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한시를 다룬 『소화시평(小華詩評)』은 조선후기 홍만종이 저작한 시화집이다. 홍만종은 젊은 시절 오랜 시일에 걸쳐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화시평』을 저술했다. 『소화시평』은 상고시대부터 당대까지 조선의 역대 한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품평하는 책인데 이렇게 역사와 비평을 결합한 책은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홍만종의 노력으로 『소화시평』은 기존의 시화 저작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시각을 갖춘 새로운 면모의 시화 저작이 되었는데, 홍만종은 조선의 문학이 평가 절하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홍만종이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과시하려 저술한 것이다.
<INDEX>
소화시평 개요와 저자
- 홍만종(洪萬鍾, 1643~1725)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시인으로, 17세기 국학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 저술 시기: 31세(1673년)에 완성, 2권 1 책으로 구성.
- 활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10여 종 이상의 필사본만 전해집니다. 규장각, 영남대, 계명대, 개인 소장본 등이 존재
- 고려 태조부터 조선 후기까지 212인의 시를 선정해 비평.중동산 국제원유가 상·하권 체제: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며, 각 권에는 김진표, 홍석기, 김득신, 홍만종의 서문이 실려 있습니다.
- 비평 대상: 고려 태조, 을지문덕, 최치원 등 고대 인물부터 조선 후기까지 다양한 시인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다룹니다.
소화시평 비평적 관점과 시대적 의의
비평의 서술 구조를 살펴보면 『소화시평』은 개별 작가를 시대 순으로 배열하고 각 작가의 대표적 작품을 예로 든 후, 그에 대해 평을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분석해 보면
(ㄱ) 작가에 대한 설명,
(ㄴ) 시 제목이나 창작동기에 대한 설명,
(ㄷ) 뽑힌 시 본문,
(ㄹ) 시에 대한 평자의 주관적 평가,
(ㅁ)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소개.
전반적인 서술이 이러한 방식을 따르며 이는 두 작품의 성격이 같은 데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비평 자체가 객관성을 갖춰 설득하는 글이기에 체계적인 서술구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이 두 비평은 통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작가와 작품을 시대순으로 나열해 우리 한시의 역사를 조명했다.
시평의 기준:
- 입지(立志): 시인이 지닌 뜻과 의지의 소재를 중시.
- 수사(修辭)와 격률(格律): 시의 수사적 기교와 운율, 형식의 완성도를 평가.
- 작품의 우열과 참·거짓: 시의 깊이(천심), 공력(공졸), 맑음과 탁함(청탁) 등으로 우열을 판단.
- 기상(氣象)과 함축성: 시의 기상과, 그 이면에 담긴 함축의 오묘함을 가장 중시.
- 당풍(唐風) 중시, 송풍(宋風) 배격
- 고증적 태도와 책임감: 한시의 격조와 기상을 평가의 중심에 두며, 문학적 고증과 책임감 있는 비평을 강조.
- 신분, 계층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인과 작품을 발굴·소개, 유교적 금기와 도가사상, 속요·속담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문학관을 보여줌
소화시평 영향과 후속 저술
- 시평보유(詩評補遺): 『소화시평』의 보완서로, 더 많은 시인과 시구를 다루며, 소외된 작품까지 발굴하여 조선 한시의 스펙트럼을 넓힘.
- 시평치윤(詩評置閏), 시화총림(詩話叢林): 알려지지 않은 시인과 작품, 역대 시화 정리 등 한시비평의 깊이와 폭을 확장
소화시평 감상
『소화시평』은 조선시대 한시비평의 대표적 저술로, 시의 기상과 격조, 개성과 함축을 중시하는 홍만종의 비평관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선 한시의 미적 전통을 계승·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한시비평의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한 명저로 평가받습니다.
역대 품평을 수용했다는 것은 저자가 비평을 함에 있어 앞선 비평가들이 했던 품평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인용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비평을 수용하는 양상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선배의 품평을 수정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힌 품평, 선배 평자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한 품평이 그것이다.
다음은 소화시평 하권 4칙 이산해 <왕소군(王昭君)> 절구 2 수이다.
왕소군은 한나라 황제 원제의 후궁이다. 당시 원제는 화친의 의미로 흉노족에게 보낼 후궁을 초상화를 보고 선택했다. 당시 후궁들은 화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 했지만 왕소군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 결국 원제는 못생기게 그려진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후에 왕소군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자 화가 나서 화가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계 아산해는 <왕소군(王昭君)> 절구 2수를 지었다. 이 시는 형공 왕안석의 <명비곡>의 뜻을 훔쳐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아계의 시는 뜻이 너무 노출되었다. 참으로 언 지(言志)란 마음을 기록하는 소리구나! 나대경이 일찍이 형공의 시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신하로서 군주를 배반하고, 아내로서 남편을 버릴 수 있는가?” 주자도 이 시를 도리에 어긋나고 도를 해치는 글이라 평했다.
홍만종은 이 시에 대해 뜻이 너무 노출되었다 말할 뿐 직접적인 평가를 피하고 있다. 그러나 나대경과 주자의 평을 인용한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아산해의 시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비평방식은 선배 평자의 품평을 전적으로 수용한 비평에 속한다. 홍만종이 선배들의 품평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건 아니었다. 홍만종은 선배의 품평과 다른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다음은 소화시평 하권 19칙 차천로의 시에 관한 평을 적은 것이다.
세상에서는 차천로의 시가 이무기와 지렁이가 간혹 섞여 있다고 흠잡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오산의 시가 장편대작은 도도하게 흘러 마르지 않는 강물과 같다. 문장을 마구 써내려 갈 즈음에는 말을 선택할 겨를이 없다. 비록 자그마한 흠이 있다 해도 그것은 마치 등림(登臨)숲에 말라버린 나뭇가지가 있고, 푸른 바다에 지푸라기가 떠있는 것과 같다.
홍만종은 차천로에 대해 폄하하는 일반적인 평가를 따라가지 않고 차천로의 진정한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의 시에 단점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으로 우수한 점을 무시하려는 품평의 태도는 지양한 것이다. 앞의 두 예시에서 알 수 있듯 홍만종은 역대에 있었던 품평을 주체성을 가지고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이와 같이 선배 평자들의 견해를 직접, 간접으로 수용한 것은 자시 주관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홍만종의 엄정한 비평가적 태도를 보여준다
'StudyTok > 독서, 감상,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영화 《무대자매》 요약 리뷰 (0) | 2025.07.17 |
---|---|
조선 시화 비평 남용익 『호곡만필』 (0) | 2025.07.09 |
조선시대 시화집 김득신 종남총지(終南叢志) (0) | 2025.07.08 |
동아시아 고전문학 비평 감상 이론 (0) | 2025.07.06 |
서유구 『임원경제지』 내용 요약 감상 (0) | 2025.07.05 |
서양철학 근대 서구 이성과 푸코 (0) | 2025.07.04 |
조선중기 한시비평 양경우 『霽湖詩話(제호시화)』 (0) | 2025.07.02 |
조선 산문 이야기 유몽인 『어우야담』 於于野談 (0) | 2025.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