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nerTravel입니다.
오늘의 BookTok은『역사란 무엇인가』 서평, 독후감, 요약, 리뷰 글입니다.
저자소개
영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런던에서 출생한 에드워드 핼릿 카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외무부, 부편집인,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 명예 연구원 등으로써 많은 업무에 종사하였었다. 그는 ‘금세기에 한 영국인 역사가에 의해서 쓰인 가장 중요한 저작들 중 하나’이자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평가받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 『소련사』, 소비에트 형과는 다른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하여 사회주의 실현을 시사하면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운동을 유럽인들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 『새로운 사회』, 이외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 『평화의 조건』, 『소련의 충격과 서구세계』,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저작을 남기며 1982년 11월 3일 생을 마감한다.
내용 요약
1강: 역사와 역사가, 그의 사실들
(1) 개요
- 액턴은 말했다. “우리는 이 세대에 완전한 역사를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정보를 입수할 수 있고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으므로, 종래까지의 역사를 치워버릴 수 있고, 전진의 도정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줄 수 있다.” 그는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긍정적인 신념과 분명한 자신감을 표명하고 있다.
- 조지 클라크 경은 말했다. “역사 연구는 일부 성급한 학자들은 회의주의 안으로 도피한다. 혹은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과 관점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판단은 저 판단과 마찬가지로 옳으며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리 안으로 도피한다.” 그는 비트 세대의 방황과 곤혹스러운 회의주의를 보여준다.
(2) 사실 존중의 시대
- 19세기의 역사가들은 사실을 숭배했다. 그들은 오로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만 증명하면 되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역사가 랑케가 있다.)
-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열렬히 주장하며 사실 숭배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사실 확인을 하고, 이후 그것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야한다고 했다. 이는 당시 영국 철학을 지배하던 경험주의적 전통과 완전히 일치. 경험주의적 인식론은 주∙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한다.
- 역사는 사실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 과정은 수동적이다. 즉, 역사가들의 선택에 의해 역사가 결정된다. 액턴의 태도에 비판적이었던 조지 클라크 경도 사실에는 옹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3)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 과거의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첫째, 역사가들은 정확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영국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하우스먼은 말했다.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이 아니다.” 역사가들이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좋은 제품을 가지고 집을 잘 짓는 건축가를 칭찬하는 것과 같다.
- 둘째, 기초적 사실을 확정해야 할 필요성은 경험이 없는 역사가의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허락에 의해서만 전해진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역사가들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소수의 사실이 전부가 될 것이다. 러클러프 교수는 말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엄격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다.”
(4) 무지의 필요성
- 무지(無知)는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이다. 소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들고 중요성을 기준으로 ‘하찮다’라고 여겨지는 비역사적 사실들을 추려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5) 역사는 역사가가 만든다
- 19세기의 역사가들은 사실을 숭배했고 역사는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20세기의 역사가들은 그 ‘사실’에 도전장을 내민다.
-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이 아닌 ‘평가’이다.
-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는 주장했다.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가가 그것들을 창조할 때까지는 그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콜링우드는 크로체로부터 영향을 받아 20세기 역사철학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견해는 이렇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이다. 그러나 과거의 행동은 만일 역사가가 그것의 배후에 있었던 사유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역사가에게는 죽은 것, 즉 의미 없는 것이다.’
- 영국의 정치학자 오크셔트 교수는 말했다. “역사란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 역사는 ‘기록자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역사는 해석을 의미하고 역사가들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6) 20세기 역사관 무조건 수용의 위험
- 역사를 역사가가 만들어나가는 것이 되면서 모든 역사를 배제시키는 것이 쉬워졌다. 그리고 만일 역사가가 반드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그 현실 문제에 대한 열쇠로서 역사를 연구해야만 한다면, 그 역사가는 사실에 관한 순전히 실용적인 견해에 빠지게 된다. 이는 올바른 해석의 기준은 현재의 어떤 목적에 대한 그 해석의 적합성이라고 주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7) 역사란 무엇인가
- 사실의 정확성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역사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나 자신이 제시하려는 해석과 어떤 의미로든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혹은 연관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사실들을 그려내야 한다.
