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새의 선물』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저자 소개
숙명여자대학교에 입학하여 1977년 창작모임을 만들어 시를 쓰고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숙명여대 국문과,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1994년 한 달간 휴가를 내어 일기장과 메모를 챙겨 들고 서울을 떠나 다섯 편의 단편을 썼고 서울로 돌아와 중편소설 「이중주」를 써서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에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다. 은희경의 작품들은 보잘것없는 일상을 정치한 묘사를 통하여 생생하게 형상화해냄으로써 인생의 진실에 다가선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책의 배경
이야기의 대부분은 6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진희라는 열두 살의 화자로 진행되며 이야기 앞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90년대 배경의 30대의 화자의 시점이다. 시대적 배경이 60년대 농촌인데, 60년대 농촌이라고 해도 충분히 오순도순 하면서 건강한 가족으로 꾸려 나갈 수 있을 터인데 소설 속 이웃들은 그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진희 주위의 이웃들은 대체로 가족 성원이 부족하고, 가족 성원이 다 채워졌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건전하지 못한 모습을 띄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가정을 지지하는 사회적 지지망 역시 약하다. 60년대라는 시대 자체가 전후 복구 및 도시를 축으로 하는 경제 개발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농촌의 외딴 지역에까지 사회적 지지를 뻗히기 힘들었다.
그 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삼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이겨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은희경 소설의 소녀는 그 시절 어른들의 세상을 냉소적으로 그린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념과 정치에 환멸을 느낀 시대의 분위기가 소설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내용 요약
1. 프롤로그┃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쥐를 본다. 왜냐하면 나는 인생에서 더러운 것, 극복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와 스테이크를 먹는 자리에서였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거의 마음먹은 대로 생겨나고 변형되고 폐기된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에도 이 생각을 하며 다른 남자와 마주앉아 있었다. 나의 분방한 남성편력은 사랑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진다. 내 사랑에 대해 남자가 의심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 오늘밤은 꼭 이 남자를 아파트로 유혹하리라.
2.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내가 일찍 삶의 이면을 보게 된 이유는 내 태생자체가 불리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섯 살 때 엄마는 자살했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없지만 그것을 더 자각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할머니이다. 우리 집은 살림집 두 채와 가겟집, 다 하배서 세 채의 집으로 되어있는데 살림집 하나는 장군이네가 세 들어 살고 있고 거기에서 최 선생님과 이 선생님이 하숙을 한다. 주인집은 나와 할머니, 이모, 삼촌이 쓰고 있다. 가겟집 네 칸은 ‘뉴스타일양장점’, ‘광진테라’, ‘우리미장원’, ‘문화사진관’에 세를 주었다.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순진함을 가장하여 나는 어른들의 비밀에 접근하기를 좋아하고 어른들 역시 그런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 어른들의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내 삶을 거리 밖에서 보려는 긴장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엄마의 자살로 어릴 적부터 남에게 관찰 당했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보여 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켜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위선이 아니라 작위다.
3. 자기만 예쁘게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니
이모의 비밀은 해외 펜팔과 이형렬이라는 군인과의 펜팔이었고 나는 그 펜팔의 비밀밀사가 되었다. 펜팔 때문에 삼촌에게 따귀를 맞은 이모는 잠시 자숙하는 척만 하다가 이형렬의 편지 심부름을 나에게 맡긴다. 간간이 오던 연애편지를 읽어주는 것도 시간이 지나자 내용이 진해지는지 보여주지 않게 되지만 여전히 이모의 비밀을 나는 쥐고 있다.
