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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 천카이거 아이들의왕 『孩子王』

EnergyTravel 2025. 6. 12. 17:43

 

오늘은 아청 천카이거 아이들의왕 『孩子王』서평 감상입니다.

 

<INDEX>

 

아이들의왕 저자 소개

아이들의왕
아이들의왕

 

작가 소개 - 아청

1949년 북경출생, 우파분자였던 저명한 영화평론가의 아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혁을 만나 맨 처음 내몽고에 하방되고 후에 운남으로 가 첸 카이거와 같은 농장에 배속되었다. 1979년 북경으로 복귀 후 하방생활을 그린 <장기왕>, <나무왕>, <아이들의 왕>을 발표했다. 수사의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향촌의 질박하고 순수한 민속과 풍경을 돋보이게 묘사했다. 질박한 문장 속에 시대,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잘 들어나 있다. 

감독 소개 - 천 카이거

1952년 북경에서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와 시나리오 작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문혁이 일어나자 홍위병이 되었다. 자산계급으로 몰린 아버지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아버지를 비난하는 집회에서 스스로 아버지를 비판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기억은 이후 천 카이거의 내면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되었고 천 카이거가 개인과 역사의 상관관계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된다. 천 카이거 또한 당시 여느 청년들처럼 북경을 떠나 운남의 산골 농장에서 청춘을 보내게 된다. 
새로운 탐색을 시도하는 실험적인 영화와 독특한 시청각적 표현기법이 천 카이거 영화의 특징이다. 

5세대 감독들의 특징

5세대 감독들이란 1978년 베이징 영화대학을 입학했던 동기들을 지칭한다. 5세대 감독들은 대부분 문혁기간 중 ‘지식청년’의 신분으로 농촌에 하방 되어 노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들은 중국 서민들의 실제 생활상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그 당시 중국이 지닌 문제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한편 그들은 대자연에서의 생활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5세대 감독들은 자화상을 그리는 영화들을 다수 제작하였다. 역사적인 상황에 좌절하는 인간상, 사실적인 시대상 묘사, 모호한 줄거리 표현, 공간의 활용 극대화, 그리고 빛과 색채, 소리의 독특한 활용이 5세대 감독 영화의 특징이다.

 

등장인물 소개

 

라오간

소설에서 ‘나’는 영화 속 ‘라오간’으로 등장한다.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보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하게 진행하는 추진력도 가지고 있다. 권위의식을 거부하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농촌의 열악한 현실과 희망이 없는 미래를 깨닫게 되고 선생님으로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지 고민하게 된다.

왕푸

실어증에 걸린 아버지를 둔 학생이다. 여태 배운 글자들을 모두 공책에 기록해 놓는 꼼꼼하고 열정적인 성격이다. 라오간에게 수업방식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자각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사전을 갖고 싶어하며 아버지를 끔직하게 사랑한다. 이후 라오간의 작문수업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사고하고 창작해나가는 연습을 하게된다.

라이디

통통한 몸집에 목소리가 크고 밝은 성격이다.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이 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교사가 된 라오간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를 느끼며 선생님이 되고 싶은 욕망은 더욱 극대화 된다. 

교사들

학교에는 관리자이자 수학선생인 남교사와 여교사 둘이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순응적이며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라오간이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라오간의 기준에는 아이들과 같이 깨어있지 못하고 무비판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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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배경

 