- 역사가는 현재를 대표하고 사실은 과거를 대표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이며 평등한 관계에 있다.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2강: 사회와 개인
(1) 사회를 떠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 사회와 개인은 대립적인 것이 아닌 상호보완적이고 서로가 필수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사회를 떠난 개인은 존재할 수가 없다.
- 영국의 시인 던은 말했다. “어떤 사람도 그 자신만으로 전체가 되는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본토의 일부이다.”
-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누구든지 사회 안에 속하게 된다. 우리의 언어, 환경, 성격 등 ‘우리’를 의미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적으로 취득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회로부터 독립된 개인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사회가 발전해나가면 개인도 함께 발전해나갈 것이다.
(2) 개인숭배의 시대
- 사회가 복잡해지고 선진적으로 변화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사회와 개인의 관계 또한 선진적으로 변화하게 되고 각 개인의 ‘개별화(individualization)'가 심화된다. 이 과정과 사회의 힘 혹은 응집력 사이에 대립항을 설정하려 하는데, 이는 중대한 오류이다.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은 병행하며 서로를 조건 짓기 때문이다.
-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된 ‘개인숭배’가 발전한다. 오직 어느 조직(집단, 단체, 부족, 종족 등)의 구성원으로서만 자신을 의식해왔던 인간이 이 시기에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한 ‘개인’이 되었다고 인정한다. 여러 시민혁명, 사회혁명을 겪게 되고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이 발흥한다.
(3) 과거는 현재를 통하여
- 상식적인 역사관은 역사를 개인(=역사가)에 의해서 쓰인 개인에 관한 어떤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역사가의 지식은 오로지 그만의 것이 되지 못한다. 사실 역사가도 사회의 한 ‘개인’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연구하는 그 사회의 의식적∙무의식적 대변자가 되기도 한다.
- 역사의 경로 위에서 역사가는 그 자신이 움직여나간다. 새로운 관경과 시각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가 잇는 지점이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시각을 결정하게 된다. 즉, 우리는 그의 연구에 대한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가 없다.
-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역사가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한다.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역사가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4) 역사가의 연구 대상
- 웨지우드는 자신의 저서에 이렇게 썼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은 집단이나 계급으로서의 행동보다 나에게 더욱 흥미롭다. 역사는 이런저런 편견으로 쓰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잘못될 것도, 덜 잘못될 것도 없다. ∙∙∙ 그 인물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그리고 어째서 그들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해보려고 한 것이다.’
- 웨지우드의 말에 두 가지 주장이 결합되어 있다. 첫째,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은 집단이나 계급의 성원으로서의 행동과 구별되는데, 역사가가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이든 정당하게 선택하여 고찰할 수 있다. 둘째,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에 대한 연구는 그 행위의 의식적인 동기를 연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5) 카를 마르크스의 견해
-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이것은 모든 추상적인 역사관과는 관련이 없고 순전히 경험적인 것에 기초한다.
- 첫째, 역사란 상당한 정도까지 수의 문제이다. 칼라일과 레닌이 말하는 수백만은 인격이 있는 개인이며, 다소간에 무의식적으로 함께 행동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세력을 형성했던 개인들이다. 모든 효과적인 운동이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지만 다수의 추종자들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할 수 있던 일이었다.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가 아닌 이름 없는 ‘수백만의 개인’들로 인해 형성되는 것이다.
- 둘째, 역사가 한 개인의 행위로 인해 변화하지 않는다. 역사의 사실은 분명히 개인에 관한 사실이지만, 고립된 채 행한 개인의 행동에 관한 사실, 또는 동기는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들에 관한 사실이다.