4. 네 발밑의 냄새나는 허공
아침마다 삼국지를 읽는 장군이를 보고 할머니는 내게도 읽히게 하고 싶지만 여자애는 여자애일 뿐이라는 장군이 엄마 말에 할머니도 나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 장군이와 장군이 엄마를 골려주기 위해 나는 장군이를 똥통에 빠트릴 계획을 세운다. 장군이가 반장에 대한 질투심으로 변소에 빠트린 가짜 편지를 줍다가 장군이는 내 계획대로 똥통에 빠지고 만다. 그 일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장군이를 놀릴 때 나는 놀리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더 속 깊은 아이가 되었고 거짓과 위선이 한 통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국지를 읽는 목소리도 같이 그쳤다.
5. 까탈스럽기로는 풍운아의 아내자격
광진테라 아저씨의 최고의 비밀은 병역 기피자란 사실이다. 어른들 모두가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했을 때 광진테라 아저씨는 병역문제가 말썽이 될까봐 미리 군청 직원에게 돈을 썼다. 그 직원이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곳이 하필 문화사진관이었고 그는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면서 돈을 주고 병역 기피사실을 숨겨달라고 한 사람이 바로 이 동네에도 있다고 말해버린다. 그 바람에 광진테라 아저씨가 병역 기피자란 사실은 동네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아저씨의 어머니는 아줌마에게 거친 방법으로 칠거지악에 대해 긴 훈시를 늘어놓고, 그 이유로 광진테라 아줌마는 남편을 곧 죽어도 하느님 받들듯이 떠받들게 된다. 하지만 광진테라 아저씨의 더 은밀한 비밀은 그의 여자관계이다. 그의 바람기로 여간 고생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는 묵묵히 제일을 잘 하고 고통을 가슴속에 쌓아놓는다. 그것이 아줌마가 품고 있는 진정한 비밀 같다.
6. 일요일에는 빨래가 많다
편지 심부름을 갔다 온 나는 편지가 든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나갔다. 이모가 가방을 뒤져 편지를 찾아냈을 때 성실하게 수행해온 배달부나 자문관의 권위를 잃은 나는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이모는 군인 이형렬이 휴가를 나와 이모를 만나러 나오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 이후 이모는 화장과 옷으로 꾸미기 바쁘고 할머니 몰래 일요일이라 붐비는 목욕탕을 다녀오고 빨래를 널다 넘어진다. 그것을 목격한 최선생을 의식하고 투덜대며 나에게 화풀이까지 하지만 그의 관심이 싫지는 않은 것 같다.
7. 데이트의 어린 배심원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를 자기네 무리에 자꾸 끌어들이려는 여자 깡패나 다름없지만 유치해 보이는 봉희를 뿌리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 나는 원피스와 화장으로 한껏 공들여 멋을 내고 자기의 모습에 만족한 이모의 데이트 배심원으로 따라간다. 이모는 산성 안에 있는 성안을 첫 데이트 장소로 결정했다. 나는 이모를 영원한 연인으로 생각하는 동네 깡패 홍기웅을 발견한다. 그가 이모를 따라오고 이형렬을 발견하면 그를 때려눕힐게 틀림없기 때문에 나는 상을 타러간다고 거짓말하고 그를 따돌린다. 이형렬과 이모는 대화를 나누고 비탈길을 내려오며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군복과 긴 머리 여자의 뒷모습에는 배신의 뇌관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집에 늦게 들어온 이모는 할머니의 야단에도 아랑곳없고 나에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모의 장밋빛과는 달리 광진테라에서는 거무튀튀한 색의 고함과 와장창 소리가 난다.