역사적 배경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이용했던 홍위병들이 점점 과격해지고 정치화되자 이들을 진압하고 해산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을 실시한다. 상산하향 운동은  ‘农场(兵团)’과  ‘插队’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兵团은 중국이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전국민 군사화의 일환으로 전국각지에 生产建设兵团을 조직한데서 비롯된다. 청년들은 농촌 각지에 파견되어 땅을 개간하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군대식 체제아래 사상검열도 엄격하여 좋은 집안 출신들이 兵团에 소속될 수 있었다.  그들은 국가건설에 이바지하고 인민을 위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이상과 영광아래 본인이 兵团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插队형식은 중,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혹은 갓 졸업한 청년들을 농촌 생산대에 내려 보내 농촌문화 건설사업 및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지식청년이라 불리는 그들이 농촌에 내려간 이유는 학교가 철폐되고 공장들이 문을 닫아 교육이나 취업의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생활조건도 插队가 더욱 열악했다. 임금이나 보조금이 턱없이 부족했고 노동이 끝나고 돌아오면 밥도 스스로 해먹어야 했다.(兵团은 식당이 따로 있었다.) 또한 여가활동이나 문화 활동에 대한 지원도 兵团에 비해 부족하여 개인적으로 가져온 책을 돌려 읽거나 1년에 한두 번 영화를 보는 게 전부였다. 마오쩌둥은 당시 1966~1968년 중학교 이상을 졸업한 도시 학생들 400만 명을 지식청년으로 지정하여 지방 농촌으로 파견하고, 1968~1978년까지 파견된 지청의 수는 대개 1,7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주로 요령(辽宁), 흑룡강(黑龙江), 운남(云南), 길림(吉林), 신강(新疆)  등 낙후된 변방지역에 배치되었다.  

당시 농촌 학생들은 교과서도 보급 받지 않았고 비만 피할 수 있는 초가집에 나무 책걸상만 놓여있는 교실에서 공부해야만 했다. 경험과 자격을 갖춘 교사의 부족으로 지식청년들이 대신 아이들을 가르쳤고 아이들도 틈틈이 노동을 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책상과 의자는 너무나 허술하고 조잡했다. 칠이 되지 않은데다 원래의 나무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아이들의 왕 196p)
- “무슨 책이요? 저희는 책이 없어요.” (아이들의 왕 197p) 
- “저더러 중학교 3학년을 가르치라고요? 저는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을 마쳤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겁나요? 제대로 하자면 우리도 모두 자격 미달이에요.” (아이들의 왕 194p)
- “내일은 모두 나무 벨 때 쓰는 칼을 가져오도록 한다. 우리 반에 할당된 양은 다 합쳐서 230 그루다.” (아이들의 왕 238p)

1950년 중국의 문맹률은 무려 80%나 되었다. 간체자 제정이 1960년대 중후반에 와서야 이루어졌고 문혁 당시에 교육 기관 등의 폐쇄와 지식인 박해 등으로 인해 높은 문맹률은 문혁 후에도 한 동안 유지되었다. 특히 농촌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중국 문맹자의 80%이상이 농촌에 소재해 있다. 문맹뿐만 아니라 문혁 당시에는 문화맹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맹이란 글은 읽을 수 있지만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당시 마오쩌둥 사상의 우상화로 인해 비판 및 창의적 사고 불가했고 당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무조건 따라야 했기에 독립적인 사고력을 갖춘 학생들을 양성하기 힘들었다.
-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수재(秀才)라고 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거인(擧人)이라 했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장원급제’나 다름없었어. (아이들의 왕 225p)
- 글을 알아도 문맹이라는 거야.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정확히 알아야 문맹이 아니라는 거지. (아이들의 왕 222p)
- 지금 학생들은 공부하다가 나이가 차면 생산대로 돌아와 막노동을 해야 하는 형편이니 글을 익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우리 아들놈에게 내지에 있는 고향집에서 온 편지를 읽어 달라고 했더니 우물쭈물하며 뭐라고 쓰여 있는지 잘 알지 못하더라고. 나도 알아볼 수 없고 말이야. (아이들의 왕 226p) 
-“지금 너희들의 국어 실력은 초등학생 5학년 수준밖에 안 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너희들이 쓴 글을 보면 잘못 쓴 글자나 엉뚱한 글자를 쓴 것은 고사하고 쓰는 법조차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왕 232p)
-“우리 반 학생들에게 작문을 시켜보면 신문 사설에 나오는 얘기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르칠 필요도 없다니까. 한번은 국경절을 주제로 작문을 시켰더니 작년에 열한 개 신문에 게재됐던 사설을 전부 베끼는 거야.” (아이들의 왕 224p)