(6) 위인
- 한 개인의 행동보다 다수의 행동이 사회를 변화시킨다 할지라도 앞선 자신의 시대가 아닌 그 후의 사람들로부터 위대함을 인정받은 위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인은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탁월한 개인이기 때문에 현저히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들이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업적을 세우는 결코 비범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 위인은 항상 기존 세력의 대변자이거나 아니면 현존하는 권위에 도전할 생각으로 그가 힘을 쏟아 형성시키려는 세력의 대변자이다. 그들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며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사유를 변화시킨 사회 세력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타구얼한 대리인으로서 인식해야 한다.
(7)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인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그러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정하는 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 부르크하르트는 말한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3강: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1) 역사는 과학이다.
- 18세기 말, 과학이 사회에 관한 인간의 지식까지도 진전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제기 되기 시작한다. 사회과학적인 개념, 역사의 이 개념이 19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발전한다.
- 자연계 연구에 적용되었던 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의 문제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되었다. 이 시기 초반에는 뉴턴적 전통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다윈 이후에 생물학에서 단서를 얻은 사회과학자들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지질학자 라이엘에 의해 다윈이 지질학에서 시작된 것을 완성시키는 가운데 역사를 과학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과학이 더 이상 정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닌 변화, 발전의 과정을 다루게 된다.
(2) 역사 속에서 법칙의 개념
- 18, 19세기 동안의 과학자들은 자연에 관한 여러 법칙들이 발견되어 명확하게 확립되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 ‘법칙’이라는 용어는 훌륭한 흔적들을 남기며 전해졌다.
-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과학적인 지위를 가진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에 과학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용어를 사용했고 똑같은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믿었다. 또 역사의 사실을 수집하는 태도와 이를 해석하는 태도는 과학의 방법으로 여겨지게 된다.
(3) 과학과 역사의 차이를 강조한 논점
1) 역사는 특수한 것만을 다루며 과학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다룬다.
- 홉스는 말했다. “이 세계에는 이름 이외에 보편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름 붙여진 것들은 모두 하나하나가 개별적이고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똑같은 두 개의 역사적인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나 역사는 일반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다. 영국의 역사가 엘턴은 말했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 번성한다.” 즉,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그 관계를 분리시키거나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다.
2)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3) 역사는 과학과 달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 비록 특정한 예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사가가 일반화를 한다면 그는 미래의 행동에 대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할 것이다.
- 따라서 사회과학자 혹은 역사가가 과학자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좋지 않다. 인간은 하나로 특정 지을 수 없는 가장 복잡한 자연의 존재물이다. 이의 행위에 대한 연구는 자연과학자와 역사가, 사회과학자 모두 다른 종류의 어려움만 있을 뿐 각 목표와 방법이 다르지 않다.
4) 역사는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인간은 자연적 존재물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다른 종에 속하는 독립적인 관찰자들에 의해서가 아닌 같은 인간에 의해서 연구되어야만 한다.
- 신체 구조의 반응만으로는 부족하여 여러 사람들의 행동을 탐구할 필요가 있었다. 역사와 사회과학에 고유한, 관찰하는 사람과 관찰되는 것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역사가의 관점은 모든 관찰에 불가피하게 개입하기 때문에 상대성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카를 만하임의 말했다. “경험을 포괄하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주마저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 그러나 이는 최근 과학에서도 나타난다. 현대 물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는 불확실성(또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공간상의 거리와 시간의 흐름을 재는 척도가 ‘관찰자’의 움직임에 좌우된다고 한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모든 측정이 유동적이다.
5)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 영국의 가톨릭 신학자 신부는 말한다. “어떤 연구자든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역사의 모든 문제에 대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현세의 사건들과 인간의 드라마를 최대한 말끔하게 정돈한 후에야 비로소 더 폭넓게 성찰하는 것이 허용된다.”
- 역사의 완결성은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좌우하는 어떤 초역사적인 힘에 대한 신념과 조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즉, 신의 힘에 의존하는 종교의 문제와는 달리 역사는 신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전제하고자 한다.