8. 그 도둑질에는 교태가 쓰였을 뿐
서울 간 삼촌에게서 며칠 후에 온다는 편지가 오자 장군이 엄마가 서울에 숨겨둔 아가씨가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들은 삼촌을 좋아한다고 나에게 비밀을 고백한 미스 리 언니는 안달 나서 내게 이것저것 묻는다. 이를 본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하는 짓이 너무 약빠르고 음흉한 미스 리 언니가 삼촌을 좋아하는 것을 도둑질로 비유한다. 하지만 미스 리 언니의 ‘도둑질’은 삼촌보다 먼저 최선생님을 상대로 했다. 언니는 신분상승을 위해 최선생님을 점찍어 교태를 부렸다. 미스 리 언니의 최선생님을 대상으로 계획적인 유혹 실패이후 언니의 야심은 꺾인 것 같았지만 서울서 내려온 삼촌을 향한 투지는 전보다 불타올랐다. 그런 미스 리 언니는 나와 이모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나는 언니의 비밀을 고자질할 생각은 없다. 그녀가 눈독들인 물건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단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모가 하는 표정연습과 차별성을 못 느끼고 둘 다 제몫으로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모가 어린애 상태에서 머물러버린 것은 어린 시절을 고뇌 없이 보냈기 때문이다. 나에게 태생의 고뇌는 성숙의 자양이고 그것은 삼촌 다락방에서 독서와 합해지면서 삶에 대한 나의 통찰을 완성시켰다.
9. 금지된 것만 하고 싶고, 강요된 것만 하기 싫고
삼촌이 휴학하기 전 삼촌의 빈 다락방에서 나는 삼촌의 사춘기적 산물들을 훔쳐보며 성적 인상을 풍기는 신문소설에 빠졌다. 할머니는 삼촌 방안에 처박혀있는 나를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된 거라고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고 나에게 선물공세를 폈다. 할머니와 이모가 산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책들을 지루하게 읽다가 다락을 더 깊이 뒤적거려 ‘음모를 불태워라!’는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은 뒤 며칠 동안 나는 음모가 불에 타는 영상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목욕탕에서 본 오래전 담임이었던 선생님의 음모를 불태우는 상상을 한 뒤 성이라는 금지된 영역에 상상력을 사용하고 선생님에게 잔혹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재판에 의해 강요된 죄책감을 알고 벗어난다. 한동안 나는 남자들에게 성기가 있다는 사실에도 불편을 겪고 자꾸 의식되자 금기에 대한 번민이 생겼고 이 고통을 이길 방법을 연구했다. 비위 약한 내가 벌레에 대한 징그러움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징그러움의 대상에서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듯 계속 관찰하고 저항하면서 금기를 이기기 위해서도 그 방법을 썼다. 내가 성을 시시하게 여기게 되었을 때 타락한 친구들의 침대놀이라는 난교파티에 초대받고 봉희의 폭력적 세력을 이용하여 빠져나왔다. 나는 훔쳐보기 독서의 마지막 단계를 미장원에서 「선데이서울」의 ‘어른만 보는 페이지’를 통해 성에 대한 냉소를 터득했고 책이나 잡지 읽기를 멈췄다.
10. 희망 없이도 떠나야 한다
할머니의 사랑 중 내가 고운정이라면 이모는 미운정이다. 할머니는 이모의 응석을 은근히 받아준다.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이기에 앞서 이모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질투와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선지 장군이 엄마와 장군이 모자의 정다운 대화와 장군이의 ‘엄마’ 소리도 듣기 싫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 생각으로 마치 돌덩이가 얹힌 듯이 가슴속이 묵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읍내에 미친년이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리고 눈물을 보인다. 할머니는 나에게 애정표현이 없었고 나는 감정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타인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할머니는 이런 내 눈물이 엄마에 대한 연상 작용임을 알았다. 엄마는 대인기피와 우울증으로 요양원에서 죽었고, 아버지는 새장가를 갔다고 들었다. 음악시간에 <꽃밭에서>를 부를 때 코끝이 아려왔다. 무용대회에서 흥부역을 맡는 나는 흥부가 아버지로서의 무능을 느끼자 또 코끝이 아리다. 그럴 때는 큰길로 가지 않고 뒷길 제방으로 혼자 걷고 싶다. 그곳에 가는 길에 어디 멀리 나가려고 마음먹은 것 같은 광진테라 아줌마가 시외버스를 타려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아줌마는 갈 곳이 있는 게 아니라 떠나고 싶은 것이다. 내게 역시 다른 삶이란 없다. 제방에서 민자와 선숙이가 순덕이 아버지와 말에 장난을 치자 나는 순덕이 아버지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자 눈물이 나는 걸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젖힌다. 제방에서 매어져 있는 염소 옆에는 하모니카 부는 남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삼촌이 데리고 온 친구다.
