 그 도덕을 사회 질서의 바탕으로 삼아 봉건적 윤리도덕이나 사회제도는 절대적인 것이다. 장자는 이를 비판하며 모든 도덕적 규범, 모든 사회 제도 등은 결코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회 규범이나 제도 등은 모두 우리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장자는 태어난 후 익힌 규범이나 도덕 등을 없애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천인합일이라 말한다.
덕(德)과 성(性)
덕과 성은 모두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나 사물의 자연성을 가리킨다. 장자는 덕과 성을 선이나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무위자연은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는 자연이란 뜻으로 의식적으로 혹은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지 않고 행위하는 것을 말한다.
소요유(逍遙遊)
소요유는 별다른 목적 없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서성이며 자유롭게 노닌다는 뜻으로 장자는 이런 소요유하는 억지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이루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간섭하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삶을 원했다.
좌망심재(坐忘心齎)
심신을 고요한 상태로 유지하여 결국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상아(喪我), 망기(忘己), 무기(無己) 등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과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절성기지(絶聖棄知)
성인과 지식을 끊어 문명을 버리고 인위로부터 벗어나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덕지세(至德之世)
장자의 이상사회를 가리키는 말로 원시적 자연 공동체와 같은 자급자족 사회를 말한다. 최소한의 도구만 사용하고,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하며, 지배나 피지배, 빈부격차 등의 어떠한 사회적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다.
내용 요약
<내편>
1. 소요유
「소요유」에서는 거대한 물고기 곤(鯤)과 거대한 새 붕(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거대한 세계에 대한 지향을 쓸데없는 것이라 은유한다. 「소요유」에 기록된 이야기 중 혜자와 장자의 대화에서는 장자 철학의 핵심인 별다른 목적 없이 한가로이 노닌다는 장자 철학의 소요유가 드러난다.
<관련 이야기>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죽나무라 부르더군. 그 나무의 몸통은 썩어 파였고, 울퉁불퉁하니 혹이 나서 먹줄로 잴 수 없으며, 작은 가지는 오그라지고 꼬여서 원이나 네모를 그리는 잣대에도 맞지 않는다네. 그래서 길가에 있어도 목수들은 거들떠보지 않지. 지금 자네의 말은 크기만 할 뿐 쓸데가 없어. 그래서 뭇사람이 자네 곁을 떠나가는 거라네.” 장자가 대꾸했다. “자네는 살쾡이나 족제비를 보지 못했는가?…이 녀석은 크기는 크지만, 쥐도 잡을 수 없어. 그런데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없다고만 탓하는군. 자네는 왜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의 텅 빈 들판에 심어놓고, 그 곁을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저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 누워 뒹굴 거리거나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도끼날에 찍혀 일찍 베어지는 일도 없고, 아무도 해를 끼치려 하지 않을 텐데, 쓸모없음이 무슨 근심거리가 되겠나?”
2. 제물론
「제물론」에서 장자는 지식에 대해 모든 인간의 모든 지식은 상대적이며 지식은 시간과 공간, 상황에 따라 참이 될 수도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사건도 무한한 경우와 견해가 존재하며 어느 한 측면만을 절대적인 진리인 양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논쟁은 하나의 사건의 일면만 주장하여 생긴 여러 논쟁들이 많았고 장자는 그것을 무의미하며 어리석다 여겼다. 장자는 그것들을 근거로 삼아 ‘무지’를 주장했는데 여기서 ‘무지’의 ‘지’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 후천적으로 배운 지식이 없는 것, 무식한 상태를 나타낸다.
<관련 이야기>
사물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사물에는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저쪽에서 보면 이쪽의 옳음이 보이지 않지만 이쪽에서 보면 이쪽의 옳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이것 역시 저것에 기인한다고 말한 것이다. 저것과 이것이 함께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삶과 동시에 죽음이 있고 죽음과 동시에 삶이 있다. 옮음(可)과 동시에 그름(不可)이 있고, 그름과 동시에 옳음이 있다. 참(是)은 거짓(非)에서 나오고 거짓은 참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성인은 이런 것들에 따르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데, 이 역시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따르는 것(因是)일 뿐이다.