10년 동안 계속된 문화 대혁명 기간 동안 교육이 마비되고 사상이 통제되었다. 이 당시에 대입시험은 취소되었으며, 대학은 문을 닫았고, 교수들은 농촌이나 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하방(下放)에 처해졌다. 문혁기간동안 도시의 젊은이들은 농촌으로 이주하도록 강요되었고, 그곳에서 모든 정규 교육을 포기한 채 공산당의 선전교육만을 받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진학이나 더 이상의 교육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들의 학력은 대부분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육 수준에 머물렀다. 보통사람보다 조금이라도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있는 사람은 "계급투쟁의 대상"이 되었기에 자신의 적성과 자질은 숨겨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자격 있는 교사의 부족으로 청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며 교육 방식에 있어서도 공산당의 지침에 어긋나지 않는지 끊임없이 상호 검열이 이루어졌다.
-“중앙 방송에서 한 마디 하면 나는 열 마디를 알 수 있지.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젠 귀에 못이 박혀서 더 들을 필요도 없다고.” (아이들의 왕 224p)
-무엇을 배우고 무얼 배우지 않든지 간에 유용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상부의 지시만
고분고분 따르고 있다 보면 갈수록 더 쓸모없는 교육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왕245p)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전고가 천지를 진동하네’ 같은 화려한 표현을 쓰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의 왕 233p)
- 아이들에게 나쁜 것만 가르치는 군요. 잘 모르시나본데 선생님이 학생들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총장의 교육과에서 다 알고 있다고요. 징계를 당할 수 도 있어요. (아이들의 왕 243p)
-“라오헤이, 너 적국의 방송을 청취했어. 내가 간부들한테 다 일러바칠 거야!”
“흥! 일러바쳐 보시지. 지부 서기는 그 방송을 안 듣는 줄 알아?” (아이들의 왕 223p)

문혁시기 무수한 젋은이들의 능력과 자질의 발현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공산당은 청년들의 능력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농촌 생산대 투입을 강행했다. 마치 유배와 같은 생활속에서 청년들의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은 답보할 수 밖에 없었고 욕구 실현의 좌절을 맛보게 된다.
-“학교에 돌아가거든 우리 생산대에 라이디라는 사람이 있는데 모르는 노래가 없으니 한 번 꼭 모셔다가 몇 곡 가르쳐보자고 건의해보라고.” (아이들의 왕 220p)
-“라오헤이 같은 애들은 내가 항상 불이나 피우고 밥이나 지을 줄 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이런 일도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면 나를 우습게보지 못할 거야.” (아이들의 왕 229p) 

 

작품 감상

 

7년간 생산대에서 일하던 지청년 라오간은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력 덕분에 교사로 발령받는다. 농촌의 허름한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 지도 모른 채 정치적 교과서로 교육받고 있었다. 초임(初任)교사 라오간은 수업내용과 방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에 혼란이 온다. 다행히 학생 ‘왕푸’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교육을 깨달은 라오간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새로운 작문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공산당의 방침에 어긋나는 라오간의 수업 소식은 곧 관리간부에게 전해지고, 라오간은 다시 생산대로 돌아가게 된다.

소설과 영화의 비교 / 분석

영화『아이들의 왕』은 소설의 중요 서사 요소-이야기의 줄거리, 배경, 등장 인물들의 성격, 언행-를 대부분 재현하고 있다. 굳이 영화와 소설 원작 사이의 차이를 들자면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주인공 라오간의 파악과 표현에 있다. 소설에서의 라오간의 형상은 내향적이고, 신중하지만 성격이 원활하고 가끔 욱하는 면도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라오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고, 어떤 면에 있어서는 체제 순응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도 엿보인다. 이러한 라오간 이라는 인물 형상에 대한 차이는 아청과 천 카이거 두 사람의 견해 차이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영화 속의 라오간의 형상은 천카이거의 분신이고 소설 속 라오간의 형상은 아청의 모습이라 이해한다면 그 차이가 조금은 쉽게 납득이 된다.