11. 운명이라고 불리는 우연들
밤이 되자 장군이네 마루에서 술자리가 벌어졌고 그곳에서 삼촌친구 허석과 삼촌도 끼었다. 광진테라 아저씨의 정치 이야기에 허석은 서울학생의 기대에 걸맞게 열을 내고 있을 때 평소 과묵하던 이선생이 선동이 거북하다고 뜻을 내비쳐 모두 놀란다. 맥주가 바닥나고 유지 공장의 기름 냄새가 나자 삼촌은 시골구경을 시켜주겠다고 내게 허석의 장터구경의 안내를 맡겼다.
12. 오이디푸스, 혹은 운명적 수음
허석을 장터로 안내하여 약을 파는 국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석이 사준 찐빵을 보고, 또 미친놈 염상을 보자 엄마 생각이 난다. 허석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 사실에 상처받지 않고 그게 약점이 되는 것이 싫다고 허석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성안에 목도한 남자들의 수음행각 이야기를 꺼내며 그런 남자들에 대하 연민마저 보내자 허석은 어른스러운 나를 강하게 공감하며 바라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무용대회 연습을 까먹고 동네구경을 시켜준 것에 어린아이 취급당하자 기분이 상한다. 다음에는 이모의 안내로 성안에 가봐야겠다는 허석의 말에 긴장한다. 하지만 이모는 여전히 어리석고 이형렬에 열중해 있다. 이모가 편지를 쓰는데 맞춤법을 알려주고나서 잠결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와장창 소리와 우는 소리와 빗소리를 듣는다.
13. ‘내 렌나 죽어 땅에 장사한 것’
학교 가는 길에 대동병원 원장의 딸 신화영을 만나지만 내가 교묘히 피해 거만 떨 기회를 뺏는다. 집에 돌아가니 미스 리가 삼촌에게 관심 갖는 게 못마땅한 이모가 할머니께 그 사실을 고자질하자고 하나 조목조목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만 이모는 내가 애늙은이가 되었다며 어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오늘 극장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한다. 오빠와 허석, 이모와 <도라 도라 도라>라는 영화를 보러갔다. 밤 산책을 가 허석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름다운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삼촌은 직접 태워버린 첫사랑에 화를 낸다. 그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그 자리에서 슬픔이 들어차 다시 나를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킨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마음속이 덤덤해져 있다.
14. 슬픔 속의 단맛에 길들여지기
도 대항 무용대회 연극에 허석이 오기로 했으나 결국 오지 않고 이모와 성안 구경을 갔다. 신화영이 흥부 아내 역할이면서 선녀 옷을 고집하자 나는 신화영의 허영심에 혐오감이 일고 옷을 찢어버린 채 공연을 하게 되고 그 덕에 연극은 일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약속을 어긴 허석 뿐이다. 이모와 문화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허석은 떠날 준비를 한다. 다음날 허석을 배웅하자 허전함과 슬픔이 몰려왔다. 혼자 이별과 맞서 싸우다가 방과 후 버스 고장으로 집에 있는 허석을 보고 놀랐지만 슬픔이 완결되지 못한 것에 오히려 실망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떠나고 말았을 때 그리움이 두려워진다.