3. 양생주
「양생주」에서는 수양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양생(養生)이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여 타고난 수명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양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억지로 양생을 추구하려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변화에 맡겨야 하고 마음이 모든 인위의 출발이라 말한다.
<관련 이야기>
나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써 끝이 없는 것을 따라가려 함은 위험하다. 그처럼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선행을 하더라도 명성이 나도록 해서는 안 되고, 악행을 하더라도 형벌을 받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허의 도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제 몸을 보전하여 생명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제 몸을 잘 길러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4. 인간세
「인간세」는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전반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자기주장을 세우기보다 타인이나 상황의 추이를 따라야 한다 말한다. 후반부에서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이 진정으로 쓸모 있다 주장한다. 쓸모없음과 쓸모 있음의 기준은 자연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따라 정해진 기준으로 시대와 장소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이에 장자는 쓸모에 대한 기준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에서 쓸모없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로운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 말한다.
<관련 이야기>
1)나라에 큰 부역이 있을 때 지병이 있는 지리소는 노역의 고통을 감수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내릴 때는 석 섬의 양식과 열 다발의 땔감을 받았다. 이처럼 육체가 불구인 사람도 제 몸을 건사하여 천수를 마칠 수 있는데, 하물며 덕(德)이 불구인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2)산의 나무는 스스로 화(禍)를 불러들이고, 기름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에 베어지고, 옻나무는 쓸모가 있기에 잘린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쓰임새는 알면서도 쓸모없는 것의 쓰임새는 알지 못한다.
5. 덕충부
「덕충부」는 내적으로 타고난 덕을 온전히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덕을 일부러 드러내면 덕이 손상을 입지만 덕을 드러내지 않으면 덕이 유지된다. 내적으로 타고난 덕을 간직하는 사람은 성인이며 그런 사람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관련 이야기>
“내가 감정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으로써 안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항상 자연을 따름으로써 생명을 연장하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혜자가 물었다.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 몸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도가 얼굴을 주었고 하늘이 몸을 주었으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으로써 안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지. 지금 자네는 신기(神氣)를 외면하고, 자네의 정기(精氣)를 소모한 채 나무에 기대어 문장을 읊조리고 오동나무 책상에 기대어 낮잠을 자네. 하늘이 자네에게 형체를 주었는데도 자네는 견백(堅白)의 이론으로 떠들어대고 있네.
6. 대종사
「대종사」에서는 이상적 인격인 ‘진인’과 자연의 질서에 대해 말한다. 진인은 자연 그대 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연의 질서를 터득하고 그 질서를 따르는 사람을 뜻한다. 장자는 진인이란 샤람에게 가장 큰 공포인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 말한다. 장자는 「대종사」의 우화를 통해 죽음은 자연 변화의 일부이며 우리가 자연 변화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자연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죽음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자여가 대답했다. “아니라네. 내가 왜 싫겠는가. 나의 왼팔을 천천히 변화시켜 닭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나는 그 녀석에게 새벽을 알려달라고 할 것이다. 나의 오른팔을 천천히 변화시켜 탄환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나는 그로써 올빼미를 잡아 구워먹을 것이네. 나의 엉덩이를 천천히 변화시켜 수레바퀴로 만들고 나의 정신을 말로 만들어버린다면 나는 그것을 탈 것이니, 수레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생명을 얻는 것은 우연히 때를 만난 것이고, 그것을 잃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것일세. 그 때를 편안히 받아들이고 변화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의 감정이 마음에 끼어들지 못한다네. 이것은 옛사람들이 말한 현해(懸解), 즉 꽁꽁 묶인 채 매달려 있다가 풀려나는 것이라네. 그런데 이것을 스스로 풀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사물에 묶여 있기 때문이지. 개별 사물이 자연의 변화를 이기지 못한 것은 오래된 일일세. 내가 어찌 그것을 싫어하겠는가?
