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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술의 지혜 조귀논전<曹劌論戰> 이야기 감상, 해석, 정리

EnerTravel 2023. 12. 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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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조귀논전<曹劌論戰> 이야기입니다.

 

조귀논전<曹劌論戰> 요약

 

환공은 기원전 684년 노나라를 공격했다. 제나라의 행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장공은 이를 악물고 결전을 벌이기로 했다. 제나라의 침공은 노나라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때 평민인 조귀(曹劌)가 장공을 찾아와 제나라의 침공을 막는 싸움에 넣어 달라고 간청했다. 장공은 기꺼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제나라를 막을 방책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조귀가 되물었다. “임금께서는 제나라군을 무엇으로 막으려 하십니까?”

 

(중략)

장공은 계책을 내어 기꺼이 참전하고자하는 조귀를 어여삐여기며, 아래와 같이 말을 더했다. “백성들의 소송을, 소송마다 정확하게 처리해 준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합리적으로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 하려고 하네.” 그러자 조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만으로도 민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보니 제나라와 싸울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조귀는 자기도 장공을 따라서 전장에 나가겠다고 했다. 장공은 조귀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그를 데리고 전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군대를 거느리고 싸움터로 출발했다. 두 나라 군대는 장작(長勺, 산동 내무현)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제나라군은 군사가 많은 것을 믿고 먼저 북을 울리며 진격했다. 장공은 즉시 군사를 지휘하여 반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조귀가 “서두르지 말고 좀더 기다려야 합니다.” 하고 장공을 말렸다.

그러자 제나라군의 두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조귀는 아직 때가 안 되었으니 군사를 출동시키지 말라고 했다. 제나라군이 진격해 오는 것을 본 노나라 병사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왕의 출동 명령이 한시바삐 떨어지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노나라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본 제나라군에서는 세 번째로 북을 쳤다. 그래도 노나라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나라군은 적이 겁을 집어먹고 얼어붙은 모양이라며 기뻐하면서 진격해 왔다. 이때 조귀가 장공에게 말했다. “반격할 때가 되었습니다.”

노나라 진영에서 반격의 북소리가 울렸다. 군사들은 사기충천하여 맹호와 같이 산 아래로 반격해 내려갔다. 노나라군이 용맹하게 반격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제나라군은 불시의 반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제나라군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노나라군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장공은 조귀의 침착한 군사 지휘에 탄복은 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궁으로 돌아오자 장공은 먼저 조귀를 칭찬하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제나라군이 처음 북을 울리며 진격할 때 왜 반격하지 못하게 했는지 난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르겠네.”

“전쟁이란 군사들의 사기로 싸우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첫 번째로 북을 울릴 때가 가장 사기가 높을 때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북을 울릴 때는 사기가 좀 낮아지고 세 번째로 북을 울릴 때는 이미 사기가 해이해졌을 때입니다. 이때 우리 군사들은 오히려 사기가 부쩍 올라 싸우지 못해 안달이지요. 이때 진격의 북을 울리면 승리하지 못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제야 까닭을 알게 된 장공은 조귀의 지혜에 탄복해 마지않았다. 조귀의 지휘 하에 노나라는 제나라의 침공을 물리치고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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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논전<曹劌論戰> 감상

 

①長勺전투에서 소국인 魯나라가 대국인 齊나라를 상대로 응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魯壯公이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응전한 까닭은 바로 군사력 이외에 자신이 통치하는 魯나라의 소프트 파워를 믿었다고 추론 할 수 있다.

 

②<曹劌論戰>의 내용을 살펴보면 魯壯公이 長勺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魯壯公의 善政과 用人術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 각각 구체적인 선정과 용인술의 내용을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경청의 미덕, 신임의 미덕으로 나누어 이유와 그 내용을 추론 할 수 있는 원문을 살펴보려 한다.

 

③오늘날 한국 사회의 사회적 계급화가 점점 고착되면서 그러나 <曹劌論戰>속 魯壯公과 조귀의 대담을 보면 미천한 조귀가 감히 魯壯公을 비판하는 일이 용인되는 열린 사회분위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직장상사에게 자유로운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소중한 가치이다.

 

④魯壯公은 조귀의 “何以战?”의 대답으로 3가지를 말했는데 이중 조귀에게 대국인 齊나라를 상대할 수 있는 소프트 파워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백성들의 실제 상황을 살펴보고 송사를 처리한 경청의 미덕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집권 4년차를 맞아 낙승이 예상 되었던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이후에 쟁점법안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일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처럼 경청의 미덕은 춘추시대 魯나라에서나 오늘날 한국에서나 갈등을 예방하고 봉합하는 위기 관리 능력으로써 나라의 중요한 역량이다.

 

⑤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의 조귀를 등용하는 과정에는 필히 기득권층의 반대가 컸을 것이다. 근본 없는 굴러들어온 돌인 조귀를 꽃으로 보고 주변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긴 魯壯公은 꾸준한 신임을 보여주며 조귀의 충성이라는 가치를 이끌어 낸다. 이처럼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인재 등용과 신임은 사회 전반의 활력을 제고하는 무형의 가치를 이끌어낸다.

 

⑥물론 전쟁의 승리에 있어서 군사력을 제일 중요하게 바라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원문에서 조귀왈 “夫战,勇气也.”라 하였고 魯나라 입장에서 비교 우위를 가졌던 부분인 魯壯公의 善政과 용인술의 힘도 무시 할 수 없다. 또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을 조귀라는 한 개인의 천재성으로만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귀는 미천한 신분이었고 그에게 조언을 듣고 그를 발탁한 魯壯公이 없었다면 조귀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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