15. 누구도 인생의 동반자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허석은 서울로 떠난 지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고 삼촌은 군대에 가고 미스 리는 돈을 훔쳐 풍년쌀집의 종구와 야반도주를 했다. 바로 전날 낮에 미스 리는 삼촌의 은수저도 몰래 갖고 갔지만 비밀을 지키는 것이 마지막 우정으로 할머니에게 고자질하지 않았다. 종구는 미스 리의 상대가 아니다. 결코 같이 살려는 것이 아니라 단물만 빼먹고 버릴 처사일 것이거나 단지 자기의 제한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 일탈의 모험일 것이라고 느껴졌다. 다행히 계는 깨지지 않았고 이 사건을 교훈으로 먼 친척집에서 시다를 데려왔다고 한다.
16. 모기는 왜 발바닥을 무는가
삼촌이 군대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모는 할머니를 설득해서 편지를 집에서 받게 되었다. 이모와 이형렬과의 관계는 점점 뜨거워져 면회를 다녀오던 날 이모는 그와 키스를 했다. 그 다음주 외모에 대한 욕심으로 쌍꺼풀 수술을 하고 할머니에게 죽어라 욕을 얻어먹는다. 쌍커풀 수술 후 에는 할 수 없이 최근 실연의 상처를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한 경자 이모가 대신 면회를 간다. 첩에게 새참 광주리를 맡기는 광경이 떠올랐지만 말리지 못했다. 경자이모는 이형렬이 이모를 많이 그리워한다고 전해준다. 사실이기를 바란다. 이모를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이모가 허석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허석을 그리워하고 있다. 외로웠고 외로움을 위해서는 그리워 할 대상이 필요했으며 그것이 허석이었다. 할머니의 모기처럼 가려운 곳이 없으면 긁는 쾌감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장소에 대해서도 집요하고 배타적이다. 사랑이 아무리 집요해도 그것이 스러진 뒤에는 그 자리에 오는 다른 사랑에 의해 완전히 배척당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 쉽고 냉소적이므로 사랑하고 성실할 수 있다.
17. 태생도 젖꼭지도 없이
재성이 울음과 광진테라 아저씨의 고함소리에 모두 광진테라 아줌마가 재성이를 두고 집을 나간 것을 알았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것은 비극이지만 나는 그 가출을 응원한다. 할머니는 이모에게 재성이를 돌보라고 하지만 이모는 눈 수술하러가고 재성이는 내가 돌본다. 애타게 우는 재성이를 보며 점례를 떠올리고 기둥에 묶인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엄마가 떠난 뒤 남겨진 자기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때다. 재성이가 그악스럽게 울자 나는 뺨을 찰싹 때리고 말았다. 그리고 재성이를 그대로 울다가 지치게 놔두었다. 아저씨는 이틀 만에 광진테라 아줌마의 친정에 가서 그녀를 데리고 온다. 재미나게 다시 살아보자는 말에 청혼하는 기분으로 다시 둘째를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고 여자들은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못하고 있다. 여자들의 결혼은 첫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데 첫 경험이란 운명이 아니다. 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금기는 빨리 깰수록 좋은 일인데 생각보다 그 일이 빨리 왔다.
18. 응달의 미소년
뒤꼍의 빈방에 전화교환수 남매가 살기 시작했다. 혜자 이모와 현석오빠다. 할머니는 혜자 이모가 색기가 있다고 싫어했고 현석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두 사람은 조용하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할머니도 좋아하게 되었고 부모 없이 자란 경계심 보다는 동정이 앞섰다. 이모는 돈이 궁하다고 영숙 이모처럼 식모살이 라도 하겠다고 한다. 영숙 이모는 방앗간집 딸이나 망하고 나자 동생들을 거두기 위해 대동병원 식모살이를 하다가 쫓겨나 지금은 서울의 미군부대 근처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땅딸한 아줌마가 찾아와 혜자 이모에게 행패를 부린다. 유부남에게 꼬리를 쳤다고 응징을 당한다. 하지만 혜자 이모도 영숙 이모도 순결해 보인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센베이를 가지고 갔다가 슬픔에 빠진 현석오빠와 첫 키스를 하게 됨으로써 첫 경험이라는 금기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키스 후 일어나는 여자들의 흔한 반응에 저항하기 위해 냉랭하게 대한다. 혜자 이모는 앓아누워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가게 된다. 추억의 상징물인 대나무 의자를 놔둠으로써 새 출발을 하려는 듯.