7.응제왕
「응제왕」에서는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말한다. 이상적인 정치란 백성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며 백성을 다스리거나 교화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를 다스리고 교육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인위적인 것이며 정치란 모든 백성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속박하는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는 백성에게 간섭하지 않는 도가적인 무위(無爲)정치사상이라 주장한다.
<관련 이야기>
견오(肩吾)가 미치광이 접여(接輿)를 만났다. 미치광이 접여가 물었다. “예전에 중시(中始)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는가?” 견오가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 ‘군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직접 법률과 규범을 만들어 공포하면 그 누가 감히 듣지 않고 교화되지 않겠는가’라고 했소.” 미치광이 접여가 말했다. “그것은 위선이라네. 그런 방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려는 것은 마치 맨발로 바다를 건너고 맨손으로 운하를 파려는 것과 같고,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려는 것과 같네. 성인의 다스림이 외부 대상을 다스리는 것이겠는가?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나서 행동하고,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 뿐이라네. 새는 높이 날아서 화살의 위험을 피하고, 생쥐는 제단 아래 굴을 깊이 파서 연기를 피우거나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침입자의 위험을 피하는데, 백성들이 아무려면 이 두 동물보다 못하겠소?
<외편>
8.병무
「병무」에서는 유가의 인의(仁義)를 비판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과 문명은 자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 사회의 도덕과 문명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개인을 불행하게하고 사회를 어지럽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의 도덕과 문명을 자신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인위적인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라 받아들인다. 장자는 이에 우리의 개인적 생명과 본성을 지키는가가 바람직한 삶의 기준이며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개인적 생명과 본성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하·은·주 세 왕조 이후로 천하는 어찌 그리 시끌벅적한가? 곡선자, 먹줄, 걸음쇠, 곱자와 같은 도구를 써서 사물을 규격대로 바로잡으려는 것은 그 사물의 본성을 해치는 행위다. 밧줄, 노끈, 아교, 옻칠과 같은 것으로 사물을 꽁꽁 묶거나 붙이려는 것은 그 사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행위다. 이렇듯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꺾어 예악을 실행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인의를 실천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타고난 본래의 모습을 해치는 행위다.
9.마제
「마제」에서는 바람직한 사회는 도덕이나 법률로 다스리는 사회가 아닌 개인의 자연적 본성을 지키고 각자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사회이며 그러한 사회를 ‘지덕(至德)의 세상’이라고 한다. ‘지덕의 세상’은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관련 이야기>
말이란 육지에서 살기에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기쁘면 목을 대고 비비고, 화나면 서로 등지고 발길질을 한다. 말이 아는 것은 이뿐이다. 여기에 끌채의 횡목과 멍에를 얹고 달 모양의 이마 장신구로 단장하면 말은 끌채 끝의 쐐기를 부러뜨리고, 몸을 구부려 멍에를 벗으려 하고,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갑자기 날뛰고, 교활하게 재갈을 뱉고, 몰래 고삐를 씹을 줄 알게 된다. 이처럼 말의 지능이 그러한 도둑질에까지 이를 수 있게 한 것은 백락의 잘못이다.
10. 거협
「거협」에선 도덕이나 지식이 백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위정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성인이나 지식인은 위정자를 위해 도덕이나 지식을 지키는 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도덕이나 지식, 문명 등은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억압과 수탈의 도구이자 버릴 것, ‘절성기지(絶聖棄知)를 주장한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자급자족적인 소규모의 농촌 공동체를 이상적인 사회의 형태로 제시한다.
<관련 이야기>
도둑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끼줄로 꽁꽁 묶고 빗장으로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이것이 세속에서 말하는 지혜다. 그러나 큰 도둑이 오면 궤짝을 짊어지거나 상자를 들거나 자루를 둘러맨 채 달리면서 꽁꽁 묶어놓은 새끼줄과 고정한 빗장이 견고하지 못할까 걱정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지혜라는 것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주는 것이 아닌가? 그럼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세속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두는 것이 아닐까? 세속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지키는 자가 아닐까? …그러하니 이는 제나라를 훔치고 동시에 성인과 지식인이 만든 법규와 제도까지 함께 훔쳐 그 도적의 몸을 지켜준 것이 아니겠는가?