- 역사가는 도덕가(재판관)가 아니다. 역사가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역사적 사실의 주인공들의 사생활이 아닌 ‘업적’이다. 그들이 잔혹하고 파렴치한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업적이 폄하되지는 않는다.
- 그러나 크로체는 말한다. “∙∙∙ 역사를 쓴다는 구실로 재판관처럼 부산을 떨면서 여기에서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기에서는 용서를 해주는 사람들, 그런 것이 역사의 직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 일반적으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들이라고 인정된다.”
- 그런데 역사 안에 도덕적 문제를 포함하는 것은 현 시대 역사가가 가진 곤경 중 하나이다. 누군가가 히틀러나 스탈린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트집 잡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들 중 많은 이들과 동시대인이며, 그들의 행위로부터 고통 받은 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역사가는 재판관이 될 수 없으며, 개인에 대해서가 아닌 과거의 사건이나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이는 역사가의 주요한 판단이다.
(4) 과학적으로
- 과학에서 역사를 배제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은 지배계급의 폭넓은 교양을 일컫는 것으로, 그리고 과학은 그 계급에게 봉사하는 기술자의 기능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 그러나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의 목표가 동일하다는 점에 대해 이해를 촉구해야 한다.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분야는 서로 다르나 모두가 동일한 연구를 한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 연구의 목표도 동일하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배를 증진시키는 것.
4강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1)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
-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책에서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의 행위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는 것,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그들이 서로 싸운 원인을 밝히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 18세기 몽테스키외는 ‘발생하는 모든 것은 이 원인들에 좌우된다.’라는 원칙을 일반화시켰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결과들이 맹목적인 운명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인간은 유일하게 환상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다.’
-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려고 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원인에 대해서 연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역사가는 연구를 함에 있어서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며,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한 사람이 위대한 역사가가 될 수 있다.
(2) 원인의 다양화와 단순화
- 역사가들은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원인의 문제에 대한 연구방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경제학자 마셜은 말했다. “어느 하나의 원인과 뒤섞여 효과를 발휘하는 다른 원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 그 하나의 원인의 작동만을 고찰하는 일은 가능한 한 반드시 피하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한 사건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개인적 원인 및 장기적 원인과 단기적 원인을 주워 모을 것이다.
- 이는 역사가들 간의 상호관계를 고정시키게 될 원인들의 일정한 위계질서를 수립하거나 혹은 어떤 원인이나 범주들의 원인들이 갖고 있는 궁극적인 원인, 곧 모든 원인들의 원인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이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연구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이끌어내는 원인을 통해 알려진다.)
(3) 자유 의지와 결정론
-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정의한다.
-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따라서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은 사회 밖 인간처럼 추상적인 인간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행위가 원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을 불가능하다.
- 일상생활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 사람에 대해 그의 의지의 자유로움과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생각하며 그것을 굳게 믿을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논리적인 딜레마는 실제생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 역사가도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에 원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는 자유의지를 거부하지 않으며, 필연성의 문제에 대해 골치 아파하지도 않는다. (역사가들에게 ‘필연적’이라는 말은 그 사건에 대해서 기대하게 만드는 여러 요인들의 결합이 엄청나게 강력했다는 뜻이다. 역사가들은 실제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것이 필연적(‘불가피한’, ‘도망갈 수 없는’이라는 뜻)이라고 추정하지 않는다. 역사가들은 선택은 자유라는 가정 위에서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취할 수 있는 여러 대안적 경로들을 논의한다.)
(4) 필연성에 대한 비난
- 사실 필연성을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 필연성에 대한 비난에 맹렬히 일어난다. 출처는 ‘그랬을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학파(미련(未練)학파)가 아닐까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들로부터 역사가는 발생할 것을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암암리에 묘사했고 발생했을지도 모를 다른 모든 것들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공격받을 것이다.
- 역사에서 그랬을지도 모를 것들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결정론과는 관계가 없다. 결정론자는 단지 이런 일들이 발생했으려면 그 원인들도 달랐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또 역사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 미련학파는 발생했을지도 모를 기분 좋은 모든 일들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는 그들의 꿈은 왜 성취되지 못했는지를 담담히 설명하는 역사가들에게 분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기정사실을 다룸으로써 그 선택의 여지를 제거해버린 역사가의 태도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현대사의 골칫거리이다.