19. 가을 한낮 빈집에서 일어나기 좋은 일
혜자 이모의 대나무 의자는 장군이 차지가 되어 망을 보게 된다. 유지 공장 간부가 찾아와 이모가 원한 일자리를 주려하지만 할머니의 반대로 경자이모에게 넘긴다. 이모는 뭐든 경자가 뺏어간다고 하니 애인도 뺏겠다고 눙을 치니 이모가 발끈한다. 경자 이모는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늘진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장군이 엄마가 혜자 이모의 빈방을 쓰겠다고 한다. 장군이는 환약 때문에 또 똥장군이라고 놀림 당한다. 장군이는 엄마의 부덕을 용서받기 위한 희생양 같다. 추석을 앞둔 날 이상한 소리에 장군이를 앞세워 뒤꼍으로 갔다가 장군이 엄마와 최 선생님이 함께 있는 것을 본다. 때마침 여화 아줌마가 들이닥쳐 낱낱이 밝혀지지만, 할머니는 최 선생님을 내보내게 하는 것으로 조용히 넘어간다.
20.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깊은 것을
세상을 서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자기의 행복과 불행의 조종간을 통째로 타인의 손에 쥐어준다면 그 타인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잠시뿐이다. 이모는 행복할수록 이별에 대비해야했다. 허석이 군민신문에 나고 그 일로 다니러 온다는 말에 나는 설렌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되므로 기쁜 내색하지 않는다. 이형렬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모가 면회 오는 걸 막는다. 이모는 경자이모를 대신 보내 사정을 알아보라고 하나 그날 밤 경자이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수상쩍은 일이 많았다는 사실을 이모는 인정해야 했다. 사랑의 시작은 이미지의 촉발이므로 이미지가 손상되면 심각하게 관계가 훼손 될 것이다. 이모의 순수함은 쌍꺼풀로 인해 유치함이 되고 진실함은 아둔함이 되듯이. 다음 날 경자 이모가 찾아왔지만 이모는 냉정히 박대한다. 이모는 절망했고 체념했고 탈태를 위해 자기 존재와 싸웠다.
21.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보았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모는 왠지 더 아름다워 보인다. 군민 잔치가 열리던 날, 허석이 이모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나는 긴장한다. 삶에는 기회가 있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신이지만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은 삶이다. 할머니가 나와 이모 중 이모를 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삶이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 할머니는 이모를 배려해 허석과 함께 문화원장 집에 가는 걸 허락했다. 철없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면 더 사랑과 배려를 받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밑지고 있다. 그 밤 홍기웅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걸 허석이 말리다가 얻어맞게 되고 그 일로 이모와 허석은 더 가까워진다. 극장에 갔다 혼자 돌아와 삶의 배역이 바뀌었음을 절감한다. 할머니와 이모 허석의 영역에 나는 제외다. 버스에서 가위 눌리다 깨는 하늘이 빨갛다. 유지공장에서 불이나 아비규환이 되어 날이 밝는다.
22. 죽은 뒤에야 눈에 띄는 사람들
군민잔치는 취소되고 사상자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경자이모가 죽었고 이 선생은 영웅이면서도 간첩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화재는 전기 누전이었고, 재난과는 상관없이 투표는 박정희 대통령이 다음에도 여전히 대통령을 하도록 되었고 사고는 쉽게 잊혀졌다. 화상자국은 마을의 인식표처럼 되었으나 이모는 경자이모의 죽음으로 죄책감에 시달린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그럴 때 마다 쥐를 보며 정신이 육체를 이탈하지 못하게 안간힘을 썼다. 연말이 되자 70년대가 온다고 떠들었고 KAL기 납북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화재로 죽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60년대를 정리했다. 하지만 기대나 희망은 없다. 모든 것은 전과 같았으므로. 이모는 허석을 그리워하면서도 편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새해부터 이모는 군청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일기장에 적힌 내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모든 것은 변한다.