11. 재유
「재유」는 너그럽게 놔두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무위정치’를 뜻하는 것으로 백성에게 군주는 있어야 한다면 상징적으로만 있고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사람의 자유로운 마음은 자유분방하고 가둬둘 수 없으나 ‘인의’와 ‘욕망’에 의해 가둬진다. 장자는 이를 보며 인의든 욕망이든 모두 백성들의 평온한 삶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무위로 다스려야만 백성들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만족스럽게 여긴다. 그러므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보다 제 몸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세상을 맡길 수 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보다 제 몸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온 세상을 맡겨도 좋다. 따라서 군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잃지 않고 감각의 타고난 기능을 교란하지 않을 수 있다면, 죽은 듯이 꼼짝 않고 가만있어도 아름다운 광채가 드러나고, 연못처럼 침묵하고 있어도 천둥 같은 소리가 나고, 정신이 움직일 때마다 하늘이 따라 호응하고, 조용하고 느긋하게 무위하여도 만물은 저절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러니 우리가 또 세상을 다스릴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12. 천지
「천지」는 무위정치사상을 중심 주제로 천지자연이 만물을 생성하는데 아무런 의식도 목적성도 없듯이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군주는 타고난 덕에 근거하여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태곳적에 천하를 다스리던 군주는 무위,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타고난 덕을 따랐을 뿐이다.
13.천도
「천도」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특징을 무위(無爲)와 유위(有爲)로 구분하여 인간은 유위를 버리고 자연의 무위를 추구해야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고 바람직한 군주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관련 이야기>
물이 고요해도 이와 같이 사물을 밝게 비추는데, 고요한 상태인 성인의 정신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성인의 마음의 고요함은 천지를 비추는 거울이고 만물을 비추는 거울이다.
14.천운
「천운」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일곱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첫 장에서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의문, 두 번째 장에서는 ‘인의’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유가의 주장에 대한 반대, 세 번째 장에서는 음악이론에 대해, 네 번째 장 이후로는 노자와 공자의 대화 형식으로 노자가 공자를 비판한다.
<관련 이야기>
“효제(孝悌)나 인의(仁義)라든가, 충신(忠信)이나 정렴(貞廉) 따위는 자기 자신을 수고롭게 하면서 타고난 자신의 덕을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찬미할 만한 덕목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위는 나라의 벼슬을 버리는 것이고, 최고의 부는 나라의 재산을 버리는 것이고, 최고의 영예는 명성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도는 지나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15.각의
「각의」란 감정이나 욕망을 억제한다는 뜻으로 양생(養生)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생은 타고난 생명을 손상하지 않고 잘 유지하는 것이다. 양생의 방법은 감정의 흔들림이 없을 것, 자연과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맡기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관련 이야기>
물의 본성은 다른 것을 섞지 않으면 맑고,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 평평하다. 한 곳에 갇혀 흐르지 못하면 물은 맑아질 수 없으니, 이는 우리의 타고난 성품을 상징한다. 그래서 “순수하여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계속 고요함을 지켜 변하지 않고, 느긋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직일 때는 천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 이것이 정신을 기르는 양신(養神)방법이다.”
16. 선성
「선성」은 수양을 주제로 수양은 다름이 아니라 원래의 상태, 처음 태어날 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학문은 처음 상태, 자연 상태로부터 멀어지도록 가르친다. 이 과정은 욕망이나 지식의 확장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자연성은 파괴되었고 사회와 개인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관련 이야기>
화려한 언어는 소박한 본성을 잃게 했고, 풍부한 지식은 본래의 마음을 사라지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으나 타고난 성정을 돌이켜 처음 상태로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상은 도를 잃었고, 도는 세상을 잃었으며, 세상과 도는 서로를 잃어버렸다.