-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이라는, 즉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이론인 ‘클레오파트라의 코’도 필연성에 대한 공격에 대한 하나의 근거이다. 이 인과적 전후관계는 역사가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자 하는 전후관계와 충돌한다. 또 이것은 승리를 하지 못한 쪽이 주로 주장하는 이론이다. 역사에서의 운이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들이 역사적 사건들의 봉우리가 아니라 골짜기를 지니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서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역사, 역사가, 그리고 원인
- 역사란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 사이의 구별은 엄격한 것도 아니고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사실도 그것의 적절성과 중요성이 밝혀지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결국 역사적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이 역사이다.
- 역사는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들의 선택체계일 뿐만 아니라 인과적 지향들의 선택체계이다. 무수한 인과적 전후관계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추출해내고 그것을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패턴에 합치시키는 것은 역사가의 능력이다. 그리고 훌륭한 역사가라면 미래에 관해서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지 미래를 뼛속 깊이 느끼는 사람이다.
- 역사가는 한 사건의 원인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원인들은 비합리적이며 우연적이라는 것을 구별한다. 합리적인 원인은 유익한 일반적인 원인이 되며,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연적인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으며 어떠한 결론과 교훈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5장 : 진보로서의 역사
(1) 역사에서의 진보
- 진보는 진화와 다른 개념이다. 진보는 사회적인 획득이 원천이 되고 진화는 생물학적인 유전이 원천이 된다. 즉, 생물학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획득형질의 전승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기초이다. 역사란 획득된 기술이 한 세대에서 역사는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진보에 일정한 출발점이나 종점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진보라는 것은 계속되는 여러 시대의 요구사항과 조건에 의해 각 시대만의 특정한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으로 기꺼이 간주해야만 한다.
- 액턴은 설명했다. ‘변화는 빨랐으나 진보는 늦었던 400년간, 자유가 유지되고, 확보되고, 확대되어 마침내 이해된 것은 폭력의 지배와 항상 존재하는 악의 지배에 부득이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약자들의 결집된 노력 덕분이었다.’ 액턴은 사건의 경과로서의 역사를 자유의 이해를 향한 진보로 인식했다.
- 역사가의 경우에 진보의 목적은 이미 진화된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이다; 그곳으로 가게 하는 이정표들은 우리가 전진해야만 시야에 들어온다. 역사의 내용은 우리가 역사를 경험해야 현실화될 수 있다.
- 그 누구도 역전과 일탈과 중단 없이 곧장 일직선으로 전진한 그런 종류의 진보를 믿지 않고, 따라서 가장 급격한 역전조차도 진보의 믿음에 반드시 치명타를 가하지 않는다. 진보의 시기가 있으니 퇴보의 시기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더불어 퇴보 이후의 전진이 똑같은 지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가정은 섣부르다. 한 지역에서 문명을 전진시키는 데 필요한 노력이 퇴보, 즉 사라지게 되면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 재개된다. (역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진보는 그 어떤 것이든 시간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확실히 연속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역사에서의 진보는 자연에서의 진화와는 달리 획득된 자산의 전승에 의존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자산은 물질적인 재산과 자신의 환경을 정복하고 변형,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포함한다.
(2) 역사의 방향감각
- 종점에 달하지 않은 진보의 내용은 자동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에 대한 신념이 아닌 인간의 잠재력을 부단한 발전시키는 신념을 의미한다. 역사의 완전성과 종점이 불가능하지만 전진하고 획득하는 과정을 거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만 진보를 할 수 있다.
- 이 때 역사에서 객관성이라는 문제를 마주친다.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사실의 객관성일 수 없으며 오로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일 수 있을 뿐이다.