23. 눈 오는 밤
우연히 제방 길을 걷다 지난날의 하모니카 남자가 허석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삶에 조롱당하기도 했거니와 그때까지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었기에 그것을 모두 내뱉기 위해 울었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끌고 가므로 뜻을 캐내지 말아야 한다. 이모가 사온 브래지어를 처음으로 해보다 심장이 뛰는 것을 자각했다. 생명력이기도 하지만 존재에 대한 무력감이기도 했다.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어느덧 생리도 시작되었다. 이모가 낙태수술을 위해 나와 병원에 다녀오는 날 첫눈이 내린다. 세상에 기적은 없지만 우연은 많다. 버스가 서버려 눈길을 이모와 힘겹게 걷고 있을 때 홍기웅의 트럭이 나타났다. 그는 순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를 부르는 순간 그 날 하루의 환난이 떠올랐고 그 순간이 내 삶의 한 매듭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를 만났다. 70년대 농담처럼 내게 아버지가 있었다니.
24. 에필로그┃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그는 침대에서 불을 끄지 말라고 했다. 그는 다른 때와 다르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관계 조화를 위해 나는 눈을 감아준다. 나는 이제 집을 떠난다. 할머니와 이모와 삼촌과 사는 비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엄마와 아버지와 동생이 있는, 평범한 보통 아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새 삶에 대한 기대는 없다. 삶이 나를 조롱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삶을 멀찌감치 두고 볼 것이기에. 그는 지금은 내 학교 동료이자 여동생의 첫사랑이다. 뉴스에서는 무궁화호가 발사되었다. 세상은 유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열두 살이었을 때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지금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도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가고 열두 살 이후 더 이상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 보고 있다.
감상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그려냄에 있어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다.
12살 소녀의 성장 스토리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다 성장한 것 같은 진희는 할머니, 이모, 삼촌 등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을 보며 깨우치기도 하고 아픔과 슬픔, 사랑, 호기심, 기쁨을 느끼며 변해가는 모습들로 인해 많은 깨우침도 있었다. 성숙해 보이는 12살의 소녀의 아직 모르는 사랑이야기나 어른들 세계들에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엄마생각을 하면서도 엄마 이야기에 슬픔을 느끼지만 그 슬픔이 진희에게 약점을 만들기 때문에 엄마생각을 더 이상 하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은 진희, 아빠라는 말을 꽃밭에서라는 노래를 통해 처음 입으로 발음해본 진희를 보면서 열두 살의 나이에 스무 살이지만 아직 철없는 이모보다 성숙하고 더 어른스러운 진희가 한편으론 부럽고 대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가엽기도 했다. 이런 진희의 모습이나 생각을 읽으며 내가 저 나이 때 과연 저런 깊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저 나이 때 진희 같았더라면 현재 조금 더 탈 없고 부끄러운 일 없었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하는 반면에 저 어린 나이부터 세상을 깨닫고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약점으로 생각하고 숨기고 가리려고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저 어린 나이 때에는 모두 울고 부모님께 때를 쓰고 앙탈부리는 것이 부지기수였겠지만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급급한 진희에게는 앙탈부릴 부모님이 없어서인지, 어른들과만 어울려 다녔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짓을 해서 바뀔 것이 없다는 세상을 벌써 깨달아 버려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열두 살짜리 소녀가 자신과 자신의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데서 어떤 슬픔을 느꼈다. 진희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를 분리시켜 ‘보여지는 나’가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순진한 나이에 벌써부터 남에게 보이는 나를 신경 쓰고 약점을 보이지 않게 애쓰는 어린 진희가 안쓰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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