17.추수」
「추수」에서는 인간이 만든 사회적 차별 의식을 절대화 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차별적 태도를 버리고 만물일체의 관점에서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 이야기>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나?” … 장자가 말했다.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자네가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나’라고 물은 것은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네가 이미 알고서 물은 거야. 나는 호수의 물가에서 그걸 알았어.”
18. 지락
「지락」에서는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부유한 것, 높은 지위, 오래 사는 것은 욕망과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여 진정한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진정한 즐거움을 갖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자연의 변화에 맡기며 무위해야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가 조문을 갔다. 장자는 바야흐로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대야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그 사람이 죽고 난 뒤 처음에는 나라고 어찌 슬픈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그 사람의 뿌리를 생각해보았더니 본래 생명이 없었어.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는 형체도 없었어. … 내가 꺼이꺼이 하면서 곡을 한다면 그것은 내 자신이 필연적인 이치에 대해 알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었어. 그래서 울음을 그친 거야.”
19. 달생
「달생」에서는 생명의 중요성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인 양생에 대해 말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을 추구하지 말고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알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여러 신기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그 경지에 이른 과정을 설명한다.
<관련 이야기>
육체로 인한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버리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버리면 번거로움이 없을 것이며, 번거로움이 없으면 마음이 순정하고 평온해질 것이고, 마음이 순정하고 평온해지면 대자연과 더불어 다시 살아날 것이며, 다시 살아나면 거의 완벽해진다.
20. 산목
「산목」에서는 일반인 혹은 재야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며 몸과 마음의 손상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일에 마음을 비우고, 쓸모 있음과 없음의 구별마저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어제 산 속에 있던 그 나무는 재목이 못 되었기 때문에 타고난 천수를 다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 이 댁 주인의 거위는 재목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장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재목과 재목이 못 되는 그 중간에 서야 할까? 재목과 재목이 못 되는 중간은 그럴 듯하면서도 실은 아니야. 그렇게 해서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준칙으로 삼는다. 만물의 뿌리에서 자유롭게 노닐면서 사물을 그저 사물로 대할 뿐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들이 어떻게 나를 속박할 수 있겠느냐?”
21. 전자방
「전자방」은 도가의 이상적 인격인 지인이나 진인의 마음 상태에 대해 지인이나 진인은 세속적 가치에 무관심한 채 그저 무심하고 자연스럽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함을 말한다.
<관련 이야기>
“그분(동곽순자)의 사람됨은 천진함 그 자체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연처럼 무심합니다. 다른 사람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천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그저 그냥 받아들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그런 마음이 저절로 사라지게 합니다. 제가 그것을 어찌 다 칭송할 수 있겠습니까?”
22. 지북유
「지북유」는 지식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다. 「지북유」에서 ‘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면서 이 세상의 어디에든 존재하는 것이나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고 정의한다. 이러한 도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고를 버리고 인위적인 것을 멈춰야 한다. 그때 남는 것이 바로 ‘도’이다.
<관련 이야기>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비로소 도를 알 수 있다. … ‘도를 수련하는 사람은 날로 버린다. 버리고 또 버려서 무위에 까지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 … “무위위는 정말로 옳았다. 그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굴은 얼추 비슷했다. 그는 그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와 그대는 끝내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굴이 그것을 듣고서는 황제를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잡편>
23. 경상초
「경상초」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식과 인위를 버리고 자연에 따라 행동하며 멍청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데, 그 모델이 바로 어린아이이다. 「경상초」에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움직여도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걸어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며, 몸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 같고 마음은 마치 불 꺼진 재와 같아 이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어린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그것은 진정한 부드러움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네.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데, 그것은 타고난 덕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네. … 가더라도 가는 곳을 모르고 가만히 있어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사물의 변화에 그대로 따르고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지. 이것이 바로 생명을 지키는 원칙이네.”