- 버터필드 교수는 말한다. “역사가에게 유일하게 절대적인 것은 변화이다.” 역사에서의 절대적인 것이란 과거 속에 있는 출발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모든 현재의 사유는 반드시 상대적이기 때문에 현재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진하는 미래 속의 어떤 것, 우리가 전진할 때에만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떤 것, 그리고 전진함에 따라 우리가 점차 과거에 대한 해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빛을 밝혀주는 어떤 것이다.
-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변함없는 어떤 것이라는 정태적인 의미에서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절대적이다. 이는 어떤 해석이든 훌륭하다는 등에 대한 상대주의적인 견해를 거부하는 동시에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궁극적으로 판가름해줄 시금석을 제공한다. 이것이 역사의 방향감각이며, 이것만이 우리가 과거의 사건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미래의 전망을 가지고 현재에 인간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고 조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 우리의 방향감각, 즉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우리가 전진함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3) 객관적인 역사가?
- 한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 첫째, 그 역사가에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로 인해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둘째, 그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전적으로 속박된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가들보다 과거를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오늘날 역사가들은 ‘완전한 역사’의 성취 가능성에 대한 액턴의 확신에 답습하려 하지 않지만, 다른 역사가들보다 더 지속적이고 더 완전하며 더 객관적인 역사를 쓰는 역사가들이 있다; 과거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가진 역사가들이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는 미래의 이해에 다가설 때만 객관성에 접근가능하다.
(4) 과거와 미래의 대화
-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닌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이다. 역사가의 과거에 대한 해석, 중요한 것과 적절한 것에 대한 선택은 새로운 목표들이 서서히 출현함에 따라 발전한다.
- 누구나 역사의 미래나 사회의 미래를 믿어야 할 의무는 없다. 우리 사회는 파괴될 수도 있고 점차로 쇠퇴한 끝에 멸망할 수도 있으며, 또한 역사는 신학으로, 아니면 문학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깨달아온 역사의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5) 존재와 당위
- 역사가는 진보의 방향을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자신이 도덕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도 ‘중요성의 기준’으로 삼아서 과거에 대한 연구에 적용하였다. 이는 존재와 당위 사이의, 사실과 가치 사이의 이분법을 해소시켰다.
- 존재와 당위 사이의 이분법은 절대적이고, 가치는 사실에서 도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반대세력을 과소평가하고 아슬아슬한 승리를 일반적인 승리로 표현한다. 그러나 패배자는 승리자 못지않게 결과에 크게 공헌해왔고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패배를 했든 승리를 하였든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6) 가장 유용한 것
- 역사에서의 판단의 기준은 어떤 보편타당성을 요구하는 원리가 아닌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이는 과거를 분석할 때뿐만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도 가능하다.
- 가장 효율적인 것을 위해 우리의 역사해석의 근원에는 타협이 존재하며, 바람직한 것이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인해 과거를 비난하는 오류는 없다.
-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는 판단 기준의 적용이 쉽거나 자명하지는 않다. 한 사람의 업적에 대해, 그리고 그 영향에 대해 객관적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느 역사가라도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 시간이 흐를수록 객관적인 판단에 더 근접해 있는데, 이는 역사과정이 전진함에 따라 발전하게 되는 기준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역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7) 진리의 이중성
- 가치는 사실에서 나올 수 없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진리이나 부분적으로는 오류이며, 이 주장은 일방적이고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정이 필요하다.
- 원시 기독교의 가치와 중세 교황의 가치, 오늘날 스페인 기독교 교회가 선전하는 가치와 미국의 기독교 교회가 선전하는 가치를 비교하면, 이 가치에서의 차이가 역사적 사실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가치는 사실에 개입하여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 역사를 진보의 기록으로 만들어온 주변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의 가치를 통해 마련되나 인간과 환경의 투쟁을 과장시켜 사실과 가치를 대립시키거나 분리시키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 성취된다. 객관적인 역사가란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하는 역사가가 될 것이다.
