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성의 성립과 발전
1. 서구 근대 이성의 성립
1) 르네상스 / 종교개혁 / 과학 혁명
①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발견과 새로운 예술의 탄생
② 종교개혁: 중세적 질서의 부정과 정치적 구도의 재편
③ 과학혁명: 세계에 대한 이해의 확대와 합리적 정신의 실현
→ 인간이 세상의 주체임을 자각
→ 철학적 성찰(인식론)을 통해 '이성'적 사유의 중요성 강조
→ 사회인식론(계몽주의)으로 확산
2) 민주주의 / 자본주의
① 정치적 관점의 변화: 사회 계약론(홉스/루크/루소)의 성립 → 민주주의의 탄생
- 홉스: 국가 = 리바이어던
- 루크: 제한적 사회
- 루소: 사회 = 사회 구성원의 갈등과 불평등을 중재
② 경제적 구조의 변화: 산업혁명과 물질적 생산력의 진화 → 자본주의의 확립
→ 근대 국가의 탄생(민주주의+ 자본주의)
근대 이성의 폭력성
1) 계몽주의: 서구 사회의 역사적·정신적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 > 편향적 세계관 치료
2) 자본주의: 물질적 생산력에 대한 욕망의 강화는 결국 목적의 수단화(도구적 합리성)로 이어짐
→ 이성적 사유의 토대 위에 구축
서구 근대 이성의 시대, 광기의 시대
광기의 역사
① 문제의식: 근-현대 사회에서의 광기는 실성, 즉 이성을 잃은 것으로 이해된다.
-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보편타당한 진리일까?
② 광기에 대한 이해의 역사적 변천과정:
ㄱ. 중세: 신성함의 표상(주술사)이자 종교적 구원
ㄴ. 르네상스: 같이 살 수 없거나 분리해야 할 대상(바보들의 배)
ㄷ. 고전주의 시대(17~18세기): 구빈원의 설립(광인도 포함),
광인 = 이성의 결여, 인간이 아닌 야수. 이러한 인식은 근대 이성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 그 결과 광인은 과학적 정신 분석의 대상이 됨으로써, 관찰과 통제 아래 놓이게 됨. 잔인한 치료.
ㄹ. 근대의 시대(18세기 이후): 광기=죄악, 수용소 내 죄수들 조차 광인들을 거부
인간 존엄 사상의 확대 결과 새로운 수용소가 탄생되고 광인들은 자신들의 비이성적 인지 모르니 목사례서 있게 될 불완전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고 치유하는 교화(자기 통제)의 대상이 됨. 역으로 치료사는 의사가 아니라 현인 또는 도덕적 우월성과 동일시.
ㄱ. 광인에 대한 이해는 시대별로 다르다. 따라서 오늘날 광인에 대한 이해는 시대적 특수성의 문제일 뿐,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다.
ㄴ. 광인은 신성함→이상한 자→치료의 대상→교화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 이성은 광인을 더욱 인간적으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ㄷ. 결국 근대 이성은 근대 이성에 위배되는 것들을 분리해 내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었다.
ㄹ. 나아가 근대 이성의 '지식'이란 보편적 진리의 탐구(성찰)가 아니라 당대의 다양한 물질적, 비물질적 조건들의 결합(정치적이든 과학적이든)이자, 불연속적이고 단절된 지식들의 형성 과정일 뿐이다.(지식의 고고학-병리해부학의 발전과정과 동양의학) 이러한 특수한 이해관계에 얽매인 지식이 보편타당한 진리로 ‘만들어짐으로써’ 그것은 권력이 된다.(지식과 권력의 관계)
지식의 고고학: 지식은 진리인가
광인은 실성한 정신병자이며, 해부는 인간의 몸을 알기 위해 필수적인 의료 절차라는 근대의 법률적ㆍ의학적 지식이 과연 진리인가? 그것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물과 그 사물이 설명하는 말(지식)이 유일하고도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즉, 말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인은 시대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언어로 규정되었으며 인간의 신체 또한 해부학의 대상일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언어는 사물의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사물을 특정한 의미를 내재한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도구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언어 행위와 그것의 결과물인 지식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주체적 의지의 소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묘한 통제와 은폐된 권력: 감시와 처벌 - 도덕의 계보학
- 배제의 원칙: 금지, 분할과 배척, 진위의 대립
- 금지-특정한 주제의 담론(성적 담론 등)의 출현을 억제
- 분할과 배척: 특정한 담론 주체(광인 등)가 정당한 담론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봉쇄하는 것.