24. 서무귀
「서무귀」는 전반적으로 욕망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무귀」 속에서 서무귀는 욕망이나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들 자체를 잊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유가와 기타 학자들에 대한 비판 논리로 확장된다. 세상을 대할 때 인이나 의 혹은 예나 법 등 어떤 특정한 이념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타고난 자연으로써 인간사를 대하고 자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관련 이야기>
“말의 감별은 이렇게 합니다. 말의 동작이 곧을 때는 먹줄에 딱 들어맞고, 구부러질 때는 곱자에 딱 들어맞고, 각지게 돌 때는 직각자에 딱 들어맞고, 동그랗게 돌 때는 걸음쇠에 딱 들어맞는다면 이것은 한 나라 안에서나 쳐주는 말이지 온 세상을 대표하는 말에는 못 미칩니다. 온 세상을 대표하는 말은 완벽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부족한 듯 하기도 하고 모자란 듯 하기도 하며, 자신을 잃은 듯 기색이 한결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달릴 때는 나는 듯이 질주하여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25. 칙양
「칙양」은 앎의 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논의하고 있다. 앎의 문제는 가치 판단과 관련된 것, 사물의 발생에 대한 것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가치 판단에 관련된 앎의 문제로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를 제시한다.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지극히 하찮고 따라서 인간의 지식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판단은 지극히 일면적이다. 사물의 발생에 대한 앎의 문제 또한 인간의 인식과 논의를 넘어선 것이므로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와 같은 무모한 수고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대인(大人)은 여러 가지 의견을 통합하여 공평한 생각을 가진 자다. 이 때문에 밖으로부터 들러오는 말에 대해서는 비록 주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 고지바지 않고, 안으로부터 자기 생각을 나타낼 때는 비록 공정함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거절하지 않는다. … 문치와 무사가 각각 기능이 다르지만 대인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덕이 다 갖추어진다. 만물의 이치는 각각 다르지만 도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 … “만물은 순서에 따라 서로 번갈아가면서 다스리고, …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데, 이러한 도리는 모든 사물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말로써 다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지력으로써 다 알 수 있는 것은 사물을 탐구할 때만 적용될 뿐이다. 도를 깨달은 사람은 그것들이 끝나는 지점을 탐구하지 않고, 그것들이 시작되는 지점을 캐내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논의가 멈추는 지점이다.
26. 외물
외물(外物)은 우리가 본래 타고난 것이 아닌 모든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들을 가리키며 『장자』에서 외물은 인간의 욕망의 대상이다. 외물 중 사람을 가장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는 것은 명성과 재물이다. 「외물」에서는 외물에 대한 욕망 때문에 우리 자연의 본성, 도를 상실한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사람을 몹시 근심스럽게 만드는 두 가지 함정이 있는데, 거기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마음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이때 마음은 하늘과 땅 사이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이 안정을 찾지 못하며, 우울해 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계산이 마음속에서 갈등을 일으켜 거센 불길처럼 타오르면, 그 불길은 많은 사람의 내적인 평온함을 태워버린다. 달처럼 차분한 마음은 본디 불같은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무너져 내리듯 도가 사라진다.
27. 우언
「우언」에서는 『장자』의 표현 방식을 ‘치언(卮言)’, ‘중언(重言)’, ‘우언(寓言)’ 세 가지로 설명하고 ‘삼언(三言)’이라 불렀고 치언을 강조한다. 「우언」은 각 장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삼언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 뽐내는 마음을 버려 올바른 도를 배우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반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반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너는 아까 굽어보더니 지금은 우러러보고, 아까는 머리를 묶고 있더니 지금은 풀어헤치고 있다. 아까는 앉더니 지금은 일어나고, 아까는 움직이더니 지금은 멈추어 있다. 왜 그러는 것이냐?”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런 적은 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어. 나는 매미허물과 같고, 뱀 허물과 같아. 실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물이 아니야. 나는 불빛이나 햇빛 앞에서는 나타나지만 그늘에서나 밤에는 사라져버리지. … 그것이 오면 나도 그것을 따라오고, 그것이 가면 나도 그것을 따라가는 거야. 그것이 움직이면 나도 그것을 따라 움직일 뿐이야. 움직이는 그것의 원인에 대하여 더 이상 물어볼 게 뭐가 있겠냐?”