 

두 번째 차이는 시점의 차이이다. 소설에서는 주로 라오간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가 라오간에게 더욱 공감하게 도와준다. 반면 영화에서는 대부분 3인칭 관찰자에 의해 보여 지는 형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라오간을 객관화 시키는 작용을 하며 독자로 하여금 좀 더 냉정한 눈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한다.
이 외에 소설과 영화에 공통적으로 출현하거나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중요 상징적 표현들을 통해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를 파악하고 <아이들의 왕>을 더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한다.

牛 밑에 水  

소설과 영화에서 牛밑에 水를 합친 한자가 나온다. 이 글자는 사전에 없는 글자이다. 라오간이 자신의 경험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글자이기 때문이다. 아청의 소설에서는 이 한자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은 반면, 천 카이거는 이 한자를 통해 소가 오줌을 받아먹는 것처럼 무분별하게 공산당의 지령에 따르는 민중들, 자신의 독립적 사고 없이 칠판에 적힌 글자만 베끼는 학생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천 카이거는 우매한 규범과 정치적인 문구들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스스로 사고하길 바란다. 


라오간은 창조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교과서에 나온 의미없는 것들 대신 자신의 경험을 쓰라고 가르친다. 그러다 보면 정치 선전 책이나 다름없는 교과서에 나오는 글자를 베끼고 외우기보다는 자신의 글자를 만들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난다. “왕푸,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도 베끼지 말아라. 설사 그것이 사전이라도 말이야.”
- 소는 고집이 센 동물이라 아무리 야단을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깜박거리며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나는 철학자들도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학문을 이루겠는가? 하지만 철학자들도 안절부절 못할 때가 있었다. 내가 오줌을 눌 때는 확실히 그랬다. 소들은 원래 짠맛을 좋아했다. 오줌이 짜다 보니 소들은 앞을 다투어 오줌을 받아먹으며 좋아라 했다. 오줌을 먹이고 나면 소들은 항상 고분고분하게 부모님을 대하듯 공경스런 태도로 내 말에 잘 따랐다. 나는 한 무리의 붕당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신나게 오줌으로 소들을 이끌곤 했다.
" 선생님 소 우 자 밑에 물 수 자가 있는 것이 무슨 글자인가요?":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나도 모르게 칠판에 쓴 글자를 황급히 지웠다. (아이들의 왕200p)

거울 
영화를 보면 라오간과 라오디가 혼자 우둑 커니 서서 거울을 가만히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여서 천 카이거의 의도가 잘 들어난다. 
보통 거울은 자아의 발견이나 현재 처지의 대면을 상징한다. 
영화에서는 라오간과 라오디가 거울을 바라보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오간은 책조차 없는 농촌의 현실을 마주하고 기존에 다른 선생님들이 해왔던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기에 거울을 바라보게 된다. 라오디는 음악 선생이 되어 노래를 가르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에 좌절한 상황에서 왕푸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거울을 보게 된다. 라오간과 라오디가 거울을 보는 순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거울보기는 절망을 마주하였을 때 희망을 놓치 않고 다시금 힘차게 살아나가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사전 
소설과 영화에서 사전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전교에 한 두 권 밖에 없고,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다. 왕푸가 정말 갖길 원하는 것이고, 왕푸가 한자 한자 그대로 베껴나가는 대상이다. 이에 사전은 아이들의 왕이 되려면 최소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성물로 취급된다. 마치 마오쩌둥의 어록집처럼 신성시 여겨진다. 왕푸는 사전을 선생님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한 글자씩 베껴나간다. 하지만 사전은 부작용 또한 가지고 있다. 사전은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그저 사전만을 신봉한채 달달 외운다면 牛 와 水 를 합친 글자는 만들어 낼 수 없고 나만의 독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라오간 역시 이를 경계했던 것 같다. 학교를 떠나며 왕푸앞으로 사전을 남기지만 사전을 베끼지 말라는 말도 함께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
 <孩子王>에서는 두 곡의 노래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라오간과 생산대 친구들이 부르는 반복되는 구절의 노래이고, 두 번째는 라이디가 라오간과 지은 합창 노래이다. 먼저 라오간과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는 몇 구절이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복되는 가사다.  생산대 친구들이 이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는 장면에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조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이 노래를 몇 번 듣고는 바로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아이들이 무비판적으로 무언가를 수용하는 성향을 상징하는 듯 했고 정치 선전 일색인 교과서를 배우는 아이들의 사고를 걱정하게 했다.  두 번째로 라이디가 지은 노래는 라오간의 교육방침과 통한다. 노래의 가사는 굉장히 쉽고 간단한 내용이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학습해 나가야 하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라오간의 수업 목표는 아이들이 직접 경험한 삶을 자신만의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노래로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부름으로써 간접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을 계몽하고 삶의 방향을 일깨워 주기를 바라는 라오간과 라오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아주 옛날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에는 묘당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 묘당에는 스님이 한 분 계셨지. 이 스님께서는 얘기를 하나 들려주셨어. 무슨 얘기를 하셨느냐? 아주 옛날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에는 묘당이 하나 있었다...(아이들의 왕 253p)