- 진위의 대립: 옳음/그름, 참/거짓, 정당/부당과 같은 이분법적 지식 체계를 통해 특정한 담론들이 외적인 강제 없이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하는 것.
→ 금지와 분할과 배척: 가시적인 억압 기제, 진위의 대립: 교묘하고 은밀한 통제 장치
감시와 처벌
① 죄수에 대한 처리 방식의 변화: 신체형에서 합리적 방식으로의 변화
ㄱ. 절대군주 시대: 잔인한 방식으로 처벌(신체형) - 군주 권력의 위엄과 절대적 복종의 심리를 창출하는 정치적 과정
ㄴ. 18세기 후반: 신체형의 비인간적인 측면을 비판(이성적), 합리적인 계산에 입각한 효과적인 징벌의 원칙으로 이동.(여섯 가지의 원칙-최소 분량의 원칙, 관념성 충족의 법칙, 측면적 효과의 법칙, 완벽한 확실성의 법칙, 보편적인 진실의 법칙, 최상의 특성화 법칙)
→ 범죄자의 처벌이 물리적 처벌 그 자체로부터 교화 및 범행의 예방으로 전환
→ 이러한 형벌 제도의 변화는 인간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규율 사회의 건설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한 부분
② 권력과 통제의 내면화
ㄱ. 파놉티콘: 감금자들의 통제와 관련해 물리적 비용을 별로 들일 필요가 없는 효과적인 통제 방식
ㄴ. 공간적 격리와 양심을 자극하는 담론(파놉티콘과 이성에 기초한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담론들)
ㄴ. 훈육 기법의 활용: 일정 시간의 노동과 휴식, 급료 제공 등
③ 결론: 범죄에 대한 근대적 관리법은 합리적 지식들을 토대로 죄수들을 순종적 인간들로 만들고, 도덕과 윤리적 진실에 관한 담론으로 이를 강화. 근대의 이성적 사유의 확산 결과 감금자들은 물리적 체벌로부터 보다 은밀하고 교묘한 통제의 대상이 된다.
도덕의 계보학: 지식은 권력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근대 사회에서 범죄자와 일탈적 성행위자 들은 국가 권력의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구축된 지식 담론에 의해 관리. 이러한 근대 사회의 통제 방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권력은 지식과 담론을 적극적으로 창출해 내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정한 도덕률을 주조해냄으로써 그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힘이다. 그 권력은 지식과 담론에 의해 은폐되어 있어 매우 은밀하게 작동한다. 둘째, 권력의 작용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권력의 객체들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객체들 내부로부터 통제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예속화의 원칙)
셋째, 그 권력은 특정한 공간적 지점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병원, 작업장, 교도소 등 사회의 곳곳에서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분산된 형태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근대 권력은 그것의 궁극적 주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종의 네트워크 형태로 작동하는 것이다.(권력의 미시물리학)
푸코 철학 근대 속 통제와 억압과 폭력
근대란 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였다.
푸코의 근대 이성 비판의 요점
첫째, 근대 이성은 모든 인간을 존엄성의 차원에서 동일하고 동등하게 규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율적이고 완성된 인간과 종속적이고 미완성된 인간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범주에 따라 전자는 후자를 통제하고 다스릴 도덕적, 정치적 권한을 갖는다.(‘보호'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은밀한 폭력을 포함)
둘째, 근대 이성에 의해 형성된 지식은 타율적이고 완성되지 못한 인간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why? - 인간을 탐구하는 근대의 여러 지식들이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진리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
셋째, 근대 지식은 과거와는 달리 인간 '개인의 몸'과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은밀하고 정교한 권력의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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