28. 양왕
「양왕」은 천자의 자리를 남에게 물려준다는 뜻으로 『장자』에서 천자의 자리를 남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덕 있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차지하는 것보다 나 자신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중점을 둔다.
<관련 이야기>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넘겨주려 했지만, 허유는 받지 않았다. 또 자주지보(子州支父)에게 넘겨주려고 하자 자주지보가 말했다. “저를 천자로 삼는 것은 괜찮지요. 그렇지만 저는 마음이 노상 답답한 병에 걸려서 지금 치료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천하를 다스릴 틈이 없습니다.” 천하는 지극히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밖의 다른 사물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직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만 천하를 맡겨야 한다.
29.도척
「도척」에서는 명성과 재물 혹은 명분과 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1장은 도척(재물을 추구하는 사람)을 훈계하러 간 공자(명성을 추구하는 사람)가 도척에게 비판을 받는다. 이 장면을 통해 장자는 장자의 입장에서 도척과 공자 모두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관련 이야기>
“저놈은 노나라의 교활한 위선자 공구가 아니더냐. 내 말을 저놈에게 전해라. ‘너는 말을 만들어내고 함부로 문왕이나 무왕을 들먹거리고 있으며, 나뭇가지 같은 관을 쓰고 죽은 소의 옆구리 뼈같이 생긴 허리띠를 두르고서는 수다스럽게 허튼소리나 지껄여대고,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밥을 먹고 옷감을 짜지도 않으면서 옷을 입고 있으며, 입술을 나불대고 혀를 놀려 제멋대로 옳으니 그르니 판정을 내리면서 온 세상의 군주를 미혹에 빠뜨리고 있으며, 세상의 학자들로 하여금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지 못하게 하고 제멋대로 효도니 우애니 하는 것을 만들어 제후에 봉해지거나 부귀를 노려볼까하고 요행을 바라는 놈이다. 너의 죄는 극히 크니 냉큼 달음질쳐 돌아가거라.”
30. 설검
「설검」은 검술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는 조나라 문왕을 장자가 설득해 검술을 그만두게 한다는 내용이다.
<관련 이야기>
왕이 말했다. “천자의 검이란 어떤 것이오?” “천자의 검은 … 오행의 변화에 따라 그것을 제어하고 형벌과 은덕으로 잘잘못을 심판합니다. … 이 검은 한번 쓰면 제후들의 잘못이 바로잡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복종합니다. 이것이 천자의 검입니다.” 문왕은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제후의 검이란 어떤 것이오?” “제후의 검은 … 사시의 운행에 순응하고, 가운데로는 백성의 뜻에 호응하여 사방의 지역을 안정시킵니다. 이 검은 한번 쓰면 천둥소리가 진동하는 듯 하여 온 사방의 사람들 가운데 굴복하지 않거나 군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후의 검입니다.” 왕이 물었다. “평민의 검이란 어떤 것이오?” “평민의 검은 … 한번 목숨이 끊어지면 국사에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천자의 지위에 앉아 계시면서 평민의 검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천하를 천박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31. 어부
「어부」는 나그네인 어부가 공자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나그네는 공자에게 천자도 아니고 군주도 아닌데 예악과 인륜을 들먹이며 모든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그네는 공자에게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본받고 진정을 숭상하면서 세속의 풍속에 얽매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관련 이야기>
“지금 선생은 위로는 군주나 유사의 권력이 없고 아래로는 대신이나 관리의 벼슬이 없는데 제멋대로 예악을 손질하고 인륜을 가르쳐 모든 백성을 교화하려 하고 있으니, 괜히 일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 “그 때문에 어리석음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의 몸을 신중하게 수양하고, 타고난 진정을 신중하게 지켜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면 번거로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만약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그 역시 이치에 어긋나는 짓이 아니겠소?
32. 열어구
「열어구」는 앞에서 말했던 뽐내지 않는 것, 천성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을 따르는 것, 마음을 비워 도를 따르는 것, 고집하지 않는 것, 내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주제에 대해 말한다. 또한 15장에서는 장자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려는 제자들에 대한 장자의 태도를 통해 장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만물일체 사상을 볼 수 있다.