- 사실과 가치의 문제에 대해 알기 위해 ‘진리(truth)’라는 단어의 용법을 알아야 한다. 이는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 양쪽에 걸쳐 있는, 그리고 그 양쪽의 요소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 진리의 이중성은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언어이든지 단순히 사실의 진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가치판단도 아닌, 그 두 가지 요소를 함께 포괄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가 진리이다.
6장: 지평선의 확대
(1) 자기의식의 발전
- 20세기 중반의 세계는 15, 16세기에 중세 세계가 몰락하고 근대 세계의 기초가 놓인 이래 세계를 덮쳐왔던 모든 변화과정 중에서 가장 심원하고 광범위한 변화과정을 겪는다. 변화는 과학적인 발전과 발명의 산물이며, 그것들의 훨씬 더 광범위한 응용의 산물,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그것들이 낳은 발전의 산물이다.
-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를 자연적 과정이 아닌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 사건들의 연속이라 생각할 때, 역사가 시작된다.
- 부르크하르트는 말한다. “역사란 의식의 각성에서 비롯된 자연과의 결별”; 역사는 이성의 발휘를 통해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에 작용해 온 인간의 오랜 투쟁이다. 그러나 근대는 그 투쟁을 혁명적으로 확장시켰다. 인간은 환경뿐만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이해하고 그 자신에게까지 작용을 가하려고 한다.
- 데카르트에 의해 지위가 최초로 확립되고 그 결과, 인간은 사유와 관찰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라는 근대세계에서의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전이 시작된다.
(2) 헤겔과 마르크스
- 18세기로부터 근대 세계로의 이행은 점진적이었다.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전 속에서 현실의 본질을 통찰했던 최초의 철학자 헤겔은 이성의 법칙으로 전환되기도 하는 신의 섭리의 법칙이란 관념에 젖어 있었다. 한 손으로는 신의 섭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이성을 꽉 잡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때, 세계정신의 합리적인 목적과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바로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그 같은 목적을 실현한다.”
- 마르크스는 합리적인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하여, 법칙의 지배는 받으나 인간의 혁명적인 창의력에 조응한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세계라는 개념으로 이행했다. 그는 역사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일괄된 합리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세 가지의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이고 주로 경제적인 법칙에 일치하는 사건의 운동; 이에 조응하면서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유의 발전; 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면서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키고 결합시키는 계급투쟁 형태의 행동. 이는 객관적인 법칙과 그 법칙을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적 행동의 종합이다.
(3) 위대한 사상가 프로이트
- 20세기로 넘어와서야 현대사 시대로의 이행이 완료된다. 이 시대 속에서 이성의 일차적인 기능은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을 개조하는 것이 된다.
- 이성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여준 것이 사상가 프로이트이다. 그는 그 이성의 영역을 의식과 합리적인 탐구에 대해 인간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폭로함으로써 확장시켰고, 인간 자신을 따라 인간의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증대시키는 일도 했다.
-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의 의견을 보완하며, 인간 행위의 근원을 보다 깊이 이해함으로써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
(4) 프로이트의 중요성
- 역사가에게 프로이트는 중요하다.
- 첫째, 사람들의 행동은 본인들이 주장하거나 믿고 있는 행위의 동기를 통해 사실상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 둘째, 역사가에게 자기 자신과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주제나 시대에 대한 선택을 이끌고 사실에 대한 선별과 해석을 이끈 동기를, 그의 시각을 결정한 민족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형성시키고 있는 미래에 대한 관념을 심문해보라고 촉구했다.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사회 밖 개인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5) 이성의 역할의 확대
- 인간이 의식적인 발휘를 통해 자신의 환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기신마저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맬서스가 저작에서 아무도 그 과정을 의식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객관적인 인구법칙을 확립하려 하였으나, 이러한 법칙을 믿는 이는 오늘날에는 없다.
- 인간과 사회 모두는 우리의 눈앞에서 변화했고 또 의식적인 인간의 노력에 의해 변화하였으나 이러한 변화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과 교육의 근대적인 방법의 발전과 사용으로 이루어진 변화이다. 특정 형태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는 일과 여러 성향과 견해를 가르치는 일에 오늘날의 교육자들은 관심을 쏟고 있다.