- 중학교 3학년 수업은 정말 힘들지만
  3천 자를 배우고 나면
  졸업하여 책을 읽을 수 있네.
  ...
  머리가 항상 어깨 위에 있고
  글도 반드시 자신의 글을 쓴다네. (아이들의 왕 259p)

대자연(大自然)
  제5세대 감독들의 특징이자 천 카이거 감독이 영화를 연출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가 자연(自然)이다. 소설 속에서는 자연을 그다지 비중있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첫 장면부터 고원 위의 학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의 고원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연출한다. 고원에는 학교가 있다. 학교는 자연의 변화에는 무관심한 듯 정지화면처럼 멈춰서 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교육 체제와 고립된 채 계몽되지 못했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다시 고원의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고원 주위의 초원이 불타는 모습이 연출된다. 감독은 라오간의 교육 실천에 대한 좌절, 참 교육이 말소될 수 밖에 없는 농촌 교육의 미래를 불과 붉은 색채감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으론 불로 완전히 연소 시키듯이 모든 것을 새롭게 개혁해야만 농촌이 비로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
60년대 상산하향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아청과 천 카이거는 자신이 겪은 고통과 당시 문혁시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아이들의 왕>을 통해 잘 표현했다. 작가와 감독이 상상하거나 들은 이야기가 아닌 직접 경험한 내용이기에 사실적이고 꾸밈없는 소설과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문혁을 다룬 작품 중 <아이들의 왕>이 드물게 상영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문혁을 겉으로 강도 높게 비판하거나 비극성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두 사람은 상징적인 장치들을 이용하여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상징성을 부가시켜 문혁시기의 교육 현실을 담아냈다. 당 교육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 순응과 답습,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열악한 농촌 환경 등을 부드럽지만 심도있게 성찰했고,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 이를 통해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에서는 교육이 도구로 이용될 수 있고 소외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독립된 사고 능력이 없다면 곧 문맹과 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아청과 천 카이거의 차이점도 드러난다.


자연이 가지는 의미와 교육에 대한 입장 등에서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천 카이거는 자연을 자주 연출하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자신이 겪은 자연에서의 경험을 사용했다. 마지막 장면의 들불 놓기가 대표적이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베끼는 행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은 같지만 아청의 경우 내용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베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천 카이거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과거의 것을 베끼는 것은 창의적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의 문혁시기처럼 국가의 정치세태와 이데올로기에 교육이 좌우되는 시기가 존재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학교를 다녔던 중장년층들은 당시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울 수 밖에 없었다. 각 교과서의 시작 페이지마다 ‘국민교육헌장’이 자리했고 반공 교육과 군사정권체제의 지지를 무의식중에 각인되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민헌장의 실질적인 역할이 국정교과서의 사상적 방향을 강제하는데 기반이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당시 우리나라 현실이 중국 문혁의 교육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독재정권의 과거를 벗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혹시 문화맹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뒤돌아 봐야 한다. 국민교육헌장은 없어졌지만 칠판에 적힌 대로 외우고,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베끼며, 매체에서 하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수동적인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로 자신만의 표현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고등교육을 받았을 뿐 <아이들의 왕>의 농촌 학생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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