<관련 이야기>
장자가 막 죽어가고 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다. 그것을 보고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으로 속관과 겉관을 대신했고, 해와 달로 연벽을 대신했고, 별들로 입에 물리는 구슬을 대신했고, 만물로 부장품을 대신했다. 이처럼 내 장례 준비물은 이미 다 갖추어지지 않았느냐? 여기에 더할 게 뭐가 있느냐?” 제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뜯어먹을까 봐 두렵습니다.” 장자가 대답했다.“내 시신을 땅 위에 두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 것이고, 땅 밑에 두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먹이가 될 것이다. 너희는 위쪽 것들의 먹이를 빼앗아다가 아래쪽 것들에게 주려고 하고 있으니 어찌 그리 편파적이냐?”
33. 천하
「천하」에서는 중국 고대의 학술의 특징과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묵적과 금활리, 송견과 윤문, 팽몽과 전병과 신도, 관윤과 노담, 장자, 혜시 등의 사상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관련 이야기>
잠잠하고 형체도 없는 것이 끝없이 변화한다. 죽음과 삶은 천지와 나란히 함께 있고, 신명과 함께 변해간다. 까마득히 멀기만 한데 어디로 가야 할까? 아련히 멀기만 한데 어디로 가야 할까? 만물이 모두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딱히 돌아가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 옛날의 도술 가운데 이런 데 중점을 둔 것이 있었다. 장주가 그러한 가르침을 듣고 기뻐했다. 그는 공허한 학설과 황당한 말과 끝없는 논리로 항상 자유분방하게 자기 뜻을 펼치면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어느 한 쪽의 견해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미혹에 빠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 정중한 말로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치언을 변화무쌍한 표현 수단으로 삼았고, 중언을 입증의 증거로 삼았으며, 우언을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홀로 천지의 정신과 왕래하면서 만물에 대해 오만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으며, 세속의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그가 쓴 글은 독특하고 웅장하지만 완곡하여 남을 해치지 않는다. 그의 수사는 허구와 사실이 뒤섞여 일정하지 않지만 기이하고 볼 만하다. 그는 그 가득 찬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면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위로는 조물주와 함께 노닐고, 아래로는 삶과 죽음을 잊고 시작과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았다. 근본으로서의 도에 대한 그의 태도는 대담하고 탁 트였으며, 심원하고 자유분방했다. 도에 대한 탐구에서 그는 논리가 분명했고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나 사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그 논리는 끝날 줄 몰랐고, 제시하는 근거는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막막하고 깜깜하여 다 이해하지 못했다.
감상
『장자』를 읽으며 만약 현대에 장자의 철학이 중요시되어 사람들 삶의 방식이 장자의 철학에 맞춰진다면 어떨지 생각해봤다. 아마 인위적인 규칙들로 꽁꽁 묶인 우리의 사회에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장자의 철학이 들어온다면 우리의 사회는 한 번에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자의 철학이 우리의 삶에 들어온다면 지금껏 유지하고 발전시킨 모든 것들을 망칠 수도 있지만 사실 장자의 철학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욜로(YOLO)’를 삶의 모토로 삼는다. 욜로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소비하는 태도로 장자의 철학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장자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현대인들의 삶은 행복을 위한다는 점에서 닮아있기 때문이다. 『장자』를 읽다보면 장자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서 욜로같은 자유로운 생활방식들이 나타나고 주목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장자의 철학은 그런 착각을 할 만큼 지금 현대인이 원하는, 내가 원하는 그런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정리를 하며 장자가 말하는 이상적 사회인 ‘지덕지세’와 현대의 규범과 문화들이 조화롭게 융합된다면 어떨지 생각해봤다. 아마 차별 없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의 행복지수도 올라가고 더 나아가서 누군가에겐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세상을 원하는 주제는 나이고 만드는 주체도 나이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장자가 말한 것처럼 일면만 보지 않는 다각화된 사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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