- 이성이 사회 속의 인간에게 적용될 때, 이제 그것의 주요한 기능은 단순히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합리적인 과정을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 고양된 것은 20세기 혁명의 주요한 측면이다.
(6) 이성의 악용
- 이성은 단순한 조사를 위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활용되며, 정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활용된다.
- 광고주들이나 선거 사무장들은 소비자나 유권자가 지금 믿고 있는 것에 흥미를 가지거나 혹은 그런 믿음을 그들이 최종적으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결과로 전환시켜줄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만, 즉 원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만 흥미를 가진다.
- 어떤 사회에서건 지배집단은 여론을 조직하고 통제하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이는 이성의 악용을 낳는다.
(7) 세계적 균형의 변화
- 근대 세계의 기초가 마련된 15세기와 16세기, 신대륙의 발견,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서 대서양 연으로의 세계 중심이 이동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성의 확대와 더불어 20세기 혁명의 측면이며, 이것은 세계 중심이 서유럽에서 계속 머무를지에 대해 확실하지 않게 하였다.
(8) 지평선은 넓다
- 20세기 혁명에서의 이성의 확대는 지금까지 역사의 외부에 있던 집단과 계급, 인민과 대륙이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그래서 민중은 역사가의 관심대상이 되었고, 그 민중으로 구성되는 전체 체계를 처음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개념에서 하나의 혁명이나 다를 바 없다.
- 엘리트의 역사였던 18세기, 머뭇거리면서도 국민공동체 전체의 역사관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19세기, 그리고 오늘날 20세기에 와서 역사의 지평선이 영국을 넘어서서 서유럽 바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 이러한 지평선의 확대로 인해 지리적인 측면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동향에 문제점이 생긴다.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사용권 세계의 역사가 역사상 위대한 세계였다는 이유로 그 역사를 세계사의 중심으로 취급하고 그 밖의 모든 역사를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하면서 부당한 왜곡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9) 자유주의와 진보
- 액턴은 믿었다. ‘이념의 지배란 자유주의를 의미하며, 자유주의는 혁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주의 잔재들은 모든 곳에서 사회의 보수적 요소로 변했다. 지나친 자신감과 낙관주의에 압도되어 그들의 신념이 의지했던 구조의 불안정한 성격을 인식하지 못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는 역사 진보의 요인으로서의 변화에 대한 감각과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지침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신념이라는 오늘날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졌던 시대이다.
(10)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 영어 사용권 세계의 역사가들과 사회학자들과 정치 사상가들이 과업(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 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해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하는 것)을 위해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때를 저자는 기다린다.
- 영어 사용권 세계의 지식인들과 정치 사상가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신념이 약화되었다는 사실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충만한 감각이 감퇴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걱정한다. 이렇게 말하는 본인도 낙관주의자라 칭하며, 이미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 말한다.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그래도 - 그것은 움직인다.’
감상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나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역사 공부를 즐거워했던 나였지만, 솔직히 선생님의 말씀자체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막연하게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과 기록이 각각으로 분리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핼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사실’과 ‘기록’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에서도 역사적 사실로서 취급받을 수 있는 사건과 그렇지 못한 사건들이 있음을, 기록은 객관성을 가지고 쓰여야 함에도 각각의 사건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역사가들의 사회적 환경과 그로 영향을 받은 성격, 가치관 등이 역사의 해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았고, 하나의 사건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마치 기사처럼. 우리나라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각 기자의 회사, 성별, 그들의 사상으로 인해 기사의 제목부터 내용까지 달라서 같은 사건에 대한 기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와 같은 것 같다. 꽤나 배울 점이 많았던 책이다. 평생을 그냥 살아갔으면 몰랐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고 있는 과거의 사건들과 많은 역사가들의 사상, 그리고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아는 것을 넘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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